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6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63화
언제부터 남의 곰이랑 안부 묻는 사이였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예찬은 성실하게 카메라 앱을 켜 널브러진 곰을 찍어 보냈다.
이번에도 빠르게 답장이 돌아왔다.
– 너무하네. 하루 종일 고생한 버디를 그렇게 방치하는 거야?
메시지를 읽고 있는 사이, 사진이 한 장 전송되었다.
안전띠까지 야무지게 한 상태로 차 시트 하나를 넘치도록 차지하고 있는 꼬질꼬질한 펭귄 인형 사진이었다.
– 우리는 이렇게 잘 모셔가고 있는데.
뒤이어 도착한 메시지에선 묘하게 뽐내는 기색이 뿜어져 나왔다.
‘유치원생이냐.’
인형 가지고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코웃음을 친 예찬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곤 자리에서 일어나 엎어져 있는 곰 인형을 일으켜 벽에 기대 세웠다.
그리고 주위에 세탁할 때가 된 쿠션과 이불들을 주섬주섬 모아 왔다.
“예찬이 뭐해?”
“소꿉장난.”
* * *
“풉!”
예찬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에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켠 황시우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뭐야, 뭔데?”
수마에 막 굴복하려던 주태현이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 별거 아니야.”
조금 미안한 마음을 담아 손을 내저은 황시우는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화면을 확인했다.
답장이 늦는다 싶더니, 엄청난 사진이 도착했다.
‘얘는 진짜 지는 거 되게 싫어하네.’
사진 속엔 흰색, 아니 하루 종일 밖에서 구르다 보니 거의 회색이 된 곰 인형이 아이돌 숙소에 있을 법한 온갖 액세서리를 두르고 두꺼운 이불 위에 앉아 양옆에 쿠션까지 끼고 거만하게 앉아있었다.
집에 도착했다길래 심심함을 달랠 겸 살짝 긁었을 뿐인데, 역시 참 재밌는 후배였다.
‘모자는 왜 세 개나 썼어. 목걸이는 또 몇 개야? 아니, 저 목에 목걸이가 들어가기나 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해도 너무 과했다.
‘그보다 그 사나운 얼굴로 이걸 찍겠다고 세팅했을 걸 생각하니……. 아, 슬픈 생각, 슬픈 생각.’
황시우는 자는 멤버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웃음을 삼키며 메시지를 작성했다.
– 목걸이 어떻게 한 거야? 목이 저렇게 두꺼운데.
– 실례입니다, 선배님. 남의 애한테 목이 두껍다니.
– 걸쳐 놓은 건가?
– 쉿. 곰의 비밀을 파헤치지 마세요.
“곰의 비밀……. 크읍…….”
“시우야, 왜 이렇게 끅끅거려. 차라리 웃어…….”
다시 잠든 줄 알았던 주태현이 눈을 감은 채로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어, 미안……. 끄윽…….”
“그니까 차라리 웃으라고…….”
주태현은 한쪽 눈을 슬며시 떠 황시우를 흘끗 쳐다보더니.
이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입술을 앙다문 황시우는 지금쯤 한껏 의기양양해졌을 예찬을 또 어떻게 긁어볼까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작성했다.
– 산타는?
곰 인형 옆에 앉아 선글라스를 머리와 눈과 목에 쓴 산타 인형 사진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10분 뒤의 일이었다.
* * *
강해솔의 생일날 있던 MBB 촬영이 끝나자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숙소, 연습실, 트레이닝실, 작업실, 녹음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매일 비슷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권태로울 수도 있는 날들이었으나 멤버들 중 누구 하나 정신이 다른 데 간 사람은 없었다.
“다들 힘내서 한 번 더 해 보자!”
“이경이 형, 이거 맞춰본 다음에 ‘Keep DOWN’도 한번 해 보면 안 돼요?”
“의탁아, 형은 이런 거 절대 안 된다고 하지 않는단다. 다들 괜찮지?”
“네!”
‘오히려 의욕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힘들어도 더 힘을 내자! 콘서트를 위하여!”
“위하여!”
“콘서트!”
콘서트 날짜가 정해졌으니까.
예찬은 새삼스레 연습실 화이트보드에 크게 적혀 있는 날짜를 확인했다.
5월 27일과 28일.
레굴루스의 데뷔 일인 5월 30일과 가장 가까운 주말.
레굴루스는 데뷔 이래 첫 번째 콘서트를 개최하게 되었다.
사실 그 전에 아직 시상식들과 새 앨범 발표까지 스케줄이 많이 남아 있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온통 콘서트 생각뿐인 것 같았다.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콘서트는 수도 없이 서 봤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공연해 본 경험도 충분했고, 무대 위에서 별의별 일을 다 겪기도 했었다.
‘……멤버 긴급 체포 같은 건 겪어 보지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인트로 부분 편곡하면 어떨까요?”
“댄스 브레이크도!”
“아예 안무도 바꿔 버리는 건?!”
가장 강렬했던 기억을 떠올리던 예찬은 며칠째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랑 같이하는 건 처음이니까.’
해야 할 일을 실시간으로 늘리면서도 좋아죽겠다는 듯 까르륵거리느라 정신이 없는 저 바보들과 함께 서는 콘서트 무대라니.
적잖이 정신 사납고, 또 적잖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
재미라니.
‘내가 이런 낯 뜨거운 생각을…….’
누구한테 말한 것도 아니라 홀로 생각했을 뿐인데 괜히 목덜미며 얼굴이 뜨끈해졌다.
‘잠깐 세수라도 하고 와야 하나.’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습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멤버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예찬이 연습 너무 열심히 한 거 아니야? 얼굴 완전 빨간데?”
“음…….”
눈에 띄게 벌게진 예찬의 얼굴을 확인한 심상록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걸었다.
“그러게, 연습 혼자 했어?”
“으음…….”
뒤이어 살짝 말버릇이 고약한 채은성의 걱정까지.
“여기.”
“……고맙다.”
과묵한 우휘겸은 어느새 차가운 물병을 챙겨 와 건넸다.
예찬이 물병으로 얼굴을 식히는 것을 확인한 선우이경이 박수를 두 번 치더니 크게 외쳤다.
“우리가 너무 안 쉬고 했나 보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합시다. 다들 쉬어! 완전 쉬어! 늘어져 버려!”
“아, 이경이 형! 이거는 쉬는 게 아니라 고문이죠! 윽!”
“바닥과 하나가 되라, 의탁아!”
“으악! 무거워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정의탁을 강제로 눕힌 선우이경은 그대로 정의탁의 등을 깔고 앉았다.
‘힘들어서 아닌데.’
본의 아니게 열의로 불타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예찬은 조금 뻘쭘하게 자리에 앉았다.
“……객석, 꽉 차겠죠?”
선우이경의 밑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포기한 정의탁이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중얼거렸다.
“오, 또 시작됐다. 의탁이의 불안증.”
“아, 놀리지 말고요!”
잠시 눈빛을 교환한 멤버들이 웃음을 터트리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콘서트 날짜가 정해진 이후, 정의탁은 지금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괜찮아, 의탁아! 자리 비면 형이 초중고대학 동창에 군대 선임이랑 후임까지 다 불러서 어떻게든 채울게!”
선우이경이 킬킬거리며 말하자 범세혁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사돈의 팔촌에 이웃네 강아지까지 불러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강아지는 동반 불가에요, 세혁이 형.”
“헉!”
‘진짜 놀랍다. 어떻게 저렇게 매일 새롭게 바보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 거지?’
예찬은 그새 미지근해진 물병의 물을 들이켜며 생각했다.
그때 잠시 바닥에 내려 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 펭돌이 근황.
짧은 메시지 위로 호텔 침대에 누워 포근한 이불을 덮고, 수면 안대까지 차고 있는 펭귄 인형의 사진이 보였다.
발신인은 확인할 것도 없이 유피테르의 황시우였다.
심지어 펭귄 인형의 옆엔 조화인지 생화인지 알 수 없는 장미 꽃잎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독하다, 독해.’
어제 공항에서 이미 저 펭귄 사진을 보내왔기에 굳이 저 큰 인형을 들고 해외까지 나간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후에 있을 공연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텐데, 저렇게 세팅까지 해서 사진을 찍어 보내다니.
부지런하다고 말할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지는 거 되게 싫어하네.’
혀를 찬 예찬은 고개를 내저은 다음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습실 구석에 앉혀 둔 곰 인형을 향해 다가갔다.
“새벽아.”
“아.”
예찬의 부름에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구석에서 스트레칭하고 있던 배새벽이 알겠단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새 좀 비뚤어진 곰의 자세를 바로 하는 사이, 반사판을 챙겨온 배새벽이 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해솔은 아직 부르지 않았음에도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적절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요 며칠 반복되는 일상이다 보니 이젠 몸이 먼저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좋아. 찍습니다. 김치.”
찰칵. 스마트폰 셔터음이 터졌다.
예찬은 빠르게 화면을 터치해 방금 찍은 사진을 살폈다.
머리와 손목에 두른 밴드와 목에 걸친 수건. 어떻게든 발을 쑤셔 넣은 운동화까지.
자세도 자연스럽다.
‘어딜 어떻게 봐도 연습하다가 잠깐 쉬는 곰이군. ……내 사진이 더 멋있어.’
제법 만족스러운 사진이 찍힌 것을 확인한 예찬은 흐뭇하게 웃으며 촬영을 도운 두 사람에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예찬이는 진짜 곰돌 씨랑 버디가 다 됐는데. MBB PD님이 보시면 감동하시겠어.”
“그분이 이런 우정 이야기에 감동할 것 같진 않은데요.”
뒤에서 멤버들이 속닥거리는 소리는 승리를 확신한 예찬에겐 새가 지저귀는 소리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 곰돌이 근황.
예찬은 힘차게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와 사진을 전송했다.
* * *
“예찬 씨, 아직도 하고 있어요?”
며칠 만에 숙소로 돌아온 신 PD가 놀랍다는 듯 식탁 의자에 앉은 테디베어와 가장 예쁘게 사진이 찍히는 위치를 찾고 있는 예찬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승리욕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네요, PD님.”
“그러게요.”
예찬은 너스레를 떠는 선우이경과 신 PD를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황시우가 그만하면 나도 그만할 거라고.’
저쪽은 사진 좀 찍어 보내겠다고 성인 남자보다 큰 인형을 투어에까지 달고 다니고 있으니, 좀 어울려 주는 것이 후배의 도리 아니겠는가.
“형, 여기 괜찮아요?”
완전히 곰돌이 전용 반사판이 된 배새벽이 물었다.
“어, 좋아.”
“조명은?”
이번엔 곰돌이 전용 조명인 강해솔의 물음이었다.
“형은 한 발만 뒤로 가주라.”
“오케이.”
“난 예찬이가 뭐든 열심히 하는 거 좋아.”
“……나도.”
이번 건 주방 냉장고에 붙어 있던 범세혁과 우휘겸이 소곤거리는 소리다.
‘다들 사람 놀리느라 신들 나셨군.’
코웃음을 친 예찬은 촬영 버튼을 연타했다.
찰칵, 찰칵.
‘무대 사진 진짜 괜찮던데.’
연습실에서 끝내주는 사진을 건진 직후엔 오늘 승부는 이걸로 끝이 났다고 생각했었다.
황시우가 리허설 무대 위에서 찍은 펭귄 인형의 사진을 보내기 전까진 말이다.
무대 조명 덕분인지 스카프를 두른 펭귄 인형은 평소보다 배는 예뻐 보였다.
“사진 어때?”
“잘 나왔어요?”
“…….”
예찬은 마뜩잖다는 듯 방금 찍은 사진을 내려다보다 배새벽과 강해솔에게 넘겼다.
“으음.”
“나쁘진 않은데…….”
역시나 미묘한 반응들이었다.
‘……카메라를 사야 하나.’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니, 장인이 아닌 예찬은 도구를 좋은 걸 써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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