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1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13화
박마루가 누구 얘길 하려는지는 뻔했다.
‘정찬양 얘기겠지 뭐.’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별소리가 다 나오는 법 아니겠는가.
그룹과 팬덤, 회사에 더없이 헌신적이던 정찬양 새끼가 벌써 몇 달째 손을 놓고 저 혼자 살아 보겠다고 행동하니 이상했겠지.
예찬은 잠시 리스피릿 시절을 떠올렸다.
매년 초에 회사 직원들과 멤버들을 모아 놓고 큰 연간 계획을 브리핑했는데, 아마 작년 후반부는 통으로 날렸을 것이다.
‘올해는 아예 회의도 안 했겠지? 그나마 라이브 방송은 간간이 하는 것 같긴 한데, 제목에 그룹 이름 떼고 자기 이름만 쓴다던데.’
큰 관심을 두지 않아도 연예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면 절로 귀로 들어오는 일들이 많았다.
예찬이야 정찬양 놈이 지금까지 보였던 태도는 다 자신의 흉내였고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구나 싶을 뿐이지만, 동고동락하던 박마루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사람이 180도 변했으니 귀신이라도 들린 거라 믿을 법했다.
‘정찬양이든 박마루든 LEE 엔터든 알아서 지지고 볶으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데서 점 보고 다닐 때 내버려 둘…… 하, 아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리고 엉엉 우는 꼴도 보고 싶지 않으니, 전에 했던 일을 후회하진 않기로 했다.
어쨌거나 박마루는 이미 예찬을 업계 후배가 아닌 무속인으로 보고 있었다.
“예찬 님, 제발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네?”
‘저 빌어먹을 호칭만 봐도…….’
예찬은 가볍게 목덜미를 주무르며 마구 구겨지려는 표정을 다잡았다.
“선배님, 여기서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리 목소리를 줄여도 듣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응원만 하면 되는 예찬과 달리, 박마루는 경기에 참여해야 하지 않은가.
“선배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저 정말로 진지해요, 예찬 님! 예찬 님이 비밀로 하고 싶어 하시는 거 알지만 그래도 이번 한 번만 제발……!”
예찬이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한다고 생각했는지 박마루가 양손으로 예찬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선배님이 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뭔가 애원하시는 거 같은데…….”
“방금 제발이라고…….”
“협박…….”
“후배가 선배를…….”
“사실 생긴 게 좀…… 그렇지?”
‘이런 거지 같은…….’
박마루의 목소리가 조금 커진 탓에 몇몇 수상쩍은 단어들이 주변에 있던 아이돌들의 귀에 들어가 버렸다.
수군거리는 주변의 반응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인지 박마루는 간절한 눈으로 예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찬은 습관처럼 박마루의 손등을 꼬집으려던 것을 간신히 멈춰 세우고, 그 대신 어깨에 여전히 붙어 있는 손들을 차곡차곡 떼어 냈다.
그 짧은 동작을 이어 가는 사이에도 주변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어느새 거리가 슬쩍 벌어졌던 멤버들도 이쪽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다가오려는 것이 보였다.
‘그 전에 마무리 지어야지.’
예찬은 박마루에게서 한 걸음 떨어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은 보는 눈이 많으니 정찬양 선…… 배님에 대해선 대기 시간에 다시 이야기하죠. 제가 과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 진짜 선배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카메라 앞에서라면 모를까, 박마루 앞에서 정찬양 이름 뒤에 선배님을 붙이는 것은 여전히 불편했다.
정신 차리고 여기가 어딘지 자각하라는 예찬의 경고를 알아들었는지 박마루의 눈동자가 거센 바람을 맞닥뜨린 바다처럼 출렁거렸다.
‘그래, 이 자식아. TPO를 생각…….’
“저 찬양이 얘기라고는 아직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미친.’
아직 말 안 했었냐.
“역시 예찬 님……!”
박마루의 착각이 한층 더 견고해졌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실언한 예찬은 섣불리 움직인 자신의 혀를 죽지 않을 정도로만 깨물어 주고 싶은 심경이었다.
여기서 뭐라 변명한들 먹힐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무튼 나중에 얘기하죠, 나중에.”
‘나중에’에 힘을 주어 문장을 뱉어 내자 박마루가 알았다는 듯 열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찬, 이경이 형 시합 바로 할 거 같은데……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느새 다가온 강해솔이 예찬을 슬쩍 잡아끌며 박마루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으나, 선을 긋고 경계하는 기색이 숨겨지지 않았다.
“아, 예찬 니…… 씨랑 같은 그룹 맞죠? 제가 너무 오래 예찬 니, 씨를 붙잡고 있었나 보네요. 저도 시합 준비하러 가 볼게요. 이따 봐요, 예찬 니…… 씨!”
‘이 빡대가리가 대체 몇 번이나 호칭을 틀리는 거야.’
이쯤 되면 싸우고 싶어서 시비를 거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손을 흔들며 박마루가 저 멀리 사라지자 강해솔이 예찬의 귀에 속삭였다.
“예찬 니가 뭔데?”
“……글쎄, 나도 모르겠다.”
* * *
[스트라이크! 레굴루스의 선우이경 선수, 이번에도 깔끔한 스트라이크입니다!] [기어의 헬리컬 선수는 완전히 의욕을 잃은 것 같은데요.] [마지막까지 포기하면 안 되죠! 스포츠 정신을 보여 줘야 할 때입니다!]포켓볼을 기가 막히게 잘 쳤던 선우이경은 볼링도 끝내주게 잘 쳤다.
‘아주 즐겁게 살았나 본데.’
하루 이틀 당구장과 볼링장을 드나들어서 나올 솜씨가 아니었다.
[선우이경 선수, 16강에 이어 8강에서도 크게 점수 차를 내며 준결승에 진출합니다!] [과연 누가 이 선수를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윤주인 해설 위원이 직접 내려가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형님 왔다!”
해설진들의 칭찬을 등에 업은 선우이경이 샐샐 웃으며 멤버들에게 다가왔다.
“고생했어요.”
“형 멋있었어요!”
“형이 좀 하지?”
그렇지 않아도 높은 콧대가 더 높아진 선우이경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칭찬을 즐겼다.
“준결승은 이따 점심 먹고 하는 거지?”
“어. 씨름만 좀 하고 바로 할 거긴 한가 봐. 세트 치우는 게 일이라서.”
“축구도 이 안에서 하는 건 아니죠?”
“축구는 밖에서 할 거래.”
“이 추위에……?”
첫 시합의 단추를 잘 끼워서인지 멤버 전원이 살짝 들뜬 것처럼 보였다.
“저 다음에 볼링 알려 주세요!”
“세혁이 포켓볼도 알려 달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러면 포켓볼도 알려 주세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범세혁이 볼링 폼을 흉내 내며 들떠서 떠들던 때였다.
“그거 좋네요. 방 바꾸기 다음 콘텐츠로 하죠.”
불쑥 멤버가 아닌,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깜짝이야!”
범세혁 옆에서 소심하게 볼링 하는 흉내를 같이 내고 있던 정의탁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정의탁을 깜짝 놀라게 한 당사자, 신 PD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다음 콘텐츠는 누가 제일 잘 놀라는지 알아보는 ‘레굴루스 새가슴 특집’으로…….”
“누가 새가슴이에요!”
함께 살면서 신 PD와 놀라우리만치 편해져 버린 정의탁이 거침없이 눈을 흘겼다.
잠시 정의탁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신 PD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그럼 ‘쫄보 특집’으로…….”
“……그냥 새가슴으로 해 주세요.”
“와, 저도 놀랐어요.”
정의탁이 백기를 들자 그제야 심상록이 자신도 놀랐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신 PD가 지금처럼 비하인드 촬영 중에는 별로 말을 걸거나 끼어드는 일이 없어서 충분히 놀랄 만하긴 했다.
‘카메라가 꺼져 있을 땐 말이 많아도 너무 많지만.’
신 PD는 정의탁 때완 달리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스포츠 특집 영감이 확 솟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기억력이 좀 오락가락해서 이렇게 여러분께 말로 해 두면 여러분이 기억해 주실 거 같아서요.”
“아, 네.”
참으로 시답잖은 이유였다.
‘메모를 하라고.’
예찬을 포함해 몇몇 멤버들은 모지리 같은 PD를 향해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으나, 팀 내에서 천진난만을 맡고 있는 멤버들의 반응은 달랐다.
“스포츠 특집 재미있겠다!”
“겨울 스포츠 특집 하면 안 돼요? 스키랑 스노보드 같은 거.”
“전 눈썰매…….”
차례대로 범세혁과 채은성, 배새벽이었다.
“여름엔 여름 스포츠를 하고? 은성이 너 천재야?”
“후훗.”
“저 여름엔 바나나 보트요.”
세 사람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 주자 신 PD도 흥이 올랐다.
“제가 제대로 준비해서 모시죠!”
“와아!”
“PD님만 믿겠습니다!”
“믿습니다.”
저쪽은 이미 스포츠 특집을 머릿속에서 개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 가 볼까요?”
“응, 그러는 게 좋겠다.”
축제가 벌어진 네 사람을 두고 예찬과 다른 멤버들은 복숭아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점심 식사를 앞두고 씨름 남자부 시합이 시작되었다.
레굴루스에서 씨름에 참여하는 멤버는 예찬과 우휘겸, 그리고 채은성으로 지난 추석과 같았다.
“예찬아, 잘하고 와!”
“천하장사 하예찬!”
“예찬이 파이팅!”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클립틱들이 진심으로 예찬의 선전을 응원한다는 것이었다.
예찬이 팬들을 돌아보며 귀엽게 웃어 보였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추석 땐 다들 놀리기 바빴는데.’
추석 전아체 녹화에 이어, 설 전아체 특집 녹화에도 참여한 예찬의 홈마 박모 씨가 감회에 젖어 들었다.
지난 추석 씨름 결승에서 보여 준 예찬의 활약을 생각하면 당연한 변화였다.
‘예찬이가 상대적 하찮이었다니 놀라운 발견이었지…….’
그렇지만 오늘 이클립틱들에게 가장 큰 응원을 받고 있는 것은 단연코 채은성이었다.
“은성아, 힘내!”
“무리하지 마!”
“은성이 이미 최고야!”
“다치지 말고, 잘하자!”
“채은성, 파이팅!”
박모 씨 또한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은 다음, 양손을 입 옆에 확성기처럼 대고 채은성을 향해 소리쳤다.
지난 전아체에서 채은성이 다리를 다쳤던 것이 팬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더 다치면 진짜 트라우마 될 듯.’
채은성은 그런 팬들을 향해 머리 위로 크게 하트를 그리고 힘차게 씨름판을 향해 달려갔다.
“어우, 조마조마하다.”
“진짜 전아체 폐지해야 한다니까.”
그런 채은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변 팬들이 속닥거렸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빌어먹을 CBC, 빌어먹을 전아체, 빌어먹을 제작진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렇지만 다들 시합이 시작되면 목청이 터지라고 소리를 칠 것이 분명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남자부 씨름 16강전 첫 번째 시합은 레굴루스 대 블랑딕스입니다.] [지난 추석 때도 이 두 팀이 16강에서 만났었죠.] [블랑딕스 선수들의 표정이 그때와는 사뭇 다르네요.] [그럴 만합니다. 레굴루스는 지난 대회 우승자 아닙니까.] [그것도 압도적으로 말이죠.]허리와 다리에 샅바를 매고 몸을 푸는 멤버들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고, 해설진이 주고받는 대화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렌즈를 바꿔 끼우던 박모 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거 봐. 애들 칭찬 좀 들었다고 이렇게 쉽게 뿌듯해져 버렸잖아.’
[디펜딩 챔피언 레굴루스! 이번에도 그 저력은 여전할 것인지!]‘불가항력이다…….’
디펜딩 챔피언이라니, 이렇게 설레는 단어에 심장이 뛰지 않는 덕후는 없을 것이다.
박모 씨는 벅차오른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뷰파인더 너머로 예찬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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