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8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81화
“아니, 저거를 저렇게…….”
몇 주 만에 만난 선배님들과 낯을 가리느라 인사 이후 조용히 숨만 쉬고 있던 강해솔도 차마 참지 못한 처참한 CG였다.
마치 예찬이 업은 곰돌이를 검게 칠한 것은 겨우 애피타이저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일부러 저렇게 대충 한 거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CG 덕분에 머리부터 다리까지 일체형인 루돌프 의상을 입고 있을 강해솔의 상태가 밝혀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인터뷰 장면이 끝나고 이어진 오프닝은 황시우의 눈발 휘날리는 코트가 조금 웃겼을 뿐, 화기애애했다.
PD의 부름에 각양각색의 눈썰매가 등장하기 전까진.
MBB 첫 화는 재미있는 부분을 극대화해서 흥미진진하게 편집하면서도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층이 아이돌 팬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즉, 출연한 아이돌들이 최대한 멋지고 예쁘고 또 귀엽게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을 때마저도 다들 얼굴만큼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팬들 반응이 궁금하네. 미리 태블릿 챙겨올걸.’
리액션 녹화 중이라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와 SNS를 구경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었다.
* * *
예찬의 기대대로 팬들은 오래간만에 탄생한 걸작 아이돌 프로그램에 환호하고 있었다.
‘역시 N-net! 믿고 있었다고!’
다른 건 몰라도 아이돌이 엮인 방송이라면 믿고 보는 N-net이지!
직캠도, 음방도, 예능도, 그리고 연말 시상식도 N-net!
프리랜서 정모 씨는 오늘만큼은 모두까기 인형의 탈을 벗고 N-net의 이름에 마구마구 금칠해 줄 의향이 흘러넘쳤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던 방송은 시간이 흐를수록 해이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가파르게 시청자들의 도파민 분비를 위해 달리고 있었다.
살짝 분위기가 식을 것 같으면 어김없이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멀쩡한 썰매들을 다 버려둔 채 비료 포대를 고른 배새벽과 그런 배새벽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빙판용 썰매를 고른 황시우 정도는 그냥 귀엽게 보일 정도의 사건들이 말이다.
[예찬 씨는 2인용 눈썰매를 고르셨군요!] [2인용이요?]바로 지금처럼.
뿌듯하게 눈썰매를 골라서 돌아오던 예찬이 멈칫하고, 저 멀리서 흰 눈보라를 일으키며 요 며칠 눈에 익은 거대 테디베어가 등장했다.
커뮤니티?
당연히 난리가 났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포대기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 예찬이 버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피디 준일이과인 듯 목소리에서 희열이 느껴짐ㅋㅋㅋ
– 근데 화면 왜 이렇게 뽀송하냐? 무슨 필터 쓴 거 같음
└ 나만 느낀 거 아니구나ㅋㅋㅋㅋ 다 얼굴 미쳤음ㄷㄷㄷㄷㄷ
└└ 안 그래도 미친 듯이 캡처하면서 보는 중
– 아까 검정 칠이 이거였구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럼 해솔이는 대체…?
– 뭔데 나 야근 중이라 지금 방송 못 보고 있단 말이야;;; 웃지만 말고 상황 중계 좀;;;;
– 오늘 최고의 등장씬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예찬이 표정 미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래도 알렉산더보단 나은 것 같다 예찬아ㅋㅋㅋㅋㅋ
└ 알렉산더는 또 누구야?
└└ 새벽이 버디
└└└ ?????
[작가님, 프로그램 이름 바꾸실 생각 없으신가요?] [네? 뭘로요?] [MBH, My Best Horror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다란 곰을 업은 채 더없이 진지한 얼굴을 한 예찬의 인터뷰까지 이어지자,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에겐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치 않았다.
곰돌이의 뒤를 이어 펭돌이가 주인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너무 웃어서 배 아프다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엠비비를 올해의 예능으로 선정합니다
└ 아직 3월인데 벌써?ㅋㅋㅋㅋㅋ
– 웬 곰이랑 펭귄 인형인가 했더니ㅋㅋㅋㅋㅋㅋ
– 그래서 해솔이는 왜 얼굴만 동동 떠 있었냐~~~!!!
└ 좀만 기달려봐 담차례가 해솔이임ㅋㅋㅋ
– 해솔이 불안한 눈빛 봐라ㅋㅋㅋ
– 또 뭐 달려오는데?
– 뭔가 작은데???
– 뭐야?
– ?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등장한 것은 산타 인형이었다.
생각보다 시시한 버디의 모습에 제대로 실망하기도 전에 PD가 강해솔을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리고 오늘따라 끝내주게 예쁜 방송 화면 가득 떨리는 강해솔의 눈망울이 담겼다.
[……제가 루돌프인가요?]“풉!”
게시판과 방송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맥주 캔을 기울이고 있던 정모 씨는 상상도 못 한 전개에 그대로 액체를 입 밖으로 흘렸다.
그러나 정모 씨와 달리 뒷모습만 보이는 PD는 흐뭇한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제가, 끄는 거군요.]“미쳤네!”
강해솔이 떨리는 목소리로 산타가 차지한 썰매를 확인한 순간, 커뮤니티는 폭주하는 팬들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고 말았다.
마구 솟는 아드레날린을 분출할 곳을 잃은 정모 씨는 대신 베개를 터트리기로 마음먹고 마구마구 주먹과 발을 날렸다.
“미쳤네! 미쳤어!”
이 황당한 전개에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오직 ‘미쳤다’에서 형태만 살짝 바뀐 것들뿐이었다.
그 사이 화면은 강해솔의 인터뷰 장면으로 바뀌었다.
[옷은 잘 맞으시나요?] [……네.]처음 나온 인터뷰 때 붙어 있던 검정 칠을 뗀 루돌프, 아니 강해솔의 얼굴엔 진한 체념이 묻어났다.
그냥 루돌프 옷을 입은 강해솔을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었는지, 짧은 대답 뒤로 다시 썰매 고르기가 이어졌다.
[껍질로 내려가는 거라고요? 껍질로? 껍질요?]그리고 게시판은 거북이 등껍질을 맨 정의탁의 등장하자마자 복구한 보람도 없게 다시 터져 버렸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MBB, 정말이지 속단하면 안 될 프로그램이었다.
* * *
중간 광고 후, 예고도 없이 무빙워크에 몸을 실은 강돌프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풉.”
“방금 웃은 거 누……, 선배님이셨군요.”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웃음을 참지 못한 놈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뜬 강해솔이 이가원과 눈이 마주치더니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이가원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해솔 씨, 화내도 괜찮아요.”
“……송구합니다.”
“저런.”
물론 그런다고 화를 내면 강해솔이 아니겠지만.
그 사이 화면 속 강돌프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예찬의 뺨을 잡아당긴 강해솔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연말 시상식 때 입었던 것보다 좀 거칠어.] [뭐가?] [털이.]“아, 저거 방송에 나갈 줄 몰랐는데…….”
“나도.”
무빙워크에 카메라를 들고 같이 탄 스태프가 딱 한 명이라 설마 저 장면을 저렇게 제대로 찍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성실한 MBB 제작진은 지상파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강해솔과 레굴루스 멤버들이 변신했던 루돌프 모습까지 충실히 찾아와 자료화면으로 송출했다.
“확실히 저게 더 때깔이 곱긴 하다.”
“그러게. 그냥 봐도 훨씬 부드러워 보이네.”
유피테르 멤버들이 진지하게 두 루돌프 의상을 비교하는 사이, 화면 너머에선 예찬의 장난기에 불이 붙었다.
[가엾게도. 이렇게 털이 볼품없어지다니…….] [진짜네. 왜 이렇게 까칠해요?] [산타가 밥을 잘 안 주나 봐.] [아, 영양실조?]“하, 진짜…….”
강해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를 두고 숙덕거리는 예찬과 범세혁의 모습은 다시 봐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찬은 광고가 나오는 사이 챙겨 온 태블릿으로 실시간 채팅창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 강냥이 갑자기 배 만지니까 놀랐다가 세혁이인거 확인하고 급안도ㅋㅋㅋㅋㅋㅋㅋ
– 나도 하예찬 볼 만질 수 있는데
└ 넌 만지면 은팔찌야
– 예찬이 해솔이 진짜 좋아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머님 해솔이 낳으시고 예찬이 해솔이 기르시고
└ 예찬이가 동생 아님?
└└ 그런 건 사소한 일이란다
– 작곡즈 사이좋은 거 내가 괜히 뿌듯하고 뻐렁참ㅋㅋㅋㅋ
– 형아잡는 동갑즈ㅋㅋㅋㅋㅋㅋㅋ
– 선배님 웃으시니까 해솔이 급정색ㅋㅋㅋㅋㅋㅋ
‘역시 본방송은 팬들 반응을 보면서 봐야 제맛이지.’
흐뭇하게 채팅창을 지켜보는 예찬의 옆으로 그림자들이 몰려들었다.
“혼자만 엉큼하게 웃지 말고 같이 보자.”
“다들 재밌게 보고 있어요?”
누구 혼자 웃는 꼴을 보지 못하는 멤버들이 마구잡이로 얼굴을 들이미는 통에 예찬은 태블릿을 넘기고 나서야 평화를 되찾았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채팅창을 멀리하려던 참이었다.
[예찬아아아아아아아―!] [하예차아아아아아아아안―!] [예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슬슬 그 장면이 나올 때가 됐거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속에서 예찬을 부르짖는 목소리들이 어지러이 뒤섞였고, 예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푸핫!”
“아니 저거 어쩌다 저런 거야?”
“큽……!”
‘아무것도 안 들린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무것도…….’
저기 화면 너머에 출발 지점에 멍청한 얼굴로 엎어져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을 놈은 이미 지나간 과거고 지금의 나랑은 관계가 없고…….
‘……미치겠네.’
애써 잊고 있던 추접한 앞으로 구르다 넘어지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예찬은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 * *
몸으로 하는 예능은 재미있다.
좀 구식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세상에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적어도 정모 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슈퍼 히어로처럼 말도 안 되는 미친 운동 신경을 보여 주는 것도 멋지고 재미있지만 역시 말도 안 되는 몸 개그야말로 몸으로 하는 예능의 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예찬은 크고 탐스러운 꽃송이를 피워냈다.
‘잊지 말자, 3월 16일.’
예찬이가 눈밭을 두 번이나 구른 장면이 방송을 탄 역사적인 이날을!
[아아아아악! 비켜요! 보험 안 돼요! 경고했어요! 경고했으니까 내 과실이 3……!] [저기 썰매야? 조금 협조해 주지 않을래?] […….]출발선에서 거하게 고꾸라진 예찬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원초적인 몸 개그가 난무하고 있었다.
거북이 껍질로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가는 정의탁과 멈춰 버린 썰매에게 진지하게 말을 거는 강연록.
작은 눈썰매에 몸을 구겨 넣은 우휘겸 또한 그냥 미끄러지고 있을 뿐인데 웃겼다.
그 밖에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썰매를 타는 아이돌은 드물었다.
[아, 이길 수 있었는데!]물론 드물다 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료 포대를 타고도 우아하게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한 배새벽과 그 뒤를 바짝 쫓은 황시우는 스포츠 다큐를 찍는 사람들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선배님, 코트 자락에 눈 엄청 붙었어요.] [진짜? 아, 열심히 털었는데…….]멋스럽게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던 황시우가 순식간에 멍청해진 얼굴로 코트에 붙은 눈을 털기 시작했다.
‘……황시우는 빼야지. 쟤는 아무리 봐도 개그캐야.’
팀의 리더라는 건 무서운 얼굴에 미친 개그감을 타고나야 오를 수 있는 자리인 걸까?
정모 씨가 고민하는 사이, 또다시 이것은 개그인가 다큐인가 고민되는 장면이 등장했다.
[……지금 썰매 들고 뛰는 거지?] [네. 엄청 빠르네요.]무시무시하게 눈을 번뜩이며 산타와 산타가 탄 썰매를 끌어안고 눈 위를 날 듯이 달리는 루돌프, 아니 강해솔이 바로 그 장면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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