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4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40화
이 시점에서 찬양은 Black_hearttttt_CY를 ‘블랙하트’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름도 듣긴 했지만 상대측에서 이름보다는 닉네임으로 불러 주길 바랐다.
……뭐, 나중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그 이름도 본명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 뒤, 찬양은 블랙하트와 밤낮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습실에서 칭찬을 받았을 때나 반대로 따끔하게 혼이 났을 때, 혹은 심한 악플을 발견했을 때, 찬양은 주저하지 않고 블랙하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동갑이라는 말에 어느덧 서로 말도 편하게 놓은 상태였다.
물론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지만.
바쁜 예찬이나 하경과 달리 블랙하트는 항상 찬양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언제든 곧바로 답장을 보냈고, 대화를 하다 보면 그녀의 관심사란 온통 찬양을 향해 쏠려 있는 듯했다.
주고받은 메시지창엔 이래서 세상 사람들이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꿈꾸는가 싶을 정도로 듣기 좋은 소리가 가득했다.
그 덕에 츄마프를 시작한 이후 문득문득 찾아오는 공허함과 불안감을 달랜 것과 별개로, 찬양은 두 사람의 사이가 건전한 팬과 아이돌 지망생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어차피 찬양은 곧 있을 2차 순위 발표식에서, 아마 챙겨 간 짐을 그대로 들고 집으로 돌아올 테니 말이다.
원래부터 아이돌이 꿈이었던 것도 아니고, 충동적으로 도전했던 것뿐이었다.
덕분에 예찬이 꿈꾸는 세계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블랙하트와 같은 좋은 지인도 생겼으니 이 정도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찬양은 블랙하트가 보낸 메시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cycy723 : 처음 인터뷰 때 이야기하긴 했는데…… 부모님은 갑자기 왜?
Black_hearttttt_CY : 음…… 찬양이 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보통은 너처럼 특이한 가정사가 있으면 방송에서 언급되거든. 그런데 츄마프에서 그런 얘기를 한 번도 안 다뤄서 제작진이 모르는 건가 했어!
특이한 가정사.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찬양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장문의 메시지가 다시 날아왔다.
Black_hearttttt_CY : 물론 시청률 올려 보겠다고 방송에 민감한 가정사를 막 가져다 쓰는 건 당연히 안될 일이지! 그런데 보통은 그렇다는 거야! 그래서 혹시 츄마프에서도 너희 집 일을 자극적으로 써먹을까 봐 걱정된 거고. 혹시 기분 나쁜 건 아니지? 난 그냥 우리 나이대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보편적인 일은 아니란 뜻으로 말한 건데……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엄마가 안 계시잖아…….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돌아가셨다는 블랙하트의 어머니 이야기는 찬양이 블랙하트에게 결정적으로 마음을 연 계기이기도 했다.
……미리 말해 두자면, 이마저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어쨌거나 당시의 찬양은 블랙하트가 자신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욱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cycy723 : 그렇구나…… 아무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우리 피디님은 연습생 개인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신 거 같거든.
Black_hearttttt_CY : 다행이네! 어쨌든 난 정말 걱정돼서 한 말이니까 혹시라도 기분 상했으면 풀면 좋겠다~ 내 맘 알지? 오늘도 힘내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기분이 상한 건 사실이지만, 찬양은 연거푸 사과하는 사람에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따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블랙하트에게 악의가 없었을 거라는 믿음도 한몫을 했다.
cycy723 : 그래, 너도 잘 보내.
그리고 이틀 뒤, 한 익명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찬양의 불우한 가정사가 퍼지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익명 게시판에 아주 정확하게 언급된 찬양의 가족 관계를 아는 것은 찬양을 가르쳤던 학교 선생들을 제외하면 하경과 예찬, 그리고 블랙하트뿐이었다.
cycy723 : 메이트판에 글 쓴 거 너야?
찬양의 의심은 당연히 블랙하트를 향했다.
블랙하트의 답변은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더없이 당당한 답변은,
Black_hearttttt_CY : 응 나야. 놀랐지?
깔끔한 긍정이었다.
놀랐냐고?
당연히 놀랐다.
하지만 놀라움보다 더 큰 것은 배신감이었다.
cycy723 : 왜 그랬어? 난 널 믿고 얘기한 건데! 나랑 한 얘기는 아무한테도 말 안 한다고 했잖아!
Black_hearttttt_CY : 찬양아 화내지 말고 들어 봐. 너 지난 경연에서 너희 조 5등이었다면서. 이번 계승식에서 열일곱이 더 떨어지는데 너 6화 이후로 언급량 되게 줄었단 말이야. 승리 팀이랑 최다 득표팀 베네핏 받았어도 장담하기 힘들어.
cycy723 : 그게 우리 부모님 얘기랑 무슨 상관인데?
Black_hearttttt_CY : 당연히 상관이 있지. 내가 전에 불우한 가정사 있으면 방송에서 무조건 써먹는다고 했잖아. 그게 왜 그렇겠어? 다 먹히니까 그렇지.
cycy723 :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Black_hearttttt_CY :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동정표 모으는 게 백퍼 먹힌다고. 사실 좀 더 나중에 쓰려고 아껴 두고 있었는데 2차에서 떨어지면 아무 소용 없잖아. 걱정하지 마! 이걸로 2차는 무조건 붙을 거야!
분명 한글로 떠들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찬양이 멍한 눈으로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을 반복해 읽고 있는 사이, 연달아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Black_hearttttt_CY :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네가 츄마프에서 한번 언급하는 게 좋은데…… 피디 성향이 가족 신파류를 싫어하면 얘기해 봤자 편집되려나? 다음에 또 사인회는 안 한대? 아니면 다음 경연에서라도…….
cycy723 :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리고 난 동정표를 사서까지 데뷔할 생각 없어. 헛소리 좀 그만해!
이 이상 블랙하트가 멋대로 떠드는 것을 견딜 수 없던 찬양이 거칠게 말을 끊었다.
지금 퍼진 소문도 알아서 정리하라고 메시지를 치고 있는데, 그보다 블랙하트가 한발 더 빨랐다.
Black_hearttttt_CY : 너 너무 배부른 소릴 하는 거 아니야?
cycy723 : 배부른 소리라고?
Black_hearttttt_CY : 가지고 있는 걸 전부 이용해도 모자랄 판에…… 너 응원해 준 팬들은 생각 안 해?
이쯤 되니 그냥 허탈했다.
지금까지 찬양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블랙하트와 지금 떠들고 있는 블랙하트의 괴리가 너무 커서 도무지 맞춰지지 않았다.
대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왜 이렇게까지 믿고 마음을 준 걸까.
허탈함이 찬양을 지배했다.
cycy723 : 그만하자.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난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Black_hearttttt_CY : 그런 생각? 너 왜 자꾸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 난 정말 너의 미래와 널 응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택한 거야. 나라고 남의 가정사를 떠벌리는 게 쉬웠을 줄 알아? 그걸 여기저기 퍼트리는 건 또 쉬웠겠고? 난 진짜 너를 위해서 그런 건데 너 진짜 너무한다…….
cycy723 : 그만 얘기하자. 우린 여기까지인 거 같아. 그동안 고마웠어.
Black_hearttttt_CY : 너도 언젠가 나를 이해하게 되겠지. 그리고 내게 고맙다고 하게 될 거야. 언제라도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게.
찬양은 더 대답하지 않고 블랙하트를 차단했다.
그날 밤, 오래간만에 찬양의 방에 하경과 예찬까지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무래도 사소한 일이 아니다 보니 찬양을 바라보는 두 사람 모두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이미 블랙하트와 대화 아닌 대화를 하며 기운을 전부 소진한 찬양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말을 하면서도 예찬이 팬과 연락하지 말랬더니 잘하는 짓거리라고 멱살을 잡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예찬은 침울한 얼굴로 찬양의 어깨를 두드리기만 했다.
– ……고생했어.
– …….
오히려 화를 낸 쪽은 하경이었다.
찬양과 블랙하트가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쭉 확인한 하경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 뭐, 동정표에 가족 신파? 하, 사람 호의를 그런 식으로 이용을 해?!
– 형 진정해.
– 남의 가정사를 인터넷에 퍼트린 것도 모자라 말본새를 어디서 이따위로…….
예찬의 만류에도 하경은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 ……미안해.
찬양의 사과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경이 고개를 내저었다.
– 네가 뭐가 미안해.
– 괜히 나 때문에…….
– 됐어! 아무튼 이제 다신 연락하지 말고, 이미 퍼진 소문도 신경 쓰지 말고, 너는 그냥 너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돼.
– …….
– 기죽지도 말고!
– ……응.
다음 날이 되자 이번엔 제작진에게 연락이 왔다.
찬양은 하경과 예찬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솔직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 털어놓았다.
– 찬양 씨가 낸 소문은 아니다, 이거죠? 그리고 별로 알리고 싶지도 않고. 음, 일단 알겠어요.
–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찬양은 전화 너머의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7화 방영을 앞두고 진행된 깜짝 게릴라 콘서트에선 찬양은 자신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몇 개나 발견했다.
이전이라면 그저 설레고 반가웠을 텐데 이번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저 사람들이 혹시 조실부모한 찬양을 동정해서 저걸 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 …….
자신을 위해 이곳까지 달려와 준 사람들을 의심하는 것이 꼴사나웠지만, 한 번 가슴에 피어난 의심의 싹은 시들지 않았다.
7화에서 여전히 찬양의 분량은 적었지만, 인터넷 투표 순위는 전보다 훨씬 올라갔다.
인터넷 반응은 블랙하트를 차단한 이후로 보지 않고 있었다.
아마 가족 팔아서 순위를 올렸다는 말을 듣고 있지 않을까?
한창 욕을 먹던 때와 비교해서 지금이 욕을 더 많이 먹고 있을지,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먹고 있을지는 조금 궁금했다.
– 다음은 21위입니다. ……찬양 후보생, 축하드립니다!
30위까지 살아남는 2차 순위 발표식에서 찬양은 21위로 생존했다.
1차 때보다 순위가 떨어지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 탈락 위기라고 꼽혔던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약진이었다.
눈물이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찬양은 이게 기쁨의 눈물인지, 아니면 슬픔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 2차 계승식 끝났지? 몇 등이야?
숙소에 도착하자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찬양은 인상을 찌푸렸다.
블랙하트가 분명했다.
SNS 아이디를 차단하자 계속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 연락을 시도하더니, 찬양이 아예 SNS를 삭제하자 이번엔 어떻게 번호를 알아낸 건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곧바로 다음 문자가 날아왔다.
– 아직도 화났어?
찬양은 이번에도 대답 대신 번호를 차단하고 침대에 몸을 묻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