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6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62화
“잘 먹겠습니다!”
스파이 검거가 끝난 후 이어진 늦은 저녁 식사는 PD가 파업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뭐, 저쪽은 아닌 것 같지만.’
“저요! 저요! 제가 먼저 손 들었어요!”
“PD님, ‘저요’가 아니라 이름을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황시우! 황시우! 황시우우우우우―!”
거실 쪽에선 이 풍요로운 저녁 식사에 합류할 수 있는 권리를 두고 스파이 둘과 2팀의 팀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문제를 가장 많이 맞힌 두 사람만 식탁에 앉을 수 있다나 뭐라나.
‘덕분에 이 식사가 더 값지게 느껴지는군.’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하게 차린 음식들은 어떻게 보관하고 있었던 건지 따끈따끈했고.
고된 일정으로 녹초가 된 아이돌들의 위장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방송 중에는 평소처럼 시간이나 메뉴를 가리지 않고 뭐든 열심히 먹는 예찬은 만족스럽게 메뉴를 하나하나 공략해 나갔다.
“예찬이 너 그걸 달고 잘도 먹네.”
“그거요? 아, 북극곰.”
옆자리에 앉은 선우이경이 놀랍다는 듯 말하는 걸 듣고 나서야 아직도 등에 버디란 이름의 대형 테디베어를 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익숙해졌더니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너도 힘든 싸움을 했구나.”
선우이경이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경이 너희는 그래도 빨리 오지 않았어? 우리 왔을 때 다들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던데.”
예찬과 마찬가지로 이젠 펭귄 인형과 거의 한 몸이 된 주태현이 예찬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끼어들었다.
‘……무거워.’
“여러모로 힘들었다고요. 힐링 예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우이경은 평소의 능글거리는 얼굴을 깔끔하게 지우곤 후배답게 우는 소리를 냈다.
‘오, 치즈 안 굳었다. 탕수육도 바삭하네. 다음은…….’
선우이경과 주태현 사이에 낀 예찬은 달아오른 두 사람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이겼다!”
그때 거실 쪽에서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범세혁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이런저런 화제를 거쳐 본가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의 울음소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던 선우이경과 주태현 또한 멈출 줄 모르던 입을 다물었다.
“오, 끝났나 본데?”
“방금 세혁이 맞지?”
“네, 그런 거 같네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범세혁이 엄청난 발소리를 내며 식당으로 달려왔다.
“내가 왔다! 아, 아니지. 선배님들도 있으니까, 제가 왔다!”
‘아니, 그것도 아니지.’
“세혁이 어서 오시게.”
“배 많이 고프지? 이쪽으로 앉아.”
그래도 이 자리에 있는 선배들은 다들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는 성격들인지 범세혁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사양하지 않고 강연록이 이끄는 자리에 앉은 범세혁은 산만하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많이 남았어요? 와와, 많이 남았다!”
“세혁이 너만 통과한 거야?”
“네! 열 문제를 먼저 맞히면 알아서 식당으로 가면 된다고 하셨어요!”
‘범세혁이 제일 먼저 맞혔다고? ……난센스 문제였나?’
신 PD와 찍은 레굴루스 자체 예능을 통해 이미 범세혁의 상식 없음을 몇 번이고 확인한 예찬이 다소 무례한 생각을 하는 사이, 범세혁은 빠르게 그릇을 비워 나가기 시작했다.
“몇 등까지 통과래?”
“그런 건 없고, 대신 늦게 가면 먹을 게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아하.”
범세혁의 말에 식탁을 둘러싼 사람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리필이 없단 얘기군.’
지금 차려진 음식이 다 떨어지면 퀴즈고 뭐고 끝이란 뜻이다.
예찬은 잠시 식탁 위를 살폈다.
워낙 차려진 것이 많다 보니 먹성 좋은 남자 여덟, 아니 이제 아홉이 신나게 먹었음에도 음식이 꽤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손을 떼면 남은 사람들도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을 양인데.’
문득 고개를 들자, 예찬과 마찬가지로 남은 음식을 가늠하고 있던 우휘겸과 눈이 마주쳤다.
“…….”
“…….”
우휘겸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눈빛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주 사악하지만, 그렇기에 즐거운 눈빛들이 말이다.
눈빛 교환이 끝나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젓가락을 든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릇들이 비워지는 것을 보며 예찬 또한 음식을 씹는 속도를 빨리했다.
‘사람 마음 다 똑같다니까.’
그렇지만 사람을 하루 종일 고생시킨 스파이에게 만찬이 차려진 식탁은 너무 과분하지 않은가.
“뭐야. 갑자기 뭔데?”
스파이 출신인 강해솔만이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대는 가운데, 예찬은 힘차게 다음 음식을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굶어라, 이가원!’
* * *
“다들 고생했어!”
“조심해서 들어가요.”
“다음에 또 보자고.”
“도착하면 문자 보내라.”
“네. 선배님들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야말로 My Buddy Burst였던 우정 파괴 촬영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밤이 깊다 못해 새벽이라 불러야 할 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면 점호 좀 하고 출발하자, 얘들아.”
“네, 일이요.”
“이 있습니다!”
“상록이 형, 이 있어요? 그거 없애려면 삭발해야 한다는데.”
“우리 점호 중엔 몹쓸 개그는 넣어두자, 은성아.”
“넵. 죄송합니다.”
“삼은 여기요!”
잠시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되지도 않는 말장난을 시도한 채은성 때문에 흐름이 끊기긴 했으나 금방 수습하고 막내 배새벽까지 무사히 숫자를 외쳤다.
자신들이 불렀으니 배웅까지 해야 한다며 굳이 레굴루스가 차에 타는 것을 지켜본 유피테르 멤버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드디어 끝났다!”
선배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게 되자 바짝 굳어있던 채은성이 개운하다는 듯 양팔을 쭉 뻗었다.
“…….”
차 안에서 팔을 뻗으면 당연히 옆 사람이 그 팔에 밀려나지 않을까.
“와, 진짜 나만 이렇게 긴장한 건가? 다들 괜찮았어요?”
예찬의 부루퉁한 눈빛을 눈치채지 못한 채은성은 이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심상록은 그런 채은성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은성이가 낯을 좀 많이 가리긴 하는 거 같아.”
“그래도 유피테르 선배님들이랑은 자주 봤는데, 아직도 불편해? 다들 친절하시잖아.”
뒷자리에 앉은 선우이경도 재밌는 화제에 빠질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윽. 그건 그렇지만…….”
‘확실히. 업계 대 선배치곤 굉장히 친절한 편이지.’
리스피릿 시절엔 디펜딩 챔피언과 라이징 스타로 분류되어 라이벌 관계로 묶인 것도 있고.
황시우나 이가원의 광기에 몸을 사리느라 이렇게 사이좋게 어울린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확실히 이 업계에 드문 건실하고 상냥한 선배님들이었다.
‘좀 친절하다 싶으면 이상한 가게에 끌고 가려 하거나, 이상한 물건을 선물하거나,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는 선배들이 널린 업계인데.’
“……좋은 선배님들이긴 하죠. 배울 점도 많고. 친근하게 대해 주시고.”
채은성은 예찬처럼 이 바닥에서 수십 년 굴러본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피테르가 괜찮은 선배라는 것은 느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불편하다고요! 저 멀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우상이었는데, 갑자기 어깨동무하고 우리는 오늘부터 친구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은성이 적어도 자신에겐 무리라며 외쳤다.
‘요컨대 잘 대해 줘서 불편하다는 거지? 거참 손이 많이 가는 놈일세.’
“잘해 줘서 어색하다니…… 선배님들 가여워.”
예찬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선우이경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쓸데없이 처연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누가 봐도 정말 유피테르를 가여워한다기보단 채은성을 놀리려는 의도였으나 채은성은 눈치채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크윽! 극복해 내겠어요, 언젠가…….”
“그래, 그래. 은성이 파이팅! 할 수 있다, 채은성!”
“크으으윽!”
앓는 소리를 내는 채은성에게서 고개를 돌리자, 이번엔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강해솔이 보였다.
“뭐가 보여?”
“아니, 딱히.”
강해솔의 말대로 바깥은 온통 캄캄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촬영하다가 생일이 끝나버렸네. 아쉽진 않아?”
“전혀!”
예찬의 물음에 그제야 강해솔이 눈을 맞춰 왔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오늘 제대로 축하받았어.”
강해솔은 그렇게 덧붙이며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예찬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깜짝 파티는 좀 망하지 않았나?”
사실 좀이 아니라 완전히 망했지만, 차마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강해솔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거 말고. 아까 촬영하면서.”
“촬영하면서? 휴게소에서 축하받았다는 그거?”
휴게소 주방에서 만났던 고깔모자를 쓴 채 사탕 목걸이를 걸고 있던 강해솔을 떠올리며 예찬이 말했으나.
이번에도 강해솔은 애매한 얼굴로 대답을 머뭇거렸다.
“예찬아, 그건 애피타이저였어.”
그 대신 강해솔과 같이 이동한 심상록이 말했다.
“애피타이저요?”
“응. 애피타이저. 그다음 목적지에 들릴 때마다 점점 더 화려하고 웅장한 파티가 시작되더라고.”
“저런.”
그 고깔과 목걸이도 충분히 화려했는데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인지 무척 흥미로웠다.
“마지막에 가선 아예 휴게소 주차장부터 레드카펫을 깔고 사람들이 그 양쪽에 서서 폭죽을…….”
“그만, 그만 해요, 형!”
다시 떠올리기 힘들다는 듯 강해솔이 심상록의 말을 끊었다.
“……케이크도 고양이 모양으로,”
“제발 그만!”
“후후후.”
‘심상록도 처음이랑 많이 달라졌단 말이지.’
여전히 기본적으로 점잖긴 하지만 지금처럼 짓궂은 장난을 걸어오는 일이 늘어났다.
‘원래 성격이 이런 건지, 아니면 붙어 있다 보니 옮은 건지.’
이상한 놈이 널려 있는 그룹이라 짐작 가는 구석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한숨을 내쉰 강해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스파이로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파티들 덕분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으려나? 생일이라 미션에 성공한 걸까?”
“그럴듯한데요?”
어느새 흥미진진하다는 목소리로 정의탁도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예찬은 잠시 심상록이 묘사한 화려하고 웅장한 휴게소 생일 파티를 떠올리다 강해솔을 향해 해맑게 웃었다.
“방송에 꼭 나오면 좋겠다, 형.”
“……하예찬!”
아니, 또 왜?
* * *
숙소 주차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예찬과 강해솔은 MBB 제작진이 선물이랍시고 떠넘긴 테디베어와 산타 인형을 트렁크에서 꺼내 끌어안은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거 세탁기에 들어가나?”
“잘 구겨서 넣으면 들어갈지도…….”
현관만 대충 통과한 뒤 던져둔 인형들을 보고 멤버들이 쑥덕거리는 사이, 예찬은 대표로 저쪽 리더인 황시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저흰 잘 도착했습니다.
사실 단체 메신저 방에 보내도 될 일이었으나, 그랬다가 또 대화의 꽃이 피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벌써 새벽이라고.’
순서대로 씻고 잘 준비를 마치면 아침이 밝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에서 눈을 좀 붙이긴 했는데…… 너무 피곤하다.’
거실 바닥에 눈을 감고 있으려니 배 쪽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지잉하고 울렸다.
– 곰은?
짤막한 답장에 예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인간은 누구 안부를 묻는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