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7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72화
배해선을 향해 조심스러운 듯, 조심스럽지 않은 한마디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여럿을 놀라게 한 예찬은 방송에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츄마프 속 예찬은 노래나 춤에 문외한인 도지윤이 보기에도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누구보다 늦은 시간까지 연습에 매진하고, 한참이나 부족한 연습생들도 너른 마음으로 포용하며, 무대에서 가장 빛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그야말로 너른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야무진 어린 새처럼 보였다.
– 오늘을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S등급, 넌 내 것이야.
– 내가 이 구역의 보컬 왕이다!
– 공주님들, 저를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복 받으실 거예요! 앞으로도 저를 뽑고 복 많이 받읍시다!
– 공주님들의 왕자가 되고 싶은 하예찬입니다. 하트 뿅♡
……가끔, 아니 상당히 자주 도지윤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멘트들을 치는 그런 어린 새.
그렇지만 실제로 만난 예찬은 이미 드넓은 창공을 제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독수리였다.
‘……그리고 이상한 멘트를 하지 않았어. 윙크는 했지만.’
성인 남성이 자기소개로 율동을 곁들여 귀요미송을 열창한다 해도 놀라지 않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갔던 도지윤은 아주 조금이지만 아쉽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어쨌건 당장이라도 배새벽의 손목을 붙잡고 회사를 떠날 것 같았던 배해선 대표를 홀로 돌려보낸 예찬은 뒤이어 말했다.
– 도지윤 팀장님, 지금부터 루벨 엔터에 좀 가 보려고 하는데요. 계약은 그 이후에 해도 될까요?
사람의 뒤에서 정말로 후광이 비쳐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도지윤은 그날 밤 사랑에 빠지면 종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사실인지 궁금해하다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또 보람찬 날들이 벌써 10개월이나 이어져 왔다.
인터넷엔 뉴스와 메일을 확인할 때만 접속하던 도지윤 팀장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 익숙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레굴루스의 공식 아이튜브에 새로 달린 댓글들을 전부 확인한 도지윤은 이번엔 레굴루스 공식 SNS에 접속했다.
[노래 부르고 먹은 샐러드 (っ˘ڡ˘ς)]‘기승전샐러드’로 끝난 아이튜브 영상이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멤버들이 올린 사진엔 셀 수없이 많은 좋아요와 퍼가기 및 공유하기가 찍혀 있었다.
└ 나도 오늘 저녁은 닭가슴살 샐러드 먹을게~
└ 얘들아… 샐러드 사진도 좋지만 너희 사진 좀…
└└ 숫가락 보면 애들 얼굴 비쳐요 졸귀
‘시옷 아니고 디귿인데. 그보다 얼굴이 비친다고?’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이미 한차례 확인을 했는데 전혀 몰랐다.
스크롤을 위로 올린 도지윤은 닭가슴살이 푸짐하게 올라간 샐러드 사진을 다시 살폈다.
그러나 댓글과 달리 사진 어디에도 숟가락은 보이질 않았다.
“……?”
도지윤은 다시 스크롤을 내려 문제의 댓글을 확인했다.
도지윤과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마침 댓글을 달았는지, 그 아래로 짧은 대화가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 숟가락이 어디 있는데요???
└└└└ 숟(X), 숫(O) 구석에 있잖아요
└└└└ 숟(O), 숫(X) 어디 구석이요???
└└└└└ 숟(O), 숫(X) – ㅇㅋ / 숫가락 사실 없어요 장난친 거예요
‘숫가락 아니고 숟가락! 시옷 아니고 디귿! 알아들었다면서! 그리고 장난이라고?’
당장이라도 다시 사진이 있는 위쪽으로 스크롤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던 도지윤은 눈을 찌푸렸다.
‘……인터넷엔 왜 이렇게 장난꾸러기들이 많은 건지, 원.’
안경을 벗고 구겨진 미간을 검지로 꾹꾹 누른 도지윤은 다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도무지 질릴 것 같지 않았다.
* * *
– 엄청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언제? 좀 전에! 어디서? 제 작업실에서!
스피커폰으로 설정하지 않았음에도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피대기의 목소리는 연습실을 쩌렁쩌렁 울리기에 충분했다.
아직 추위가 선연한 2월의 마지막 날을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만들어 줄 소리였다.
고막이 터지기 전에 다행히 귀에서 스마트폰을 멀리한 예찬은 그 상태로 피대기에게 대답했다.
“그래서요?”
– 제 작업실로 오시죠! 언제? 지금!
뚝.
제 할 말을 마친 피대기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고, 연습실엔 정적 속에 허망한 수화음만이 울렸다.
“……PiPiPi 작곡가님, 맞지?”
예찬의 눈치를 살피던 심상록이 조심스레 자신이 들은 것을 확인했다.
‘……표정 관리, 표정 관리, 표정 관리.’
등을 진 채 심호흡을 한 예찬은 최대한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아무래도 우리 작곡가님이 또 곡을 갈아엎으신 모양이네요.”
“저런…….”
“놀랍지 않은 게 놀랍네요.”
분명 지난번 수정을 끝으로 마지막이라고 도장을 찍고 녹음 일부터 뮤직비디오 촬영일, 나아가 앨범 발매일까지 확정 지었으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정의탁의 말처럼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놀라는 이는 없었다.
그냥 피대기가 또 피대기 했구나 할 뿐이지.
“……예찬이 너 다녀올 거지?”
헛기침을 한 강해솔이 예찬을 쿡 찔렀다.
예찬은 대답 대신 마주 보고 있던 심상록의 표정을 살폈다.
심상록 또한 이러니저러니 해도 예찬이 예민하기 짝이 없는 ‘작곡가’라는 족속들에게 맞춰 주는 편이니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겠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예찬은 그러마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입을 열었다.
“오늘은 다 같이 가죠. 어디 얼마나 대단한 곡이라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긴 건지, 다 같이 들어 봅시다.”
예찬의 어투는 심드렁했으나, 그렇기에 더 심보가 뒤틀린 것처럼 들렸다.
살금살금 심상록의 곁으로 다가간 선우이경이 속닥거렸다.
“……어우, 예찬이 많이 화났나 봐.”
“그러게……. 피 작곡가님 오늘 피 볼지도…….”
심상록의 대답에 순간 멈칫한 선우이경이 조심스레 물었다.
“……진짜 미안한데 혹시 지금 웃어야 하는 타이밍이었을까?”
“……내가 미안하네. 앞으론 이런 개그 안 할게.”
심상록은 고개를 숙였고, 이에 화답하듯 선우이경도 고개를 숙였다.
‘재밌게들 노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예찬은 연습실 한쪽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매니저를 불렀다.
“형, PiPiPi 작곡가님 작업실로 좀 가야 할 거 같아요.”
“어, 그래. 다들 같이 내려가자고.”
“우리도 따라가겠습니다!”
매니저의 말에 먼저 답한 것은 예찬이나 레굴루스 멤버들이 아닌 신 PD였다.
“좋은 장면을 찍을 수 있을 거 같네요.”
예찬이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돌아보자 간만에 연습실 비하인드를 찍겠다고 찾아왔던 신 PD와 그 일행들은 대답도 듣기 전에 설치해 뒀던 촬영 장비를 야무지게 챙기고 있었다.
예찬은 조금 곤란한 목소리를 꾸며 말했다.
“……PiPiPi 작곡가님께 촬영팀이 간다는 말씀은 안 드렸는데요.”
“작곡가님도 약속 없이 여러분을 부르셨는데 저희라고 못 갈 게 있나요?”
뻔뻔한 대답이었으나 멤버들의 귀엔 무척 달게 들렸다.
“그것도 그렇네요.”
조금 전 고심하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흔쾌히 허락을 남긴 예찬은 빠르게 외투를 챙겨입었다.
우르르 연습실 밖으로 몰려나온 일행은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연습할 때와 먹을 때 외엔 사운드가 거의 비는 순간이 없는 레굴루스답게 당연히 멤버들의 수다는 멈추지 않았다.
오가는 주제는 대부분 일행을 불러낸 PiPiPi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선우이경이 장난스럽게 그 화살을 예찬 쪽으로 돌렸다.
“예찬아, 살살해야 해.”
당연히 예찬이 PiPiPi를 어떻게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말투였다.
이에 동의한다는 듯 채은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아직 리더를 감방에 보낼 각오가 되지 않았다고.”
“아직은 뭐야. 언젠가 그런 각오를 할 생각이야?”
예찬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다들 은연중 채은성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고, 일행은 막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도지윤 팀장과 마주쳤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세요?”
“점심 드셨어요?”
“뭐 드셨어요?”
“맛있게 드셨어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멤버들은 도 팀장을 향해 살갑게 달려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잠시 외부 미팅이 있어서 나갔던 김에 점심 식사까지 마치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요 앞에서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었고, 제법 맛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고 멤버들의 호의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도지윤 팀장은 안경을 치켜올리고 성실하게 하나씩 답변을 했다.
“저흰 잠깐 PiPiPi 작곡가님 뵈러 가는 길이에요.”
멤버들이 질문을 쏟아 내기 쉽도록 살짝 뒤로 물러서 있던 예찬이 대답했다.
“아.”
예찬의 대답에 알겠다는 듯 도 팀장이 눈이 빛났다.
예찬과 짧게 눈빛을 교환한 도지윤 팀장은 고개를 슬쩍 숙인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오늘도 힘내시죠.”
“팀장님도요!”
“저녁은 꼭 든든하게 드세요!”
“다음에 봬요!”
멀어지는 도지윤 팀장에게 애틋할 정도로 작별 인사를 보낸 멤버들은 차에 타서도 도 팀장을 주제로 떠들어 댔다.
“팀장님 어떻게 샐러드만 먹고 일을 하실 수 있는 거지?”
“내 말이.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면 절대 샐러드는 안 골라. 특히 닭가슴살은 더더욱.”
“근데 팀장님 PiPiPi 작곡가님 보러 간다고 하니까 더 안 물으시네.”
“피 작곡가님이 여러모로 대단하시긴 하지.”
“얘들아, 잠깐 쉿. 번호 세고 다시 얘기하자. 안전띠는 다 했지?”
“네!”
매니저의 말에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던 멤버들이 입을 다물었다.
조용해진 차내를 한 번 둘러본 예찬이 먼저 숫자를 말했다.
“하나!”
“……갑자기 하나? 여기 둘이요.”
평소처럼 힘차게 ‘일’이라고 외치는 대신 ‘하나’라고 대답하자 다음 차례인 심상록이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내 예찬에게 맞춰 대답했다.
다음 차례인 선우이경 또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탔다.
“셋 여기 있사옵니다!”
“넷이요.”
“다섯은 여기입니다!”
“……여섯입니다.”
“일곱도 있어요!”
“여덟도요!”
끝에서 두 번째인 정의탁까지 숫자를 불렀고, 남은 것은 배새벽 하나였다. 자신의 차례가 온 것을 깨달은 배새벽은 태연하게 언제나처럼 맡은 숫자를 외쳤다.
“구, 번호 끝.”
“……새벽이도 마이페이스로 어디서 꿇리지 않는다니까.”
선우이경이 고개를 내젓는 것과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 웃을 일도 많은 놈들이라 생각했는데.’
웃음은 정말 옮는 것인지, 예찬 또한 이 별것 아닌 일에 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앞자리의 심상록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고 있었고.
예찬은 티 나지 않게 심상록을 살피던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것 같은데.’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과연 오늘 마지막까지 이렇게 웃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으나 그보단 기대가 더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늘은 2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심상록의 생일은 2월 2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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