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5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52화
이미 곰을 업은 자신의 모습이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실실 웃으며 포대기를 내려놓은 MBB PD가 그런 예찬의 표정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혹시 업는 건 좀 싫으신가요? 그러면 안고 타도 되는데.”
예찬은 PD와 곰 인형, 그리고 눈썰매를 한 번씩 순서대로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더 거대하게 느껴지는 흰 곰이 썰매의 앞자리를 차지한다면, 그 뒤에 앉은 예찬은 앞을 보기는커녕, 저 덩어리에 얼굴이 파묻혀 숨도 쉬기 힘들 것이다.
“……아니요, 업겠습니다.”
기운 없는 대답에 PD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체념한 예찬이 주섬주섬 포대기를 주워 들자, 예찬의 버디가 탄 수레를 끌고 온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다음은 5위…….”
그 후로도 한 사람씩 순서대로 눈썰매를 골라 나갔다.
“아, 이거 누가 봐도 2인승인데…….”
몇 남지 않은 썰매들을 앞에 두고 열 번째 순서로 나선 유피테르의 메인 댄서 주태현이 고민에 빠졌다.
남은 썰매 중 제일 그럴듯한 썰매는 판자 두 개를 나란히 엮어 둔 것이었는데, 주태현의 말대로 누가 봐도 둘이 사이좋게 타라고 만들어 둔 모양새였다.
“으으으으음…….”
주태현은 앓는 소리를 내며 저보다 더 큰 곰을 업고 있는 예찬과 눈앞의 판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장 끝에서 해탈한 얼굴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꼴찌 강연록이 불퉁한 소리를 냈다.
“아, 뭘 이렇게 시간을 끌어?”
“응, 꼴등은 나설 때가 아닙니다.”
주태현이 강연록 쪽을 보지도 않고 성의 없이 대꾸하자 강연록이 괘씸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허? 삐빅, 시간 초과입니다. 지금부터 10초 내로 선택하지 않으면 랜덤으로 선택됩니다. 10, 9, 8…….”
빠르게 숫자가 줄어들자 주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초조해졌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주태현의 반응에 유피테르 멤버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7! 6! 5!”
그리고 꼭 짠 것처럼 주태현을 제외한 유피테르 멤버들이 한목소리로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예찬은 내심 감탄했다.
‘이 팀은 정말 쉴 새 없이 놀림당하는 사람이 바뀌는군.’
주태현이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진짜 애들 앞에서 좋은 거 가르친다! 너희들이 아무리 숫자를 세 봤자 의미 없거든?”
“4! 3! 2!”
“저 이거요!”
의미 없다며 강한 척한 것치곤 굉장히 잽싼 선택이었다.
주태현이 판자때기를 품에 안기 무섭게 저 멀리서 낯설지 않은 수레가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예찬이 때랑 뭔가 실루엣이 다르지 않아?”
“네, 태현 씨가 고른 썰매도 2인승이라서요. 저기서 태현 씨의 버디가 오고 있네요.”
아까부터 얼굴에 피어난 웃음꽃이 질 줄 모르고 있는 MBB PD가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수레를 끌고 온 스태프들은 좀 전과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그새 요령이 붙었는지 완벽하게 주태현 앞에 수레를 주차하는 데 성공했다.
“진짜 예찬이 거랑 다르네?”
눈보라를 일으키며 찾아온 이번 버디는 빨간 리본을 맨 펭귄이었다.
“태현 씨 거는 옆으로 나란히 앉는 거라…… 네, 네. 그렇게 묶으시면 됩니다. 자, 다음은 해솔 씨!”
주태현이 버디와 한 몸이 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PD가 다음 차례인 강해솔을 불렀다.
강해솔이 힘없이 비적비적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럴 만도 하지.’
이제 멀쩡한 것들은 다 주인을 찾아가고 개성적인 썰매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남은 썰매 셋을 바라보던 강해솔이 기운 없이 가운데 있던 장난감처럼 귀엽고 아기자기한 썰매를 가리켰다.
“저는 이걸로…….”
무척이나 작아서 과연 썰매에 앉을 수 있을지 의아한 물건이었으나, 남은 둘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해솔 씨의 버디, 나와 주세요!”
“네?”
예상치 못한 말에 강해솔이 당황했다.
예찬과 다른 사람들도 달려오는 수레와 강해솔의 썰매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방금 막 퇴장했던 스태프들이 다시 수레에 무언가를 싣고 달려오고 있었다.
“내 거나 예찬이 거보다 훨씬 작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다가오는 형체를 바라보던 주태현이 말했다.
예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부터 남다른 풍채를 뽐내던 등 뒤의 곰과 달리, 이번에 다가오는 그림자는 확연히 작았다.
“루돌프 아니야? 이거 산타 썰매 같이 생겼잖아.”
선우이경이 그럴듯한 추측을 꺼냈다.
“오, 듣고 보니.”
“북극곰이나 펭귄보단 훨씬 낫네. 썰매도 끌어 주고.”
황시우의 말에 예찬이 업고 있는 곰을 돌아보았다.
“제 거 북극곰이에요?”
“아니야? 하얗잖아.”
“……!”
깨달음을 얻은 예찬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드라마 주인공처럼 놀랐고, 황시우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어, 해솔이 거 다 왔다…… 응?”
그리고 수레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다들 예찬의 버디인 거대 테디베어를 보았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느꼈다.
이가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거, 산타죠?”
수레 위에 앉아 있는 것은 모두가 예상했던 루돌프가 아니라, 그 루돌프와 영혼의 단짝인 산타클로스 인형이었다.
그것도 조금 사이즈가 작은.
“그리고 해솔 씨는 이거 입으시면 됩니다.”
MBB 메인 PD는 말을 잃은 아이돌들을 뒤로한 채 산타클로스의 인형이 메고 있는 자루에서 꺼낸 옷을 건넸다.
갈색 부드러워 보이는 털이 달린 그것은, 예찬의 예상이 맞다면 아마…….
‘차마 내 입으로 말 못 하겠군.’
마찬가지로 의상의 정체를 눈치챈 강해솔이 탄식했다.
강해솔은 떨리는 눈을 감추지 않고 사람 좋아 보이는 PD를 바라보았다.
“……제가 루돌프인가요?”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그사이, 수레를 끌고 온 스태프들이 산타클로스 인형을 강해솔의 눈썰매에 잘 앉혔다.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해솔이 다시금 탄식했다.
“……제가, 끄는 거군요.”
“바로 그거죠.”
‘해솔이 형…….’
이걸 더 이상 눈썰매 경주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예찬은 곰을 업은 채 강해솔, 아니, 강돌프에게 다가가 위로하듯 어깨를 두들겼다.
뭐, 루돌프는 처음도 아니고 괜찮지 않은가.
어쨌거나 남은 눈썰매는 두 개.
강해솔은 제 썰매를 차지한 산타클로스 대신 수레를 타고 옷을 갈아입으러 떠났고, 가위바위보 12등인 정의탁과 13등인 강연록이 차례대로 썰매를 골랐다.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정의탁의 것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위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가방처럼 등에 메고 뒤집힌 거북이 모습으로 눈 언덕을 내려가면 된다는 소리에 정의탁이 나라를 잃은 왕의 얼굴을 했다.
강연록의 것은 처음 모두를 놀라게 했던 철제 의자가 달린 썰매였는데, 정의탁의 거북이 썰매가 충격이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멀쩡하게 느껴졌다.
옷을 갈아입은 강해솔이 돌아오고, 드디어 모두 제각기 자신의 썰매를 끌고 출발선으로 향했다.
무빙워크에 올라타자 다들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는지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와, 세상 좋아졌네. 나 어렸을 때는 걸어서 올라가야 했는데.”
“그거는 썰매장마다 다른 게 아닐까요? 저 재작년에 갔던 곳도 없었거든요.”
“재작년? ……의탁이 취미가 눈썰매야?”
“조카들 데리고 간 거거든요!”
예찬은 의외로 덤덤해 보이는 강해솔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때?”
“뭐가.”
“에이, 알면서.”
느물거리는 예찬의 뺨을 주욱 늘린 강해솔이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연말 시상식 때 입었던 것보다 좀 거칠어.”
“뭐가?”
“털이.”
강해솔이 이끄는 대로 강돌프의 배털을 만져 보자 정말로 보기와 달리 질감이 까슬까슬했다.
예찬은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가엾게도. 이렇게 털이 볼품없어지다니…….”
그때 뒤에서 불쑥 손이 뻗어 나와 예찬이 만지작거리는 배털을 쓰다듬었다.
잠깐 당황했던 강해솔은 손의 주인이 범세혁인 것을 확인하고 조금 안도했다.
범세혁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진짜네. 왜 이렇게 까칠해요?”
“산타가 밥을 잘 안 주나 봐.”
예찬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자 범세혁이 이번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영양실조?”
“풉!”
평소처럼 헛소리로 가득한 대화를 이어 가던 세 사람이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영양실조…… 큽…….”
그곳엔 입을 틀어막은 이가원이 어깨까지 들썩여 가며 웃고 있었다.
“…….”
“아, 미안해요. 계속 해요.”
세 사람의 시선을 느낀 이가원은 올라간 광대를 양손으로 내리며 사과했다.
조용히 고개를 원래 위치로 돌린 강해솔이 팔꿈치로 예찬과 범세혁의 옆구리를 찔렀다.
“……너희 때문에 이게 뭐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엔 부끄러움이 한가득 묻어났다.
예찬이 잠시 뭐라고 달래 줄지 고민하는 사이 입가에 손을 댄 범세혁이 먼저 속삭였다.
“……영양실조라기엔 힘이 넘치는데?”
아직 계속하는 거냐.
강해솔의 팔꿈치가 다시금 범세혁의 옆구리를 노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 * *
눈썰매장의 출발 지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촬영 준비가 어느 정도 끝이 나 있었다.
‘장관이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선 모습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마이 베이비, 걱정하지 마. 나만 믿으라고.”
“으엑.”
이미 옆구리에 단 버디와 뜨겁고 끈적한 사이가 된 주태현이 펭귄을 향해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어이, 예찬이.”
끔찍하다는 듯 자기 팀 메인 댄서를 바라보던 황시우가 예찬을 불렀다.
“왜요?”
“너는 너희 버디한테 할 말 없어?”
황시우는 턱짓으로 예찬의 등에 달린 거대한 곰을 가리켰다.
예찬 또한 잠시 자신의 파트너를 바라본 뒤, 고개를 까딱거렸다.
“저흰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콘셉트여서요.”
“무슨 콘셉트야, 그건.”
황시우가 이해하기엔 좀 고차원적인 콘셉트긴 하지.
마침 준비가 끝났는지 MBB 메인 PD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첫 번째 눈썰매 시합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첫 번째?’
[저 앞에 있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서를 기억하시면서 제가 쫓아갈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준비!]예찬이 의아함을 표현하기도 전에 PD의 설명이 끝났다.
‘일단 지금 경기에 충실하자.’
가위바위보 순위가 4위였으니, 적어도 이 순위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출발!]PD의 외침과 동시에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렸다.
열세 대의 눈썰매를 표방하는 무언가와 그 썰매의 주인들이 힘차게 출발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호기롭게 4위를 목표로 출발한 예찬은 출발점을 제대로 통과하기도 전에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
‘왜?’
“예찬아아아아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예찬의 앞으로 멤버들이 하나둘 예찬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멀어져 갔다.
예찬은 잠시 생각했다.
이거 깜짝 카메라 아닌가 하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