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5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50화
“어어,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요.”
“네?”
황시우가 스키를 잘 타냐고 물어보기에 당연히 스키장 리프트에 올라타려던 예찬은 스태프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스태프가 가리키고 있는 눈썰매장 팻말을 확인했다.
“…….”
“옷 갈아입은 다음에 눈썰매장 앞에서 오프닝 찍겠습니다!”
“……스키는요.”
스키로 붙자며?
예찬의 물음에 황시우가 눈을 깜빡이다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나도 스키인 줄 알았어. 스키장에 간다길래 차에서 스키 영상도 찾아보면서 왔단 말이야.”
에라, 이 쓸모없는 양반 같으니.
오늘 유피테르와 함께 찍는 것은 N-net에서 기획한 스페셜 예능 마이 베스트 버디, 줄여서 MBB였다.
인기 아이돌들을 섭외해 그들이 친구와 함께 색다른 휴일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방송이었는데, 예찬의 기억으론 큰 히트를 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쫄딱 망하지도 않아 가늘고 길게 가는 프로그램이었다.
보통 호스트를 맡은 그룹이 연달아 세 번에서 다섯 번 정도 각기 다른 친구들을 섭외했다.
리스피릿 시절엔 친한 그룹도 없었고, N-net과 딱히 연결 고리가 있던 것도 아니라 그냥 누가 나오는지만 꾸준히 체크한 프로그램이었다.
‘박마루는 여기 나오고 싶으니까 다른 그룹이랑 절친 먹자는 헛소리를 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이야 N-net의 아들이라 불리고 있으니, 아마 조만간 게스트가 아니라 호스트로도 출연할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지금도 딱히 친구 없는데…… 뭐, 어쨌건 오늘이 그 첫 촬영이라는 거군.’
첫 방송에 등장하는 아이돌이 유피테르와 레굴루스라.
이 프로그램이 예찬의 기억처럼 오래갈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1화의 화제성은 이전보다 더 높을 것이 분명했다.
두툼한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자 먼저 옷을 갈아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문득 심상록의 표정이 밝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처음 츄마프에서 이가원이랑 마주쳤을 땐 그렇게 촉촉했는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데뷔도 하고, 이 판에서 자리를 잘 잡아서인지 마음이 편해 보였다.
생각해 보니 벌써 그때부터 1년이 흘렀다.
‘시간 참 빠르군.’
심상록을 대하는 유피테르 멤버들의 태도도 더없이 정겹고 가볍다.
문득 유피테르의 팬덤이 레굴루스에겐 살짝 유한 것에는 심상록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원래 올림포스는 회사 단위로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으니까. 연습생 때부터 후배 그룹이 되겠거니 점찍어 놓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비록 유피테르의 다다음 주자인 불카누스가 좀 못 나가는 탓에 팬들의 후배 그룹 내리사랑도 옛말처럼 되고 있지만.
아마 오늘 찍은 이 예능이 공개되면, 불카누스의 팬들이 회사 후배를 제치고 레굴루스를 처음으로 불렀다고 뒤집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좋은 기회를 걷어찰 바보는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해외 쪽은 유피테르가 한국 아이돌의 대표 격이다 보니, 열렬한 팬이 아니어도 k-pop에 흥미가 있으면 이 사람들 영상을 찾아보는 분위기란 말이지.’
국내에서도 N-net이 나름대로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니 첫 회는 특별히 더 홍보를 열심히 할 터였고 말이다.
다소 급하게 요청이 들어왔음에도 인지도를 높일 기회가 제 발로 굴러들어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고마운 선배님들과 멤버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 내용이 들렸다.
“그러면 이거 찍고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하루 쉬고 다음 날?”
“와…… 진짜 존경합니다, 선배님들.”
“의탁아, 너희도 투어 시작하면 이렇게 살게 될 거다. 얼마 안 남았어.”
“와, 투어……!”
유피테르의 비주얼 담당인 강연록은 나름대로 겁을 주려고 말한 것 같은데, 정의탁은 투어라는 말만으로도 기대감에 뺨을 붉혔다.
아직 콘서트는커녕 제대로 된 팬 미팅도 해 보지 않은 신인 아이돌에겐 꿈같은 단어 아니던가.
“하예찬, 눈썰매는 좀 타냐?”
옷을 갈아입으면서 다시 기가 살아난 황시우가 어느새 예찬의 옆에 다가와 등을 쿡 찔렀다.
예찬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눈썰매도 좀 타는 게 있어요?”
“당연하지. 너 지금 눈썰매 얕보냐? 오천만 눈썰매 클럽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싶은가 보지?”
“오천만은 또 어디서 나온 숫자예요…….”
“그런 게 있다. 애들은 알면 다쳐.”
‘알고 싶지도 않거든?’
상대가 유치하게 나오니 이쪽도 절로 유치해졌다.
‘내가 리셋한 시간을 다 더하면 나이가 몇인데…… 음?’
황시우를 흘겨보던 예찬은 문득 그의 차림새가 장소와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선배에 한해서는 말을 거르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가고 있는 예찬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옷이 그게 뭐예요?”
“뭐긴 뭐야, 코트지.”
예찬의 지적에 황시우가 코트 처음 보냐며 대답했다.
황시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아 보이기까지 했다.
앞을 여미지 않아 검은 코트 자락이 흰 눈밭 위에서 보기 좋게 펼쳐졌다.
물론 예찬은 의문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눈썰매 타는데 왜 코트?’
주변을 대충 둘러봐도 보통 예찬처럼 롱패딩을 입거나 못해도 패딩 조끼를 입었지, 저렇게 화려한 코트를 차려입은 건 황시우밖에 없었다.
직전의 화려한 회전으로 예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들도 자신을 향한 것을 확인한 황시우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난 얼어 죽어도 코트파거든.”
“시우야, 너 보일러 고치는 동안 추워 죽겠다고 경량 패딩 위에 롱패딩까지 입고 있었잖아.”
“주태현!”
“그것도 모자라서 내 패딩이 더 두꺼운 거 같다고 바꾸자고…… 웁!”
황시우가 주태현의 입을 틀어막고 무언가 속닥거리는 사이 유피테르의 메인 보컬인 이가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시우가 후배들 앞에서 무게 잡는 걸 좋아해서 그래요. 예찬 씨가 이해해요.”
“아, 넵.”
어쩌다 친해져 버린 황시우와 달리 이가원과는 앞으로도 어색할 사이로 남길 바라고 있기에 예찬은 일부러 군기가 바짝 든 신인을 연기했다.
“아직도 나 많이 불편해요?”
“아닙니다, 선배님!”
“으음…….”
“여러분! 오프닝 시작하겠습니다!”
타이밍 좋게 제작진 측에서 양 팀을 불러 모았기에 예찬은 냅다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오프닝 장소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튀는 행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었다.
“뭐야, 뭐야? 예찬이 왜 뛰어?”
“몰라! 일단 뛰어!”
“선착순이다!”
“왜? 뭔데? 뛰라고?”
“갑자기 선착순이라니 PD님 너무해요!”
예찬의 뒤로 오해의 늪에 빠진 레굴루스와 유피테르 멤버들이 따라붙었다.
MBB 메인 PD는 왜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아이돌들이 자신을 원망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눈앞에 펼쳐진 재미있는 장면을 최선을 다해 담기로 했다.
지금에 이 시점에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 두 팀이 가장 먼저 도착한 예찬의 뒤로 주르륵 줄지어 섰다.
이 거리를 뛰면서 그새 눈 더미를 굴렀는지 꼴이 말이 아닌 놈들도 보였다.
“헉, 헉…… 진짜 나이가 깡패네…….”
“PD님, 몇 명까지 통과예요?”
“어? 선착순으로 순서를 고르는 거 아니었어?”
저들끼리 주고받는 말에 PD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선착순이라니요?”
“네?”
“선착순 아니에요?”
그제야 아무 의미도 없는 달리기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들이 각자 허탈해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선착순 아니라는데?”
“와, 나 두 번 넘어졌는데…….”
“누가 선착순이라고 했어?!”
“…….”
예찬은 선착순이라고 한 사람 나오라며 큰소리로 버럭버럭 외치고 있는 강연록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선착순을 입에 담은 목소리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진실은 방송에서 밝혀 주겠지.’
어느 정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고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내 최고의 단짝! MBB의 1대 호스트를 맡은 ‘Yes, we are Jupiter!’, 유피테르입니다!”
“오늘 초대한 게스트는 누구인지 벌써 궁금한데요.”
“연록 씨, 소개 좀 해 주세요!”
“네! 오늘 찾아온 손님은 정말 정말 귀여운 친구들입니다! 레굴루스, 어서 오세요!”
연차가 쌓인 그룹답게 부드러운 진행으로 유피테르가 레굴루스를 소개했다.
예찬과 멤버들은 미리 짜 둔 대로 카메라 앞으로 걸어가 인사를 시작했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와아, 레굴루스!”
“멋있다!”
“잘생겼다!”
“귀엽다!”
선배들은 열렬한 환호로 그런 레굴루스를 반겨 주었다.
두 그룹은 서로 악수도 하고 포옹도 나누며 다소 왁자지껄하게 첫 장면을 연출해 냈다.
진행표를 슬며시 확인한 주태현이 진행을 이어 갔다.
“오늘 저희가 와 있는 곳은 보다시피 눈썰매장인데요. 우리 시우 씨가 또 눈썰매에 일가견이 있지 않습니까?”
“뭐, 그런 편이죠.”
“일가견이요?”
예찬이 정말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자, 황시우가 기다렸다는 듯 괜히 코트 자락을 뒤로 펼쳤다.
동시에 코트 안쪽에 붙어 있던 눈가루가 파르르 휘날렸다.
고조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뻘쭘해졌다.
“…….”
“크흠.”
‘황시우, 아까 뛰다가 넘어졌었군.’
“크흐흠! 제가 어릴 때부터 눈썰매는 좀 탔습니다.”
괜히 크게 헛기침을 한 황시우가 가슴을 쭉 펴며 뽐냈다.
평소라면 태클을 걸었을 이가원이 방송 중이라 그런지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받아 주었다.
“시우 씨 집 옆에 언덕이 있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눈썰매를 많이 타 봤다고 하네요.”
“저보다 빠른 사람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6학년 형도 상대가 안 됐죠.”
“그래서 지금부터 뭘 하면 될까요? 재미있게 눈썰매를 타면 되나요?”
물론 황시우의 잘난 척을 계속 받아 줄 생각은 없는지 이가원이 황시우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PD를 향해 물었다.
“물론 재미있게 눈썰매를 타는 게 가장 중요하죠. 저희 프로그램이 아이돌과 그 친구들이 신나게 노는 프로그램 아닙니까.”
“오!”
“힐링 프로그램이다, 힐링!”
지난 새벽까지 멤버의 생일 파티를 즐긴 데다가 아침엔 놀라운 반전극의 주인공으로 섭외되는 바람에 지친 레굴루스와, 줄줄이 잡혀 있는 해외 투어로 심신이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진 유피테르가 뛸 듯이 기뻐하는 가운데, 오직 예찬만이 시큰둥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예찬이 츄마프에 참여하면서 알고 있던 미래가 많이 바뀌었다.
실제로 이 MBB만 해도 첫 번째 게스트가 레굴루스로 바뀌었지 않은가.
그렇지만 많은 것이 변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근본 또한 아마 변하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자, 그러면 눈썰매장을 즐겁게 즐기기에 앞서, 가볍게 여러분의 운을 시험해 볼까요? 눈썰매들 입장!”
PD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스태프들이 다양한 형태의 눈썰매들을 가지고 나왔다.
“…….”
정정하겠다.
과연 저것을 눈썰매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어도 좋을지 의심되는 물건들도 있었다.
조금 전까지 기운이 넘치던 아이돌들의 입이 절로 다물리는 비주얼들을 보고 예찬은 떠올렸다.
MBB가 My Best Buddy가 아니라 My Buddy Burst라 공공연히 불리던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