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3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37화
어떻게 SNS 계정을 알아낸 건지, ‘안녕하세요’로 시작해 답장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끝맺은 장문의 메시지는 2차 합숙을 앞둔 찬양에게 큰 힘이 되었다.
– 그래서 답장을 했다고?
– 응, 그냥 고맙다고만…….
찬양이 조금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예찬이 짐짓 엄한 얼굴로 말했다.
– 데뷔하면 그렇게 사적으로 팬이랑 연락했던 거 책잡힐 수 있어.
– 내가 무슨 데뷔를 하겠어…….
– 어허! 당연히 데뷔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지! 이 자식 완전 기합이 빠져 가지고! 죽어도 데뷔하겠다는 마음으로 해도 힘든 일인데 그런 마음가짐으로 되겠냐고!
예찬이 한층 더 엄격한 얼굴로 찬양을 노려보았다.
찬양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어깨를 웅크리고 예찬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억울했다.
찬양을 포함한 그 누구도 찬양이 츄마프에서 데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1화 방송이 끝난 직후, 함께 본방송을 시청한 하경만 해도 경험이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찬양의 어깨를 두들기지 않았던가?
물론 그 직후 그걸 응원이라고 하는 거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예찬에게 혼쭐이 났지만…….
인터넷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찬양이 과연 앞으로 또 어떤 추태를 보이다 떨어질지 흥미로운 눈치였다.
찬양에게 투표하는 사람들도 크게 기대하고 있진 않을 것 같았고.
물론 그런 뉘앙스로 말을 했다가 팬들의 마음을 멋대로 재단하지 말라고 예찬에게 등짝을 거하게 얻어맞은 뒤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 어쨌든 앞으론 더 이상 답장하지 말고. 임스타도 비공개로 돌리는 게 나을 거야. 방송 더 나오면 팬들 말고 이상한 사람들도 엄청나게 찾아갈걸?
– 그런가? 알겠어.
– 그리고 무엇보다 의지! 데뷔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자고!
– 어어, 의지…….
– 목소리가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처음에 신청서 넣을 땐 지금 같지 않았을 거 아니야! 그때의 포부를 떠올리라고! 나는 데뷔한다! 아자, 아자, 아자!!
– 데뷔한다아아…….
찬양에게 필요한 것이 응원이라 생각한 건지, 예찬은 그날부터 2차 합숙에 들어가는 날까지 며칠간 연습이 끝나기 무섭게 찬양의 집에 와 있었다.
눈만 마주치면 데뷔해야 한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예찬 때문에 조금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긴 했지만 우울해질 틈도 없긴 했다.
– 방송이 4월까지면 기간 충분해. 아흔아홉 중에 네가 제일 잘하지 않아도 돼. 처음보다 발전하는 모습 보여 주고, 데뷔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보여 주고, 얼마나 아이돌에 진심인지 보여 주고, 팬들에게 감사하는지 보여 주…….
– 예찬아, 진짜 귀에 딱지 앉겠다. 이제 그만 용서해 주지 않을래?
– 그래. ……인터넷 괜히 찾아보지 말고, 팬들한테 개인적으로 답장하지 말…….
– 예찬아, 내 귀에도 딱지 앉겠다.
– …….
찬양을 합숙 장소로 태워 주기로 한 하경까지 나서서 만류하고 나서야 예찬은 입을 다물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하경과 찬양이 재빨리 캐리어를 차에 실었다.
– 예찬이도 회사까지 태워 줄까?
– 난 됐어. 방향도 반대잖아.
하경의 제안을 거절한 예찬이 조수석에 앉은 찬양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었다.
– 먼저 데뷔해서 나중에 데뷔할 후배 잘 끌어 줘야지. 알겠지, 선배님?
– ……대체 얼마나 앞서가는 거야? 진짜 성격 급하다니까.
고개를 내저은 찬양도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정말 앞으로 뭐든지 다 잘될 것만 같은 새벽이었다.
– 아…… 찬양 씨도 5조 뽑았어요?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제비뽑기로 같은 조가 된 연습생들이 찬양을 확인하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름 티 나지 않게 저들끼리 교환하는 눈빛엔 망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찬양은 입 안쪽 살을 꾹 깨물었다.
기죽지 말자.
첫 번째 합숙이 끝나고 약 보름 남짓한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오지 않았는가!
– 잘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예찬이 말한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고 데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실 예찬에게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지만, 애초에 너무너무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츄마프에 지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시작해 놓고 도망치는 것은 너무 꼴불견이지 않은가.
적어도 팀원들의 발목은 잡지 않아야지.
한 사람 몫보다 더는 못 해도, 내 몫은 다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찬양은 의지를 불태웠다.
– 보컬 5조가 뽑은 곡은 유피테르의 ‘Erased’입니다!
찬양의 조가 뽑은 곡은 데뷔 9년 차가 되었으나 여전히 적수로 뽑을 만한 그룹이 없는 유피테르의 곡이었다.
심사 위원이자 찬양에게 혹평을 쏟아 낸 이가원이 속해 있는 그룹이기도 했다.
– 그러면 이제 각자 맡을 포지션을 뽑을게요.
– ……!
쪽지를 뽑은 찬양은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메인 보컬.
뽑은 쪽지에 당당히 적혀 있는 네 글자가 마치 사형 선고처럼 느껴졌다.
– 누가 메보…… 어, 찬양 씨라고?
– 아아, 찬양 씨가…….
– 어후…….
같은 조 연습생들의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이가원 앞에서 이가원네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긴장됐는데, 심지어 이가원 파트를 부른다?
역시 하차했어야 했나?
순식간에 마음이 꺾여 버렸다.
연습실에 들어서자 부정적인 생각들이 더더욱 고개를 쳐들었다.
고작 보름 남짓한 연습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보단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다들 알아봐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연습생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에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
비참했다.
첫 연습을 마치고 이불 속에 숨어 훌쩍거리던 찬양은 스마트폰의 불빛을 줄이고 SNS에 들어갔다.
Black_hearttttt_CY가 보내 준 메시지를 읽고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 보려는 마음이었다.
Black_hearttttt_CY는 처음 메시지를 보낸 이후, 매일 한 번씩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처음 답장을 보냈다가 예찬에게 혼난 이후엔 그냥 읽기만 할 뿐이었는데도, Black_hearttttt_CY가 보내는 메시지는 여전히 정성스러웠다.
한 글자 한 글자 심혈을 기울여 쓴 것 같은 메시지를 맨 위에서부터 정독하자 처음 메시지를 받았던 때보다 더 뭉클했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피로, 거기에 깊은 밤이란 시간까지.
모든 것이 찬양의 이성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찬양은 그날, Black_hearttttt_CY에게 두 번째로 답장을 보냈다.
부족한 자신을 계속 응원해 줘서 고맙다, 답장을 못 해서 미안하다, 나는 이런 사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후회가 밀려들었다.
감정이 앞서서 너무 횡설수설하는 메시지를 보내 버렸다.
그렇지만 찬양이 어떻게 수습해 보기도 전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Black_hearttttt_CY : 답장 고마워요, 찬양 씨! 그냥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 그렇지만 혹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제든 저에게 편하게 털어놓아 주세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잖아요. 저는 찬양 씨를 언제나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왈칵 눈물이 솟았다.
이번엔 짧게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 후로도 Black_hearttttt_CY는 계속 찬양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예찬의 충고를 떠올린 찬양은 이젠 정말 답장을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 선량한 사람에게 못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중간 점검에서 이가원에게 등급 테스트는 애들 장난이었다고 느껴질 만큼 모진 소리를 들은 후에도, 역량을 파악하지 못한 과도한 연습으로 1차 경연에서 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무대를 완전히 말아먹은 후에도.
그럼에도 순위가 생각보다 높게 나오는 바람에 연습생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후에도 찬양은 매일 새로 도착하는 메시지를 읽기만 했었다.
– 찬양아!
– 예찬아!
– 어이구. 나는 안 보이나 보네.
두 번째 합숙을 마치고 돌아온 찬양을 예찬과 하경이 반겼다.
예찬과 얼싸안고 집으로 들어간 찬양은 어디서 얘기하면 안 된다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고 경연 당시 순위를 밝혔다.
– 그 정도면 중상위권 아니야?
– 상위권에 가깝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넌 하면 할 수 있는 놈이라고!
– 하하…….
뛸 듯이 기뻐하는 두 사람에게 찬양은 차마 연습과 경연 당시에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말할 수 없었다.
방송에 나올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숨 쉬기가 조금 버거웠다.
– 그럼 이만 가 봐야겠다.
– 어? 벌써? 안 자고 갈 거야?
– 어어, 우리 사장님이 츄마프에 자극받았는지 올해야말로 우리도 꼭 데뷔해 보자고 하시네.
– 말도 마라, 찬양아. 너 합숙하는 동안 한 번도 안 오고 숙소랑 연습실에만 박혀 있더라. 진짜 너무하지 않니?
예찬이 씩 웃자 하경이 외로워 죽는 줄 알았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예찬은 오버하지 말라며 하경을 흘겨보았다.
– 아저씨, 징그러워요.
– 아저씨는 원래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 으휴, 그래도 너 합숙 들어가는 날엔 보러 올게. 이번엔 사인회도 한다고 했나? 사인 연습 열심히 하고. 선배님, 파이팅!
– 으응.
현관에서 예찬을 배웅한 찬양은 조금 막막한 기분이었다.
예찬과 같이 츄마프 본방송을 보지 못하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확실한 것은 다음에 예찬을 볼 때 엄청나게 창피할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착실하게 보컬 레슨실과 댄스 연습실을 다니고 있지만 매일매일 마음에 더 무거운 추가 달리는 것 같았다.
3화 본방송은 치킨을 사 들고 퇴근한 하경과 둘이 보았다.
방송이 끝나고 하경은 괜찮다고, 더 잘하면 된다고 예찬에게 지도라도 받은 것처럼 위로했지만 찬양에겐 큰 위안이 되지 못했다.
예찬에겐 다음 날 방송 잘 봤다는 연락이 왔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졌다는 메시지에 찬양은 처음으로 연습을 빠졌다.
– 뭐야?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늦은 새벽, 연습을 끝내고 나온 예찬이 LEE 엔터가 있는 빌딩 앞에 서 있는 찬양을 발견하고 기겁했다.
같이 나오던 LEE 엔터 연습생 동료들을 먼저 돌려보낸 예찬은 찬양을 근처 편의점으로 이끌었다.
– 아직 2월인데 미쳤어? 이 엄동설한에 뭐 하는 짓이야.
– ……아까 보낸 메시지 말인데, 직접 해 주라.
– 뭐?
급하게 산 핫팩을 마구 흔들던 예찬의 팔이 멈췄다.
– 악!
예찬은 조금 힘을 줘서 찬양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꽁꽁 얼어 있어서 그런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 그런 거면 전화를 해.
눈을 흘긴 예찬이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 최선을 다하는 모습, 남들은 뭐라 할지 몰라도 나한텐 정말 멋졌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됐지?
– ……응.
– 어휴, 언제 다 크냐, 언제 다 커.
– ……지는.
– 뭐?
–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님!
찬양이 항복하자 만족스러운 얼굴로 핫팩을 쥐여 준 예찬은 다음 핫팩을 뜯어 흔들기 시작했다.
찬양이 Black_hearttttt_CY에게 세 번째로 답장을 보낸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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