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6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67화
예상보다 더 빠르게 매니저가 해고됐다.
‘NJ 측에서 하도 와 달라고 해서 왔다기에 해고하는데 좀 번거롭겠거니 생각했는데.’
도지윤 팀장의 말을 들어보니 수습 기간이라 바로 처리할 수 있다지 않은가.
‘그런 얼간이의 헛소리를 믿다니……. 나도 갈 때가 다 됐군.’
“그 얼굴 뭐야? 완전 애늙은이 같아.”
“…….”
강해솔의 지적에 예찬은 표정을 감추기 위해 조용히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어쨌건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같았던 매니저가 사라진 회사는 한결 쾌적했다.
“그러게요. 하예찬 씨 표정이 수상쩍은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요.”
“…….”
예찬은 얼굴을 가렸던 손을 치우고 자유분방하게 입을 놀리는 상대방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봐, 봐요, 저 눈빛! 사람 하나 묻어 버릴 것 같지 않습니까?!”
“전 별로…….”
“강해솔 씨! 같은 팀이라고 그렇게 편들기 있습니까?!”
“딱히…….”
“으으으……!”
냉랭한 눈길도 PiPiPi의 입을 얼릴 수는 없었다.
‘그러면 이 초대받은 불청객은 어찌해야 하나.’
드디어 더 이상 손 볼 곳 없이 완벽한 곡을 완성했다며 방방 뛰는 PiPiPi를 작업실로 부른 것은 예찬이었으나 역시 마주 보고 있으면 짜증 나는 사람이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해솔이 형한테는 찍소리도 못했는데, 형이 낯가리던 게 덜해지니까 은근슬쩍 기어오른단 말이지.’
그래도 드디어 긴 협업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녹음만 끝내면 안녕이다, 피대기!’
예찬이 속으로 자신에게 영원한 작별 인사를 보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PiPiPi는 이번엔 강해솔에게 집적대고 있었다.
“강해솔 씨가 작업하던 곡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습니까? 혹시 지금 들어볼 수 있습니까?”
“아직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정도는 아니에요.”
PiPiPi가 작곡한 ‘개(開)’와 연작으로 작업하고 있는 곡에 관해 이야기가 나오자, 강해솔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예찬은 PiPiPi를 노려보던 것을 멈추고 강해솔의 안색을 살폈다.
‘처음에는 쭉쭉 진도가 나가는 거 같더니.’
최근엔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예찬을 비롯한 레굴루스 멤버들은 예민한 강해솔을 배려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엔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망나니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에이, 그렇게 쪼잔하게 굴지 말고 사나이답게 한 번 들려주시죠!”
“쪼, 쪼잔이요?”
상처 입은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 강해솔은 그길로 자리를 박차고 연습실로 떠났다.
PiPiPi는 예찬과 둘만 남은 썰렁한 작업실 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네, 많이요.”
머리 박고 반성해라 피대기여.
* * *
멤버가 아홉이나 되다 보니 잠깐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누군가의 생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PiPiPi를 돌려보낸 예찬은 달력을 확인했다.
벌써 2월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으니, 2월의 마지막 날 태어난 심상록의 생일 파티를 준비해야 했다.
‘으음…….’
아직 파티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머리가 아팠다.
‘준비는 나름대로 했지만…….’
강해솔의 생일 파티에서 입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다 보니 영 자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 있어 보이던데.’
예찬과 달리 지난 실패를 깨끗하게 머릿속에서 지웠는지, 멤버들은 며칠 전부터 벌써 깜짝 파티를 완벽하게 성공한 사람들처럼 의기양양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깜짝’은 절대 먹히지 않으니 그냥 심상록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생일 파티를 하자던 예찬의 주장은 무참히 스러질 만큼 말이다.
‘뭐, 이번에 또 실패한다고 해도 그건 내 잘못은 아니니까. 난 그거 아니라고 분명 했으니까. 내 실패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해 봐도 정신 승리 같긴 했다.
밀려드는 자괴감에 예찬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던 그때.
작업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예찬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열린 문 너머로 정의탁이 얼굴을 빼꼼 들이밀었다.
“형, 작곡가님 가셨죠?”
작업실 안을 빠르게 훑는 정의탁을 보고 있자 우울함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대신 그 자리를 장난기가 차지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예찬은 무대에 선 연극배우처럼 한 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오. 이게 누구신가. PiPiPi 작곡가님의 뮤즈 정의탁 군 아니신가.”
“아, 그거 하지 말라니까요!”
PiPiPi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한결 얼굴이 밝아졌던 정의탁이 질겁했다.
“뛰어난 작곡가님의 뮤즈라면 뿌듯해해야 할 일일 텐데 왜 그렇게 펄쩍 뛰는 건가, 자네.”
“재밌어 죽겠단 얼굴로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아, 복숭아들이 예찬이 형이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복숭아들?
예찬은 태연하게 가슴 앞에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복숭아들은 이런 나도 사랑해 줄 거야.”
“크윽……! 부정할 수 없어서 괴롭네요. 하아, 그보다 일 끝났으면 저녁 먹으러 넘어와요.”
모든 걸 포기한 듯한 정의탁은 한숨을 푹 내쉬고 어서 나오라는 듯 작업실 문을 활짝 열었다.
예찬은 기꺼이 정의탁의 친절을 받아들여 열린 문을 빠져나왔다.
“오늘 밥은 누가 시킬 차례였지?”
“세혁이 형이요.”
연습실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배달 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처음엔 리더인 예찬이 전적으로 메뉴 선정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자체 콘텐츠에서 진행하는 게임의 상품으로 그 권한을 거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참고로 범세혁은 지난주에 진행한 빙고 게임의 우승으로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손에 넣었다.
‘몸으로 하는 게임은 열 번 하면 아홉 번은 배새벽이 우승하니까. 신 PD도 여러모로 생각이 많겠군.’
신 PD를 떠올리고 있으려니 예찬 또한 생각이 많아졌다.
악마의 화신 같던 츄마프 메인 PD가 숙소의 군식구가 된 지도 벌써 한참이나 흘렀다.
‘N-net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고 우리 콘텐츠만 만들고 있지.’
신 PD 본인의 선택이긴 했지만 너무 충동적이었던 것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는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방송국 PD 쪽이 낫지 않나?’
“예찬 씨! 빨리 앉아요!”
“…….”
“오늘은 무려 중국집 풀 세트라고요! 이건 영상을 남겨야만 해요!”
“…….”
그리고 연습실 문을 열기 무섭게 조금 전까지 떠올리고 있던 신 PD가 잔뜩 흥분해 예찬을 반겼다.
‘……그래, 본인이 좋다면 좋은 거지.’
예찬은 쓸데없는 걱정을 치우고 자리에 앉아 짜장면을 비비는 데 집중했다.
“탕수육 찍먹파 여러분 이쪽으로 앉아요! 부먹파는 거기 앉든지 말든지.”
“이경아, 말에 가시가 느껴진다?”
“네? 부먹파는 아무렇게나 대충 부어 먹는 만큼 무던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굉장히 예민하시군요?”
“음, 확실히 우리 부먹파는 찍먹파처럼 찍찍 모나진 않았지.”
찍먹파와 부먹파의 수장을 맡고 있는 맏형 둘이 싸우거나 말거나 예찬은 젓가락을 움직이는 데만 정성을 쏟았다.
‘흠…….’
맛있게 잘 비벼져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짜장면은 과연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잘 비빈 한 그릇이 온전히 예찬의 것이란 점 정도일까.
‘아니 근데 아무리 휴식기라지만 아이돌인데 1인 1 짜장면은 좀 선 넘은 거 아니야?’
다음부턴 범세혁이 배달 앱을 만지는 일이 없도록 예찬이 승리를 거머쥐어야만 할 것 같다.
“우리 그러면 지금까지 게임 했던 건 정산 끝난 거죠?”
양 볼 가득 밀어 넣었던 짜장면을 어느새 말끔하게 삼킨 정의탁이 물었다.
“어, 빙고 게임이 마지막이었죠? 그러면 그렇네요.”
잠시 지난 촬영을 돌이켜 본 신 PD가 대답했다.
“그러면 내일부턴 다시 내가 주문하면 되나?”
짬뽕 국물로 식사를 마무리한 예찬이 무심코 한마디를 던지자, 평화로웠던 연습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멤버들은 일제히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면 다음 게임도 얼른 해요!”
“지금 당장 해도 좋습니다!”
“꼭 오늘 하고 싶습니다!”
“PD님, 알러뷰!”
“어어…….”
다들 짠 것처럼 신 PD를 붙잡고 늘어지는 가운데, 신 PD와 예찬만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이거, 지금…… 그거 맞지?’
그리고 당황한 두 사람 중에선 예찬이 먼저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시키면, 샐러드만 시키니까……!’
잘, 그리고 많이 먹는 거로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예찬이지만 자신이 주문할 때는 열에 여덟은 샐러드를 시키고 나머지 둘 중 하나는 호밀빵 샌드위치, 마지막 하나는 현미밥이 들어간 포케를 시키곤 했었다.
‘어쩐지 죽어라 내 우승을 막더라니…….’
지금까지 멤버들에게 수도 없이 방해받았던 지난날들과 게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것들이……!’
“아, 이제 알겠습니다! 예찬 씨가 풀떼기만 시키니까 게임을 하고 싶은…… 읍!”
“PD님 쉿!”
“하하하! PD님도 참!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걸까!”
마침 예찬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정답에 다다른 신 PD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으로 밝게 입을 열었고.
멤버들은 황급히 그런 PD의 입을 막았다.
“찬아, 오늘날이 맑……, 음, 네 표정은 흐리구나.”
아무렇지 않게 예찬에게 말을 건네던 채은성은 예찬과 눈이 마주치더니 다 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예찬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멤버들을 바라보자 다들 딴 곳을 보는 척 시선을 피했다.
‘우휘겸 너마저……!’
급하게 눈을 내리깐 우휘겸을 보고 있으려니 지난주 빙고 게임에서 아무리 힌트를 주며 애걸해도 예찬이 원하는 단어만은 부르지 않던 모습이 떠올랐다.
분노에 지배당한 예찬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신 PD였다.
“신 PD님.”
“예?”
의문을 해결해서 만족했는지 썰렁한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단무지로 짜장면 그릇을 싹싹 훑고 있던 신 PD가 고개를 들었다.
예찬은 허리에 손을 얹으며 신 PD를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하죠.”
“……뭘요?”
단무지를 입에 넣을까 말까 고민하는 신 PD에게서 시선을 뗀 예찬은 숨을 죽이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긴 뭐겠어요. 메뉴 선정권을 건 게임이지.”
“오.”
신 PD의 감탄에 이어 연습실 이곳저곳으로 어색하게 흩어져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모였다.
‘계속 게임을 하자고 꼬신 걸 보니, 게임으로는 무조건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 샐러드를 먹여주마.
유치한 승리욕이 들끓었다.
“혹시 생각해 둔 게임 있으신가요?”
그리고 이런 유치한 신경전을 사랑하는 신 PD는 재빨리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제가 골라도 되나요?”
“그럼요. 원래 여러분이 자주 고르시잖아요?”
숨죽인 멤버들을 다시 한번 둘러본 예찬은 자신만만하게 게임 종목을 불렀다.
“그러면 노래방 게임이요.”
치사하고 비겁하게 실력으로 이겨주마 이것들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