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5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56화
최근 예찬의 매일매일은 새롭고 바빴다.
그래서 귀찮은 사람이라든지, 피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다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찬 씨는 좋아하는 장르가 있어요? 츄마프 때나 데뷔하고 낸 앨범들 보면 딱히 가리는 건 없을 거 같은데.”
안전띠를 맬 때까지 입 한 번 열지 않고 얌전하게 앉아 있던 이가원은,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넙죽 본색을 드러냈다.
“김수정 작곡가님이 이번에 낸 곡은 들어 봤어요? 네, 그 츄마프 때 ‘Raindrop’이랑 ‘도미노’ 작곡하셨던.”
“아, 들어 봤습니다. OPE 선배님들 타이틀곡 말씀하시는 거죠?”
“역시. 들어 봤을 줄 알았어요. 그 곡 메인 보컬 파트가…….”
예찬이 까마득한 후배다 보니 양옆에 선배를 끼고 가야 하는 가장 불편한 가운데 자리를 선점했는데, 마구 후회가 밀려들고 있었다.
‘창밖 좀 봐 보라고 분위기를 환기할 수도 없고…….’
사실 창가에 앉았다 한들 그런 말로 이가원의 집중을 흐트러트릴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단순한 황시우는 작곡 얘기를 하다가도 다른 길로 손쉽게 유인할 수 있었는데, 이가원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뚝심 있게 밀고 가고 있으니까.
“츄마프 때는 레슨 받아 본 적 없다고 했었죠? 요샌 어때요? 회사에서 레슨 받는 거 있어요? 선생님은 어떤 분이에요?”
‘우휘겸이랑 자리 바꾸고 싶다.’
예찬은 날질문에 질문을 쏟아 내는 이가원에게 대충 대답하며, 슬쩍 운전석과 그 옆 보조석을 훔쳐보았다.
“해외에 살았으면 영어 잘하겠네? 그거 되게 큰 장점인데! 나중에 레굴루스도 투어 돌게 되면 휘겸이 네가 통역해 줘도 되겠다.”
“……저 말고도 잘하는 멤버들이 많아서요.”
“그래? 역시 요즘 애들은 다르네! 나는 진짜 공부하다가 울 뻔했잖아.”
낯가림이 심한 우휘겸이 어떨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주태현이 흥미로운 주제로 잘 이끌어 주고 있었다.
생각을 오래 하고 말하다 보니 종종 끊기는 우휘겸의 화법에도 전혀 불편한 내색을 보이질 않았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예찬 씨, 우리 회사에서 낸 겨울 앨범도 들어 봤어요? 각 팀 메보만 모아서 낸 트랙 있는데.”
“들어 봤습니다.”
“역시.”
‘아니, 아까부터 왜 자꾸 역시래.’
이가원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흐뭇한 표정이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같이 뒷자리에 앉은 강연록이라도 좀 나서서 이 불편한 압박 면접을 좀 끊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차에 타자마자 멀미가 심하다며 잠에 빠진 지 오래였다.
예찬은 차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를 의식해 눈을 매섭게 뜨지 않도록 조심하며 강연록을 살폈다.
‘엇, 침 흘렸다.’
예찬은 황급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강연록의 입가에 흥건하게 흐른 침을 훔쳐 주었다.
“그래서 한 옥타브를…… 연록이 침 흘렸어요?”
“아, 예.”
“고마워요, 예찬 씨. 손수건은 저 주세요.”
“넵.”
일단 흐르길래 닦긴 했는데, 우리 멤버도 아니라 남의 멤버의 침이 묻은 물건을 주머니에 넣긴 찜찜했던 예찬이 넙죽 손수건을 내밀었다.
익숙하다는 듯 어디선가 비닐봉지를 꺼낸 이가원은 그대로 손수건을 봉지 안에 담고 입구를 묶었다.
“세탁해서 돌려줄게요. 세탁은 연록이가 할 거니까 부담 갖진 말고.”
“넵.”
본능적으로 베푼 친절 덕분에 운전석의 주태현이 아는 체를 해 왔다.
“연록이 또 침 흘리고 있어? 못 살겠네, 정말! 휘겸아, 글로브 박스에 휴지 있는지 좀 봐 주라.”
“괜찮아. 예찬 씨가 닦아 줬어.”
“예찬 씨가? 손으로?”
“설마. 너도 아니고.”
이가원의 말에 글로브 박스로 가져갔던 손을 되돌리던 우휘겸의 눈이 커졌다.
“……태현 선배님, 손으로 침을 닦아 주신 적 있으신가요?”
“생방이라 너무 급해 가지고. 선배님들 의리 어때? 으리으리하지?”
‘생방송 중에 어쩌다 침을……?’
의아함과 별개로 앞자리와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예찬의 얼굴에 화색이 깃들었다.
너무 투명한 반응이었는지 이가원이 피식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때 첫 목적지인 휴게소를 발견한 주태현이 휘파람을 불었다.
“오, 휴게소 보인다! 다들 내릴 준비해!”
“연록 선배님도 깨울까요?”
예찬의 물음에 카메라 렌즈를 보며 머리칼을 정돈하던 이가원이 대답했다.
“걔는 놔둬도 돼요. 주차장 들어가면 어떻게 아는 건지 알아서 깨더라고요.”
‘그건 참 부러운데.’
예찬이 차가 멈추든 출발하든 전혀 알지 못하고 잠에 취해 있는 레굴루스의 두 잠꾸러기를 떠올리는 사이, 차가 휴게실 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출발 전 자신만만했던 것이 허세는 아니었다는 듯, 주태현의 운전 솜씨는 확실히 뛰어났다.
“어, 저거 아까 본 차 같은데?”
정말로 언제 잠을 청했냐는 듯 눈을 번쩍 뜬 강연록이 한쪽에 주차된 차를 보며 외쳤다.
예찬도 몸을 앞으로 내밀어 창밖을 살폈다.
“SUV가 시우네랬나요?”
“내가 말했잖아. 시우 운전 진짜 못한다니까. 세단은 어디 갔어? 벌써 갔어?”
“일단 내려서 보죠.”
앞서 떠났던 차의 뒤를 잡았다는 흥분감에 휩싸인 예찬은 안전띠를 꽉 잡았다.
잠시 눌러두었던 승리욕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예찬 일행이 탄 경차를 발견한 제작진이 밖에서 수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3번 팀 여러분!”
어떻게 앞질러 온 것인지 MBB의 메인 PD가 차에서 내린 다섯 아이돌을 반겼다.
“음식 냄새 미쳤다.”
“PD님, 우리 뭐 먹나요!”
‘휴게소=음식’이라고 단정 지은 주태현과 강연록이 발랄하게 손을 들고 외쳤다.
확실히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라면 향기가 코끝에 진하게 맴돌았다.
“자, 우선 손을 내밀어 주시죠.”
자신을 향해 내민 손바닥 다섯 개를 확인한 PD는, 손바닥 위로 귀여운 동물형 파우치 지갑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이번 게임은 버디와 이심전심 게임입니다!”
‘이심전심?’
“저기 편의점 보이시죠?”
PD가 친절하게 몸을 틀어 저 멀리 보이는 편의점을 가리켰다.
“여러분이 받은 지갑 안에는.”
“만 원이 들어 있어요!”
그새를 못 참고 지갑을 열어 본 강연록이 대답했다.
PD는 말허리를 끊겼음에도 인자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록 씨 말대로 만 원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한 분씩 차례차례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사 오실 건데요. 그러면 저희 자취 경력이 무려 15년에 달하는 오디오 감독님이 아주 맛있게 라면을 끓여드리겠습니다!”
PD의 발언에 타이밍을 맞춰 오디오 감독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 그래서 라면 냄새가 이렇게 진했나.’
“와! 그럼 저는……!”
“단, 여러분은 어떤 라면을 사 올지 미리 상의할 수 없습니다!”
빠르게 라면 이름을 언급하려는 강연록의 입을 막은 PD가 선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왜 이 게임이 이심전심인지 느낌이 오시죠?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사 온 라면이 전부 일치해야 라면을 맛있게 드신 후, 이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실 수 있습니다!”
PD는 만약 라면이 하나라도 일치하지 않을 경우엔 스태프들이 맛있게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그럼 가장 왼쪽에 있는 휘겸 씨부터 출발해 주세요!”
“어, 네…….”
끝에 서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던 우휘겸은 처음엔 어색하게 걸음을 옮기다, 이내 이 게임이 나름대로 속도전임을 깨닫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 빠르다!”
“다리 길다!”
이제 슬슬 익숙해지는 주태현과 강연록의 리액션이 이어졌다.
‘유피테르도 이놈들이 있으니 오디오가 비는 법이 없겠군.’
“그런데 PD님, 만 원을 다 쓸 때까지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가원 씨, 예리한 질문이세요!”
잠시 지갑을 만지작거리던 이가원이 PD에게 묻자, 편의점 쪽을 바라보고 있던 PD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만 원까진 저희가 드렸지만, 그 이상은 그냥 못 드리죠. 궁금하시다면 만 원을 전부 쓰고 다시 물어봐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PD는 남아 있는 네 사람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참고로 1번 팀은 한 번에 성공했고, 2번 팀은 만 원을 다 쓰고 재도전을 위해 힘내고 있답니다.”
‘평생 모르는 게 낫겠군.’
저 의미심장한 표정이라니.
그러나 강연록은 PD의 미소 뒤에 가려진 음산함이 느껴지지 않는지 태평하게 다시 손을 들어 질문했다.
“PD님, 1번 팀은 누구고 2번 팀은 누구인가요?”
“아, 제가 따로 말씀을 안 드렸나요? 여러분이 눈썰매장에서 출발한 순서대로 팀 번호를 매겼거든요. 1번 팀이 새벽 씨, 이경 씨, 은성 씨, 의탁 씨고요. 2번 팀이 시우 씨, 해솔 씨, 상록 씨, 세혁 씨예요.”
PD가 짧은 설명을 마칠 무렵엔 벌써 우휘겸이 다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우휘겸의 손에는 종이봉투가 하나 달랑거리고 있었는데, 어떤 라면을 사 왔는지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 같았다.
“다음 예찬 씨! 출발해 주세요!”
“넵.”
PD의 호명에 예찬은 우휘겸을 살피는 것을 멈추고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목적지인 편의점에 도착하자 라면 판매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예찬은 가장 앞에 있는 신제품 전시대를 망설임 없이 지나쳐, 처음 게임 설명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해 둔 라면을 집어 들었다.
‘이럴 땐 제일 잘 팔리는 라면이지.’
빠르게 결제까지 마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작진이 종이봉투를 건네주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예찬은 다시 주차장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다음은 가원 씨!”
“태현 씨, 출발하세요!”
“연록 씨! 다녀오세요!”
마지막 타자인 강연록을 떠나보낸 PD가 편의점에 갔다 온 순서대로 받아 둔 종이봉투를 들어 올렸다.
“자, 그러면 연록 씨가 오기 전에 어떤 라면들을 사 오셨는지 한 번 확인해 볼까요? 먼저 휘겸 씨! ……날(辣)라면을 사 오셨네요!”
‘됐다!’
우휘겸이 사 온 것은 예찬이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 판매량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봉지 라면이었다.
이름부터 ‘매울 랄(날).’자를 쓰고 있는 라면이니만큼, 매운 음식에 약한 멤버들을 배려해 숙소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라면이라 살짝 걱정했으나, 다행히 예찬과 마음이 통한 모양이었다.
“나이스!”
“좋네요!”
주태현과 이가원의 반응도 몹시도 호의적이었다.
‘이거 첫 시도 만에 끝나겠는데?’
“다음은 예찬 씨! 예찬 씨도 날라면이네요! 그다음은 가원 씨! 오, 가원 씨까지 날라면! 그러면 태현 씨는…… 날라면이네요!”
아니나 다를까 네 사람이 연속으로 같은 라면이 나왔다.
‘느낌이 좋아.’
“연록아 빨리!”
“더 빨리 달려!”
잔뜩 신이 난 이가원과 주태현이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강연록에게 손을 흔들었다.
“연록 씨, 지금까지 앞의 네 분은 마음이 통했던데. 어떻게 자신 있으신가요?”
“당연하죠!”
PD의 물음에 강연록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연록 씨는 특별히 직접 꺼내 주시겠어요?”
“네! 하나, 둘, 셋!”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강연록이 숫자까지 세면서 봉투에서 꺼낸 것은 국내 판매량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컵’라면이었다.
“…….”
썰렁해진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 걸까.
강연록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태현이 이거만 먹는 거 내가 또 알지.”
“…….”
예찬은 그제야 떠올렸다.
설레발은 필패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