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7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77화
“이제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
‘뭐라는 거야.’
시계를 확인한 예찬이 은근슬쩍 눈치를 주었으나 황시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찰칵찰칵, 스마트폰 셔터음 소리가 부산스럽게 울렸으나, 대기실 안의 사람들은 놀라우리만치 이쪽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평소에 얼마나 찍었으면…….”
“오, 이거 괜찮다. 예찬. 저기서 꽃 좀.”
예찬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황시우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만 뻗었다.
“……노란 거?”
“노란 거랑 빨간 거.”
“…….”
‘이미 시작한 일이니 차라리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고 빨리 끝내자.’
예찬은 묵묵히 화병에 꽂힌 꽃 몇 송이를 들고 돌아왔다.
“좋아, 좋아. 어울려. ……펭귄은 귀가 없잖아?”
머플러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 두른 곰과 펭귄의 귓가에 꽃을 꽂아 주려던 황시우가 펭귄의 둥글고 매끈한 머리통에 당황하는 사이, 인기척 하나가 다가왔다.
“예찬 씨, 시우랑 놀아 주느라 고생이 많네요.”
“아, 넵.”
“부정하진 않는구나.”
신화 속 등장인물들이 입을 법한 의상을 갖춰 입은 이가원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예찬은 굳이 변명하지 않고 씩 웃었다.
“오늘 의상 멋집니다, 선배님.”
“고마워요. ……예찬 씨도 내가 지금까지 봤던 것 중 오늘이 제일 멋져요.”
유피테르 굿즈로 몸을 칭칭 휘감고 있는 예찬을 새삼스레 바라보며 이가원이 조금 더 진하게 미소를 보였다.
“아, 혹시 응원봉은 있어요?”
“넵.”
예찬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슬쩍 유피테르 공식 응원봉을 반쯤 꺼내 보여 주었다.
참고로 가방 안에는 같은 응원봉이 여덟 개 더 들어있었다.
이가원의 눈빛이 감탄인지 감동인지 모를 빛깔로 젖어 들어갔다.
“이제 슬슬 자리로 가야 할 텐데, 시우는 내버려두고 가 봐요. 시우도 양심은 있으니 징징대지 못할 거예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으나 예찬은 고개를 저었다.
“저 곰돌이를 데려가야 해서…….”
“아.”
예찬이 혹여 대선배님이 삐칠까 봐 여기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자기 인형을 돌려받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가원은 재빨리 움직였다.
인형 사이로 난입한 이가원은 대충 머플러를 풀고 곰 인형을 들어 올렸다.
당연히 황시우는 난리가 났다.
“앗! 무슨 짓이야! 지금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 나올 것 같았는데!”
“됐거든. 자, 여기 곰 씨요.”
자기 팀 리더가 펄쩍 뛰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이가원은 인형을 예찬에게 건네주었다.
‘이런 빠른 전개, 아주 환영해.’
넙죽 인형을 받은 예찬은 감사 인사와 함께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을 물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펭돌이는 펭 씨인가요? 아니면 펭귄 씨?”
“……아핫!”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이가원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곰돌이’와 ‘펭돌이’로 정착된 인형들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기에 조금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이가원은 굉장히 재미있는 소리를 들을 사람처럼 웃어댔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선배님들, 힘내세요!”
이가원에게서 슬금슬금 거리를 벌린 예찬은 빠르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매니저와 함께 바람처럼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이가원이 가라고 했으니까.’
공연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진이 다 빠진 기분이었다.
* * *
“사진 잘 찍었어?”
“어. 나는 안 찍고, 황시우 선배님만.”
“고생했어.”
곰돌이를 매니저와 함께 차로 돌려보내고 초대석에 도착한 예찬을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 반겼다.
예찬은 가방에서 꺼낸 응원봉을 멤버들 손에 하나씩 쥐여 주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새로운 데다 흥미로운 물건을 손에 넣은 멤버들이 또다시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
“오, 멋지다!”
“이것도 예찬이가 산 거지?”
“크, 우리 리더 준비성 미쳤다.”
“얘들아, 이거 스마트폰으로 연동해야 한대. 다들 앱 깔고 블루투스 연결해 보자. 잘 안되는 사람은 옆 사람이 도와주고.”
“네엡!”
레굴루스가 응원봉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어느새 넓게만 느껴졌던 주 경기장 안이 가득 찼다.
콘서트 당사자의 초대를 받고 온 손님치곤 다소 파격적인 차림새의 예찬과 채은성에게 유피테르 팬들의 시선이 종종 모였으나, 두 사람 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보기 좋아서 보는 건데 뭐.’
유피테르 팬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고른 옷은 아니었으나, 미운털 박히는 것보다 저렇게 뿌듯한 눈으로 봐주는 게 훨씬 좋았다.
“어우, 왜 내가 떨리지?”
객석이 찰수록 말 수가 줄어들던 정의탁이 어깨를 움츠리곤 작게 혼잣말을 했다.
“나는 설레…….”
그 옆의 배새벽은 정말로 양 볼을 붉히고 아직 빈 무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두 가지 감정 모두 이해가 갔다.
두 사람의 마음이 일렁이는 것은 단순히 지금까지 방문했던 공연장 중, 주 경기장이 가장 크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츄마프 마지막 무대나 연말 시상식에서도 만 명 단위의 관객을 앞에 둔 적은 몇 번이고 있었으나, 지금처럼 하나의 그룹을 응원하는 팬들로 수만 명이 가득 찬 공간은 처음이지 않은가.
콘서트장 특유의 긴장과 설렘이 옮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딱히 입 밖으로 내진 않을 뿐 막내들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눈길들에 절절히 공감이 묻어나는 것을 보라.
‘나도 오랜만에 왔더니 마음이 좀 들뜨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다.
“의탁아, 화장실 가고 싶은 건 아니지?”
여전히 어깨를 말고 있는 정의탁을 향해 범세혁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그에 대한 정의탁의 반응?
“형은 진짜…….”
그야 뭐 평소와 비슷했다.
멤버들 사이로 작게 웃음이 번지는 사이, 콘서트장 안의 불이 일제히 꺼졌다.
“쉿. 시작한다.”
멤버들은 흘리던 웃음까지 입 안으로 주워 담은 채 숨을 죽였다.
“…….”
어둠이 내려앉은 콘서트장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했다.
팬들이 보여준 일사불란함에 압도되었는지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00:00:48]중앙의 가장 큰 전광판이 켜지고 빠르게 숫자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예찬은 응원봉을 잠시 무릎에 내려놓고 가볍게 손을 쥐었다가 다시 폈다.
귀한 자리에 초대받았으니, 제대로 즐겨 볼 요량이었다.
[Vēnī. Vīdī. Vīcī.] [JUPITER]이윽고 무대 위에 기다리던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장내는 엄청난 함성으로 뒤덮였다.
* * *
약 네 시간에 걸친 유피테르의 콘서트가 끝난 뒤, 레굴루스 멤버들은 따로 대기실에 들리지 않은 채 차로 돌아갔다.
평소와 다르게 차 안은 놀라우리만치 고요했다.
다들 약속한 것처럼 점호를 외운 뒤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었다.
예찬은 왼쪽에 앉은 강해솔과 오른쪽에 앉은 채은성을 한 번씩 살핀 뒤 등받이에 편하게 기댔다.
‘좋은 자극이 된 것 같군.’
아이돌 업계를 대표하는 기획사 안에서도 대표 격인 그룹의 콘서트는 과연 대단했다.
수십 년 동안 회사가 쌓아 온 노하우에 어마어마한 자본과 인재를 갈아 넣은 것이 절로 느껴졌다.
유피테르의 노래와 퍼포먼스야 말할 것도 없이 완벽했고.
‘준비를 철저히 한 게 느껴졌지. 역시 괜히 오래가는 그룹은 아니야.’
“후…….”
예찬이 유피테르의 무대를 떠올리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가냘픈 소리였는지, 아마 당사자는 자기가 한숨을 내뱉은 것을 모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흐으으으음.’
그 대단한 무대들을 보고 나온 멤버들이 이렇게 가라앉은 것은 예찬에게 무척이나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다들 욕심이 있어서 풀이 죽은 거잖아.’
지금 보고 온 콘서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말이다.
‘우리가 콘서트 준비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냥 대단하다, 하고 말 수도 있겠지만…….’
아직 팬들에게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레굴루스 또한 콘서트 날짜와 장소를 잡고 천천히 준비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유피테르의 콘서트는 멤버들에게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아직 데뷔한 지 만으로 1년도 채우지 못한 레굴루스를 데뷔 11년 차인 유피테르와 비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일단 콘서트는 세트리스트만 화려해도 반 이상은 성공이니까.’
발매한 앨범 수며 히트곡 수가 레굴루스보다 거의 10배는 많은 유피테르는 레굴루스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셈이었다.
그렇지만 예찬은 결코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누구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좋지. 아주 좋아.’
그리고 조건이 뭐 어떻단 말인가.
예찬은 데뷔한 이상, 무대에선 선배고 후배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돌이라면 팬들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무대를 보여 주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절로 걸린다.
원래도 열심히 사는 놈들이 내일부터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줄지 절로 기대가 됐다.
* * *
[오늘 윺콘 초대석에 레굴루스 왔더라!] [유피테르 서울콘 1일차 초대석 레굴루스 직캠 모음] [선배 아이돌 콘서트에 선배들 굿즈를 바리바리 싸 온 아이돌이 있다?!] [오늘 자 노란색으로 도배한 아이돌들 그리고 노랑의 신]츄마프 시절, 예찬의 팬으로 시작해 지금은 레굴루스를 온 힘을 다해 응원하고 있는 예찬의 홈마 박모 씨는 쏟아지는 게시물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했다.
‘지금까지 예찬이 스케줄은 다 갔는데……!’
솔직히 유피테르 콘서트에도 올 것 같았다.
그런데 금, 토, 일 모든 날짜를 예매하는 건 실패해서, 토요일에 올 거라고 정신 승리를 하고 말았다.
‘일요일은 세혁이 생일이니 안 갈 거 같았고……. 아니, 우리 애들 콘서트도 아닌데 취소 표 줍는 거 너무, 너무 귀찮잖아!’
그리고 그 작은 게으름은 선배들 응원봉을 휘두르며 노래하는 귀여운 노랑 병아리 하예찬의 실물을 볼 수 없게 만들었지.
‘크으윽!’
화면 속 예찬이 귀엽고 사랑스러울수록 게으른 자신을 향한 원망이 차올랐다.
‘죽자, 쓰레기. 사진만 다 줍고 죽자…….’
차오른 눈물을 삼킨 박모 씨는 이내 새로 올라온 게시물을 클릭했다.
[나 아이돌들 초대석 차지하는 거 되게 싫어했는데]근데 오늘 레굴루스 진짜 개호감이었음ㅋㅋㅋ
솔직히 나보다 더 드레스코드 신경 썼더라ㅋㅋㅋㅠㅠㅠ
그간 개매너 초대 손님들에 학을 뗐는데 레굴루스가 너무 열렬하게 응원하는 거 보니까 막 우리 애들 부심 듬ㅋㅋㅋ
우리 애들 멋지지? 막 소리지르고 싶지?ㅋㅋㅋㅋ 괜히 이러고 있었다ㅋㅋㅋㅋ
└ 나도 그랬음ㅋㅋㅋㅋㅋ
└ 사실 초대석 없었음 좋겠는데 그래도 이런 애들만 오면 참을 만할 듯ㅋㅋㅋ
└ 오늘 시우 자꾸 초대석 쪽 보던데ㅋㅋㅋㅋㅋ 만족한 표정이라 나도 같이 흐뭇했음ㅋㅋㅋㅋㅋ
└ 응원봉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는데 얘들은 자기들이 사왔을거 같음
└└ 나도 그렇게 생각함ㅋㅋㅋㅋㅋ
웃음이 흘러넘치는 게시물을 확인한 박모 씨의 뺨으로 굵은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다시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