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1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17화
“……잠을 계속 못 자는 거 같아요.”
“딱히 뭐에 홀리지 않았어도 살다 보면 사람이 변하는 일이…… 잠이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에 예찬이 눈을 깜빡거렸다.
딴소리를 하던 예찬을 보고 멈칫했던 박마루가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 잠이요. ……저, 조금 전에는 혹시 무슨 소리가 들리신 건가요? 이 체육관에 깃든 귀신이라든지…… 헉, 혹시 이런 질문 실례인가요?!”
혼자 북도 치고 장구도 치는 꼴을 보아하니, 여전히 예찬에 대한 기묘한 신뢰는 깨지지 않은 모양이다.
‘잠이라…….’
그냥 바빠서 안 자는 걸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냐고 묻기엔 걸리는 것이 있었다.
– 이거 갖고 싶어 했잖아.
– 나는 분명 전해 줬어. 갖든지 버리든지 그건 네 마음대로 해.
크리스마스 날, 대기실까지 쫓아와 멋대로 크리스마스 선물이랍시고 예찬이 좋아했던 시계를 내민 정찬양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눈 밑도 완전히 시커멓게 꺼져 있어서 잠을 안 잤나 생각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까칠하던 정찬양의 얼굴과 맛이 간 눈을 떠올리는 사이, 박마루가 주절주절 상황을 늘어놓았다.
“카메라 앞에선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애가 점점 초췌해지는 게 보이잖아요. 아, 바빠서 못 자는 건 절대 아니에요. 지금보다 훨씬 바쁠 때도 컨디션 조절도 일이라고 잠깐 틈날 때 쪽잠이라도 꼭 챙겨서 잤거든요.”
리스피릿 시절 예찬이 종종 하던 소리다.
‘그 새끼는 카메라 안 돌 때도 내가 하던 말 따라 했나?’
참 가지가지 하는 놈이란 생각에 코웃음이 나올 것 같았으나, 조금 호기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찬은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대신 대화를 이어 갔다.
“계속이라면 얼마 정도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제가 인지한 건 지난 연말부터요. 크리스마스 좀 앞두고부터 볼 때마다 더 피곤해 보이더라고요.”
‘그러면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이어 박마루는 다른 멤버들도 다들 정찬양이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냐며 뒤에서 수군거렸다고 덧붙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잠을 자는 걸 꺼리는 거 같아 보여요.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걸까요?”
“……가까이서 지켜보신 선배님도 모르는 걸 제가 알까요?”
“제 생각엔 아무리 잠자리가 사나워도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안 잘 수는 없거든요. 제 추측대로 꿈이 문제라면, 진짜 곤하게 잠들면 기억이 안 나니까 문제없잖아요?”
“…….”
“얼마 전엔 차에서 잠깐 선잠이 드는 거 같더니, 정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자마자 잠에서 깨려고 막 아이스 팩을 찾더라고요. 이 정도면 역시 뭔가 나쁜 게 찬양이에게 씐 거 아닐까요?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기엔 어떠신가요?”
‘누가 전문가야.’
이제 일일이 정정하는 것도 귀찮았다.
“예찬 님, 아니 씨, 제발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예찬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박마루는 그저 간절히 두 손을 모았다.
‘이러다 리스피릿이 진짜 끝날까 봐 정찬양 좀 어떻게 해 달라는 얘기일 줄 알았는데.’
“정말 도와주시면 예찬 씨의 은덕을 제가 평생 잊지 않고 날마다 치성도 드리고, 열심히 벌어서 예찬교 사당도 만들고, 또…….”
구구절절 내뱉는 헛소리를 치우고 얼굴만 봐도 박마루가 진심이라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이러다 찬양이 진짜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워요…….”
이놈은 지금 정찬양을 걱정하는 마음, 딱 그거 하나로 예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프로그램까지 나와 가면서.
‘바보 같은 놈.’
정찬양이 저나 리스피릿 멤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면서.
지난 추석 전아체 때 정찬양과 했던 통화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 나 박마루 싫어하거든.
– 굳이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나?
– 진짜로 죽은 건 딱 한 번이니까, 어쩌면 이번엔 괜찮을 수도 있지 않아?
– 뭐, 괜찮지 않더라도 내 잘못은 아니잖아.
“도와주시면, 부족하지만 제가 평생에 걸쳐 은혜를 갚을게요. 네?”
한없이 가볍던 정찬양의 목소리와 잔뜩 힘이 들어간 박마루의 목소리가 겹쳐 갔다.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그냥 어이없고 귀찮아졌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저보다 의사 선생님이실 거 같네요.”
건조한 목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잠을 못 자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야죠.”
“그…….”
“그렇게 걱정되면 병원에 데리고 가세요. 여기서 애먼 저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무례할 정도로 몸을 휙 돌린 예찬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남기고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평소보다 훨씬 차갑게 쏘아붙인 탓인지 박마루는 쫓아오지 않았다.
잠시 굳게 닫혀 있는 대기실 문을 돌아본 예찬은 일부러 발에 힘을 실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예찬은 입가를 당겨 보기도 하고, 손을 쥐었다 펴기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런 형편없는 얼굴은 팬들에게 보여 줄 수 없으니까.
* * *
남은 점심시간 동안 복숭아 앞에서 열심히 재롱 잔치를 선보인 예찬은 완벽하게 컨디션을 회복했다.
[지금부터 남자 50m 예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참여하는 선수들은 육상 트랙으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지금부터…….]점심시간이 끝나고 첫 순서는 육상 예선이었다.
개인 단거리 예선이 먼저 있고, 그 뒤로 대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단체 장거리 달리기 예선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방송이 나오기 무섭게 멤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녀올게요!”
“누가 나가는데!”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니까 누가 나가냐고!”
“새벽이 나가지?!”
복숭아들과 애정이 넘치는 장난을 친 다음 육상 트랙으로 자리를 옮기자, 긴장한 얼굴로 몸을 푸는 신인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 대회에선 배새벽이나 강해솔의 상대가 될 만한 놈이 없었으니 새 얼굴들이 예찬의 주된 경계 대상이었다.
‘저 중 특별히 잘 달리는 놈이 있던가?’
익숙한 얼굴들은 꽤 있지만, 이 무렵엔 예찬이 전아체에 나온 적이 없으니 영 기억이 나질 않았다.
“레굴루스다…….”
“레굴…….”
“배새벽…….”
“배새벽 말고 강해솔도…….”
예찬이 다른 팀 선수들을 살피는 사이, 저쪽도 레굴루스를 알아보고 작게 수군대기 시작했다.
특히 배새벽의 이름이 가장 많이 들렸는데 지난 추석 때의 활약을 돌이켜 보면 그럴 만했다.
‘CBC 쪽에서 배새벽 특집으로 편집한 클립도 조회 수가 굉장하던데.’
지난 전아체에 혜성처럼 등장해 나가는 종목마다 전부 쓸어 버렸던 배새벽의 눈부신 활약을 담은 영상은 어째서인지 체육계에서 꽤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전공자인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 운동 시작해 보는 게 어떠냐는 댓글이 종목별로 줄줄이 달렸던 것을 떠올리는 사이, 육상에 참여하는 멤버들이 머리에 띠를 매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배새벼어어어억!”
동시에 저 멀리 레굴루스의 객석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 안에 있는 누구보다 배새벽의 달리기 클립을 많이 돌려보았을 복숭아들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 마음,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육상 트랙을 배경으로 서 있는 배새벽을 보자, 심장이 뛰는 것은 예찬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근처에 서 있던 그룹 기어의 메인 보컬이 레굴루스 멤버들 들으라는 듯 이죽거렸다.
“허, 누가 보면 벌써 우승한 줄 알겠어?”
“배새벽 멋있다!”
선배의 비아냥이 채 끝맺기도 전에 예찬이 재빨리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 긁으려던 기어의 멤버가 황당하단 얼굴을 했으나 예찬은 과감히 등을 돌렸다.
‘꼬우면 주어 붙여서 똑바로 말을 걸든가. 어디서 혼잣말하는 것처럼 시비질이야.’
“형은 새벽이만 믿고 있을게.”
“새벽이 파이팅!”
“다들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그런 예찬의 의도를 눈치챈 몇몇 멤버들이 시합 전 기운을 북돋우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허…….”
어그로를 끌던 기어의 메보는 괜히 허, 허, 거리며 허탈한 소리를 내다가 조용히 멀어졌다.
왜 남의 말을 잘라먹냐고 따지면 우리한테 한 소리냐고 되려 따져 물을 생각이던 예찬은 조금 허탈해졌다.
‘이건 뭐 배짱도 없고, 멋도 없고.’
남에게 시비를 걸 거면 끝까지 가 보겠다는 각오로 덤벼야지.
“괜찮아?”
멀어져 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예찬의 곁에 선우이경이 다가와 물었다.
“저요?”
나 말고 저쪽이 꼬리 말고 달아나는 거 못 봤냐는 뜻으로 되묻자 선우이경이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점심 때 무슨 일 있었어?”
“네?”
“잠깐 대기실 쪽에 다녀온 이후로 계속 저기압 같은데. 뭐, 지금도 평소보다 살짝 격하게 반응했잖아? 좋은 대응이긴 했지만.”
“…….”
예찬은 굳이 티가 많이 났냐고 묻진 않았다.
사실 나름대로 신경을 쓴 터라 별로 티가 났을 것 같진 않았거든.
‘그냥 선우이경이 말도 안 되게 눈치가 빠른 거지.’
이미 확신하고 있는 놈에게 굳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도 이상했기에 예찬은 빠르게 긍정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오케이. 더 말 못 한다는 거지? 접수했어.”
역시 눈치 빠른 놈답게 예찬이 그은 선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도 뭐든 이야기해도 되는 사람이 여덟이나 옆에 붙어 있다는 거 잊지 말라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가볍지만 뼈가 느껴지는 말을 건넨 선우이경이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들 하잖아?”
“네, 고마워요.”
예찬은 순순히 호의를 받아들였다.
“1조 준비해 주세요!”
타이밍 좋게 스태프가 시합에 참여하는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전광판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한 선우이경은 조금 전과 달리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하, 떨린다.”
“저도요.”
마찬가지로 전광판을 확인한 예찬 또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배새벽의 이름을 연호하던 팬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잘하고 오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형. 파이팅이에요!”
“건강이 제일인 거 알지?”
“1등보다 값진 것은…….”
“아, 알았으니까 다들 그만 해요!”
예찬은 멤버들을 뿌리치고 트랙으로 나가려는 팔을 붙잡았다.
“뭐야?”
잠시 할 말을 고른 예찬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선택했다.
“……1등하고 오라고.”
예찬의 말을 들은 상대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당연하지. 나를 뭘로 보고.”
거기까지 말한 상대는 잠시 전광판 가장 위쪽에 뜬 이름을 힐끗 바라보고 예찬을 향해 씩 웃었다.
“마침 조도 딱 좋게 정해졌네.”
[전국 아이돌 체육대회 남자 50m 예선 1조]― 기어 베벨
― 노크 남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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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굴루스 채은성
― 르네 이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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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또한 새삼스레 전광판을 확인했다.
조금 전, 꼴같잖은 견제를 했던 선배의 이름이 가장 위에 적혀 있었다.
“다녀올게요.”
모두의 긴장을 짊어지고 채은성이 스타트 라인에 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