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7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71화
하경의 물음에 찬양은 대답 대신 고개를 휙 돌렸다.
“뭐가 불만인데? 어?”
“……불만 없는데.”
누가 봐도 불만밖에 없어 보이는 얼굴로 찬양은 다시 화면을 노려보았다.
“있는 거 같은데?”
“없다고요, 아저씨.”
찬양은 이리저리 얼굴을 들이미는 하경이 귀찮다는 듯 벌레를 쫓는 것처럼 손을 내저었다.
“아저씨……!”
상처받은 하경이 도와달라는 듯 예찬에게 눈빛을 보냈으나, 예찬은 두 사람이 뭐라고 떠들든 관심 없다는 듯 게임에 몰입해 있었다.
“……진짜 애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어릴 때가 좋았어, 어릴 때가.”
버릇없는 동생들 들으라는 듯 하경은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했고.
“우연이네. 나도 아저씨가 아닌 형이 좋았는데.”
“아, 일만 계속하는데 돈이 왜 이렇게 없어. 대체 어디서 새는 거야?”
“……크윽!”
어딘가 단단히 꼬인 찬양의 받아치기와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예찬에게 연달아 얻어맞고 뒷걸음질 쳤다.
‘……좀 심했나?’
“아, 희샘이 형! 거기서 그러면 안 되지! 하, 아니다. 내가 죄인이다, 죄인.”
“…….”
비척비척 주방으로 들어가는 하경을 보며 찬양은 잠시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예찬이 같은 회사 연습생의 이름을 부르며 마우스를 달칵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미안함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예찬이를 하루라도 빨리 그 답 없는 회사에서 나오게 해야 한다고 내가 말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정이 많은 예찬이인데, 정이 떨어지도록 돕지는 못할망정 게임 캐릭터에도 회사 연습생들 이름을 붙일 수 있게 업데이트하는 건 대체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 예찬이는 그 회사가 좋다잖아.
– 거긴 진짜 답이 없다니까? 거기 있어 봐야 데뷔 못 해. 해도 망하고.
– 그건 찬양이 네 생각이지.
– 형!
– 찬양아 화내지 말고 들어 봐. 너도 츄마프를 통해서 여러모로 배웠겠지만, 그렇다고 네 생각을 예찬이한테 강요할 수는 없어. 예찬이 인생이잖아.
– …….
– 예찬이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야무지고 똘똘했니? 알아서 잘할 거야.
– ……알겠어. 난 내 식대로 할 테니까, 방해나 하지 마.
‘그런데 이렇게 방해를 해?’
얼마 전 하경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 찬양은 울컥 화가 치밀어 하경이 향한 주방 쪽을 노려보았다.
“진짜 왜 그래? 아저씨는 나이 들어서 그렇게 쳐다보면 무섭거든?”
마침 이쪽을 보고 있던 하경과 눈이 마주치자, 하경은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야, 둘이 싸워?”
그때 예찬이 의자를 뒤로 쭉 밀며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모니터엔 세이브 포인트가 반짝이고 있었다.
“예찬이 이제 형 말 들리니?”
“엉? 나한테 말 걸었어?”
“……아니야. 형이 만든 게임 잘해 줘서 고맙네.”
하경은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입꼬리를 주욱 늘려 미소를 지었다.
하경의 미묘한 미소에 인상을 찌푸렸던 예찬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화면을 가리켰다.
“형, 근데 이거 이상해. 아무리 벌어도 쓰는 돈이 더 많아.”
“그게 맞아. 형 나름대로 시장 조사를 해봤는데, 원래 초반엔 쓰는 돈이 더 많대. 활동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이윤이 더 남는 거지.”
“으으음…… 난 다음 활동을 할 수가 없는데. 돈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스케줄이 없어.”
예찬은 하경의 대답을 듣고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앓는 소리를 냈다.
눈을 깜빡거리던 하경이 성큼성큼 거실로 돌아왔다.
“아예 다음 활동을 할 수가 없다고? 신인이면 허리띠 좀 바짝 졸라매야지! 너 너무 잘 먹이고 입힌 거 아니야?”
“아니야! 나름대로 아낀다고 아꼈다고!”
철딱서니 없는 동생을 탓하는 듯한 하경의 말에 예찬이 억울하다며 삐죽거렸다.
화면을 내려다보던 하경은 아예 예찬의 의자를 옆으로 밀어내고 컴퓨터 앞을 차지했다.
“형이 잠깐 봐도 돼? ……음, 예찬아. 앨범 사양을 너무 고급으로 냈잖아. 원가 절감을 해야지.”
“아니, 팬들이 받는 건데 그걸 어떻게 깎아?”
“어휴. 너는 사업하면 큰일 나겠다.”
잠시 플레이 기록을 확인한 하경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예찬을 돌아보았다.
진지하게 같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예찬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숨을 내쉬었고, 하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삐딱하게 책상에 기댄 채 두 사람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찬양은 책상에 손을 짚었다가 느껴지는 감촉에 고개를 내렸다.
책상 위엔 까만 글자들로 가득한 쪽지들이 늘어져 있었다.
‘레굴루스, 베가, 리겔, 알타이르……?’
“이건 뭐야?”
쪽지에 적혀있는 글자들을 읽던 찬양이 물었다.
하경이야말로 아이돌 사업하면 팬들 등쳐 먹을 사람이라며 하경의 등을 퍽퍽 두들기고 있던 예찬이 고개를 돌렸다.
“아, 그거. 아니, 연습생들 이름 붙였더니 그룹 이름까지 지으라고 하잖아.”
거기까지 말한 예찬은 민망했는지 괜히 제 뺨이나 목덜미를 쓸었다.
“아무래도 아이돌을 ‘스타’라고들 하니까, 별 이름으로 짓고 싶었거든.”
하경 또한 시선을 내려 쪽지를 확인했다.
“어디 보자. 시리우스, 스피카, 데네브……. 오, 이거 1등성들 이름이구나.”
“……이왕 별 이름으로 할 거면 밝은 별로 하고 싶었달까.”
예찬이 적어둔 별 이름들을 입 밖으로 내뱉던 하경이 알겠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조금 전보다 더 민망한 얼굴로 괜스레 주변을 둘러보는 예찬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하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예찬아, 알고 있어? 사실 별에는 겉보기 등급과 절대 등급이란 게 있어서 이 1등성들이 진짜로 가장 밝은 건 아니란다.”
“뭐야. 갑자기 왜 과학 시간이야? 그리고, 형님. 저 중학교까진 착실하게 다녔거든요?”
예찬은 재미없다는 듯 삐딱하게 의자에 기대 턱을 치켜들었다.
나름대로 불량한 학생을 흉내 내본 거 같은데, 얼굴이 얼굴이다 보니 살벌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응, 형이 미안…….”
빠르게 꼬리를 내린 하경을 바라보던 예찬은 다시 어깨를 으쓱이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거 알고도 겉보기 등급이 밝은 걸로 정한 거야. 아이돌도 별처럼 절대적인 가치라는 게 있을진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해도…… 난 우리 팬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중요할 거 같으니까.”
“오……! 예찬이 멋있는데?”
“아, 뭐래!”
예찬의 대답을 들은 하경은 어쩜 이렇게 기특할 수 있냐며 예찬의 머리를 쓰다듬기 바빴으나, 찬양은 기분이 더 가라앉을 뿐이었다.
‘우리…….’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으면서 예찬은 회사 연습생들과 자신을 ‘우리’로 묶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사람들은 예찬과 ‘우리’로 묶일 가치가 없는 사람들인데.
이윽고 아옹다옹하는 예찬과 하경이 흐려졌고, 정찬양은 잠에서 깨어났다.
* * *
– ‘어떻게든 해내는’, ‘모르는 곡이 없는’, ‘인간 주크박스’……. 오늘도 리더 뽕 치사량으로 채웠다.
└ ㄹㅇ 멤버들이 채워주는 예찬이 부심ㅋㅋㅋ
└ 그런데 주크박스가 뭐예요?
– 애들 자컨 퀄리티 나날이 수직상승하는 느낌임
└ 이것이 대기업의 맛…?
– 근데 난 나올 때마다 보니까 상관없는데 유입들은 찾아보기 좀 힘들 거 같지 않음? 무대랑 뮤비랑 예능 다 한 채널에 섞여 있으니깐… 차라리 예능 채널은 따로 있으면 좋을텐데
└ 그렇긴 한데 채널은 하나로 가는 게 맞음 구독자 수 분산되잖아
└└ 맞아 아이튜브 구독자수랑 SNS 팔로워수 중요하다
└└ 나도 아는데 걍 좀 아쉽다고..ㅠㅠ
어제 올라온 레굴루스의 자체 콘텐츠 ‘메뉴 선정권을 건 노래방 사투’의 반응을 찾아보던 NJ 도지윤 팀장은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
– 채널 카테고리 분류 시급. 재생목록 추가. 최대한 디테일하게. 예능, 무대, 뮤비, 비하인드로? 아니면 활동 별로? 활동 별로라면 연도로? 아니면 앨범으로? 비활동기는?
잠시 멈춰 톡톡 책상을 두드리던 펜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 전용 어플에 안내 링크 추가. 유입이 쉽게. 다른 콘텐츠로 연계는 어떻게?
“후우…….”
한숨을 내쉰 도지윤은 안경을 벗고 잠시 눈을 감았다.
어렸을 때부터 맡은 일은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으나, 레굴루스 전담팀의 팀장이 된 이후론 평소보다 더 일에 몰두해 있었다.
오늘도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단순히 일이 아니라 사심이 섞였기 때문일까.
도지윤의 머릿속에 잠시 레굴루스와 첫 대면이 떠올랐다.
떠밀 듯 전담팀 팀장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대충할 마음은 없었기에 그날 아침까지 도지윤은 급하게 ‘츄즈 마이 프린스 99’ 본편을 전부 시청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비하인트 콘텐츠도 다 보고 미팅에 나갔겠지만.’
다행인 것은 이미 데뷔 조가 정해진 후에 프로그램을 시청했기 때문에, 멤버들 위주로 집중해서 방송을 볼 수 있었던 점 정도였다.
피곤한 와중에도 나름대로 아끼던 정장을 골라 입고 출근했건만, 도지윤을 반긴 것은 아기 새 같은 레굴루스 멤버들이 아니라 오브 기획사의 대표 배해선이었다.
– 새벽이가 해 보고 싶대서 시키긴 하지만, 방송에 문제가 있을 땐 하차시키겠다고. 신 PD님께 듣지 못하셨나 봐요? 참고로 녹음본도 있습니다.
– 미성년자 출연진의 팔이 부러졌는데 그걸 보호자에게 연락도 안 해, 부상이 덧날 수도 있는데 그 팔로 무리한 안무까지 속행해. 소속 아티스트의 건강을 책임지는 대표로서도,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도 충분히 이해될 만한 선택 아닐까요?
– 이미 깨진 신뢰가 말 한마디로 쉽게 해결되겠어요?
‘전달받지도 못한 계약서에 녹음본까지…….’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배 대표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막막했던 터라, 내심 기대하고 있던 레굴루스의 멤버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었던 그때.
– 여러분.
도지윤은 하예찬을 처음 제대로 보았다.
화면이 아니라 실제로 만난 예찬은 좀 더 선명했고, 좀 더 압도적이었으며, 좀 더 미남이었다.
회의실 안을 가득 채운 날카로운 공기 같은 건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듯, 듣기 좋은 저음으로 모두의 시선을 모은 예찬은 말을 이어갔다.
– 세상은 러브 앤드 피스! 사랑과 평화로 해결해요.
그리고 윙크.
‘……윙크는 왜 한 거지? 팬 서비스?’
도지윤은 당시에도 머릿속을 스쳤던 의문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제 좀 친해졌으니 물어봐도 되려나?’
어쨌든 돌이켜봐도 조금 알기 어려운 행동이 섞이긴 했지만, 예찬은 그 순간부터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어떻게 이 사람을 보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신기할 정도로.
예찬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자, 이내 가장 강렬했던 추억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 정확히 말하자면, 음. 자의식이……, 조금 비대하십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 도지윤의 본능은 어렴풋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쫓겨나듯 떠밀린 이 레굴루스 전담팀이 도지윤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되리라는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