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3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36화
“어, 또 왔다니까. 내 생각엔 이대로는 끝이 안 나. 올 때마다 경찰 부르고 내역 쌓아서 고소해야 한다니까. 응, 형도 조심하고. 혼자 다니지 마.”
하경과 통화하는 예찬의 목소리를 들으며 찬양은 기운 없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집 밖의 스토커와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 튀는 걸 싫어하고 조금 소심한 구석이 있는 찬양은 N-net의 ‘츄즈 마이 프린스 99’ 홍보 영상을 보고 홀린 듯 신청서를 접수했다.
예찬과 하경에겐 1차 합격 알림이 오고 나서야 말을 꺼냈는데, 그건 또 다른 이야기고.
어쨌거나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참여하게 된 츄마프를 통해 찬양은 스토커와 처음 만났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잇값도 못 하고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예찬의 든든한 목소리에 의지한 채 창문을 흘낏거리던 찬양은 잊고 지내던 츄마프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그래, 저 스토커 또한 한때는 지금의 예찬처럼 찬양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 솔직히 말해서 외적인 요소 말고는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아요.
– 그 실력으로 당당하게 준비한 무대를 선보였다는 점이 대단하긴 하네요. 엄청난 배포 아닌가요?
– 그런가요? 전 그냥 배짱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어쨌거나 수고하셨습니다. 등급은 D입니다.
– ……감사합니다.
첫 번째 등급 테스트.
쏟아지는 혹평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찬양은 부끄러웠다.
서류 접수를 한 다음부터 열심히 한다고 한 건데 연습이 너무 부족했구나.
힘없이 D등급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달아오른 얼굴은 식지 않았다.
춤과 노래, 그리고 랩까지.
무대에 오를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찬양은 츄마프에 봐줄 만한 얼굴, 딱 그거 하나로 뽑혔다.
– 찬양이였나? 그 D등급 맞은 걔는 실물이 훨 낫던데? 목소리도 괜찮고.
– 감독님 얘기 들어 보니까 카메라에도 예쁘게 잡힌대.
– 그렇게라도 프로그램에 공헌해야지. 다른 거 다 제로 베이스인 애를 왜 뽑았는데.
– 어우, 정 작가. 말이 너무 세다~
– 진짜 못하긴 하더라. 차라리 노래만 하지 춤은 왜 춘 거야?
– 아까 이가원 표정 봤어? 진짜 완전 극혐하던데. 그거랑 걔 무대랑 교차로 보여 주면서 티저 뽑으면 반응 괜찮을 거 같지 않아?
츄마프 작가진들이 찬양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노닥거리며 하는 얘기를 엿들은 것이니 틀림없었다.
찔끔 삐져나온 눈물을 닦은 찬양은 다짐했다.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하자.’
어떤 이유로 뽑혔든 간에 자신은 아흔아홉 명의 연습생 중 하나였다.
‘중요한 건 왜 뽑혔는지가 아니라, 지금부터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야.’
이 프로그램은 자신의 의지로 참여한 것이고, 자신에겐 늘 자신을 응원해 주는 하경과 예찬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출발점이 저만큼 다른 연습생들과의 실력 차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 잠깐 메이크업 고치고 다시 촬영 갈게요.
– …….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주제곡 촬영이 잠시 멈췄다.
무거운 공기가 어깨를 짓눌렀다.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촬영 중단이었다.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웠지만, 찬양을 포함한 D등급 멤버들은 다른 등급 멤버들의 싸늘한 눈길에 심장이 얼어붙기 직전이었다.
다른 등급의 연습생들도 가끔 실수를 저질렀지만, D등급은 찬양을 포함해 실수를 하지 않은 멤버가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이번에 실수한 D등급 연습생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 죄…… 죄송해여…….
– 괜…….
– 죄송할 일을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네.
찬양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보다 날 선 목소리가 먼저 공기를 찢었다.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지만, 빼곡히 들어선 연습생 중 누가 말을 했는지 찾아내기란 요원했다.
– 지금…….
지금 누가 말한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채 바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누군지 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날카롭게 벼려진 한마디는 지금 실수한 연습생뿐만 아니라 D등급 전원에게 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저기서 이쪽을 노려보는 연습생들 모두 말로 하지 않았을 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가운 눈길에 고개 숙인 찬양은 실수한 연습생을 위로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 ……흑.
– 자, 그럼 다시 촬영…… 아니, 거기 왜 울고 있어요? 어휴, 메이크업 고치라고 했더니 더 난리를 치고 있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메인 PD가 한숨을 팍팍 쉬더니 손을 내저었다.
– PD님, 아무래도 원 테이크는 무리 같은데…….
– 내가 딱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니깐. 우리 지금 촬영 시작하고 몇 시간 정도 된 거지?
– 열한 시간이요. 이제 연습생들 퇴소도 해야 하는데…….
– 아, 미치겠네. 일단 한 번만 더 해 봅시다.
– 아까도 그 말씀 하셨는데…….
– 자, S등급부터 준비!
시간이 흐를수록 공들여 했던 화장과 머리가 너저분해졌지만, D등급 멤버들은 알아서 눈치껏 고쳐야만 했다.
스태프들도, 다른 연습생들도, 다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할 뿐인 것 같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첫 번째 합숙이 끝나고, 찬양은 진지하게 하차를 고민했다.
급하게 보컬 학원을 등록하고, 댄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도 계속 고민했다.
찬양이 고민을 계속하는 와중에도 타이틀 영상과 연습생들의 프로필이 공개되었으며 온라인 투표가 시작되었다.
결국 나눠서 찍은 타이틀곡 영상엔 D등급 연습생들의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실력 우선주의일 수도 있고, 원 테이크의 뜻을 꺾은 PD 나름의 복수일 수도 있었지만, 찬양은 오히려 여기저기 언급되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 아니, 아까부터 왜 이렇게 떨어?
– 형님이 그런 게 있다, 예찬아…….
– 얼씨구.
작가들이 했던 말 때문에 티저 영상이 뜨는 날엔 덜덜 떨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최악으로 편집되진 않았지만, 무대가 시작되기 전과 마지막 인사하는 부분만 남기고 중간을 날려 버리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본방송을 기대하게 만드는 꼴이 되었다.
– 얘 얼굴 극락인데 실력 어떨거 같음?
– 편집한 거 보니깐 에이스일 듯? 리리 감탄하는 표정이잖아
└ ㄴㄴ 감탄 아니고 경악일 듯
– 실력이 딱 중상만 가도 데뷔 조로 밀어줄 준비가 됐는데……
– 얘 D등급이래 타이틀송에 면봉같이 나왔더라 다들 해산~
– 리리 정말 경악이었구나…… ㅠ
네티즌들이 타이틀송 영상을 뒤져 찬양이 D등급이라는 것을 찾아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해산은 무슨 해산!
인터넷 반응을 확인한 예찬은 버럭 화를 냈지만 찬양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얼굴만 공개되었을 때보다 확연히 늘어나는 속도가 줄어든 온라인 투표수도 그냥 안심이 됐다.
– 안 되겠다. 형 피시방 순회 좀 다녀온다.
– PC방은 왜? 설마…….
– 내가 이 동네 피시방 싹 돌면서 투표를…….
– 예찬아, 이거 어차피 아이디 투표야.
– 아.
마음이 좀 놓여서인지 오히려 엔카운트다운 생방송 무대는 떨지 않고 임할 수 있었다.
수백 번 촬영을 반복한 덕분에 몸에 익은 것도 있었고.
큰 실수 없이 녹화를 마치고 내려오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들이 찬양의 인생에 벌어지고 있었다.
찬양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아마 데뷔하게 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끝났을 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 보자고.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인터넷에선 찬양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 오프닝 영상이랑 완전 다른데?? 얘가 왜 D등급임??
– 얼굴 진짜 극락이네
– 나 오늘 방청하고 왔는데 솔직히 S, A 얘네들보다 좀 많~~~ 이 못하긴 함ㅋㅋㅋ 삐걱삐걱거린다고 해야 하나? 얼굴은 귀엽더라ㅋㅋㅋㅋ
– 근데 얘 범세혁 닮지 않았냐?
범세혁.
이제 막 첫 번째 합숙을 마쳤을 뿐이지만 찬양에게 이미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연습생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꼭 범세혁의 얘기가 나왔다.
날고 기는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범세혁은 툭 튀어나온 못처럼 눈에 띄었다.
첫 번째 등급 평가에선 D등급을 받고 의기소침해서 앉아 있던 찬양마저 넋을 놓게 만드는 무대를 보여 주었고, 타이틀곡 촬영에서도 센터인 심상록보다 더 빛이 났었다.
그런 범세혁과 자신이?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리자 분위기가 살벌했다.
– 아니 ㅆㅂ 디따리를 어따 대고 난리여
– 찬양이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근데 나는 쓰니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음ㅋㅋㅋ 느낌이 쫌 비슷해
└ 너도 찬양이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세혁이 안됐다ㅠㅠㅠ 이런 누추한 프로그램에 나올 인재가 아닌데 괜히 이런데 나와서ㅠㅠㅠ
– 나 다 걸고 어느 쪽 팬도 아닌데 솔직히 얼굴도 좀 닮음
└ ㅊㅇㅇㄴ?
– 좀 아쉽게 생긴 범세혁임
└ 찬양아 자라
찬양은 정말로 억울했으나 딱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찬양에 대한 비난이나 욕설이 그렇게 심한 수준은 아니었다.
진짜 파도는 츄마프 1화가 방영된 뒤에 밀려왔다.
– D찬양 빨던 새끼들 다 머리 박아랔ㅋㅋㅋㅋㅋㅋ
– 와 진짜 공감성 수치ㅠㅠㅠ 과장 안 보태고 방송 보다가 수치스러워서 울 뻔했음
– 노래 개못해ㅋㅋㅋㅋ
– 나보다 노래 못하는 사람 첨 봄 ㄹㅇ루
– 세혁이한테 비비던 놈들 양심 있으면 D찬양이랑 같이 한강에서 정모하길^^
– ㅇㄱㅇ 사람이 왜 이렇게 투명하냐ㅋㅋㅋ 원래 표정이 살벌한 사람인가 했는데 ㅅㅅㄹ 나올 땐 되게 촉촉함ㅋㅋㅋㅋㅋ
1화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라 해도 이가원을 경악하게 만든 찬양과, 이가원과 감동의 재회신을 찍은 심상록이었다.
범세혁의 무대는 2화에서 알차게 쓰려고 아껴 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두 사람에 대한 이가원의 상반되는 표정이 시청자들에게 꽤 화제가 되었고, 찬양은 본의 아니게 온라인 투표 1, 2위를 달리는 S급 연습생 둘과 엮여 화제가 되었다.
얼굴이 살짝 반반할 뿐 실력은 바닥을 치는 연습생이 연일 커뮤니티의 화젯거리가 되자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 D등급들은 솔직히 자진 하차했으면 좋겠음ㅠ 수준 떨어져ㅠㅠ
└ 내 말이 그 말임 솔직히 그따위로 하면서 간절함 운운하는 거 가증스러움
– 그분 다음 촬영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
– 실력 없는 연습생이 밈으로 뜨는 거 젤 싫음 이번엔 진짜 실력으로 뽑혔음 좋겠네
└ 222 괜히 인기 있는 애들이랑 엮는 것도 개 싫음 제발
└└ 그분 빠들 눈에 불을 켜고 심범이랑 엮는 거 솔직히 개티 나서 역겨움ㅋㅋㅋㅋㅋ
└└└ 그분이…… 빠가 있다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분 데뷔조 가면 바로 손절함ㅋㅋㅋㅋ
└ 지금 순위보면 데뷔조는 절대ㄴㄴ
그냥 재미로 범세혁이나 심상록과 엮어서 언급했을 뿐, 정말로 찬양을 응원하는 사람은 드물었기에 찬양은 옹호해 주는 사람 없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주어가 없는 욕은 대부분 찬양을 향한 것이었고, ‘그분’ 또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멸칭으로 찬양을 부르기도 했다.
Black_hearttttt_CY : 안녕하세요, 찬양 씨. 츄즈 마이 프린스 99보고 팬이 됐습니다.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지금은 악연이 된 창밖의 스토커에게 처음으로 연락을 받은 것은 그 무렵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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