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4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49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한 번 재미를 본 강해솔은 남은 시간을 아주 알차게 보냈다.
[좀 피곤한데 먼저 집에 가면 안 되나? 한두 명 정도는 집에 있어도 가구 옮기는 데 문제없잖아.] [네? 어어어, 그거는 좀…….] [왜?] [아니, 그, 어…… 아, 형! 저 아침에 고양이 찍었는데 보실래요?] […….] […….] [고양이 좋지.] [휴…….]다음 희생양인 정의탁이 너무 투명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윽! 절묘하게 말을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정의탁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렸다.
[귀엽네. 잘 봤다.] [네, 네에…… 다시 작업실 가는 거죠?] [어.]작업실에 간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한 강해솔은 곧바로 다음 목표를 찾아 떠났다.
[형, 저 지금 오시기로 한 기사님 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어요? 가구 배치 좀 바꿀 게 있어서요.] [으으으으으으응?!] [지금 택시 부르면 바로 오려나?] [……왜요?] [숙소에 놓고 온 게 있어서.] [……!]고삐 풀린 강해솔은 매니저와 멤버를 가리지 않고 달려든 뒤,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한껏 즐기고 떠났다.
멤버들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당시엔 다들 잘 넘겼다고 생각한 거 같지만.’
패잔병들이 거실에 하나둘 널브러지는 가운데, 드디어 예의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여러 게임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강해솔을 향한 멤버들의 뜨거운 응원이 이어졌다.
[강해솔! 강해솔! 강해솔!!] [얘들아, 자정 넘었으니까 조금만 조용히 말하자.] [강해소올. 강해소오올. 강해소오오오올……!] [푸핫, 그게 뭐야.]“…….”
반드시 이 치욕을 갚아 주리라 다짐하며 화면을 노려보던 예찬의 매서운 눈매는 영상이 이어질수록 점차 내려왔다.
‘해솔이 형 생일 파티니, 당사자가 즐거웠다면 된 거 같기도 하고…….’
정말로 좋아 죽겠다는 듯 멤버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강해솔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방구석 폐인 작곡가 강해솔이 떠올라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잘 컸다, 잘 컸어…… 이게 부모의 마음?’
[와, 진짜 재밌게 잘 놀았다.] [여러분, 주무시기 전에 한 분씩 인터뷰 좀 할게요. 해솔 씨는 제일 마지막에 들어오세요.] [네에―! 그럼 저 먼저!]냉큼 신 PD를 따라 들어간 선우이경의 인터뷰가 가장 먼저 이어졌다.
[오늘 잘 속인 거 같아요?] [네, 뭐. 그럭저럭? 흐흐, 사실 좀 위기가 있긴 했는데 제가 순발력을 발휘해서 잘 해결했습니다.] [위기요?] [네. 아, 휴게실에 카메라가 있었어야 했는데.]의기양양해하는 선우이경의 얼굴 아래로 ‘있었습니다.’라는 자막이 친절하게 따라붙었다.
“어흐흑…… 미치겠네…….”
화면 속 선우이경과 달리 현실의 선우이경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강해솔 외엔 누구 하나 그를 비웃을 수 없었다.
[갑자기 해솔이 형이 집에 가고 싶다고 하잖아요.]왜냐면 비슷한 인터뷰가 주욱 이어질 예정이었으니까.
[네, 네. 그래서요?] [막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딱 아침에 운동하면서 본 고양이가 생각나는 거예요!] [오오, 고양이!] [이 사진이거든요? 순간 포착인데 완전 잘 나왔죠? 아무튼 이거 보면서 해솔이 형이 다행히 까먹은 거 같더라고요. 와, 진짜 이걸 위해 내가 이 사진을 찍었나? 막 소름이 돋는 거죠.] [오오, 소름! 그럼 의탁 씨, 마지막으로 이클립틱들에게 소감 한 마디 남겨 주세요.] [휴, 복숭아 여러분. 귀여움이 세상을 구합니다.]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은 정의탁이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누가 내 입 좀 꿰매 줘요…….”
“정의탁, 저 정도면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거 같다.”
“저를 몇 번 죽이려는 거예요, 형…….”
그 후로도 비슷하게 부끄러운 인터뷰들이 이어졌다.
멤버들이 무용담처럼 강해솔과 있었던 일을 자랑하고, 상황을 다 아는 신 PD가 얄밉게 그 자랑을 부추기고, 그 영상을 지켜보는 당사자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예찬은 자신의 인터뷰 차례가 되자 아예 두 눈을 감았다.
[해솔이 형. 생일 축하하고, 아까 게임은 내가 일부러 져 준 건데 기분 좋았어? 형이 좋다면 나도 좋아.]좋긴 뭐가 좋냐, 이 멍청아.
눈을 감고 있음에도 으쓱대는 자신의 얼굴이 끔찍할 정도로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누군가 딱 열두 시간만 시간을 과거로 돌려준다면 지금보다 열 배는 착하게 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해솔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음, 우선 제 생일을 위해서 이렇게 준비를 해 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맙고 감동이었어요. 레굴루스가 된 이후로 매일매일 감사할 일만 생기는 것 같습니다.]지금까지 보여 준 장난스러움을 잠시 치우고 진지한 얼굴로 강해솔이 말했다.
“해솔이 형……!”
“해솔아……!”
여러모로 엉망진창인 생일이었으나, 마지막엔 훈훈하게 마무리되려는 모양이었다.
멤버들이 저마다 촉촉한 목소리로 강해솔을 부르던 순간, 화면 속 강해솔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근데 제 생일인데 이 정도면 제가 대접한 거 아닌가요? 너무 어설퍼서 속아 주는 것도 힘들었다고요. 게임도 휘겸이 빼곤 다들 너무 티 나게 지려고 하니까…… 뭐, 아무쪼록 내년엔 더 분발하길 바랄게요, 멤버 여러분.]“……!”
거실에 맴돌던 훈훈한 공기가 한순간에 증발했다.
예찬과 멤버들이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해솔을 돌아보자, 강해솔은 어깨를 으쓱였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라이브 채팅창에서 이클립틱들이 웃는 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예찬은 이를 갈았다.
이 굴욕, 기필코 갚고 말리라.
‘내년에 두고 보자, 강해솔!’
* * *
[오늘 라이브 진짜 재밌었다]평소에 눈치 빠른 편인 이경이나 예찬이 속아 넘어가면 왜 이렇게 재밌지??
└ 나도ㅋㅋㅋㅋㅋ 이경이 우는 게 젤 조아
└ 레굴루스의 지략왕 강해솔
└ 이따 생일 라이브 또 하겠지?ㅋㅋㅋ 벌써 기대된닼ㅋㅋㅋ
└ 근데 예찬이는 보면 은근 허술함
└└ 은근이 아니라 대놓고 허술함ㅋㅋ
└└└ ㅋㅋㅋㅋ 나도 사실 예찬이는 댕청라인으로 보고 있음
팬들의 반응을 찾아보던 예찬은 굴욕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강해솔……!’
이 굴욕을 앞으로 365일을 기다린 뒤에야 갚을 수 있다니.
‘아니, 진정하자.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호흡을 가다듬던 예찬의 눈에 댓글이 잔뜩 달린 게시물 제목이 보였다.
[오늘 자 하예찮 모먼트 모음 (스크롤 압박 주의)]‘강해솔……!’
* * *
강해솔의 우당탕탕 생일 파티 라이브 영상과 깜짝 카메라 영상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팬들의 기쁨이 되어 주는 사이,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멤버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해솔이 너, 진짜 형도 속이고…….”
차에 오른 강해솔을 보자마자 매니저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며 혀를 찼고, 강해솔은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형, 우리 그 이야기는 가슴속에 묻어 둬요. 또 눈물 날 거 같아.”
선우이경이 오늘 아침 끓인 미역국에 국간장이 아니라 자기 눈물로 간을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
“……휘겸아, 농담이야. 형이 미안해.”
물론 그 되지도 않는 농담을 믿은 것은 우휘겸 정도였지만.
평소와 달리 한참을 달린 차는 여느 때와 달리 멤버들을 낯선 장소에 내려 주었다.
“오, 애들 왔다!”
“하예찬, 완전 빠져 가지고. 감히 하늘 같은 선배님을 기다리게 만들어?”
“시우야, 우리가 호스트고 예찬이네는 게스트잖아.”
“아, 농담한 거지!”
“얘들아, 우리 리더가 인성에 좀 문제가 있어. 너희들이 좀 너그럽게 봐주라.”
“야!”
공기 좋은 시외에서 멤버들을 반긴 것은, 어느 순간부터 빼도 박도 못하게 절친 그룹으로 묶이고 있는 유피테르의 멤버들이었다.
“친하니까 장난 좀 친 거지! 그치?”
장난 좀 쳤다가 본전은커녕 밑천까지 탈탈 털리고 있는 유피테르의 리더이자 래퍼 황시우가 예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황시우와 힐끗 눈을 마주친 예찬은 쓱 황시우의 팔에서 어깨를 빼내곤 곧장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감히 선배님을 기다리게 하다니! 송구합니다! 전부 제 불찰입니다!”
“야! 네가 이러면 내가 뭐가 돼!”
“하늘 같은 선배님이시죠?”
“어후!”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돌려주자 황시우는 답답한지 가슴을 두들겼다.
그와 반대로 예찬은 아침부터 꽁하게 막혀 있던 무언가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난 놀리는 쪽이 적성에 맞아.’
예찬은 조용히 강해솔에게 맛본 굴욕들을 여기서 황시우에게 다 풀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지만 뭐 어떤가.
그런 두 사람을 잠시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던 유피테르 멤버들이 이내 레굴루스의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자자, 오늘은 선배 후배 같은 사소한 건 잊고 재밌게 놀아 보자고.”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고!”
“하늘 같은 황시우 선배님, 저 이제 고개를 들어도 될까요?”
“지금까지 숙이고 있었냐! 빨리 들어!”
“해솔이 오늘 생일이지? 우리 차에 선물 준비해 놨어. 오는 길에 아까 라이브 보고 급하게 산 거라 별건 아닌데 이따 꼭 가져가.”
“……네, 선배님.”
차 안에선 흥을 주체하지 못하던 강해솔은 또 낯가림 모드에 들어가 버렸다.
평소라면 생일인데 저렇게 쭈뼛거리는 모습을 안쓰럽다고 느꼈겠지만, 오늘만큼은 묘하게 짜릿했다.
‘좀 더 친한 척해 주시죠, 선배님들.’
“와, 공기 좋다!”
범세혁의 감탄에 예찬은 아직도 칭얼거리는 황시우를 무시하고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을 바라보았다.
유피테르의 예능 촬영에 초대를 받아 도착한 이곳은 시외의 한 스키장.
“예찬이 스키는 좀 타냐?”
그새 기세를 되찾은 황시우가 물었다.
예찬은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촬영은 시작 전이고, 멤버들과 유피테르 멤버들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예찬의 한쪽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하늘 같은 선배님보다는 잘할 거 같습니다.”
“……이 자식! 너 나랑 한판 붙어.”
예찬은 여전히 입술은 올린 채로 눈썹을 안타깝다는 듯 내렸다.
“감히 후배 나부랭이가 하늘 같은 선배님을 때려눕혀도 될는지요.”
“내가 언제 후배 나부랭이라고 했어!”
온 세상의 얄미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예찬의 얼굴에 황시우가 또 팔짝 뛰자, 앞서 걷던 유피테르의 메인 보컬 이가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시우야! 후배 나부랭이가 뭐니, 후배 나부랭이가!”
“아니,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어휴, 진짜 후배들 보기 창피하다, 창피해.”
“리더, 철 좀 드세요!”
“와, 진짜 이렇게 몰아가기 있나?!”
“아니에요, 선배님들. 다 제 불찰입니다!”
“하예찬 너……! 어휴! 말을 말아야지, 말을!”
황시우는 분명 자기 가슴을 두들기는데 풀리는 것은 예찬의 속이었다.
예찬은 흐뭇하게 웃으며 이번엔 먼저 황시우에게 어깨동무를 청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