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5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51화
My Buddy Burst가 무슨 뜻이냐고?
말 그대로다.
내 친구가 터졌다.
조금 더 살을 붙이자면, 내 친구와의 관계를 터트린다고 하면 좋을까?
절친과 손잡고 시작했다가 끝날 때쯤엔 친구도 아닌 사이가 되는 프로그램이라고 붙은 별명이었다.
뭐, 사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고, 정말로 이 프로그램으로 우정이 끝장난 경우는 거의 없긴 할 것이다.
……응, 거의.
예찬은 아이돌들 사이에 전설처럼 떠돌던 MBB 촬영 당시 A 그룹 리더와 B 그룹 막내 사이에 있던 혈전을 털어 내기 위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참고로 그 두 사람은 그전까지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단짝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가위바위보를 이긴 순서대로 눈썰매를 고르시게 됩니다. 보시면 ‘이게 썰매라고?’ 싶은 것도 있지만, 저희 제작진이 사전에 전부 테스트해 봤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성능 차는 있지만 전부 눈 위에서 잘 미끄러집니다.”
MBB의 메인 PD가 눈을 빛내며 조곤조곤 설명을 마쳤다.
미심쩍은 얼굴로 아래 판자 비슷한 것이 달린 접이식 의자를 바라보던 청년들의 얼굴에 ‘그러면 괜찮을지도.’ 하는 안도감이 깃들었다.
“저희 프로그램 이름이 마이 베스트 버디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저 여러분이 이곳에서 우정의 깊이를 더해 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약간의 즐거움을 드릴 뿐이랍니다. 믿어 주세요.”
MBB의 메인 PD는 이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무척이나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얼굴로 ‘여러분 우정 파이팅!’을 외치는 PD의 말에 모두의 경계심이 옅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물론 예찬만큼은 오히려 경계를 한층 더 굳건히 했지만.
‘차라리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을 믿지.’
저 순둥순둥한 인상의 PD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기획들을 미래에서 엿보고 온 예찬으로선 코웃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MBB의 메인 PD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 위해선 긴말이 필요치 않았다.
머지않은 시기, 신 PD와 더불어 N-net의 양 날개로 불리게 될 사람이라는 것 정도면 충분하겠지.
‘신 PD는 어쩌다 보니 지금은 사람 됐지만…….’
예찬의 시선이 구석에서 레굴루스의 비하인드 영상을 찍고 있는 신 PD를 향했다.
사람이 된 신 PD는 각양각색의 눈썰매들을 보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눈앞에 둔 아이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보더라도, 저건 지금부터 저 썰매 같지도 않은 썰매들을 타고 벌어질 일이 기대돼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사람, 덜됐나?’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신 PD의 안에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악마와 마주친 예찬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출연진들의 운명을 가를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예찬의 몸은 가위바위보 구호에 맞춰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일제히 뻗은 열세 개의 손을 확인한 손의 주인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오.”
“와, 이게 말이 돼? 이 정도면 막 백만분의 일의 확률 아니야?”
“정확히 말하자면 오십삼만 천사백사십 일분의 일이지.”
“태현 선배……?”
“……아하, 이거 조작이네! 뭐야, 깜짝 카메라야?”
오십하고도 몇만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꼴찌가 된 것은 유피테르의 비주얼 담당인 강연록이었다.
이렇게 여럿이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딱 한 명만 지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정말이지 대단한 불운이었다.
“나만 빼고 짠 거지? 언제 짰어?”
“저기요, 저리 좀 비켜 줄래요? 카메라 가려요.”
이가원이 대꾸하는 것도 귀찮다는 듯 강연록을 옆으로 밀어냈다.
유피테르 멤버들을 노려본 강연록이 이번엔 레굴루스를 향해 외쳤다.
“내가 우리 애들은 못 믿어도 레굴루스 너희는 믿었는데! 애들한테 이런 나쁜 거 가르친 게 누구야!”
“그러니까 안 짰다고.”
“남자면 주먹이지. 누가 가위 내래?”
이가원과 황시우의 핀잔에도 강연록은 방송 보면 다 나오니 지금 순순히 자백하라며 한참이나 현실을 부정했다.
“드디어 조용해졌네……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황시우가 갑작스러운 기습을 시도했으나 다들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손을 내밀었다.
“칫.”
‘우리나라 사람이 안 내면 진 거에 반응 안 하긴 쉽지 않지.’
그래도 이번엔 첫판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 보자. 일단 가위 있고, 바위 있고…… 보도 있네.”
“이렇게 여럿이서 하면 계속 비길 것 같은데, 나눠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심상록의 말에 제일 끄트머리로 밀려났던 강연록이 푸다닥 소리가 나게 달려왔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라고! 어떻게 첫판에 나만 질 수 있어? 이거 짠 거잖아, 그렇지?”
그리고 유피테르의 멤버들은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강연록을 익숙하다는 듯 깔끔하게 무시했다.
“상록이 말이 맞아. 이거 까딱하면 가위바위보 하다가 방송 끝난다.”
“나눠서 하면 어떻게 해? 셋씩 나눈 다음에 진 사람끼리 따로 하나?”
선배들이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 주는데 걷어차는 것은 후배의 도리가 아니기에, 예찬과 레굴루스 멤버들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면 되겠네요. 그러면 지금 서 있는 순서대로 셋씩 나눌까요?”
“오케이. 하예찬 딱 대라.”
황시우가 건방진 표정과 제스처로 예찬을 도발하자 유피테르 쪽에서 먼저 반응이 나왔다.
“요즘 생각하는 건데 시우가 예찬 씨를 너무 좋아하는 거 같지 않아?”
“저 정도면 사랑이지.”
“아, 부담스러운데…….”
유피테르 멤버들이 던진 농담에 예찬이 한술 더 떠 눈을 내리깔고 곤란한 듯 중얼거렸다.
“뭐? 내가 좋아해 주면 고마워야지, 뭐가 부담스러워!”
“아, 잠깐, 아파요!”
자기 멤버들을 향해 이를 갈던 황시우가 바로 목표를 바꿔 예찬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하하, 여러분의 화기애애한 모습, 정말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 부서질 모습이 더 기대된다는 건가?’
정말 무시무시한 PD였다.
사람이 많다 보니 잠깐만 정신을 놔도 주제가 멀리 튀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팀을 나눠 가위바위보를 재개한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1위부터 13위까지가 나뉘었다.
‘4위라. 무난하군.’
“그러면 새벽 씨부터 눈썰매를 고르실게요.”
순위를 정리해 둔 종이를 확인하며 PD가 말했고, 배새벽이 보무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새벽이 얘는 어떻게 가위바위보까지 잘하지?”
“내가 12등이라니…….”
남은 사람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배새벽이 어떤 눈썰매를 고를지 구경했다.
사실 창의적인 눈썰매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절반 이상은 딱 봐도 기본은 하게 생겼기에 예찬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게 제일 무난한가? 튜브 형태가 더 튼튼해 보이긴 한데, 저건 안 타 봐서…….’
그렇지만 예찬과 달리 배새벽은 처음부터 정해 둔 눈썰매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전 이거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나간 배새벽이 눈썰매를 집어 들고 PD를 돌아보았다.
“……응?”
“……엥?”
“……어?”
그리고 그 눈썰매의 정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절로 눈을 의심했다.
‘진짜로?’
예찬 또한 이번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배새벽의 손에 잡혀 유유히 흔들리는 것은 다름 아닌 비료 포대가 아닌가.
‘다른 좋은 것들이 많은 데 왜 저걸……? 아니, 그, 눈썰매로서의 역사는 다른 것들보다 훨씬 깊다만…….’
그때 예찬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던 황시우가 누구보다 큰 소리로 탄식을 내뱉었다.
“아, 내가 저거 하려고 했는데!”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황시우는 정말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하고 배새벽이 보란 듯이 흔들고 있는 비료 포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다음은 시우 씨, 골라 주세요.”
자신만 모르는 어떤 비밀이 저 비료 포대에 숨겨져 있는 것인지 예찬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함과 동시에, 가위바위보 전체 2위를 기록한 황시우가 앞으로 나갔다.
황시우는 잘 걸어 나가다 말고 자리로 돌아오는 배새벽에게 질척거렸다.
“하, 나 비료 포대 진짜 잘 타는데…… 새벽아, 이따 한 번만 빌려주면 안 돼?”
“안 돼요. 알렉산더가 싫대요.”
‘알렉산더가 누군데.’
설마 비료 포대?
그러나 황당해하는 예찬과 달리, 황시우는 비료 포대의 이름이 알렉산더라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하, 내가 잘할게. 알렉산더한테 잘 좀 말해 줘.”
“말은 전해 줄게요.”
‘뭔데.’
저 둘의 정신세계를 따라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알렉산더에게 찝쩍거리던 황시우는 배새벽과 마찬가지로 멀쩡한 눈썰매들을 거르고 나무로 만든 썰매를 선택했다.
썰매는 제법 공을 들였는지 만듦새가 꽤 반듯했으나, 눈보다는 빙판 위를 질주해야 할 것 같은 모양이었다.
‘생긴 것과 달리 아날로그적인 것을 굉장히 선호하는 성격인가보군.’
“다음은 휘겸 씨.”
“네.”
생각해 둔 눈썰매들은 하나도 선택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벌써 3위라니.
앞의 둘이 함정 카드를 선택해 준 덕분에 예상보다 더 좋은 썰매를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 이걸로 하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우휘겸도 폭탄을 가져가는 거 아닐지 기대했지만, 우휘겸은 무난해 보이는 튜브형 썰매를 선택했다.
“네, 그럼 다음은 예찬 씨.”
“예찬아 저거 골라, 저거.”
“예찬 씨, 제 생각은 그거 말고 그 옆에가…….”
“예찬아, 형이 골라 줄까?”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보였는지, 아니면 예찬이 만만한 건지, 지금까지 잘 참던 놈들이 하나둘 훈수를 두려 했다.
단호하게 손바닥을 들어 다가오려는 놈들을 멈춰 세운 예찬은 누가 더 말을 붙이기도 전에 눈썰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 이걸로.”
예찬이 선택한 것은 나란히 놓여 있는 가장 무난한 디자인의 플라스틱 눈썰매 세 대 중, 크기가 제일 크고 색깔이 무난한 파란색인 눈썰매였다.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아주 진한 꽃분홍색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귀여운 병아리색이었으나 크기가 KTX를 타고 가면서 봐도 아동용이었다.
“예찬 씨는 2인용 눈썰매를 고르셨군요!”
“2인용이요?”
의기양양하게 전리품을 들고 돌아오려던 예찬의 걸음이 멈췄다.
예찬은 제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눈썰매를 빠르게 살폈다.
‘자세히 보니까 눈썰매 중간에 살짝 플라스틱이 튀어나와 있잖아?’
설마 이걸로 좌석을 구분하는 건가?
“2인용 눈썰매인데 혼자 타면 섭섭하죠!”
당황한 예찬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MBB 메인 PD가 극적인 어조로 외쳤다.
“그렇지만 오늘의 게임은 개인전이니 다른 사람이 함께 탈 수는 없답니다.”
예찬이 빠르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순순히 혼자 타라고 할 뉘앙스는 절대로 아니었다.
‘스태프와 같이 타라고 하려나? 엄청 무거운 스태프를 태운다든지……? 음? 그러면 오히려 가속도를 받아서 더 빠른가?’
“자, 예찬 씨의 버디는 바로 이 친구입니다!”
PD의 외침에 저 멀리서 하얗고 거대한 무언가가 눈보라를 일으키며 빠르게 다가왔다.
거대한 그림자가 기괴하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My Best Buddy가 아니라 MY Best Horror 바꾸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체가 어느 정도 다가오고 나서야 예찬은 그것이 수레 같은 것에 태운 무언가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었고, 더 다가온 후엔 그것이 지금까지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커다랗고 새하얀 테디베어임을 발견했다.
테디베어가 달려오는 사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PD가 거대한 포대기를 낑낑대며 안고 돌아오며 명랑하게 말했다.
“예찬 씨, 버디를 소중히 여겨 주세요!”
“……예?”
‘아니, 설마, 그걸로, 얘를, 나한테?’
PD가 원하는 그림이 딱 이런 얼빠진 표정임을 알지만, 도무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