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4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47화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다.
예찬은 강해솔의 생일을 앞두고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생일 파티 준비가 이렇게 어렵다니…….’
그렇지만 아이돌 멤버의 생일이란, 그룹의 데뷔 일과 더불어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념일 아니던가.
허투루 준비할 수는 없었다.
“OST 들어온 거 확인했어?”
“어. 형은 어떻게 할 거야?”
“그러게. 시기가 너무 애매하단 말이지.”
예찬은 굵직한 스케줄을 늘어놓는 강해솔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진 잘 속인 거 같지?’
멤버들이 자리를 비운 낮에 가구를 전부 들여놓았을 가구점 직원에게 누명을 씌운 것은 조금 미안하지만, 몇 시간 뒤면 전부 풀릴 오해니 양해해 주리라 믿었다.
얼레벌레 생일 축하를 했던 우휘겸을 제외하고도 벌써 다섯의 생일이 지나갔다.
몇 번이나 학습한 결과, 멤버들은 자기 생일이 다가오면 당연히 생일 파티를 예상하고 있었고, 강해솔 같은 경우엔 같은 달에 배새벽의 생일도 있었기에 더더욱 그럴 터였다.
이제 멤버들이나 제작진을 동원해서 여는 생일 파티 정도론 큰 감명을 줄 수 없었다.
‘생일 파티가 이렇게 힘든 거였냐고…….’
예찬은 2분 전과 비슷한 고민을 하며 작업실 컴퓨터를 켰다.
주사위는 이미 던졌다.
강해솔은 선우이경처럼 A를 보면 Z까지 떠올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서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들을 타입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긴장감으로 식은땀까지 배어 나오는 것을 느낀 예찬은 헛웃음을 흘렸다.
‘생일 파티를…… 뭐 이렇게까지…….’
지금까지, 아니, 리스피릿 시절의 예찬에게 생일 파티란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 시절의 예찬은 데뷔 첫해와 그다음 해까지 생일을 맞은 멤버를 어렵지 않게 전부 울렸었다.
데뷔 초에만 볼 수 있는 풋풋한 모습에 팬들도 무척이나 만족했었고.
그렇지만 레굴루스는 리스피릿과 완전히 달랐다.
일단 멤버 수가 거의 두 배에 육박하기에, 앞서 말했듯 학습하는 동물인 인간은 패턴을 익히게 된다.
또 다른 것은 나이.
예찬이 보기엔 이쪽이나 그쪽이나 혈기 왕성한 신인이었으나, 리스피릿은 데뷔 당시 맏형이었던 이희샘의 나이가 열아홉이었다.
그에 비해 강해솔의 나이는 스물둘.
고작 두세 살 차이가 뭐 그리 크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이 시기는 하루가 다르게 정신이 쑥쑥 성장하는 시기가 아닌가.
“예찬, 형 화장실 좀.”
“어. 넘어지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
“이게 형을 뭐로 보고.”
어쨌든 오늘은 그 모든 것을 고려해서 판을 짰다.
아침부터 범세혁과 채은성이 강해솔을 사이에 두고 장미 조화니 생화니 헛소리를 해댄 것도, 예찬이 피대기를 상대하는 사이 새로운 안무로 어떨 거 같냐며 최연장자 둘이 리듬 체조를 선보인 것도, 도지윤 팀장이 굳이 이 좋은 일요일에까지 회사에 나와 곱게 모아 둔 OST 제안서들을 건넨 것도 전부 그 판의 일부였다.
목표는 오직 하나.
강해솔의 눈에서 소금물을 뽑는 것!
* * *
결과부터 보고하자면, 강해솔의 두 눈에서 눈물을 짜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해솔이!”
“해솔이 형!”
“생일 축하합니다!”
자정이 넘어서 돌아온 숙소엔 생일 파티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고, 순식간에 강해솔을 둘러싼 멤버들은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열창했다.
“어, 고마워요, 다들…….”
아침에 나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숙소를 둘러본 강해솔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리고 진정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강해솔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저마다 눈빛을 주고받았다.
‘눈물은 실패했지만, 웃음은 제대로 뽑아 주지!’
이번 파티의 주제는 접대.
몇 가지 게임과 간단한 음식이 곁들여진 이 파티의 목적은 100퍼센트 강해솔 접대였다.
“오, 레이싱 게임. 옛날에 진짜 열심히 했었는데.”
TV를 가득 채운 게임 타이틀을 확인한 강해솔이 반갑다는 듯 눈을 빛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강해솔이 잘하는 게임과 좋아하는 음식들만 준비했으니까.
예찬은 뽑기 결과 강해솔과 첫 번째로 겨루게 된 우휘겸에게 티 나지 않게 눈짓했다.
마찬가지로 티 나지 않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 우휘겸은 엄청난 레이싱 실력을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아니, 휘겸아.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해솔이 형이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도 이기겠는데.”
“…….”
이건 연기의 영역이 아니었다.
‘저게 연기면 연기대상급…….’
예찬이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에도 우휘겸의 창의적인 주행은 계속되었다.
채은성이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고, 선우이경은 재밌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어떻게 저기서 역주행을 할 수 있지?”
“휘겸이 보드게임은 나쁘지 않던데, 이런 게임은 안 해 봤구나.”
“…….”
어쨌든 이걸로 첫 번째 게임은 훌륭하게 강해솔을 띄웠다.
결승점을 통과한 강해솔을 향해 멤버들의 박수가 쏟아졌지만, 강해솔은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우휘겸을 향해 흰 눈을 떴다.
“휘겸이 너, 내 생일이라고 일부러 져 준 거 아니야?”
‘……이런, 너무 못해서 이상한 의심이 싹터 버렸나.’
“……아닌데요!”
풀이 죽어 있던 우휘겸이 강해솔의 지적에 당황해서 미친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이건 위험하다.
“우휘겸, 네 원수는 내가 갚아 줄게.”
“오오, 하예찬~”
예찬이 당당하게 선전 포고를 하자 미심쩍은 듯 우휘겸을 흘겨보던 강해솔이 예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찬은 여봐란듯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런 예찬의 태도는 강해솔이 아니라 다른 멤버의 투지에 불을 질렀다.
“허, 하예찬! 이미 나는 쓰러트렸다는 거야? 건방진……!”
예찬의 첫 대전 상대인 채은성이 커다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아니, 이 자식아. 이거는 누가 봐도 해솔이 형의 정신을 빼놓으려는 거잖아.’
예찬은 눈을 찡긋거리며 최대한 제 생각을 전하려 했으나 결과는 영 좋지 못했다.
“그 눈빛은 날 도발하는 건가?! 하! 하예찬! 이 몸의 천재적인 레이싱 실력을 보여 주지! 널 때려눕히고 해솔이 형을 쓰러트리는 건 나야!”
“뭐야. 내가 악의 대마왕 이런 거야?”
강해솔이 고깔모자를 쓴 채로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강해솔의 말대로 순식간에 예찬은 중간 보스가 되고, 강해솔은 최종 보스가 되었다.
“그거 좋네. 해솔이 형, 우리 둘이 새로워진 숙소에 악의 제국을 건설하자고.”
강해솔의 말에 영감을 받은 예찬이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채은성이 긴장한 얼굴로 우휘겸을 돌아보며 무척이나 늠름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휘겸아!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는 것이니까!”
“오오, 용사님이다, 용사님!”
이런 만담을 좋아하는 선우이경이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고, 순식간에 서울 한복판에 있는 숙소가 마왕과 용사가 판치는 판타지 세계로 변모했다.
예찬은 같이 껴서 어울려 놓고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참 잘 노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 * *
이번에도 결론부터 빠르게 보고하자면, 강해솔에게서 웃음은 꽤 많이 뽑아냈다.
그게 성공적인 접대를 마쳤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지만.
“아, 진짜 못하네! 그럴 거면 컨트롤러 넘겨요!”
일 대 일 테트리스 토너먼트에서 진작 탈락한 강해솔이 껄껄 웃으며 심상록에게 훈수를 두고 있었다.
분명 너무 티 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강해솔에게 져 주기로 했던 것 같은데, 왜 일이 이렇게 흘러간 걸까.
역시 악의 제국 놀이는 너무 간 건가.
잠시 지난 과거를 반성하던 예찬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접대 대신 치열한 승부를 선택한 결과, 다들 게임에 몰입해서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당사자가 즐거우면 그게 최고인 거지.’
그렇게 강해솔의 생일 새벽은 훈훈하고 즐겁게 흘러갔다.
“다들 잘 자.”
“내일 아침은 미역국이니까 기대하라고~”
예찬은 장미 방으로 향하는 강해솔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해솔이 형, 못 버티겠으면 도망쳐.”
“뭐라는 거야. 해솔이 형, 우리 지옥까지 함께 가요.”
강해솔이 뒤도 돌아보지 못하게 철썩 달라붙은 채은성이 대답했다.
“나 울어도 돼?”
“생파 할 때 울었으면 좋았을 텐데…….”
범세혁이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리자 채은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해솔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 미치겠네. 방 언제 또 바꿔요, PD님?”
신 PD는 따스한 얼굴로 세 사람을 지켜볼 뿐이었다.
* * *
“자자, 다들 일어나세요! 벌써 10시라고요? 아직 해솔 씨의 생일은 끝나지 않았다고요!”
“……PD님, 저희 다섯 시에 잤는데요.”
“허리 업! 급하다, 급해!”
“…….”
굉장히 한국적인 신 PD의 ‘Hurry up’은 잠에 취한 사람을 깨우기 충분한 위력을 뽐냈다.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선우이경이 하품을 늘어지게 뱉었다.
“하암, 이층 침대 은근 불편하다.”
“형은 혼자 쓰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거예요.”
“아니야. 밤마다 너희들 소곤대는 소리에 이불을 얼마나 물어뜯은 줄 알아? 외로움이 더 무섭다.”
하여간 여러모로 과장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어, 일어났어요?”
거실로 나오자 이런 날까지 아침 러닝을 하고 왔는지 개운해 보이는 정의탁이 아는 체를 해 왔다.
예찬은 그새 장미방을 헤집고 있는 신 PD 쪽을 바라보며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일어날 수가 없어…….”
“자자, 여기 앉아요, 여기!”
신 PD가 강해솔과 채은성을 채근했다.
잠이 많은 범세혁은 어쨌는가 보니 아예 업고 있었다.
새벽녘에야 뿔뿔이 흩어져 잠을 청한 멤버들은 늦은 아침 신 PD의 호들갑에 끌려 나와 다시 TV 앞에 앉았다.
신 PD는 제가 깨운 멤버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더니 이렇게 모두를 모은 이유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밤을 새워서 해솔 씨 생일 영상을 완성했거든요. 첫 공개를 스트리밍으로 하면서 동시에 여러분 반응을 라이브로 중계하려고요.”
“어휴, 부지런하시네요…….”
앉아 있는 사이, 다시 수마가 몰려온 선우이경이 눈을 반쯤 감은 채로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긴 하다.
고작 몇 시간 만에 영상을 전부 완성해서 업로드 준비까지 마쳤다니.
졸린 눈을 비비느라 정신없는 멤버들을 나란히 소파에 앉힌 신 PD가 이내 설레는 얼굴로 ‘강해솔 생일 파티’ 상영회를 시작했다.
‘……설레는 얼굴?’
신 PD가 저렇게 좋아 죽겠는 얼굴을 하고 있다니, 불길하다.
순식간에 잠이 달아난 예찬은 화면에 집중했고, 화면 속에선 작업실 복도로 나온 강해솔의 모습이 비쳤다.
‘저게 언제지? 밤에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고 했을 땐가?’
그리고 강해솔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화분 뒤에 숨겨 둔 카메라 앞까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저기요, 여기 카메라 숨겨 놓은 거 다 티 나는데요.]“……!”
뭔가가 잘못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