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6화
“하예찬 연습생?”
스태프들이 묵는 층에 도착하자 시간에 맞지 않게 부산스러운 느낌이 감돌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복도를 서성이던 김상희 작가가 예찬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세상에, 왜 이렇게 창백해요? 괜찮아요?”
“헉, 헉. 괜찮습니다. 휘겸이는 안에 있나요?”
예찬의 물음에 김상희가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주변을 살핀 김상희는 빠르게 속삭였다.
“하예찬 연습생, 조원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지금은 나서지 않는 게 나아요.”
예찬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 감성과 이성이 충돌할 때면 예찬은 보통 이성의 손을 들어 주었다.
리셋을 통해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해 보았을 때 그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목표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셋을 쓸 수 없게 된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이제 되돌릴 수도 없으니 매 순간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애썼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젠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더 좋았을지, 아니면 더 나빴을지, 모든 것은 상상의 영역에 남을 뿐이었다.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인가?
우휘겸의 결백함을 밝힐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
예찬은 빠르게 생각했고, 답을 내렸다.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하고 싶은 쪽을 택하자.’
어차피 어느 쪽이 더 나을지 모른다면, 덜 후회되는 쪽을 택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예찬은 대답 대신 씩 웃고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 * *
“그러니까 이 학폭위 통지서는 진짜가 맞지만, 제보자가 말한 것 같은 폭력은 없었다? 이 말 맞죠?”
“……네.”
메인 PD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힐끗 우휘겸의 얼굴을 살펴보니 이런 상황에서까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무표정이었다.
‘쟤 팬들은 저걸 좋다고 하더만…… 솔직히 좀 무섭게 생겼지?’
아무리 봐도 눈매가 서늘하다 못해 싸늘했다.
옆에 붙어 있던 스태프들은 그럴 리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메인 PD는 폭로 글이 뜬 걸 봤을 때 ‘그럴 만한 놈인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실제로 학폭위도 열렸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메인 PD의 시큰둥한 태도를 눈치챘는지 뒤에 서 있던 작가가 등을 쿡쿡 찔렀다.
지난 경연과 이번 경연 모두 우휘겸이 속한 조를 맡은 작가였다.
메인 PD는 어쩔 수 없이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혹시 우휘겸 연습생의 말을 증명할 방법은 있어요? 같은 학교 친구라든지, 녹음이나 SNS 캡처 같은 거?”
“제가 자퇴를 해서 연락하는 친구가 없어서요. SNS도 안 해서…….”
텄다.
메인 PD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건 그냥 하차가 답인 거 아닌가? 하, 근데 그냥 보내기엔 이놈이 인기가 많단 말이지.’
기껏 프로그램이 상승세를 탔는데 껄끄러운 일이 터져 버렸다.
메인 PD가 의욕을 잃은 게 느껴졌는지 작가가 나섰다.
“휘겸 연습생, 이건 휘겸 연습생을 못 믿어서 물어 보는 게 아니라 아주아주 만약을 위해 묻는 건데요. 그 전 학교에서 강제 전학 당한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래요. 그럼 됐어요.”
메인 PD가 보기에 사내놈이 영 매가리 없이 말하는 것 같아서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작가의 눈엔 다른가 보다.
우휘겸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에 연민이 가득했다.
“하, 그럼 이걸 어쩐다. 경연이 내일모레인데…….”
이대로 내보내는 것도, 내보내지 않는 것도 상당한 리스크가 있었다.
PD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휘겸 연습생, 하차할 생각은 없죠?”
“PD님!”
우휘겸보다 먼저 작가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나도 우휘겸 연습생이 하차하길 바라는 건 아니야. 근데 본인 의견은 물어봐야 할 거 아니야. 어때요?”
“저는…… 계속하고 싶습니다.”
‘오, 이놈 봐라?’
아까와 다르게 단호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중 제일 심지가 단단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그럼 이번 경연만 빠지는 건 어때요?”
“PD님, 진짜!”
“이 작가, 조용히 좀 해 봐! 우휘겸 연습생 말대로면 이거 가짜 제보니까 시간을 좀 들이면 잠잠해질 거 아니야. 근데 경연은 그 전에 열린다고.”
자신도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PD가 말을 이었다.
“거기서 시청자며 기자들이 얼마나 씹어 대겠어. 우리 프로뿐만 아니라 우휘겸 연습생을 위해서도 그래. 우휘겸 연습생이랑 같은 조인 조원들은 또 괜히 손해 보지 않겠어? 그러니까 이번 경연만 빠졌다가 다시 합류하자는 거지.”
“그렇지만…….”
“이 작가도 알잖아. 대중들이 한번 신나게 물고 뜯으면, 나중에 가서 아니라고 밝혀져도 어디 사과해? 민망해서 더 욕한다니까? 뭐,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이상한 사람들 상대하느라 팬들이며 우휘겸 연습생이며 마음고생 얼마나 하겠어? 차라리 잠깐 빠져서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낫다니까.”
작가는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메인 PD의 제안에 우휘겸 또한 고민되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나 우휘겸보다 먼저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끼어든 목소리에 방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향했다.
그곳엔 숨을 몰아쉬는 하예찬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니, 하예찬 연습생은 또 여길 어떻게…….”
메인 PD의 얼굴에 ‘저 또라이 새끼가?’라고 쓰여 있었다.
예찬은 관중들의 기대에 부응해 뻔뻔하게 방 가운데로 향했다.
활짝 열려 있던 문은 밖에 서 있던 김상희 작가가 슬며시 닫아 주었다.
“지금 빠지면 나중에 해명한다고 해도 그때 뭔가 문제가 있어서 빠졌던 거라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할 겁니다.
“그거야 뭐, 이렇게 공론화가 된 순간 이미 정해진 거 아닌가?”
이미 지친 메인 PD는 예찬이 끼어든 것은 따지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예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해명하고 당당하게 있어야 그나마 잠잠하지 않겠어요?”
“우리도 그러면 좋지. 근데 뭐 증거가 없다잖아요.”
예찬의 등장 이후 귀찮아 죽겠다는 태도를 숨길 의지조차 잃어버린 메인 PD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증거를 찾아올게요.”
예찬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먼저 가리킨 다음 우휘겸을 가리켰다.
“저랑 얘가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예찬은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오늘 내로요.”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입을 쩍 벌린 메인 PD가 빠르게 시계를 확인했다.
메인 PD 옆에서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던 작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예찬 연습생. 우리 내일이 경연인 건 알죠?”
“그러니까 오늘 해결해야죠.”
“그러니까 제 말은, 오늘이 마지막으로 연습할 수 있는 날인 건 안다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연습은 그동안 많이 했고,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해요.”
“아아, 그, 오늘이 마지막인데…….”
곤란한 듯 말꼬리를 늘린 작가가 슬쩍 우휘겸을 곁눈질했다.
예찬은 눈치 없는 놈이 되기로 했다.
“아, 휘겸이 빼고 할 거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습할 수 있는 날이란 뜻이시군요.”
“아이고…….”
작가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고 정신을 차린 메인 PD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다른 조원들도 같은 마음이에요?”
“안 물어봐서 모르겠습니다.”
“허, 거참 당당하네.”
요즘 애들 참 당돌하다며 메인 PD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희는 지금부터 출발할 거라 조원들한테는 작가님이 좀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휘겸이랑 저를 뺀 버전으로 연습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전해 주세요.”
“왜 너까지……!”
예찬이 난입한 이래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던 우휘겸이 다급하게 예찬의 팔을 붙잡았다.
예찬은 우휘겸을 돌아보았다.
“다 같이 많이 연습했잖아.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와서 연습했던 대로 무대를 하면 돼.”
단호한 목소리로 예찬이 말했다.
“그렇지만 만약 잘못되면…….”
“이 정도로 일을 벌였으면.”
예찬은 팔이 잡힌 채로 여유롭게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 정도 리스크는 져야지.”
‘그렇죠?’라고 묻는 것처럼 예찬은 메인 PD와 눈을 맞췄다.
메인 PD는 고개를 숙이더니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빡쳤나?’
“푸하하하!”
예찬이 잠시 메인 PD의 기색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다.
얼마나 웃었는지 허리를 젖히고 웃는 메인 PD의 눈에 눈물이 맺혔을 정도였다.
“와, 진짜 골 때리는 놈이네. 청춘 드라마 찍어요? 하하하, 근데 진짜 재밌다. 그래요, 조원들한테는 내가 직접 말을 전해 줄게요.”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메인 PD가 예찬과 우휘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사실 우정, 노력, 이런 거 되게 좋아해서 츄마프를 기획했거든요. 뭐야. 둘 다 안 믿는 표정이네? 하하, 아무튼 두 사람의 건투를 빌게요. 구형아! 여기 둘 좀 태워 줘라!”
메인 PD의 말에 스태프 하나가 차 키를 챙겨 들고 다가왔다.
예찬은 주어진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예찬의 뒤로 메인 PD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 * *
“어, 새삼스럽지만 FD 박구형입니다.”
“하예찬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우휘겸입니다…… 감사합니다.”
건물을 벗어나 주차된 차 앞까지 와서야 세 사람은 통성명을 했다.
박구형은 덩치가 크고 무던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는데 이런 야심한 시간에 운전하게 된 것에 대해 딱히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탈까요? 조수석에 짐이 많아서 두 분 다 뒤에 타면 됩니다.”
스태프들의 이동용 차인지 차 안에는 짐이 많았다.
작은 경차에 세 사람이 몸을 구겨 넣자 예찬이 목적지를 말했다.
“우휘겸, 일단 네가 다녔던 학교부터 가자. 광주 맞지?”
“……경기도 광주요?”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던 박구형의 손이 멈칫했다.
룸미러를 통해 박구형과 눈을 마주친 예찬이 씁쓸하게 웃었다.
“광주 광역시요.”
“그, 그렇군요. 안전띠 꼭 매세요…….”
박구형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우휘겸이 부르는 학교의 이름을 치고 운전을 시작했다.
예찬은 옆자리에 앉은 우휘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SNS로 너희 학교 동창들을 찾아볼 거야. 학교 이름은 알았고, 기억나는 이름들 좀 있어? 담임 선생님 이름도.”
잠시 기억을 되짚은 우휘겸이 몇몇 이름을 떠올렸고 예찬은 그 이름들을 메모 앱에 차례로 적었다.
“이제 어떻게 검색하는지 보여 줄 테니, 내가 하는 거 보고 네가 찾아봐.”
“응.”
“지찬수 씨 찾으면 나 부르고.”
예찬에게 조작법을 배운 우휘겸이 더듬더듬 자신의 반 친구들을 찾는 동안 예찬은 익명 커뮤니티에 접속해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폈다.
‘증거가 증거다 보니 믿는 분위기가 강하긴 하군. 그래도 아직 심하게 가열되진 않았어.’
예찬이 살벌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넘기기 시작했다.
‘좀 유행이 지났거나 마이너한 사이트 위주로…….’
적어 둔 이름들을 차례로 검색창에 입력하던 예찬의 손이 일순 멎었다.
‘빙고.’
어렴풋하던 답에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