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7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79화
이왕 다들 의욕에 불이 붙은 김에 이대로 한동안 연습실 지박령이 되어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 전에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스케줄이 있었다.
연습실 비하인드 촬영을 핑계로 늦은 밤까지 멤버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던 스태프가 곧 생일을 맞을 멤버의 눈을 피해 다른 멤버들에게 눈짓했다.
‘이제 십 분 정도 남았나 보군.’
“얘들아, 잠깐 물 좀 마시고 쉬었다 다시 할까?”
예찬과 마찬가지로 스태프의 찡긋거리는 한쪽 눈을 확인한 선우이경이 괜히 기지개를 켜며 말을 꺼냈다.
“어, 형 웬일이에요?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 읍!”
“그럼 그럴까요? 의탁이 너는 지금 화장실 다녀와. 이따 울지 말고.”
몇 시간 전에 마지막으로 오늘의 계획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꼭 헛소리하는 애들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아니, 무슨, 읍?!”
“꼭 괜찮다고 하는 애들이 나중에 딴소리하더라.”
예찬은 작전이고 뭐고 다 까먹고 진짜로 연습에 과몰입해 있는 정의탁의 입을 틀어막고 아예 연습실 밖으로 쫓아냈다.
‘복도에 던져놓으면 케이크랑 파티용품을 챙겨서 숨어 있는 신 PD가 알아서 잘 주워 가겠지. 정의탁, 너는 케이크 운반책이다.’
정의탁을 해치운 예찬은 연습실 문을 꽉 닫은 뒤, 약 10분 뒤 생일을 맞이할 범세혁의 안색을 살폈다.
“상록이 형, 이거 봤어요?”
“응? 뭔데?”
다행히 예찬의 다소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별반 관심을 보이질 않고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라 조심스럽군.’
벌써 아홉 번째로 함께 맞이하는 멤버의 생일이다.
멤버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정석에 충실한 깜짝 파티를 준비하기로 했다. 원래 튜닝의 끝은 순정이지 않은가.
‘……라는 건 핑계고, 다들 반쯤 포기한 거지.’
솔직히 이 깜짝 파티가 멋들어지게 성공할 것 같진 않았다.
‘범세혁이 바보도 아니고 어느 정도 예상을 했겠지.’
심지어 범세혁과 심상록의 생일이 일주일도 차이가 나지 않다 보니, 준비기간조차 말도 안 되게 짧았다.
‘심상록 생일 파티가 끝난 다음부터 준비했으니…….’
심상록의 생일이 지나기도 전에 심상록을 데리고 범세혁의 파티 준비를 하는 건 심상록의 생일도 뭔가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하라고 떠드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냥 심상록 생일이 끝나기 전까진 남은 놈들끼리만 상의하다가 그 후에 계획을 공유했으면 됐는데. ……내년엔 그렇게 하자.’
예찬이 짧게 반성하는 사이, 저쪽에선 무슨 이야기들이 오간 것인지 범세혁과 배새벽이 물구나무를 선 채로 달리기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저걸 달리기라고 해도 되는 건가? 달리기는 다리로 이동하는 스포츠잖아. 저건 팔로 움직이는데…… 그럼 팔리기?’
“얘들아, 나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예찬이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심상록도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범세혁을 꺾은 배새벽은 어느새 상대를 채은성으로 바꿔 겨루고 있었다.
“너희 진짜 기운도 좋다. 아아, 이게 젊음인가?”
“이경이 형, 며칠 전엔 앞으로 영원한 스무 살로 살 거니 다들 그렇게 알라면서요.”
“흥. 해솔이 네가 섬세한 형의 어떻게 알겠니.”
“…….”
“커흠! 크흐흠! 커어어어억!”
여기저기서 헛소리가 빗발치는 가운데, 열심히 윙크를 했던 스태프가 이번엔 괜히 헛기침을 시작했다.
‘아니, 마지막은 헛기침 수준이 아니잖아. ……신 PD!’
깜짝 파티의 생명은 보안이라며 야무지고 신중한 스태프를 보내겠다던 신 PD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어큭! 커흐흑! 어크흐으으음―!”
“…….”
멤버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은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야무지고 신중한 스태프는 아직도 기침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었다.
예찬은 당장 연습실 문을 열고 ‘신준일 나와!’를 외치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고 생수병을 하나 챙겨 들었다.
“……괜찮으세요? 물 좀 드세요.”
“어크흠! 흠, 흠……. 괜찮습니다.”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열연하고 있던 스태프는 예찬이 다가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졌다.
당연히 자연스러움과는 더 멀어졌다.
‘너무 인위적이잖아…….’
심지어 예찬과 눈이 마주치자 미친 듯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 있다.
‘아니, 알았다고. 알았다니까? ……후.’
아무리 눈으로 신호를 보내도 알아듣지 못하는 스태프는 예찬이 마주 윙크를 날리고 나서야 뿌듯한 얼굴로 헛짓거리를 멈췄다.
‘눈치가 절망적…… 범세혁은 뭘 하고 있지?’
“은성아, 이번엔 나랑 하자!”
한숨을 삼킨 예찬은 이번에야말로 범세혁이 알아챘을 것이라 반쯤 확신하며 뒤를 돌아보았으나, 범세혁은 이쪽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일부러 모르는 척……할 성격은 아니지?’
“예찬 씨, 이거.”
예찬이 다시 시작된 물구나무 레이싱을 구경하는 사이, 주머니를 뒤적거린 스태프가 예찬의 손에 딱딱한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오.’
슬쩍 손을 편 예찬은 자그마한 시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범세혁이 눈치챌까 봐 평소 시계를 차고 다니는 멤버들도 오늘만큼은 시계를 벗어 놓고 온 상태였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피하고 있었고.
12시 정각까지 정확히 2분을 남겨둔 것을 확인한 예찬은 슬며시 전등 스위치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휘겸이 형도 해 볼래요?”
“휘겸이 팔이 길어서 너무 유리할 거 같은데.”
“음…….”
‘저것들은 일부러 연기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물구나무서기에 푹 빠진 거야?’
작전 결행 시간이 코 앞인데 여전히 태연하게 쑥덕거리는 놈들 때문에 괜히 혼란스러워졌다.
그 사이에 낀 범세혁은 여전히 희희낙락하며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8, 7, 6, 5…….’
문밖에는 지금쯤 케이크에 불을 붙인 정의탁과 심상록이 예찬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재고 있을 것이다.
‘3, 2, 1……!’
마침내 모든 시계 침이 12를 가리킨 순간, 예찬은 불을 껐고 동시에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촛불 뒤로 정의탁과 심상록의 미소 지은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
‘이제 다 같이 노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타이밍을 잰 예찬이 막 입을 떼려는데, 어디선가 우렁찬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인간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계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던 케이크도 당황한 건지 멈추어 선 가운데, 연습실 중앙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 생일 축하합니다!]“사랑하는 나 자신!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그곳엔 어디서 난 건지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라고 적힌 발광(發光)하는 띠를 두른 범세혁이 있었다.
엄청난 음량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재생하는 스마트폰을 들고서.
“다들 오늘 3월 5일은 저 범세혁의 생일입니다! 많이 많이 축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제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후우우―!”
“…….”
누구보다 빠르게 셀프 생일 축하를 하는 것으로 모두를 얼어붙게 만든 범세혁은 양손을 흔들며 케이크 앞으로 다가가 촛불을 껐다.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가 워낙 눈부셔서 눈치채는 게 늦었지만, 양손에 낀 장갑과 머리에 쓴 고깔도 빛이 나고 있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현대 과학 문물의 등장에 예찬은 불을 켤 타이밍을 놓친 채, 경악하고 있었다.
‘대체 저런 건 어디서……, 아니 그전에 언제 쓴 거야? 아까 가방 뒤지던 게 저것들 찾은 건가?’
“예찬아, 불 좀 켤게.”
어느새 한 손엔 케이크를 든 채 예찬의 앞까지 다가온 범세혁은 태연하게 예찬의 옆으로 손을 뻗어 불을 켰다.
순식간에 환해진 연습실을 힐끗 확인한 범세혁이 예찬을 바라보며 눈을 반달로 접었다.
이클립틱이 봤다면 눈이 부신다며 감동할 미소였으나, 진짜로 눈부신 것은 범세혁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발광 띠였다.
“범세혁아. 다 좋은데 그거 보니 눈이 아프지 않니?”
밝은 빛 속에서도 여전히 눈부신 띠는 플래시 세례에 익숙해진 아이돌마저 절로 눈을 가늘게 뜨게 만드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아, 그러면 1단계로 조정할게.”
“단계 조절도 된다고?”
“어. 예찬이 네 생일 때도 주문해 줄까?”
“아니,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정말로 눈이 편할 정도로 밝기가 내려간 띠를 가리키며 범세혁이 물었으나, 예찬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와, 세혁이 뭐야. 선수를 뺏겼네.”
“노래 먼저 다시 불러요, 노래!”
그제야 넋을 놓고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두 사람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나니 다들 혼란스럽던 머리가 정리됐는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범세혁을 더듬어 댔다.
“와, 이거 뭐야?”
“장갑도 세트야? 아니면 개별 주문?”
“장갑이랑 고깔이 세트 같은데? 재질이 똑같아.”
“우와! 이거 다른 색도 나오네?”
‘아니, 저걸 정리됐다고 할 수 있나? ……음.’
멤버들을 바라보는 범세혁의 얼굴은 더없이 뿌듯해 보였다.
그야말로 놀이터에 신상 장난감을 사 들고 온 아이와 그 장난감을 보고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즐겁다니 됐다.’
예찬은 깊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깜짝 파티의 ‘깜’자를 내밀긴커녕, 생일 당사자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뭐 어떤가.
생일이란 즐거우면 다지.
‘오늘도 참 좋은 생일 파티였다.’
* * *
“그러면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건 전혀 몰랐어?”
“네! 12시 되면 빨리 꺼내야지, 그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짧게 생일 1차 라이브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대화의 주제는 여전히 범세혁의 생일이었다.
“노래는? 우리가 불 껐는데 어떻게 틀었어?”
“12시 정각에 나오도록 예약해 놨었어!”
채은성의 물음에 범세혁이 실실 웃으며 답했다.
평소엔 이 시간이면 차에 타자마자 뻗었을 놈이 생일이라고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문득 우휘겸의 하루 늦은 생일 파티 때 나눴던 이야기가 예찬의 머릿속을 스쳤다.
– 생일이 언제였는데?
– 합숙 중이었대. 의탁이 너도 몰랐어?
– 세혁이 형이 우리 소속사에 들어온 지 반년밖에 안 됐는걸요. 저도 몰랐죠, 뭐.
– 저도 몰랐어요! 합숙 끝나고 집에 갔는데 미역국 주셔서 알았는데.
그땐 생일에 별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쓴다고 했던 거 같은데.
“생일 진짜 너무 좋아요! 매일 매일 누구든 생일이면 좋겠다!”
그날의 무심함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미리 자기 생일을 위해 소품을 주문 제작하고, 시간에 맞춰 알림까지 맞출 정도로 열정적이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
전에 했던 말이 거짓말 같진 않았으니, 한 해 동안 겪은 멤버들의 생일 파티가 어지간히 좋았던 게 분명했다.
“Happy birthday to me! Happy birthday to me~!”
범세혁은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번엔 영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에 맞춰서 손뼉을 치는 예찬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