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1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14화
전아체 제작진이 레굴루스를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처럼, 예찬을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도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레굴루스의 채은성! 채은성 선수! 깔끔하게 넘겼습니다! 지난 대회 결승전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을 설욕하듯 아주 힘이 넘치네요!] [우휘겸 선수, 이번에도 밭다리 걸기! 이건 알아도 못 막죠!] [2대 0으로 레굴루스가 8강에 진출합니다!] [우휘겸 선수, 이번에도 기술에 성공하나요? 네! 깔끔하게 성공합니다! 이 선수의 시합은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네요!] [잠시 서로 상태를 살피는 거 같죠? 아, 이때 채은성 선수가 파고듭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속도!] [준결승에 진출한 것은 역시 예상대로 레굴루스네요!] [채은성 선수, 이번에도 승리를 차지합니다! 파죽지세로 먼저 결승전에 한발 다가가는 레굴루스입니다!] [어, 어, 우휘겸 선수, 이번에 밀리나요? 어어어! 지석우 선수의 힘을 반대로 이용하네요! 아주 영리한 플레이죠!] [우휘겸 선수의 승리네요! 지석우 선수, 사전 인터뷰 때 지난 패배 이후 씨름 코치들을 초빙해 연습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아쉬운 결과입니다.] [그래도 잘했어요. 두 선수 모두 훌륭한 실력을 보여 준 좋은 경기였습니다.] [레굴루스가 지난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던 OPE를 이번에도 꺾고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어? 지석우 선수, 지금 우는 건가요?]해설의 말대로 모래판 위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는 OPE의 지석우 곁에서 우휘겸이 쩔쩔매고 있었다.
옆에서 바지와 발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던 채은성도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예찬은 그런 채은성의 뒤를 따르며 모래알 하나 묻지 않은 자신의 하반신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이거, 이번에야말로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우승하겠는데?’
지석우는 같은 팀 멤버들과 레굴루스 멤버들이 옆에서 달래기 시작하자 아예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그런 지석우의 등을 토닥거리느라 오늘 처음 모래판의 감촉을 느낀 예찬은 심각한 위기를 느꼈다.
‘……이렇게라도 모래를 밟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 * *
점심시간을 앞둔 마지막 경기는 축구 예선전이었다.
지석우를 달래던 우휘겸은 제작진의 부름에 황급히 옷을 털고 유니폼을 받아 들었다.
OPE 멤버들에게 지석우를 안겨 준 채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휘겸이 지난 추석 때도 씨름 끝나자마자 배구하러 갔었잖아. 그땐 내가 같이해서 기억하고 있지. 둘 다 고생했어.”
마침 생수병을 가지고 다가온 선우이경이 채은성의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예찬은 조금 민망한 얼굴로 병을 받았다.
예찬과 달리 한 일이 많은 채은성은 단숨에 병에 든 물의 반을 들이켜고 선우이경에게 물었다.
“이경이 형, 우리 누구랑 같은 팀인지 알아요?”
“WW 선배님들이랑 기어 선배님, 블랑딕스 선배님, 그리고 연말에 데뷔한 펠리치타까지 다섯 팀이 한 팀이래.”
어디서 정보들을 수집해 온 건지 선우이경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팀의 정보까지 주르륵 읊는 선우이경을 향해 예찬과 채은성은 가만히 박수를 보냈다.
“한 팀에서 셋씩 나가는 거면 후보 선수도 있나 보네요?”
“그렇겠지? ……세혁이는 MVP를 노리겠다면서 갔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세혁이랑 상록이, 그리고 휘겸이까지 셋 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좋겠어.”
목소리를 낮춘 선우이경의 말에 예찬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전국 아이돌 체육 대회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바로 축구 경기였다.
‘일단 사람이 스물둘씩 경기장에 들어가 있는 것부터 위험한데, 뻥뻥 차 대는 공도 위험하고, 태클도 위험하고, 팔꿈치에 얻어맞는 일마저 빈번한걸.’
레굴루스에서 축구에 참여하는 멤버는 심상록과 범세혁, 우휘겸이었는데, 셋 다 몸을 사리며 대충 자리만 채울 성격이 아닌지라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뭐, 지금 걱정해 봐야 소용없으니 일단 밖으로 나가자. 너희 패딩까지 애들이 챙겼어.”
“……네.”
축구 경기는 체육관 밖에 있는 야외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밖으로 나오자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듯 불어닥쳤다.
한겨울에 대체 무슨 짓이냐고 PD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날씨였다.
“예찬이 형! 은성이 형! 이거 입어요!”
경기장 근처에 있던 정의탁이 뒤늦게 나온 세 사람을 알아보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새 어찌나 옷을 껴입었는지 뒤뚱거리며 다가온 정의탁이 들고 있던 롱패딩을 건넸다.
“날씨 미쳤는데. 넘어지면 뼈 부러지겠어.”
“이제 뼈도 잘 안 붙는 나이인데…….”
패딩에 팔을 꿰고 있자 레굴루스보다 한참 연차가 쌓인 선배들이 옆을 스쳐 지나가며 푸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의탁이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상록이 형 말고 조금이라도 뼈가 더 잘 붙는 어린 제가 나갔어야 했을까요?”
심상록과 동갑인 선우이경이 어울리지 않게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물 먹일 마음으로 그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의탁아.”
지퍼를 턱 끝까지 올린 다음 관중석에 자리 잡은 멤버들에게 다가가자 배새벽이 열심히 흔들고 있던 핫팩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우리 새벽이, 이따 양궁 하러 가야 하는데 이렇게 팔을 막 써도 돼?”
냉큼 받아 든 핫팩을 배새벽의 빨갛게 물든 뺨에 척 가져다 댄 선우이경이 물었다.
“이렇게 팔 푸는 거죠.”
배새벽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이좋게 따끈따끈한 핫팩을 나눠 쥐고 자리에 앉자, 체육관 다른 쪽 입구에선 제작진의 통솔하에 팬들이 응원을 위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복숭아!”
“여기요, 여기!”
멤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이클립틱들을 향해 양팔을 마구 흔들었다.
레굴루스를 알아본 이클립틱들도 신나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몇 분이나 못 봤다고…….”
“견우랑 직녀인줄?”
옆자리에 앉은 선배 그룹이 눈꼴시다는 듯 속닥거리며 뒷말을 흐리는 것이 들렸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이 없었다.
이클립틱들이 조금 더 먼 응원석에 무사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목을 쭉 빼고 구경하던 멤버들은 그제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핫팩 더 드릴걸.”
“그러게. 남는 거 없는지 건호 형한테 물어볼까?”
“담요가 아니라 이불을 준비했어야 했어.”
진지한 얼굴로 떠드는 멤버들을 조금 전 옆에서 쑥덕거린 선배 그룹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이번에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예찬.”
그때 조금 전부터 유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민하던 강해솔이 예찬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응?”
예찬이 어디 말해 보라는 듯 몸을 강해솔 쪽으로 기울이자, 잠시 입술을 말아 물고 망설이던 강해솔이 빠르게 속삭였다.
“이클립틱 응원석에…… 기태랑이, 아니, 기태랑은 아니겠지만, 엄청나게 닮은 복숭아가 있어.”
“어?”
“잠깐, 너무 대놓고 보지 말고!”
순간적으로 팬석으로 돌아가려는 예찬의 얼굴을 강해솔이 꽉 붙잡았다.
“알았어, 대놓고 안 보고 슬쩍 볼게.”
“……티 안 나게 살짝만 봐야 한다. 진짜로.”
거듭 당부한 강해솔이 손에 힘을 풀었다.
예찬은 자연스럽게 스트레칭을 하는 척 몸을 뒤로 틀어 이클립틱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빠르게 훑었다.
‘오.’
의식하고 보니 강해솔의 말대로 기태랑과 쏙 닮은 팬이 한 명 보였다.
‘완전히 똑같이 생긴 건 아닌데, 가만 보면 꽤 닮았다고 해야 하나?’
다시 몸을 정면으로 돌린 예찬이 감탄했다.
“와, 해솔이 형. 눈썰미 되게 좋다.”
예찬이 머리를 자르거나 선글라스를 새로 산 뒤 뭐가 달라졌는지 물어봤을 때 더럽게 못 맞추던 그 강해솔과 같은 사람이 맞는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직업란에 작곡가가 아니라 아이돌을 적으면 눈썰미 스탯이 올라갑니다, 뭐 이런 건가?’
예찬의 대답을 들은 강해솔이 입을 삐죽거렸다.
“……왜 뭔가 아니꼽다는 것처럼 들리지?”
“아니? 전혀 아닌데?”
예찬이 정말 아무 문제없다는 듯 두 눈을 맑게 빛내며 대답했으나 강해솔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뭔데. 얼른 말해라.”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아, 성가시게 굴지 말고 말하라고!”
여전히 아니라고 발뺌하는 예찬의 어깨를 턱 붙잡은 강해솔이 마구잡이로 종잇장 같은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물론 예찬은 고집스레 입을 꾹 다물었다.
* * *
한편, 강해솔에게 놀라움을 안겨 준 기태랑 닮은 꼴 복숭아는 정말로 기태랑과 2촌 사이인 기해랑이었다.
“태권Z 님, 이거 드세요. 혹시 피자보다 야채가 더 좋을까요?”
“아, 저 둘 다 좋아해요.”
“그럼 반반 먹어요.”
왼쪽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 팬이 기해랑의 닉네임을 살갑게 부르며 따끈한 호빵을 건네주었다.
기해랑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태권Z 님, 이것도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호빵을 우물거리고 있자 이번엔 오른쪽 옆자리에 앉은 회사원 팬이 보온병에서 따뜻한 차를 따라 건네주었다.
주변의 팬들이 모두 훈훈한 얼굴로 차를 홀짝거리는 기해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운데…… 부담스럽다!’
전아체 방청을 함께 신청한 덕질 메이트인 친구는 떨어지고 자신만 붙어 버린 기해랑은 홀로 뻘쭘하게 응원할 각오를 하고 체육관에 찾아왔었다.
– 저기, 실례지만 혹시 태랑이 동생분이신가요?
그러나 막 방청 대기 줄에 선 순간부터, 기해랑을 알아본 팬들이 나타났다.
– 아, 네…….
– 역시! 얼굴이 되게 닮았더라고요!
– 분위기도요!
기해랑에게 긍정의 답을 얻은 팬들은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그때부터 그녀를 마구마구 귀여워했다.
‘예전에 음방 방청했을 땐 이런 일 없었는데…….’
기태랑이 자신의 아이튜브 채널에서 레굴루스가 신곡을 낼 때마다 리뷰라 쓰고 찬양하는 일이 잦아서 팬들의 호감도가 오른 것일까?
‘아니면 어설픈 커버 영상이 먹혔나?’
어쨌거나 기해랑은 자신이 엄마 아들과 정말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태어난 이래 가장 크게 실감하고 있었다.
‘어유, 복스럽게도 먹네.’
‘요런 애기도 레굴루스 팬이라 이거지.’
‘가방에 초콜릿 있는 것도 챙겨 줘야겠다.’
한편 뜨거운 호빵을 놀라울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먹어 치우는 기해랑을 바라보며 주변 팬들은 뿌듯해하고 있었다.
기태랑이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으니, 그 동생이라면 당연히 미성년자.
기태랑과 닮아서 눈에 띈 것은 사실이나, 야밤에 홀로 이 먼 촬영지까지 와서 줄을 서 있던 어린 양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혹시 차 드실 분 또 계실까요?”
“그러면 저도 한 입만 마실 수 있을까요? 저도 호빵 드릴게요.”
“핫팩 부족하신 분은 없나요? 저 가방에 가득 채워 왔어요!”
기해랑을 챙겨 주던 팬들은 이내 시선을 좀 더 옆으로 돌려 서로서로 살뜰히 돕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202Y 전국 아이돌 체육 대회 설 특집 축구 예선 첫 번째 시합이 시작되겠습니다.]그렇게 복숭아들이 겨울의 한파와 대조적으로 따끈하고 말랑하게 데워질 무렵, 축구 예선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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