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6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66화
“하아……,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
“PD님을 기대하게 해 놓고 거절하다니. 이래서야 유피테르 편도 어떻게 편집이 될지…….”
‘시끄럽네.’
MBB 출연 제의를 거절한 후, 새로운 매니저는 혼잣말처럼 계속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쓸데없이 말을 섞을 생각이 없었던 예찬은 집중한 척 대꾸하지 않았으나.
매니저는 지치지도 않는지 쉬지 않고 입을 움직여 댔다.
이쯤 되니 MBB 제작진한테 뭐라도 받아먹은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질 정도였다.
‘그게 아니면 우리 안티팬이든지.’
“……PD님이 유피테르 편 편집을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네.”
예찬이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매니저가 혼잣말을 빙자해 중얼거렸다.
“…….”
하루라도 빨리 도지윤 팀장과 좀 봐야 할 거 같다.
* * *
“서진 씨. 리스피릿이랑 불발됐다며?”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빠르게 방송국 복도를 걸어가던 MBB의 작가 한서진은 자신을 붙잡는 손길에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아, 네…….”
그러나 애써 만든 얼굴이 무색하게도 상대방은 한서진의 새까맣게 탄 마음 정도야 훤히 보인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마음 쓰지 마. 원래 예능 같은데 안 나오잖아. PD님도 별로 기대하지 않으셨는지 별말 없으시던데.”
너 같은 놈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은 MBB의 메인 작가.
“그래, 그래. 목전까지 갔던 것도 대단하지 뭐.”
그 옆에서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며 한서진을 긁는 것은 그 메인 작가가 제일 총애하는 서브 작가였다.
‘씨X. 일진 사납네.’
할 수 있는 거라곤 웃는 낯을 하고 속으로 욕설을 곱씹는 것밖에 없다니.
비참하고 찌질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좀 기대하긴 했는데……. 서진 씨가 워낙 자신감이 넘쳐서. 리스피릿이랑 방송도 많이 했다고 했고.”
“뭐, 서진 씨 잘못은 아니지만요.”
하는 말과 달리 두 남자의 얼굴엔 재미있어 죽겠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한서진은 얼간이처럼 웃을 뿐이었다.
두 작가의 말대로 한서진은 지금까지 리스피릿을 대여섯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보통이라면 직접 섭외한 것도 아니고, 고작 촬영장에서 몇 번 마주친 그 정도의 인연으로 뭘 큰소리치냐고 하겠지만.
원체 방송 나들이를 하지 않는 그룹이다 보니 그 정도면 그들이 나온 예능이란 예능엔 전부 스태프로 참여한 수준이었다.
– 두 팀 다 잘 나가는 그룹이라 좀 걱정했는데, 괜찮은데요?
– 내가 그랬잖아. 유피테르 애들이 이미지랑 다르게 소탈하다니까.
– 레굴루스도 금방 뜬 연예인답지 않더라.
– 유피테르 다음 게스트는 불카누스랬죠. 아, 이번 것처럼 재미없을 거 같은데.
– 요새 잘 나가는 그룹이 또 누가 있더라?
– 리스피릿 괜찮죠. 뭐, 요새라기엔 좀 된 그룹이긴 하지만.
– 리스피릿! 그러고 보니 한 작가, 리스피릿이랑 같이 방송해 본 적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지난 촬영이 끝나고, 리스피릿 이야기가 나왔을 때 조금 허세를 부려 버렸다.
– 리스피릿이요? 아, 애들 다 착하죠.
– 한 작가님 말 되게 편하게 한다. 얘기도 많이 해봤어요?
– 어, 네에. 많이라고 하긴 좀 그런가?
– 그러면 우리 프로에도 좀 나와달라고 해 줘요!
– 아, 그럴까요……?
‘그럴까요는 무슨 그럴까요냐고!’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자신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운이 따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정말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건지.
한서진은 지난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된 게스트를 한 번도 섭외한 적 없었다.
쫓기듯 새로 결성된 MBB 팀에 합류한 뒤에도 반푼이 작가라는 꼬리표는 떼어지지 않았고.
그러던 중 스태프들의 기대 어린 관심에 취해 섣부르게 대답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그때까진 아직 심각하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찬양 씨! 저 예전에 ‘신개념 눕방 토킹쇼’에서 만났던…….
– 네, 한 작가님.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이라고요?
리스피릿을 섭외하려면 그 리더인 정찬양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은 업계에 익히 알려진 일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만난 정찬양은 촬영지가 아니어서인지 이전과 상당히 다른 인상이었다.
백마 탄 왕자님의 현신이라 불리던 정찬양은 그곳에 없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얼굴엔 깊은 권태가 묻어났다.
– 아이참, 숨 고를 시간이라도 드려야지. 안녕하세요, 작가님!
– …….
변한 것은 정찬양 뿐만이 아니었다.
데뷔 직후부터 얻은 어마어마한 인기에 취해 안하무인처럼 굴던 리스피릿의 멤버들이 더없이 싹싹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한서진은 어째서인지 그 모습들이 자신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정찬양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란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호스트가 친한 친구를 게스트로 초대해 같이 우정을 다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 와, 되게 재미있겠다. 그렇지 않아, 찬양아?
– 글쎄.
– 하하하……. 첫 촬영은 이미 하셨다고 했나요? 호스트랑 게스트가 누구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아, 이거는 대외비인데……. 아직 기사도 내지 않았거든요.
–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알려주시면 안 돼요?
그 분위기에서 부탁하는 처지인 한서진은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대외비라곤 해도 알려진다고 해서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 호스트는 유피테르고 게스트는 레굴루스였어요.
– 와, 세다!
– 우리 나가면 묻히겠는데요?
진심인지 겸양인지 알 수 없는 말에 한서진이 펄쩍 뛰었다.
– 그럴 리가요! 리스피릿 여러분이 예능에 나오길 오매불망 바라는 오천만 리바디들이 있는데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 하하하, 작가님도 참.
– 게스트로.
일차원적인 아첨이 잘 먹힌 건지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을 때.
처음 인사를 받은 후로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정찬양의 입술이 떨어졌다.
– 게스트로 레굴루스를 부를 수 있으면 나갈게요.
– ……! 저, 정말이십니까?
생각해 보겠다가 아닌 나가겠다는 확답에 이성의 끈이 느슨해져 버렸다.
– 어, 정말로? ……예능인데?
– 너흰 별로야?
– 아니, 뭐. 네가 괜찮으면…….
정찬양의 대답에 한서진보다 더 당황한 것은 같은 리스피릿 멤버들 같았다.
– 그러면 제가 반드시 레굴루스를 게스트로 부르겠습니다! 저만 믿고 기다려 주세요! 아, 촬영 일정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혹여 반대하는 사람이 나올까 두려워진 한서진은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방에 틀어박혀 지금까지 쌓아온 인맥을 샅샅이 훑었다.
MBB 촬영 당시, 한서진은 레굴루스와 친분이랄 것을 쌓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른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리스피릿의 호스트 출연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전부 자신의 덕이어야 했으므로.
가까스로 얼마 전 이직한 동창이 레굴루스의 매니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드디어 자신의 인생에도 꽃필 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서진 씨. 살다 보면 또 기회는 올 테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이게 다 그 얼간이 때문이야.’
고개만 푹 숙인 한서진의 반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메인 작가와 서브 작가는 몸을 돌려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나저나 레굴루스는 왜 할 것처럼 굴다가 갑자기 발뺌한 거래?”
“글쎄……. 진짜 할 것처럼 굴었을지는 모를 일이지.”
마지막까지 한서진을 비웃는 말을 남기면서 말이다.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한서진은 결코 성급하게 일을 하지 않았다.
– 네, 네. 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레굴루스를 게스트로 섭외하면 100% 출연하시는 거 맞으신 거죠? 네, 감사합니다!
리스피릿에게는 다시금 출연 확답을 받았고.
– 레굴루스? 야, 걱정하지 마. 동창 좋다는 게 뭐냐!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걔들 내 말이면 껌뻑 죽는다니까.
– 그래도 너 이직한 지도 얼마 안 됐고…….
– 어휴, 원래 있던 매니저들이 다 초임자들이라 다들 나한테 의지한다니까?
– 음, 그래도 내가 직접 만나서 말하는 게…….
– 뭘 아까부터 그래도 타령이야! 너보단 내가 말하는 게 훨씬 낫지! 내가 잘 말해주길 바라면 오늘 제대로 쏘기나 하라고! 여기요, 똑같은 거로 한 병 더 가져다주세요!
레굴루스 쪽도 적잖은 돈과 시간을 들였다.
– 애들이 내가 하자면 다 오케이래. 뭐 저번 촬영도 분위기 나쁘지 않았다며. 날짜나 잡고 말해라. 야, 너 전부 내 도움인 거 알지? 앞으로 잘해라? 오늘도 잘하고! 여기 지난번이랑 똑같은 거로 일단 세 병이요!
‘개자식!’
그래 놓고 뭐? 애들이 갑자기 안 한다고 했다고?
– 야, 미안하다. 안 한다는데 어떡해. 질질 끌고 데려갈 수는 없잖아.
진심이라곤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사과를 듣자, 저도 모르게 입이 먼저 움직였다.
– ……출연 확정되면 너 줄게. ……만원.
– 뭐? 진짜? 와, 나 이거 녹음했다? 너 무르기 없다?! 좀만 기다려 봐! 내가 설득할 테니까!
– ……설득했는데도 안 한다고 했다며.
– 뭐? 아니, 뭐. 사람 마음이 항상 그대로냐? 바뀔 수도 있겠지!
흥분한 상대의 반응에 한서진은 깨달았다.
‘처음부터 다 거짓말이었구나.’
그제야 빌어먹을 동창 놈이 전부터 허세가 그득해 다들 거리를 두었었던 것이 생각났다.
학창 시절,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몇 번 있었던 것도 덤으로 떠올랐고.
텅텅 빈 지갑과 주머니에 가득 쌓인 영수증은 레굴루스를 섭외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저 허언증 환자의 배를 불리는 데만 쓰인 것이었다.
날짜나 잡으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확신을 갖고 PD며 다른 스태프들에게 알린 것인데!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이번에야말로 직접 레굴루스를 만날 것이다.
그래서 무릎을 꿇든 바닥에 머리를 박든, 어떻게든 설득해 내고야 말 것이다.
‘전에 촬영 때 보니 성격들은 다들 좋아 보였어. 일단 그 개새끼한테 자리를 만들어 보라고 하자. 그렇게 받아 처먹어 놓고 그 정도도 안 해주면…… 죽일 거야!’
여러 가지 감정으로 불타오른 한서진은 일을 마치고 방송국에서 나오기 무섭게 사기꾼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정심, 평정심, 평정심…….’
얼마간 이어진 연결음은 곧이어 근래 익숙해진 목소리로 변했다.
– 여보세요?
그리고 한서진의 입은 뇌의 통제를 벗어났다.
“이 개자식아!”
평정심 그런 건 개나 주라지.
– 어디서 다짜고짜 욕이야!
“너라면 안 하겠냐? 개새끼! 처먹은 거 다 토해 내!”
– 야, 내가 공짜로 먹었냐? 레굴루스 섭외하고 싶어서 네가 퍼 줘 놓고 인제 와서……!
“섭외 못 했잖아, 이 사기꾼 새끼야! 아니면 지금 당장 레굴루스랑 만나게 해 주든가!”
– 허……. 그렇겐 못해.
“왜 못해! 왜 못하냐고! 받아먹었으면 일을 해, 이 비양심적인 놈아!”
한서진은 지금까지 쌓인 울분을 전부 토해 내듯 마구 소리를 질렀다.
이 뻔뻔한 놈에게 인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오늘 당장 자신을 레굴루스 앞에 데려다 놔야 할 것이었다.
– 아, 못하니까 못하지! 나 잘렸다고! 모가지! 파이어!
“……어?”
예상치 못한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화기 너머에선 몹쓸 동창이 듣기 싫게 징징 짜는 소리를 내고 있다.
‘아니 대체 언제, 어쩌다가?’
예찬과 도지윤이 빠르고 정확한 일 처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리 없는 한서진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