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4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45화
“예찬아!”
자신을 감싼 것이 안쪽 방에서 튀어나온 예찬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찬양의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범세혁이 비슷한 상황에 비슷하게 자신을 감쌌던 기억만이 생생했다.
어둠 속에서 셔츠를 타고 번져 가던 피가 병원 응급실의 환한 조명 아래에서 대단한 존재감을 떨치던 것까지 떠올린 찬양은 황급히 예찬을 붙잡았다.
“너, 괜찮아?!”
“지금 큰일 날 뻔했다, 야.”
갑자기 잡아당기는 바람에 놓칠 뻔했다며 예찬이 슬쩍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제야 예찬의 어깨 너머로 대치 중인 두 사람의 상황이 보였다.
“너 소, 손……!”
“아, 이거. 이 정도는 큰일 아니지.”
블랙하트가 마구잡이로 휘두른 눈먼 칼은 이번엔 사람을 쑤시진 못했다.
예찬이 한 손으로는 칼날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칼을 쥐고 있는 블랙하트의 손목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악!”
예찬이 다시 블랙하트를 내려다보며 손목을 쥔 손에 힘을 가했고, 짧은 비명을 내지른 블랙하트는 이내 칼을 떨어트렸다.
그대로 블랙하트를 밀친 예찬은 여전히 칼날을 쥔 채로 눈을 가늘게 떴다.
“세상 말세다 말세. 중딩이 식칼 들고 설치다니.”
“네, 네가 어, 어, 어떻게 여, 여기……!”
“네가 여기 있는 것보단 내가 여기 있는 게 훨씬 자연스럽지 않아?”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을 향해 예찬이 여봐란듯이 혀를 찼다.
“불법 가택 침입에 흉기 폭행, 스토킹까지…… 이왕이면 몇 달 더 있다 저질렀으면 좋았을 텐데.”
블랙하트가 저지른 죄를 읊은 예찬은 지금은 끽해야 소년원 송치 아니냐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라가 네 죄를 처벌해 주지 않는다면, 널 낳고 키운 부모라도 대신 고생해야지. 그렇죠, 아저씨?”
– @#$#%@$%@ ^&*#@#@#$-!!
식칼을 들지 않은 손으로 예찬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통화 중이었는지 스피커폰으로 남자가 마구 떠들어댔다.
찬양은 그 목소리가 요즈음 들을 일이 많았던 블랙 하트 아버지의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블랙하트 또한 부친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여전히 자기 손목을 붙잡은 채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예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저씨도 잘 알겠다시네.”
‘그 말이 아닐 거 같은데.’
통화를 종료하지 않은 채로 스마트폰을 주머니 안으로 다시 돌려놓은 예찬은, 그제야 칼날 대신 칼자루를 쥐고 날 끝으로 현관문을 가리켰다.
“나머지 얘기는 나가서 할까? 아니면 아저씨 오기 전에 도망쳐도 좋고.”
– @$#%%^^&&@$@!!
주머니 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또다시 터져 나왔다.
흠칫 몸을 떤 블랙하트는 고개를 숙인 채 뒷걸음질을 치다가 돌연 사납게 찬양을 노려보았다.
찬양이 그 눈빛과 제대로 마주하기도 전에 예찬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야, 어디다 눈을 흘겨. 노선 똑바로 정해. 지금 당장 튈 건지, 아니면 너희 아버지랑 경찰이 올 때까지 그렇게 노려보고 있을 건지.”
“……!”
사나운 목소리로 예찬이 윽박지르자 블랙하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깔고 달아났다.
그래, 그 모습은 달아났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하.”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하든 벽을 상대하는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던 블랙하트가 신데렐라처럼 신발까지 한 짝 떨어트리고 도망치는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예찬이 활짝 열린 현관문을 닫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문은 닫고 가야지. 마지막까지 매너가 없네.”
“…….”
“와씨, 손 아파! 이제야 아픔이 막 밀려드는데?! 찬양아, 경찰 좀 불러 줘.”
문이 꽉 닫힌 것을 확인한 예찬은 통화까지 종료한 뒤에야 칼날을 잡아챘던 손을 들어 올렸다.
찬양은 묻고 싶은 말들을 일단 뒤로 미루고 급하게 예찬을 향해 달려갔다.
“손 좀 봐봐!”
쫙 펼친 손은 생각보다 더 엉망이었다.
두려움과 미안함이 왈칵 화로 변해 튀어 나갔다.
“너 진짜 미쳤어? 어떻게 칼을 휘두르는 사람 앞에 끼어들어!”
“나도 어디 가서 안 이래. 너니까 한 거지.”
“…….”
찬양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태연한 예찬의 말투에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똑같은 상황에서 범세혁이 예찬처럼 당연하단 목소리로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 네가 아니라 누구여도 난 이렇게 했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해하지 마.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휘몰아쳤다.
찬양에게 한 손을 내준 채로 자리에 주저앉은 예찬이 눈을 감았다.
“112 좀 불러 주라, 찬양아. 나 피 보니까 어지러워서 못 움직이겠어.”
“넌, 진짜…… 나 너한테 어떻게 다 갚으라고 이러냐…….”
“천천히 갚아. 인생 길다.”
“진짜 말이라도 못 하면…….”
눈물을 꾹 참은 찬양은 112와 119에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찬양은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눈을 꼭 감은 상태로 현관문에 기대어 앉아 있던 예찬은 찬양의 질문에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쟤가 아마 나처럼 가족이 없었다면 절대 못 썼을 방법?”
“그게 뭔데.”
“알아보니까 쟤 삼촌인지 고모인지가 정치판 말석에 있더라고. 공무원인 가족들도 몇 있고.”
예찬은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은 자료들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을 뿐이라 대답했다.
“저쪽에서 먼저 이용한 커뮤니티들을 좀 소개해 드렸지. 친인척 관련해서 안 좋은 소리 나오면 재미없는 직업들이잖아. 가족들끼리 꽤 돈독한 편인지 알아서 잘 단속하겠다던데?”
거기까지 말한 예찬은 한쪽 눈을 슬쩍 떠서 다친 손을 확인하더니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한동안 조용해서 정말 잘하는구나 싶었는데, 또 칼 들고 쫓아오다니. 실망이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찾은 건데?”
“요즘 세상에 돈이면 어지간한 건 다 된단다, 친구야.”
자신이 아무것도 못 하고 방에 틀어박혀 공포에 질려 있는 사이, 동갑내기 친우가 바쁘게 뛰어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 찬양은 기어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고마워. 내가 꼭 갚을게.”
“됐어. 돈은 하경이 형 주머니에서 나온 건데 뭐.”
“돈 얘기가 아니라, 아니, 돈도 중요하긴 한데…….”
찬양이 횡설수설하는 사이, 구급차와 경찰차가 연달아 도착했다.
먼저 예찬의 손을 치료한 뒤, 경찰 조사가 이어졌다.
예찬은 구급차에 오르기 전에 홈 CCTV의 녹화 데이터를 챙겼고,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영상을 제출했다.
찬양은 예찬이 사 들고 온 홈 CCTV를 설마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날이 오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예찬은 이날만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버선발로 경찰서까지 달려온 블랙하트의 어머니는 예찬과 찬양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애를 잘못 키웠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다시는……!”
“…….”
“이번에 선처해 주시면 해외로 나가서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게요. 제발…….”
“그만 하세요.”
회사에서 곧장 경찰서로 뛰어 온 하경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 뒤로는 얼마 전 하경에게 소개받았던 변호사가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애들을 흔들 생각하지 마세요.”
“그, 그런 게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다는 말이 대체 몇 번째입니까? 지난번에도 아무리 빨라도 대학까진 해외에서 마치고 들어올 거라더니…….”
“그, 그때는 애가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간 거라 적응을 너무 못해서…… 이번엔 다를 거예요!”
“이제 그쪽 말은 믿을 수가 없네요. 법대로 하시죠.”
“그러지 마시고…….”
하경과 그가 고용한 변호사가 등장한 뒤로 예찬과 찬양은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중간중간 블랙하트의 친척들이나 그들이 고용한 변호사도 경찰서를 들락거렸지만, 워낙 증거가 명확하고 몇 번이나 비슷한 전적이 있던 터라 첨예한 공방이 이어지진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경찰서를 나온 세 사람은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지친 얼굴을 한 찬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람을 찔렀으니 이번엔 소년원에 가겠지……?”
“뭐, 소년원에서 나와도 바로 해외로 보낸다잖아. 해외에 나가자마자 못 돌아오게 여권을 찢어 버리겠다니. 이제 정말 끝이려나?”
단단히 맨 붕대를 한 번 내려다본 예찬의 말에 하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권이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만들겠지. 중요한 건 또 한 번 우리 앞에 나타나면 그게 우연이든 아니든 인터넷에 올려 버릴 거란 거야.”
“하경이 형, 많이 화났구나.”
“당연하지! 솔직히 지금도 해외에 폭탄을 던지는 거 같아서 기분이 영 안 좋아. 그런 애가 처박혀야 하는 곳은 교도소 아니면 정신 병원 아니야?”
하경의 말에 예찬이 안타깝단 목소리로 대답했다.
“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내가 좀 더 제대로 찔렸다면 이야기가 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엔 찬양이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 끔찍한 얘기는 하지 말자!”
지금도 빨갛게 물들었던 예찬의 손만 떠올리면 온몸이 덜덜 떨리는데, 다른 곳을 제대로 찔렸을 수도 있다고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잠시 침묵이 차 안에 흘렀다.
눈물을 참는 건지 코를 훌쩍인 하경이 잠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 많았어. 예찬아, 고맙다. 다 나을 때까지 형이랑 같이 병원 다니자.”
“됐어. 내가 애도 아니고.”
“그래도. 그렇게 해야 형 마음이 편할 거 같아.”
“……그럼 그러세요. 어휴, 한동안 식칼 보면 손이 떨릴 거 같아.”
“우리 예찬이, 평생 식칼 볼 일 없게 해 줄게. 예찬이 밥은 형이 평생 책임진다! 말 나온 김에 일단 오늘은 뭐 먹을까? 피를 보충해야 하니까 스테이크?”
“와, 너무 일차원적인 발상 아닙니까, 형님? 그렇지만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남자 셋이 한 끼에 얼마까지 쓸 수 있는지 도전해 보자고요!”
“그래! 어디 형 통장 한번 털어 봐라!”
좀 전까지 경찰서에서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두 사람은 여느 때보다 더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해맑지?
황당함에 고개를 돌리자, 밝게 웃는 얼굴과 달리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예찬의 목덜미가 보였다.
하경 또한 접힌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그제야 찬양은 두 사람이 일부러 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블랙하트와의 악연이 이것으로 끝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곁엔 누구보다 든든한 두 사람이 있었다.
지난 수개월 찬양을 지배했던 공포 대신 다른 감정이 찬양의 가슴에 켜켜이 자리 잡았다.
언젠가 꼭 갚아야지.
반드시 갚을 거야.
두 배, 아니, 세 배로 갚을 거라고.
찬양은 주먹을 꾹 쥐고 창밖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