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7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73화
얼마간 달린 차는 이내 번듯한 빌딩 앞에 멈춰 섰다.
안전띠를 푼 예찬은 뒷좌석을 살폈다.
“애들은 잠들었나?”
차에 탔다 하면 숙면을 취하는 배새벽과 범세혁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네. 어떻게 이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푹 잠들 수 있을까요?”
배새벽의 옆에 앉아 있던 정의탁이 진심으로 놀랍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 잠이 많은 두 사람이 이동 중 정신 못 차리고 자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다.
정의탁이 놀란 것도 공들인 깜짝 파티를 코앞에 두고도 저리 태연하게 잠들 수 있는 강심장 쪽일 것이다.
“……깨워서 내리자. 작업실에 업고 들어갈 순 없으니.”
“넵. 새벽이 착하지? 얼른 일어나자.”
“세혁아, 일어나야 해. 작곡가님 작업실이야.”
예찬은 조수석에 앉은 심상록이 내린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뒤쪽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혹여 잠결에 헛소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서 내린 판단이었으나 다행히 두 사람 다 눈만 끔뻑거리다 정신을 차렸다.
“지하로 내려가면 돼요.”
예찬의 말에 먼저 차에서 내려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황급히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미친 추위네.’
예찬 또한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앞선 멤버들의 뒤를 따라 빌딩 안으로 몸을 피신했다.
일행의 가장 끄트머리에 자리한 범세혁이 가장 앞쪽에 선 심상록에게도 잘 들릴 수 있도록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와, 잠은 확 깬다.”
‘옳지.’
그에 화답하듯 배새벽도 입을 열었다.
“저는 물 좀 마시고 싶어요.”
‘잘한다.’
다음 순서는 정의탁이었다.
“요 앞에 편의점 있던데, 형이랑 거기서 사 올까? 작곡가님 작업실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잖아.”
‘그거지.’
정의탁이 배새벽에게 형 노릇을 하는 걸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그렇기에 겨우 물을 사러 가는 데 졸졸 따라간다 해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었다.
막내 라인의 두 사람이 빠진 상태로 일행은 지하에 있는 PiPiPi의 작업실 앞에 섰다.
“작곡가님? 저희 왔는데요.”
자연스럽게 가장 앞으로 밀려난 심상록이 문을 두들기며 말했고, 곧 안쪽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문! 열려! 있으니! 들어! 오시! 죳―!”
‘연기 실화냐.’
전화로 들었을 때도 심각하다고 느꼈지만 실제로 들으니 처참하다는 말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언제는 자신 있으니 맡겨달라더니.’
벌써 여덟 번째로 진행하는 멤버의 생일 파티.
거기에 ‘서프라이즈’를 얹으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 피 작곡가님한테 협조를 구하는 건 어때?
그냥 심상록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따뜻하고 훈훈한 생일 파티를 하자는 예찬의 말에 냅다 고개를 저은 멤버들은 조력자의 영입을 추진했다.
확실히 PiPiPi는 깜짝 파티에 어울리는 조력자였다.
‘갑자기 전화하거나 갑자기 불러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거든.’
– 해솔이가 연락하자!
– 아니, 왜 제가…….
– 맞아요! 해솔이 형한테는 마음의 빚이 있으니까 분명 해주실 거예요!
– 난 엮이고 싶지 않은데……. 차라리 뮤즈인 의탁이가…….
– 좋아, 그러면 파티 장소까지 빌려볼까?
– 저기, 다들 내 말 안 들려요?
강해솔의 전화를 받은 PiPiPi는 흔쾌히 돕겠다 나섰다.
말로는 레굴루스에게 여러모로 미안함이 많으니 물심양면 돕겠다 하였으나, 예찬이 보기엔 그냥 깜짝 파티라는 데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딱 봐도 친구가 없었을 상이니까 이런 파티도 처음이겠지.’
그렇다면 저 형편없는 연기도 이해는 간다.
“빨리! 들어오시라고요!!”
물론 이해한다고 해서 두 번 보고 싶진 않지만.
“아, 네, 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피대기가 워낙 다방면으로 이상한 사람인 데다가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보니 심상록이 버럭버럭 소리만 지르는 상대에게 전혀 수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상 미친 피대기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심상록은 재빨리 문을 열었고.
“생일 축하합니다!”
“으응?”
앞으론 먼저 도착해 있던 제작진, 뒤론 멤버들과 매니저에게 둘러싸인 채 축하를 받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맏―형―! 생일 축하합니다!”
뒤에서 떠미는 대로 작업실 한가운데까지 이동한 심상록은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어쩔 줄 몰라 했다.
노래가 끝나자, 편의점에 간다는 핑계로 퀵 배달이 근처에 숨겨준 케이크를 든 막내들이 앞으로 나섰다.
“얘들아…….”
‘……운다고?’
다소 권태로운 기분으로 파티에 참여하고 있던 예찬은 제 눈을 의심했다.
대체 어디서 주문한 건지 살벌하게 커다란 촛불이 일렁이는 탓에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했으나,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시원스럽게 트인 눈매에 맺힌 물기가 선명했다.
‘……심상록인데, 운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심상록이 울다니! 그것도 조금 변주가 있었지만,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을 생일파티에!
“다들 너무 고맙고, 정말 감동했어요. 제 생일을 위해서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준비해 준 우리 멤버들, 매니저 형들, 스탭분들, 그리고 작곡가님, ……정말 고맙다는 말보다 더 값진 말을 하고 싶은데, 생각이 나질 않네요.”
예찬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심상록은 어느새 연말 시상식 대상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매니저나 제작진과 달리 눈치 없이 멤버들 사이에 쏙 끼어 있는 피대기는 심상록이 한마디 할 때마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역대급 리액션을 보여 주고 있었고.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생일 파티일 거 같아요.”
여느 때보다 감성이 철철 넘치는 심상록의 긴 소감이 끝났고, 어쩐지 박수를 보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나도 모르겠다.’
예찬은 그냥 기분에 몸을 맡겼다.
짝짝짝.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화려하게 꾸며진 PiPiPi의 작업실은 이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 * *
“뭐해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예찬이 모호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심상록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은 아마 낮에 보았던 그의 눈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 예찬이. 다 씻었어?”
“네. 형 머리 아직 안 말렸네요?”
생일 특혜로 가장 먼저 씻고 나온 심상록이 머리칼은 아직도 촉촉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심상록은 헤어 디자이너가 머리는 완벽하게 말리고 자라는 당부를 한 이후로 언제나 꼼꼼하게 머리를 말리곤 했다.
“아……. 예찬이 너 먼저 써.”
예찬이 드라이기 사용 순서 때문에 말을 꺼냈다고 생각한 건지, 심상록이 드라이기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찬은 대답하는 대신 심상록의 옆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구 연락 기다려요?”
“……으응.”
어차피 예찬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심상록은 멋쩍은 얼굴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은 여전히 원하는 연락이 오질 않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예찬은 더 묻는 대신 다른 멤버들의 동태를 살폈다.
화장실에선 물소리가 끊기질 않고 있었고, 방 안에선 드라이기 소리가 들려왔다.
“간장 더 넣을까요?”
“그럴까?”
선우이경과 강해솔은 주방에서 내일 먹을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아무도 예찬과 심상록에게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예찬은 목소리를 조금 낮춰 물었다.
“오늘 두 번 울었죠?”
“……당연히 누구 연락을 기다리는지 물을 줄 알았는데. 봤어?”
잠시 놀란 기색을 보인 심상록이 이내 못 당하겠다는 듯 한숨 섞인 웃음을 흘렸다.
‘누구 연락 기다리는지야 뻔하니까.’
예찬은 떠오른 생각을 삼키고 태연히 대꾸했다.
“그거를 못 볼 수가 있나요.”
백번 양보해서 깜짝 생일 파티 때야 정말 잠깐이었으니 착각이었겠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저녁때 진행한 볼프 라이브는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회사로 돌아온 심상록은 일행이 PiPiPi의 작업실에 가 있는 사이 직원들이 꾸며 둔 회의실에서 팬들을 위한 생일 라이브를 켰다.
라이브 알림을 받자마자 들어온 팬들은 심상록이 첫인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로 채팅창을 가득 채웠고, 심상록은 준비해 둔 말을 전부 잊은 채 한참이나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작가가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고 적은 스케치북을 들고 나서야 심상록이 입은 열렸다.
– 어, 음, 다들, 너무 고맙습니다……. 아, 진짜 고마워요……. ……잠시만요.
더듬더듬 감사 인사를 읊조리던 심상록은 아예 의자를 뒤로 돌리고 한참이나 심호흡했는데, 이미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모두 본 다음이었다.
– 다들 고마워요. 이클립틱 덕분에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 후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라이브를 진행했기에 레굴루스 멤버들은 딱히 심상록이 보인 눈물을 언급하지 않았다.
“기사도 엄청 뜨고 있어요. 츄마프 최종 순발식에서도 보이지 않은 눈물을 보인 심상록, 뭐 이런 식으로.”
“와, 민망하다…….”
눈에 띌 정도로 열이 오른 심상록은 황급히 얼굴을 식히기 위해 손으로 부채질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찬은 하던 말을 계속했지만.
“작업실에서 운 것도 카메라에 다 찍혔을걸요.”
“에이, 그때는 운 것까진 아니지.”
“완전 그렁그렁하던데.”
“그렁그렁은 무슨! 그냥 살짝, 아주 살짝 맺힌 거지.”
예찬의 장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꼬리 잡기에 심상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웃는데?’
웃으라고 한 소리도 아니고 그다지 웃긴 말도 아닌데 심상록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게 아닌지 주방에서 나와 이쪽을 확인하고 있는 선우이경에게 예찬이 괜찮다고 손짓을 한 후로도 한동안 호탕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나, 오늘 좀 오락가락했지?”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웃어젖힌 심상록이 여전히 웃음기가 배인 낯으로 예찬을 향해 물었다.
“지금은 확실히 좀…….”
“……생일 축하를 받은 거, 진짜 오랜만이거든. 어머니 돌아가시고 처음인 거 같아.”
하는 말은 울적한데, 그 말을 하는 심상록의 표정은 개운해 보였다.
“…….”
“갑자기 이런 얘기 해서 너무 부담스러울까?”
예찬이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자, 그런 예찬이 신경 쓰였는지 심상록이 조심스레 물었다.
예찬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냥.”
애초에 왜 심상록이 분명 행복해하면서도 저렇게 불안정한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고, 가정사 이야기를 지금 처음 하는 것도 아니니 부담스러울 것은 없었다.
단지.
“저만 들어도 되나 해서.”
심상록이 평소와 다른 것을 눈치챈 것은 예찬만은 아닐 테니까.
그 말은 심상록을 걱정하는 것 또한 예찬만이 아니란 뜻이었다.
예찬의 대답에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던 심상록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은 전처럼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그다지 좋은 얘기는 아니라 다들 불러 모아서 하긴 좀 민망한데.”
속눈썹을 내리깔고 말하던 심상록은 이내 예찬과 눈을 마주쳤다. 서글서글한 눈엔 온기만이 가득했다.
“근데 좀 민망해도 될 거 같긴 하다.”
예찬은 심상록 또한 모두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완벽히 이해했음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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