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3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35화
다음날 들어오기로 한 가구가 하루 미뤄졌다.
자연스럽게 위치를 옮기기로 한 가구들도 제자리에 머물렀다.
일요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작은 방으로 꼭 필요한 짐을 다 옮겨 두었던 강해솔이 투덜거렸다.
“아니, 전에 물어봤을 땐 원래 평일에 쉬고 일요일에 일하셔서 괜찮다더니 갑자기 뭐냐고.”
“헉, 형…… 저희와 하루라도 빨리 단란한 장미방 라이프를 즐기고 싶어서 속상하신 건가요?!”
“와아, 해솔이 형이 우리 너무 좋아한다.”
강해솔의 룸메이트가 된 채은성과 범세혁이 호들갑을 떨었다.
“뭔 헛소리를…….”
당연히 강해솔은 질색했으나 채은성과 범세혁은 요란법석을 멈추지 않았다.
“이왕 장미방이 된 거, 진짜로 방에 장미꽃이라도 둘까? 생화가 안 되면 조화라도.”
“난 생화가 좋아!”
“너희들……! 아무리 양보해도 장미 방향제까지다!”
‘방향제까진 되는 거냐고.’
세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금방 회사에 도착했다.
“하예찬 씨!”
그리고 예찬과 멤버들은 회사 입구에서 예상치 못한 얼굴과 마주쳤다.
“끝나고 연락한다면서요! 전화해도 안 받고! 문자는 읽고 씹고!”
“아.”
피대기의 억울해 죽겠는 얼굴을 보고 나니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알림 꺼 둔 거 깜빡했다.’
밤새 쌓인 작업물 파일만 들어 보고 대답하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장미방 2인조에게 둘러싸였던 강해솔이 슬쩍 포위망을 뚫고 예찬의 곁으로 다가왔다.
“……같이 있어 줄까?”
“아냐, 괜찮아.”
피대기 잡는데 무슨 사람을 둘씩이나…….
예찬은 코뿔소처럼 씩씩대며 다가온 피대기에게 태연하게 물었다.
“왜 안에서 안 기다리고 밖에 계셨어요. 날도 추운데.”
평소엔 뻔뻔하게 로비에 들어앉아 있었으면서 왜 이랬대?
“주말이라 그쪽들 말곤 아무도 안 나왔습니다! 6시부터 기다렸는데!”
“아, 그래서 가까이 다가오니 냉기가…….”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좀 쉴걸,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악마 같은 소리지만 예찬도 같은 생각이었다.
‘너무 열심히 사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군.’
어쨌거나 이미 마주친 피대기를 쫓아낼 수는 없기에 함께 작업실로 올라갔다.
사람이 많다 보니 예찬과 피대기는 꽤 떨어진 상태로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었다.
덕분에 성격 급한 피대기가 입을 잠시 다물었다.
그 사이 통화 목록과 메시지 함을 확인해 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부재중이 몇 통이야. 새벽 네 시까지 걸었네? 이 사람은 기본 매너라는 게 없는 건가.’
녹화 중이라고 했는데도 이렇게 집요하게 연락해 대다니.
‘그만큼 초조해 죽겠다는 거군.’
이 정도면 협상 테이블이 앉기 딱 좋게 데워졌을 것이다.
예찬은 한숨도 자지 못해서 평소보다 더 퀭해진 피대기를 힐끗 보고 앞장서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예찬을 놓칠세라 급하게 따라 내린 피대기가 따지듯 물었다.
“제가 보낸 파일은 들어 봤습니까?”
“어떤 거요? 최종의 최종의 진짜 완전 최종이 끝이던가요?”
“아니 그 뒤에도 세 개 더 보냈는데…… 안 들어 봤어요?”
“듣긴 들은 거 같은데…… 뭐가 마지막이더라.”
거짓말은 아니다.
하룻밤 사이에 스무 개가 넘는 수정 파일을 날려 보냈으니 저쪽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으으…….”
“그런데 그게 마지막은 맞아요? 더 쓰셨을 거 같은데.”
작업실 문고리를 잡은 예찬이 돌아보자 피대기가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그새 더 고치긴 고친 모양이다.
“……진짜 지금 게 마지막입니다.”
예찬은 선량하게 웃으며 문을 열었다.
피대기는 제 발로 여기까지 와서 기다렸으면서, 경계하는 표정으로 몸을 사렸다.
예찬은 모른 척 더 환하게 웃었다.
일 열심히 하겠다는데 뭐 싫은 소리를 하겠어.
“일단 안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그냥 그 비효율적인 방식을 아주 조금 고쳐 주려는 것뿐이지.
* * *
꽤 잘나가는 토크쇼 촬영 현장에 커피차와 간식차가 도착했다.
‘우리 찬양이 잘 부탁드립니다.’란 문구 앞에서 스태프들이 인증 사진을 찍는 사이, 커피차를 보낸 장본인인 박마루는 굳은 표정으로 정찬양과 마주 보고 있었다.
“나랑 얘기 좀 해.”
“……네가 여긴 왜 있어?”
정찬양의 미간에 주름이 졌지만 박마루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정찬양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한마디 듣겠다……!’
물론 각오는 하고 왔다.
박마루는 새삼스레 각오를 다지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정찬양이 쏘아붙이는 것보다 제작진이 다가오는 것이 한발 빨랐다.
“찬양 씨는 좋겠네! 이렇게 의리 있는 멤버도 있고!”
“그러니까요. 지난번에 나왔던 걔네는 서로 번호도 없다던데. 둘이 친해서 보기 좋아~”
“……감사합니다. 마루가 원래 자상해요.”
PD와 작가의 말에 정찬양이 생글생글 웃었다.
“찬양 씨는 인증샷 찍었어? 다들 먹고 다시 시작할 거니까 천천히 찍고 와.”
“네, 감사합니다.”
“저렇게 성격 좋은데 회사에선 왜 그렇게 어딜 안 내보냈대?”
“신비주의라잖아요, 신비주의.”
“참내,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대화가 훤히 들렸지만 정찬양은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미동도 하지 않더니,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된 후에야 작게 중얼거렸다.
“습관이 무섭네.”
“뭐?”
“아니, 혼잣말이야. 그래서 할 말은 뭔데? 빨리하고 끝내자. 인증 사진 찍어야 하니까.”
한 번 대화의 흐름이 끊겨서인지 처음 박마루의 얼굴을 마주쳤을 때보다 훨씬 건조해진 말투로 정찬양이 말했다.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정찬양다웠다.
‘정찬양답다?’
박마루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낯설었다.
정찬양이 싸늘해진 지 고작 몇 개월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이쪽이 더 익숙해지다니.
“…….”
“할 말 있다며. 왜 말을 안 하고 서 있어?”
“너, 병원 가 봐야 해.”
박마루의 말에 정찬양이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아마 박마루 말고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그렇지만 이것 외에는 정찬양을 도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예찬 씨가 굿이라도 해 준다면…… 아니, 이건 안 하기로 했잖아. 박마루 미쳤냐.’
“시비 걸지 말고 집에 가서 자라.”
예찬의 차가운 얼굴을 떠올렸더니 정찬양의 냉랭한 말에도 기죽지 않고 하려던 말을 할 수 있었다.
“못 자는 것도 병이야. 너 지금도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거지? 명식이 형이 그러는데 어제도 잠깐 눈 붙였다며. 직업상 병원 다니는 게 어디 찍히거나 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병원에 가서…….”
“마루야.”
“…….”
“박마루.”
이름을 불렸을 뿐인데 솔직히 좀 쫄았다.
‘덩칫값 하자, 박마루…….’
나약한 자신을 채찍질한 박마루가 눈에 힘을 빡 주고 정찬양을 노려보았다.
“……오지랖이라곤 하지 마. 우리 아직 같은 그룹이다.”
“네가 지금 한 말 때문에 명식이 형은 잘릴 거야.”
“뭐?”
정찬양은 마치 티슈 좀 건네 달라는 듯 매니저를 해고하겠다고 말했다.
박마루의 안색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으나, 정찬양은 어떻게 하면 박마루가 더 당황할지 뻔하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그럼 인증샷 찍으러 가자. 네가 보냈다는 게 동네방네 다 소문이 날 텐데 아무것도 안 올릴 수는 없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정찬양이 먼저 커피차 쪽으로 걸음을 돌리며 박마루를 돌아보았다.
“잘 웃어야 한다?”
입가에 걸려 있는 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 * *
“아, 네. 죄송한데 혹시 명식이 형을 제 전담으로 바꿔 주실 수 있으세요? 네, 네. 찬양이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뭐야, 나 지금 잘린 거야?”
박마루가 전화를 끊자, 조용히 운전을 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던 현재 박마루의 전담 매니저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박마루는 당황한 얼굴로 휴대전화와 매니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먼저 형한테도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순서가 엉망이 됐다.
“아…… 미안해요, 형. 내가 찬양이랑 명식이 형한테 뭘 좀 실수해서…….”
“크, 우리 마루 일이 없어서 꿀이었는데!”
매니저는 어깨를 으쓱이고 크게 혀를 찼다.
“아, 형!”
“농담이야, 임마.”
매니저가 크게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박마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잠시 정찬양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잘 웃어야 한다?
웃음이 나오겠냐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막상 커피차 앞에 나란히 서서 잘 웃었다.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 기분과 관계없이 절로 웃음이 나오더라.
‘이런 것도 직업병인가? 아, 그런데 희샘이 형은 기분 나쁘면 절대 안 웃던데. 그럼 직업병은 아닌 건가? 아니면 나만 병에……쓸데없는 생각 그만하자.’
기운 없이 시트에 몸을 묻고 정찬양에게 매니저를 바꿨다는 메시지를 쓰고 있는데, 매니저의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질린 것 같기도 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저 팬 아직도 저기 있네.”
“누구요?”
몸을 일으켜 세우자 매니저가 기어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가로수 근처를 가리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칭칭 감싼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쪽에 있는 사람. 너도 팬싸에서 자주 보지 않았어?”
“아, 찬양이 팬인…… 오랜만에 보는데 잘 기억하네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떠올랐다.
팬 사인회나 공개 방송에 꽤 자주 참여하는 팬이었는데, 작년 활동 때는 마주친 기억이 없었다.
“좀 이상해서 블랙리스트 등록해 놨거든. 요새는 안 뽑혔을 거야. 나야 워낙 당한 게 많으니 기억하는 거지.”
매니저의 목소리는 조금 전 장난 칠 때와 달리 정말로 끔찍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박마루는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구나…… 우리 때문에 형들이 고생 많네요.”
무거운 공기를 싫어하는 매니저가 이번에도 버럭 소리를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됐다, 임마! 공짜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찬양이 매니저는 좀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애들 전담보다 배는 일할 거 같은데.”
“아, 진짜! 회사에 말해 봐요, 꼭!”
매니저와 투닥거리는 사이 차는 가로수를 스쳐 지나갔다.
정찬양과 그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마저 보내던 박마루는 저 팬에 대한 이야기도 써야 하나 잠시 고민했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 * *
“와, 여기까지 어떻게 쫓아왔지?”
창문 밖을 슬쩍 내다본 예찬이 고개를 내저었다.
“예찬아, 하지 마. 저쪽에서 보면 어떡해.”
찬양이 불안한 얼굴로 예찬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예찬은 걱정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안 보여, 안 보여. 불도 꺼 놨잖아.”
“그래도…….”
“그리고 보이면 또 어쩔 건데? 지가 스토커지, 내가 스토커야? 어? 저쪽이 범죄자인데 왜 이쪽이 사려야 하냐고! 와, 얘기하다 보니 열받네? 지금 당장 경찰을 불러서 담판을……!”
“아, 하지 마! 위험하다고!”
급발진하는 예찬을 온몸으로 막은 찬양은 식은땀을 닦았다.
들어 올린 손이 덜덜 떨렸다.
창밖 가로등 아래에 새까만 원피스를 입은 스토커가 이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소름이 돋았다.
“하경이 형한테 말해 줘야겠다. 들어오다가 저거랑 마주치면 그건 호러지.”
조금 진정됐는지 예찬이 아직 귀가하지 않은 하경을 떠올렸다.
찬양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