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6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61화
“……말도 안 돼.”
졸지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미션을 세 개나 성공한 스파이가 되어 박수 세례를 받은 강해솔은 방황하는 동공을 수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저희 팀은 아무도 방해를 안 했고, 모두 최선을 다해서 미션에 임했는데 이 밤에 도착했다는 뜻인가요?”
믿을 수 없다는 강해솔의 얼굴에 PD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저도 정말 놀랍네요! 빨리 편집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할 정도입니다!”
“……말도 안 돼.”
강해솔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스파이를 적어달라고 했을 때,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떤 싸움을 하고 온 건데.’
예찬은 정말로 본방송을 꼭 챙겨보겠다고 결심하며 넋이 나간 강해솔을 살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언젠가 알아서 회복하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평소라면 돗자리를 펼치고 땅을 파는 것을 구경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우리끼리 녹화하는 게 아니라서.’
예찬은 강해솔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뿔을 쓰다듬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형, 원래 적을 속이려면 같은 팀부터 속이라고 하잖아. 같은 팀도 아니라 자신을 속이다니, 형은 최고의 스파이야.”
혁신적인 신개념 스파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
“너는 지금 그걸 위로라고…….”
‘음, 역시 헛소리에 빠르게 반응하는군.’
눈에 총기가 돌아왔으니 이제 문제없었다.
강해솔의 100% 본의가 아닌 활약으로 한결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다시 3팀의 스파이 색출이 시작되었다.
“연록 씨가 태현 씨를 지목하셨었죠? 그러면 태현 씨 쪽지를 보실까요?”
“네,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잔뜩 뜸을 들인 주태현은 쪽지를 든 양손을 최대한 앞으로 뻗더니 단번에 펼쳤다.
“……주태현, 너!”
“……!”
쪽지에 적혀 있는 것은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었다.
“전 우리팀 안에 스파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힘든 일들을 함께 해쳐나간 저희 팀원들을 믿습니다. ……크, 나 멋졌다.”
‘아니, 전혀.’
정말로 스파이가 없는 상황에 단순히 제작진이 팀원들 간의 불화를 일으키기 위해 술책을 쓴 상황이라면.
그 계략을 꿰뚫어 본 주태현이 꽤 멋있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앞에 두 팀은 스파이가 나왔잖아.’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턱을 치켜드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끼리끼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닌지, 주태현의 저 쪽지에 굉장히 감명받은 사람도 있었다.
“야, 주태현! 너, 나를 그렇게 의심한다고 해놓고……!”
“네가 처음에 그랬잖아. 내가 좋아하는 라면이라서 사 왔다고. 그때부터 우린 B.B.(Best Buddy)였어.”
감동으로 부르르 몸을 떠는 강연록을 향해 주태현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맙소사.’
예찬은 경악했다.
그러나 윙크를 받은 강연록은 차오른 감동의 물결이 더 거세진 모양이었다.
“너, 진짜……. 야, 너 혼자만 멋있는 거 다 하면 어떡하냐! 나는 너 적었는데. 내가 뭐가 되냐고!”
미안한 듯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강연록을 향해 주태현이 가장 자신 있다는 각도로 얼굴을 틀더니 씩 웃었다.
“뭐긴 뭐야. 내 친구지.”
“주태현!”
“강연록!”
손에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완전히 자기들만의 세계로 떠나려 하고 있었다.
‘놀고 있네.’
예찬은 두 사람을 제외한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분명 자신과 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놀고 있네.’
“야, 꼴값 그만 떨어.”
“PD님, 제발 다음 순서로 넘어가면 안 될까요?”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저 주접떠는 선배들에게 대신 한심하다는 듯 눈을 흘겨줄 선배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PD 또한 Burst Buddy가 아닌 Best Buddy스러운 장면이 거북했는지 빠르게 이가원의 말을 넙죽 받았다.
“크흠. 태현 씨가 아무도 지목하지 않았으니, 이번엔 먼저 공개하고 싶은 분이 공개를 해 볼까요?”
“제가 하겠습니다. 전 연록이 썼어요. 강연록이 스파이가 분명합니다.”
이가원은 이 순간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빠르게 쪽지를 펼쳐 카메라가 잘 보이게 들어 올렸다.
주태현과 희희낙락하던 강연록이 대낮에 무도한 자를 목격한 사람처럼 경악했다.
“이가원 배신자! 유피테르의 이름 아래 우리가 지금까지 쌓았던 우정이 이렇게 얄팍한 것이었니?”
“뭐라는 거니, 연록아. 너는 태현이 썼잖아.”
이가원이 손을 드는 것도 귀찮다는 듯 강연록이 쥐고 있는 쪽지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무척이나 인상 깊은 건방진 자세였다.
‘후배들한텐 부담스럽게 깍듯한데 멤버들끼린 확실히 다르군.’
“이익!”
“그렇게 보면 뭐 어쩔 건데. ……잠깐!”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악역이나 낼 법한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뜬 강연록은 이어진 이가원의 도발에 들고 있던 종이를 입에 넣고 마구마구 씹었다.
“연록 씨?!”
“와, 얘 또 미쳤다.”
“어휴…….”
깜짝 놀란 PD와 스태프들이 달려들었으나 이미 종이는 꿀꺽 소리와 함께 강연록의 목구멍을 통과한 뒤였다.
강연록은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혀만 차대는 유피테르 멤버들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쭉 폈다.
“자, 이제 없다! 됐지?”
“됐겠냐고…….”
이가원은 질색했으나 쪽지에 쓰여 있던 이름의 주인공인 주태현은 저 앞뒤 재지 않는 행동이 뭉클했는지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있었다.
“강연록, 너어……!”
“주태현, 이젠 너의 버디로 합격점일까?”
“PD님, 얘네 2라운드 시작하겠어요! 빨리 다음이요!”
또다시 진한 우정 드라마를 찍으려는 두 사람을 떼어낸 뒤, 이번엔 우휘겸이 자신의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저도 강연록 선배님을 적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으나, 한껏 기분이 고조된 강연록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듯 배신감에 치 떨었다.
“휘겸아, 형이 잘해줬잖아!”
“잘해 주셨지만, 그거랑 이건 별개 아닐까요…….”
‘우문현답이로고.’
“큭!”
후배의 맞는 말 공격에 강연록이 힘없이 물러났다.
예찬이 보기엔 우휘겸의 무뚝뚝한 얼굴도 공격력에 한몫했을 것이 분명했다.
팔짱을 끼고 강연록을 구경하던 이가원은 아예 스파이 발표가 끝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물었다.
“연록아, 미션 단어는 뭐였어?”
“아니, 나 진짜 아니라고!”
“이미 다 들켰는데 아직 포기를 못 한다니……. 지금 말고 아까 이렇게 열심히 하지 그랬어.”
“너무 열심히 해서 들킨 거 아니야?”
“황시우! 너는 남 일에 끼어들지 마라!”
“야, 우리가 남이냐? 섭섭하네!”
“그러게?! 남이라고 한 건 취소! 내가 미안하다!”
또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한 유피테르를 지켜보던 PD는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헛기침을 하고 예찬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이제 예찬 씨만 남은 거죠?”
PD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예찬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대답했다.
“네. 저는…….”
기대감으로 번들거리는 PD의 눈동자를 확인한 예찬은 천천히 쪽지를 펼쳤다.
뒤쪽에서 다른 팀이었던 레굴루스 멤버들이 목소리를 죽여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록 선배님이 대체 뭘 하셨길래?”
“처음에 컵라면 사 오셨대.”
“오.”
강모 씨의 대단한 활약이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인지 다들 뻔한 결과를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정면에서 예찬의 쪽지를 바라보고 있는 PD 또한 당장이라도 풍악을 울리라고 외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는데, 그 모습이 예찬에게 확신을 주었다.
“전 가원 선배님을 스파이라고 적었습니다.”
지금 한 선택이 정답일 것이라고.
예찬은 강연록의 이름 위에 취소 선을 긋고, 그 아래에는 커다랗게 이가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
가장 먼저 PD의 벌어진 입이 눈에 들어왔다.
“어? 가원이?”
그다음으론 주태현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고.
“……와.”
뒤이어 감탄 섞인 이가원의 탄식이 쏟아졌다.
예찬은 100점짜리 시험지를 자랑하는 어린애처럼 뿌듯하게 웃으며 쪽지를 든 채 이가원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별로 티 안 났을 거 같은데.”
직전까지 강연록을 몰아가던 이가원은 시원하게 실패를 인정했다.
“사실 저도 연록 선배님이 제일 의심스러웠는데요, ‘스파이’라는 단어를 입에 가장 먼저 담은 게 가원 선배님이란 게 갑자기 떠올라서요.”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가원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파이’를 언급했다.
그 후론 너도나도 무슨 일만 있으면 스파이 타령을 해댔지만.
“그랬더니 종종 시간을 확인하시던 모습도 떠오르더라고요.”
물론 그것만으로 확신이 섰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란 마음이었는데.’
강연록이 스파이면 너무 뻔하니 차라리 헛다리를 짚은 게 되더라도 좀 색다르게 가보자고 가볍게 이름을 적었을 뿐이었다.
‘막상 맞으니까 재밌네.’
“와, 내가 어설펐네요. 참고로 미션 단어는 ‘스파이’였어요.”
“아, 그래서.”
– PD님, 얘 스파이 같은데 그냥 빼고 가면 안 될까요?
그렇다면 이가원 입장에선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타이밍에 ‘스파이’를 언급했던 것이리라.
여기까지 오는 동안 ‘스파이’ 소리를 못 해도 스무 번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예 단어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편이 좋았다.
‘실제로 처음에 이가원이 몇 번 강연록을 스파이로 몰아가면서 다른 팀원들도 자연스럽게 스파이 몰이를 즐겼지.’
예찬 또한 처음에 언급했던 것이 누구인지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단서를 잡았을 뿐, 이가원이 ‘스파이’를 그렇게 여러 번 언급했다고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훌륭하십니다, 선배님.”
“한 번 더 해보고 싶네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예찬과 이가원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고 있자 서서히 외야에서도 상황을 파악하고 떠들기 시작했다.
“스파이 진짜 가원이였어?”
“와, 소름! 나 본방 사수한다!”
“그럼 연록이는 뭔데?”
“그러니까 내가 계속 나 아니라고 했잖아!”
“그럼, 대체 왜 그렇게 못했어?”
“……우씨.”
의외의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PD도 정신을 차리고 진행을 이어갔다.
“어, 3팀은 예찬 씨의 명추리로 스파이를 검거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가원 씨는 너무 아쉽겠어요.”
“아쉽기도 하고, 연록이한테 미안하기도 하네요. 연록이가 도와준 덕분에 딱히 실패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쑥쑥 잘 갔는데.”
“그만 놀리라고!”
유피테르 선배님들이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우는 사이 이번엔 강해솔이 예찬에게 다가왔다.
어째서인지 예찬이 아니라 테디베어의 머리통을 쓰다듬은 강해솔이 말했다.
“추리 만화 좀 봤어? 완전 탐정이던데. 오늘 MVP는 따 놓은 당상이네.”
강해솔의 칭찬을 들은 예찬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역시 MVP는 형일 듯.”
겨우 이 정도 추리로 자신마저 속인 스파이를 이길 순 없었다.
“……하예찬!”
아니 이거 칭찬인데.
진짠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