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3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39화
찬양은 자신의 이름이 19위로 호명되는 순간, 아주 잠시였지만 촬영장 안에 흐른 어색한 공기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벌써 세 번째 합숙이다.
연습생들은 어느 정도 서로의 실력과 성격, 그리고 어느 회사 출신인지까지 파악하고 있었고 찬양은 그중 어느 것 하나 뛰어난 점이 없었다.
찬양이 다른 연습생들보다 내세울 게 있다면 방송 분량 딱 하나였다.
– 축하해요.
– ……고맙습니다.
19위 자리로 다가가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연습생이 어색하게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앉아 있는 의자의 무게가 찬양의 마음을 불편하게 눌러 댔다.
– 역시 실력이다 무대다 해도 결국 분량이 장땡이네.
– 당연하지. 욕하는 것도 일단 얼굴을 알아야 한다니깐. 난 지난주에 5초 나왔더라.
– 난 7초.
– 차라리 나도 또라이 콘셉트 잡고 카메라 앞에서 미친 척해 봐?
– 쉿! 조용히.
복도에서 떠들던 연습생들이 찬양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대놓고 말하진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 찬양아, 어디 갔다 왔어! 형이 네 자리 맡아 놨어.
– 아…… 감사합니다.
– 이번엔 어떻게 조를 뽑을까? 또 같은 조 되면 좋겠다!
– 아, 네…….
합숙소로 떠나는 버스에 올라타자 지난 무대에서 같은 조였던 연습생이 티 나게 친한 척을 했다.
처음 같은 조가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가 지었던 표정이 생생한 찬양은 가식적인 태도에 속이 울렁거렸다.
합숙소에 도착해 침대에 누운 찬양은 잠시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지금 상황과 심정을 토로하고 싶은데, 하경에겐 말을 해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예찬과 Black_hearttttt_CY인데…….
자신의 편이라곤 해도 시청자인 Black_hearttttt_CY에게 방송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 예찬아, 자?
고민 끝에 보낸 메시지엔 찬양이 잠들 때까지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 나 연습 중이었어! 폰이 꺼져 있어서 몰랐네. 합숙에서 무슨 일 있어?
다음 날 눈을 뜨니 예찬에게 답이 와 있었다.
찬양은 별일 아니었다고 답하고 빠르게 몸가짐을 바로 했다.
두 번째 경연은 1차 순위 발표식에서 받은 순서대로 원하는 방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다시금 주변 연습생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 오, 들어왔다!
– 여기 앉으면 돼요.
찬양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같은 방을 고른 연습생들이 반겨 주었다.
……어쩌면 반기는 척하는 것뿐일지도 몰랐지만, 범세혁과 심상록, 그리고 우휘겸까지 무려 현 1, 2, 3위가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것에 놀란 찬양은 당시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실력이 출중한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가장 특출난 저 셋 옆에 있으면 얼마나 더 못하는 게 티가 날까?
앞이 깜깜해지려는 찰나 찬양은 입술을 깨물어 정신을 차렸다.
시작하기도 전에 약한 생각을 했다.
더 열심히 해서 잘할 생각을 해야지, 이 무슨 나약한 생각…… 이거 방금 되게 예찬이 같았는데?
다행히 같은 방을 선택했다고 다 같은 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위권 넷은 범세혁과 찬양, 그리고 심상록과 우휘겸 두 팀으로 나뉘었다.
찬양은 감히 자신이 저 셋과 함께 상위권으로 묶여도 되는지 두려워졌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 4번 방의 곡은 유피테르의 ‘Last Circus’입니다.
– ……!
이번에도 유피테르의 곡을 부르게 된 찬양은 정말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고 싶었다.
어게인 2차 합숙도 아니고!
이가원의 인간 이하의 무언가를 보는 것 같은 시선을 한 번 더 맞으면 정말 송충이로라도 변해 버릴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조는 그래도 분위기가 꽤 밝다는 것이었다.
– 아, 찬양이 너 스무 살이야? 나도 스무 살인데! 말 편하게 하자.
아마 리더를 맡은 범세혁의 영향이 클 것이었다.
처음으로 말을 섞어 본 범세혁은 멀리서 지켜봤던 것보다 훨씬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포지션은 댄스였지만 노래나 랩도 찬양이 듣기에는 꽤 수준급이었다.
무엇보다 범세혁은 찬양이나 다른 조원들이 자신을 따라오지 못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냥 웃으면서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실수한 부분을 설명하거나 보여 줄 뿐이었다.
같은 스무 살이 맞나 싶을 정도의 멘탈이었다.
여전히 찬양의 실력은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합숙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인회에서 팬이 던진 종이컵에 맞은 일 정도는 금세 잊힐 정도였다.
중간 점검에서도 처음으로 전보다 늘었다는 말을 들었다.
유피테르의 메인 보컬이자 심사 위원인 이가원이 찬양을 보고 한숨을 내쉬지 않은 건 처음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 무렵, 츄마프 5화이자 1차 순위 발표식이 방송되었다.
첫 순위 발표식이니만큼 여러모로 예상외의 결과들이 있었고, 그 반응이 꽤 거센 모양인지 숙소 내가 뒤숭숭했다.
내일모레 2차 경연을 앞둔 찬양은 괜히 심란해지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고 있었다.
그때 Black_hearttttt_CY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주고받고 있던 찬양은 이번에도 반가운 마음으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Black_hearttttt_CY : 찬양 씨, 19위 축하드려요! 저는 찬양 씨의 매력이 통할 줄 알았다니까요! 누가 뭐라고 해도 찬양 씨가 당당히 얻어 낸 순위인걸요! 헛소리들은 신경 쓰지 말고 다음 경연 힘내세요!
메시지 내용을 읽을수록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점차 내려갔다.
‘누가 뭐라고 해도’, ‘헛소리들’.
잘 눌러 뒀던 호기심이 빼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찬양은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혹시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냐는 찬양의 물음에 Black_hearttttt_CY가 깜짝 놀랐다.
Black_hearttttt_CY : 아, 안 찾아보고 계셨구나! 제가 괜한 소리를 해서…… ㅠㅠㅠ 죄송해요! 막 그렇게 심한 건 아니고 지난번보다 조금 많이 나오는 정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번보다 더 나오고 있다고?
19위로 호명된 순간부터 예상은 했지만, 확인 사살을 당하자 충격이 대단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찬양이 괜찮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답장이 다시 날아왔다.
Black_hearttttt_CY : 진짜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혹시 나중에 고소할 생각이 드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선 넘는 패드립 같은 건 전부 정리해서 모아 두고 있거든요.
잠깐 챙겼던 정신이 다시 나가려고 했다.
저 말은 고소할 정도의 발언들이 오고 가고 있다는 뜻 아닌가.
게다가 선 넘는 패드립이라니…….
결국 찬양은 호기심의 손을 들고 말았다.
Black_hearttttt_CY의 말은 약과였다.
분량으로 순위를 먹은 찬양을 향한 다른 연습생 팬들의 분노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 아니 노래를 못했는데 19위가 말이 되냐고ㅋㅋㅋㅋ
– 투표한 새끼들은 얼굴 뜯어먹고 살 거냐?ㄷㄷㄷㄷㄷ
└ 사실 딱히 뜯어먹을 얼굴도 아님ㅋ
└└ 뚱찬양 개뚱뚱해 얼굴도 비계 때문에 보기만 해도 웩스러움
– 이쯤 되면 진지하게 파 봐야 함 PD나 방송국이랑 커넥션 있을 듯
– D등급 개허접한테 분량 몰아주기 뭐냐고
– 19위 발표하는데 순간 나까지 썰렁해짐ㅋㅋㅋ 연습생들 표정도 쟤 뭐 돼? 딱 이 표정임
이 정도는 정말 욕설도 비난도 아니었다.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인 찬양의 부모님을 찾는 글이며, 찬양이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쓴 글들을 보고 있자 연습을 위해 든든하게 먹었던 저녁이 올라왔다.
– 욱!
– 어? 찬양아?
범세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해 줄 틈이 없었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속을 게우고 나자 이번엔 또 눈물이 핑 돌았다.
뭘 안다고 남의 부모님에 대해 그따위 소리를 한단 말인가.
비워 낸 속을 분노가 대신하듯 들끓었다.
화장실까지 꼭 쥐고 온 스마트폰이 눈에 띄었다.
당장이라도 게시물에 댓글을 달려던 것을 가까스로 참아 낸 찬양은 Black_hearttttt_CY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창을 다시 열었다.
예찬이나 하경에겐 말할 수 없었다.
자신 못지않게 슬퍼할 게 뻔했으니까.
찬양은 지금 느끼는 격한 분노와 슬픔을 전부 스마트폰 안에 쏟아 낼 기세로 손을 움직였다.
찬양 자신도 순위가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지금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는 소리가 얼마나 억울한지, 자신은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시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쉽게 부모까지 운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증오스러운지.
메시지를 보낸 찬양은 화장실에 쪼그려 앉은 채 숨을 골랐다.
평소와 달리 답이 빠르게 돌아오지 않았다.
– …….
조금 진정한 찬양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 너무 늘어놓았다고 막 후회를 할 무렵, 답장이 도착했다.
Black_hearttttt_CY : 찬양 씨, 제가 감히 찬양 씨의 아픔에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저 그런 아픔을 딛고 이렇게 멋지게 자란 것을 부모님께서도 흐뭇하게 생각하실 거라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헛소리는 신경 쓰지 마세요. 두 분은 찬양 씨의 무대를 하늘에서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계실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까지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런 말을 이런 때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찬양 씨가 보여 주신 믿음에 반드시 보답할게요.
‘믿음’이란 단어에 찬양의 후회가 희멀겋게 흩어졌다.
Black_hearttttt_CY과 자신의 관계가 단순한 팬과 출연진의 관계에서 좀 더 진하고 끈끈한, 서로의 아픔을 진실로 보듬어 주는 단단하고 건전한 관계가 된 것 같았다.
원래도 의지하고 있던 Black_hearttttt_CY지만 한층 더 온전한 자신의 편이 된 것 같은 기분.
찬양은 자신의 사적인 가정사를 털어놓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츄즈 마이 프린스 99에 참여하고 괴로운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했다.
마음의 빗장이 완전히 열렸다.
그 후 찬양이 보내는 메시지엔 좀 더 사적이고 감정적인 내용들이 들어가게 되었다.
Black_hearttttt_CY는 그런 찬양의 변화를 기꺼워하며 밤이든 낮이든 찬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주었다.
2차 경연에선 1차 때보다 훨씬 적은 표를 받았지만, 찬양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합숙이 끝나고 돌아온 후에도 Black_hearttttt_CY과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이어진 6화에선 찬양의 분량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찬양은 자신에 대한 언급이 줄어들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Black_hearttttt_CY : 찬양아, 혹시 너 부모님 얘기 방송에서 안 했어?
Black_hearttttt_CY는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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