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3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33화
닭싸움이 끝나고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사이,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구석에 앉아 스태프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을 바라보던 예찬이 불현듯 입을 열었다.
“못 숨겨 준다는 건, 역시 내가 더 크니까?”
“뭐?”
인형 탈 상체를 훌러덩 벗은 채로 종이로 부채질을 하던 강해솔이 인상을 쓰고 예찬을 돌아보았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는 얼굴이었으나 예찬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형이 나보다 더 작으니까 못 숨겨 주는 거잖아.”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야? 닭싸움 중인데 사람을 어디다 숨겨? 인형 탈도 입고 있고.”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척하고 있지만 삐죽거리는 입술이 숨겨지지 않는다.
예찬이 조금 더 깐죽거렸다.
“똑같이 인형 탈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못 숨겨 준다는 건 역시 형이 더 작다는 거 맞잖아?”
“이 자식이…….”
“무슨 얘기예요?”
아주 약간만 더 긁으면 강해솔의 입에서 결투 신청이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안타깝게도 오늘의 챔피언이 끼어들고 말았다.
닭싸움은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배새벽의 승리로 끝이 났다.
‘진짜 같은 인간 맞냐고…….’
뒤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던 선우이경이 허탈한 얼굴로 웃었다.
“전아체 볼링은 내가 아니라 새벽이가 나갔으면 더 잘했겠는데.”
확실히 몰려 있는 멤버들을 몸통 박치기 한 번으로 정리하는 모습은 볼링의 스트라이크와 닮아 있었다.
‘그럼 우리는 볼링 핀…….’
와장창 넘어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얼마나 처참한 모습으로 찍혔을지 상상하는 사이, 신 PD가 멤버들을 불렀다.
“여러분! 카메라 판독 끝났습니다!”
볼링핀이 쓰러진 순서가 나왔나 보다.
멤버들이 우르르 신 PD 앞으로 몰려 나갔다.
“자자, 여기 순서대로 앉은 다음에 차례대로 뽑을게요. 먼저 새벽 씨, 그다음은 해솔 씨, 다음은 예찬 씨.”
“와, 하예찬 인간 승리네.”
“예찬이가 3등이라니!”
“오늘 밤은 파티를 열어야겠네. 케이크 사 올까?”
“전 생크림이요.”
“이 사람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반응하니까 내가 허약한 포지션처럼 보이잖아.’
매섭게 흘겨보면 더 좋아할 놈들이라 꾹 참고 자리에 앉자, PD가 곧장 다음 순서를 이어 불렀다.
“그 옆은 휘겸 씨고요. 그 옆에 이경 씨가 앉으시면 됩니다.”
“크! 내가 제일 먼저 넘어진 건가! 운도 없지.”
볼링 핀 순서 정산 시간이 끝나고 채은성과 범세혁, 그리고 정의탁과 심상록도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최약체는 면했다…….”
“앗, 그럼 내가 최약체야?”
“엇…… 그게 그렇게 되나요?”
저 멀리서 약자들이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시상대에 올라갈 수 있는 순위를 기록한 예찬에겐 사소한 일이었기에 무시했다.
“새벽 씨부터 순서대로 뽑아 주세요.”
“네에.”
스태프가 닭싸움을 하는 동안 잠시 치웠던 코팅된 종이를 내밀었고, 배새벽은 망설임 없이 하나를 뽑아 들었다.
멤버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배새벽이 뽑은 사진을 함께 확인했다.
‘뭐지?’
“오.”
배새벽이 들고 있는 사진엔 식물의 줄기처럼 보이는 초록색 무언가가 찍혀 있었다.
“다음은 해솔 씨.”
PD의 부름에 심각한 얼굴로 배새벽이 뽑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던 강해솔이 자기 것을 뽑았다.
예찬은 강해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또 몰려드는 멤버들과 달리, 자기 종이를 뽑았다.
‘꽃?’
종이를 뒤집자 프린팅된 백합이 바로 눈에 띄었다.
‘아.’
분명 처음에 이어지는 사진이라고 했으니, 아마 꽃송이와 줄기, 혹은 이파리 같은 게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예찬이 형.”
배새벽도 눈치를 챘는지 자신이 뽑은 종이를 들이밀었다.
종이의 끝과 끝을 맞춰 보았더니 비슷하지만 무언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여기 내 걸 끼면 되겠네.”
그새 종이를 뽑았는지 선우이경이 예찬과 배새벽의 종이 사이로 자신의 것을 끼워 넣었다.
세 장의 사진이 나란히 놓이자 쭉 이어진 백합 다발이 완성되었다.
“오.”
만족스러운 감탄사가 배새벽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선우이경은 기분 좋게 웃으며 첫 룸메이트들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휴, 이번에도 혹시 혼자일까 봐 걱정했네. 세 명이면 중간 방이려나?”
인원이 셋이면 중간 방 정도가 딱 맞긴 했다.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이기엔 신 PD의 말이 걸렸다.
– 여러분은 이번에 두 가지 과정을 거쳐, 앞으로 함께할 파트너와 묵게 될 방을 정하게 될 겁니다.
‘그땐 별생각이 흘려 넘겼지만, 룸메이트가 정해지면 방도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거 아닌가? ……설마?’
찜찜한 감각이 예찬의 머리를 스친 순간.
“장미 완성이에요! 저랑 해솔이 형이랑 은성이!”
“우린 튤립인데.”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나머지 멤버들이 자랑스레 완성한 사진을 펼쳤다.
“어, 전부 세 명이야?”
예찬과 마찬가지로 불길함을 느낀 선우이경이 멤버들을 둘러보는 사이, 신 PD가 호쾌하게 외쳤다.
“네, 이걸로 룸메이트가 전부 정해졌네요! 장미방, 강해솔, 범세혁, 채은성! 백합방, 하예찬, 선우이경, 배새벽! 마지막으로 튤립방 심상록, 정의탁, 우휘겸!”
“…….”
“지금부터 여러분은 숙소에 있는 세 방 중 원하는 방에 여러분의 꽃 이름을 붙이기 위해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역시.’
방의 크기와 관계없이 무조건 셋씩 밀어 넣겠다는 신 PD의 악랄한 계획에 예찬은 속으로 혀를 찼다.
‘널널한 방에 끼워 주려던 건 취소다.’
신 PD의 비루한 몸을 눕히는 건 거실 구석이나 보조 주방도 과분할 것이다.
한편 아직 일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한 멤버들은 신 PD의 과장된 언행에 주목했다.
“저, 전쟁이요?”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요…….”
“작은 방에 세 사람이 몸을 구긴 채로 자고 싶지 않다면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할 겁니다!”
‘아니, 작은 방이 작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아닌가? 그 정돈가?’
신 PD가 쓰는 방이라 별로 들어갈 일이 없어서 기억이 영 흐릿하다.
예찬이 방의 크기를 가늠하는 사이, 드디어 위기감을 느낀 멤버들이 펄쩍 뛰었다.
“으악, 그 방에 셋이라니 생각만 해도 숨 막혀요!”
“작은 방에 셋은 말도 안 되죠! 그 전쟁이란 건 대체 뭔데요?”
기대했던 반응들인지 기분 나쁘게 히죽 웃은 신 PD가 뜸을 들였다.
“그 전쟁은 바로…….”
“바로?”
“바로바로……!”
“바로바로?”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아니 미안해요, 여러분. 다음 순서는 숙소에서 진행할 거니까 그런 표정은 그만둬 주세요…… 진짜 마음이 꺾인다니까요……?”
* * *
숙소로 이동한 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왜 정장이지?’
목 끝까지 꽉 조인 넥타이를 슬슬 풀며 예찬이 주변을 살폈다.
“장미, 장미, 장미!”
“큰 방, 큰 방, 큰 방!”
채은성과 범세혁은 팔짱을 끼고 장미와 큰 방을 외쳐 대고 있었다.
“하…… 어떻게 이 둘이랑…….”
시끌벅적한 두 사람 사이에 낀 강해솔에겐 어떤 방을 쓰는지는 더 이상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힘내, 해솔이 형.’
예찬은 속으로 강해솔을 향해 응원의 말을 던졌다.
“몸 쓰는 건 아니면 좋겠어요.”
“그치. 몸 쓰는 건 닭싸움으로 충분한걸…….”
“숙소로 다시 들어온 걸 보니 아니겠죠?”
“음, …… 아마?”
정의탁과 심상록도 기운 없는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멤버들이 벗어 던진 닭 인형 머리를 쓰고 나온 신 PD가 진행을 시작했다.
“이제 진짜로 방 고르기 게임을 시작할 텐데요. 종목은 바로…… 이 보드게임입니다!”
신 PD의 말과 맞춰 스태프가 들고나온 것은 아주 간단한 보드게임이었다.
머리를 쓰거나 몸을 쓰는 종류가 아닌, 아니, 머리는 조금 써야 하나?
어쨌거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가 ‘운’인 유명 보드게임의 등장에 숙소 거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훗. 이거 이 몸의 신들린 주사위 던지기 실력을 보여 줘야 할 때인가.”
“룰은 어디 기준이에요? 더블 있어요?”
“더블이 뭐야?”
“주사위 두 개 던져서 눈이 똑같은 걸로 나오면 한 번 더 던지는 거요.”
“아, 윷놀이 윷이나 모 같은 거.”
멤버들이 떠드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예찬은 느슨하게 풀었던 넥타이를 다시 단정하게 조였다.
재킷 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알 없는 안경도 쓰고 괜히 한 번 치켜올려다 보았다.
그래, 지금부터는 부동산 업자로 변신할 때였다.
그것도 세계를 뛰어다니는.
* * *
“진짜 이 게임 때문에 수도 문제 많이 틀렸잖아요. 아직도 헷갈려.”
“인정. 브라질 수도 왜 상파울루 아니야.”
“캐나다 수도는 또 왜 몬트리올 아닌데요.”
“……캐나다 수도가 몬트리올이 아니라고?”
정의탁과 심상록의 대화를 듣고 있던 채은성이 되물었다.
왜? 라고 묻는 것 같은 얼굴로 굳은 채은성은 찬스 카드를 섞던 손도 멈춰 있었다.
‘……다음 촬영 땐 수도 맞추기 게임 하자고 해 볼까.’
몇 놈이 바닥을 깔아 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드는데.
어린 시절, 한두 번쯤은 접해 봤을 자본주의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세계 여행 게임, 아니, 세계를 여행하며 부동산 사는 게임의 등장에 멤버들은 저마다 추억에 젖어 들고 있었다.
“PD님이 은행이에요?”
“네, 제게 잘 보이면 대출해 드릴지도?”
게임용 돈뭉치를 든 신 PD가 거만하게 웃었다.
가끔 벨이 없는 사람처럼 구는 멤버들이 PD를 둘러쌌다.
“PD님,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앗, 저는 다리!”
“흠흠.”
“목마르진 않으세요?”
“전 흰머리 뽑아 드릴게요.”
흐뭇하게 상황을 즐기던 신 PD가 버럭 화를 냈다.
“흰머리 누굽니까! 저 흰머리 없거든요! 악!”
흰머리 타령을 한 당사자인 배새벽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신 PD의 머리에서 흰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 들었다.
“여기 있는데요.”
“으윽……!”
하얗게 센 머리를 들이밀자 의기양양하던 신 PD가 금방 울상이 된다.
“뭐, 그 나이면 있을 만하죠. 저희 사촌 형은 서른도 안 됐는데 벌써 새치 염색을 한대요.”
“전혀 위로가 안 되는데요, 이경 씨…… 그러면 순서를 정하기 위해 꽃 부분을 뽑은 세 분이 주사위를 던질게요. 숫자가 큰 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몰랐는데 꽃을 뽑은 사람이 나름대로 팀의 리더였나보다.
예찬과 강해솔, 그리고 심상록이 앞으로 나왔다.
던진 주사위의 눈은 각각 4, 5, 2.
범세혁과 채은성은 이미 게임에서 이긴 놈들처럼 흥에 겨웠다.
“강해솔! 강해솔! 강해솔!”
“5! 5! 5!”
“너흰 그렇게 뭐든 일일이 소리쳐야 해?”
1등을 하고도 질린 얼굴을 한 강해솔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힘내, 해솔이 형.’
예찬은 다시 한번 속으로 강해솔을 응원했다.
예찬 또한 작은 방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저 셋은 정말로 작은 방을 피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좁은 방에 셋이 있다간 셋 중 하나는 죽을지도.’
스트레스로 강해솔이 죽든지, 아니면 스트레스로 미친 강해솔의 손에 누구 하나가 죽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