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8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82화
긴 슬로프를 오직 두 다리에 의지해 달음박질한 강해솔이 기어코 5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먼저 도착해 있던 배새벽과 황시우, 우휘겸, 그리고 이가원은 기다렸다는 듯 강해솔을 둘러싸고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하, 하지 마세요! 뭐 대단한 일이라고……!]가슴에서 우러난 박수 세례에 조금 전까지 광전사처럼 눈을 번뜩이며 달리던 강해솔이 귓가를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불이 붙는 청개구리들이 얌전히 물러날 리가 없었다.
신이 난 상위권 멤버들은 서로의 이마에 순위 쪽지를 붙이고 더 호들갑스럽게 축하하기 시작했다.
[아잇, 이 사람들이!]레굴루스 멤버들만 있었다면 진작에 까불지 말라고 어깨를 붙잡고 짤짤짤 흔들었을 강해솔이었으나, 선배들에겐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애꿎은 목덜미만 문지를 뿐이었다.
‘가여워라. 그나저나 저래서 이마에 붙이고 있었군.’
자랑하듯 숫자를 붙인 채 결승선을 통과한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해왔던 배새벽과 황시우를 떠올린 예찬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화면은 짧게 첫 번째 경기의 순위를 정리한 다음, 곧바로 번외 경기에 이어 썰매 바꾸기로 이어졌다.
강연록이 자신의 썰매를 골라 줄 배새벽에게 재빨리 알랑대기 시작했다.
[새벽아, 사랑한다. 꽤 오래됐어.] [얼마나 되셨는데요?] [작년 5월 30일부터.] [오.]– 분위기 갑자기 뭐냐ㅋㅋㅋㅋㅋㅋ
– 강연록 뜬금없는 사랑 타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두 분 예쁜 사랑하세요♡
– 와 근데 선배분들 레굴루스 데뷔 일 아는 거 왜 감동이지?
누가 봐도 아부하기 위해 시작된 발언이긴 했으나 덕분에 눈썰매장과 채팅창에 훈훈한 공기가 흘렀다.
물론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이다 보니 그 따끈따끈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짐짝처럼 질질 끌고 다니는 펭귄 인형을 촬영 내내 달고 다녀야 한다는 PD의 선언에 주태현이 눈바닥에 털썩 앉았고, 채팅창의 분위기 또한 순식간에 바뀌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라 잃은 태혀니ㅋㅋㅋㅋㅋㅋㅋㅋ
– 근데 그러면 예찬이도 곰인형 계속 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엌ㅋㅋㅋㅋ 타이밍ㅋㅋㅋㅋㅋ 예찬이 나라 열댓 개는 말아먹은 표정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저런 표정이었다고?’
화면 속 처량한 자신의 모습에 예찬은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또 한 명, 짐 덩어리를 종일 끌고 다니게 생긴 아이돌은 작은 반항을 시도했다.
[PD님. 이 산타클로스 선생님은 제 버디가 아니라 고용주였는데, 퇴사 가능할까요?] [될 거 같나요??] [안될 거 같습니다.] [잘 아시면서 왜 물어보셨죠?] […….]– 오늘 해솔이가 활약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고용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근로계약서 쓰고 일해야 해 강돌프~~~~~
눈부신 활약을 하는 강해솔의 이름을 외치는 채팅창을 지켜보던 예찬은 화면 너머보다 더 새빨개진 강해솔을 바라보았다.
“……하예찬, 그만 쳐다봐라.”
“…….”
“아니, 내 나름대로 머리 써서 물어본 거라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꺼이 들어갈 것만 같은 강해솔을 저 멀리서 신 PD가 잘 찍고 있었다.
예찬은 신 PD를 향해 눈짓을 한 번 보내고 위로하듯 강해솔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동정하지 마라…….”
강해솔의 낮은 목소리가 어쩐지 구슬프게 들렸다.
* * *
지독한 감기에 걸린 전 츄마프 작가이자 현 레굴루스 촬영팀 작가 김상희는 이불을 둘둘 만 채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실시간 채팅창이며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켜 놓은 태블릿을 올려놓은 상태였다.
– 애들 코 빨개진 거 봐ㅋㅋㅋㅋㅠㅠㅠㅠ
– 실내로 옮기니까 보기 훨 편하다ㅋㅋㅋㅋㅋㅋㅋ
– 예찬이 루돌프 털 왜 빗는데
– 미친 털이 빗은 쪽만 빛나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수상하게 한쪽만 빛나는 강돌프
– 이거 힐링 우정 프로그램 아니었음? 베스트 버디 어디 감?
– M : my B : buddy B : burst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래서 새벽이 썰매 이름은 대체 뭐가 진짠데?
노트북을 통해 본방송을 시청하며 드문드문 채팅창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볼 때마다 속절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이 버디 버스트……, 큭큭…….’
혹여 입에 든 것을 뿜기라도 할까 봐 미리 타온 따뜻한 유자차는 저 멀리 치운 지 오래였다.
김상희 본인이 출연진인 레굴루스 멤버들에게 진한 애정을 품고 있어서 더 재미있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확실히 재밌는 프로그램이었다.
‘메인 PD가 신준일 PD님이랑 동기랬나? 잘한다더니 진짜 잘하네.’
레굴루스와 유피테르가 아이돌 그룹 중 객관적으로도 웃긴 축에 드는 그룹들이긴 했지만, 그 매력과 재미를 제대로 뽑아내고 있었다.
그때 김상희가 마지막에 확인한 댓글을 본 것처럼 타이밍 좋게 배새벽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새벽 씨. 예선 경기에서 비료 포대를 타고 1위를 하셨잖아요? 자신 있으셨나요?] [저와 알리오 올리오가 함께라면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풉! 쿨럭, 쿨럭!”
뜬금없는 파스타 이름에 사레가 들린 김상희는 황급히 들고 있던 물을 바닥에 내려놓고 가슴을 두들겼다.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것은 유자차를 진작에 치워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배새벽의 황당한 기억력에 대한 생각이었다.
‘알리오 올리오가 왜 나오는데……!’
알렉스, 아니 알렉세이였나? 어쨌든 알로 시작하는 이름을 붙여줬던 비료 포대가 왜 알리오 올리오가 됐단 말인가? 김상희 또한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알리오 올리오가 아닌 것만은 확신했다. 무려 100%로!
그러나 아마 저쪽 작가일 인터뷰어는 굉장한 프로였다.
뜬금없는 음식 이름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배새벽에게 재차 질문했다.
[그러면 좋은 파트너였던 알리오 올리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그리고 배새벽 또한 프로 중의 프로였다.
카메라를 바라본 배새벽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 영광을 알리올리에게 돌립니다. 알리올리, 고마워.]분명 꼬질꼬질해진 패딩에 헝클어진 머리임에도 순간 인터뷰장이 연말 시상식장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새벽이도 그렇고, 다들 점점 더 잘생겨지는 거 같아.’
각자 어떻게 하면 자기 얼굴이 카메라에 더 괜찮게 나오는지 알게 된 것도 있고, 일반인이나 연습생 시절보다 관리를 열심히 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카메라 마사지랄까.
일각에서는 성형설이 슬슬 돌고 있을 정도였다.
‘거의 매일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도 그런 말이 나오다니…….’
멤버들의 연습과 연습, 그리고 또 연습으로만 꽉꽉 찬 일과를 꿰고 있는 김상희가 듣기엔 그저 황당할 뿐이었으나, 그만큼 레굴루스 멤버들의 미모는 놀라우리만치 날로 피어나고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스태프로서도, 팬으로서도, 뿌듯하네.’
배새벽의 인터뷰 장면이 끝난 뒤, 김상희는 좀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
‘나도 저런 프로페셔널한 작가가 돼야지.’
결심을 마친 김상희는 비장한 얼굴로 배달 앱을 열고 파스타 가게를 찾았다.
갑자기 엄청나게 알리오 올리오가 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 * *
‘알리오 올리오 뭔데.’
같은 시각, 예찬 또한 배새벽의 당당한 알리오 올리오 호칭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진 어느 정도 사람의 이름에 가까웠잖아. 알리오 올리오는 좀 아니지 않아?’
그러나 이 현장에선 누구 하나 예찬에게 공감해 주는 이가 없었다.
“와, 알리오 올리오 먹고 싶다.”
“나도!”
“난 크림 파스타!”
“전 토마토요.”
“오븐스파게티!!”
처음엔 조용히 방송에 집중하는 분위기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방송을 시청하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다들 먹고 싶은 파스타 타령만 할 뿐 저 말도 안 되는 이름 붙이기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만 이상하게 느낀다고?’
예찬은 미간을 찌푸린 채 채팅창을 확인했다.
– 알리오올리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원본이 알 밖에 안남았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제 이름도 아니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누가 배알콩 아니랄까 봐 알에 집착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배알리올리
– 배알콩리오올리오
– 알리오올리오 시키고 왔다zzzzzzzzzzzzzzzz
– 난 물 올리고 왔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새벽이 지금 물어보면 또 다른 소리 할 듯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채팅창은 예찬과 마찬가지로 ‘알리오 올리오’가 휩쓸고 있었다.
“우리 끝나고 파스타 먹자!”
“지금 시켜야 딱 맞게 오지 않으려나?”
“여기 의외로 빨리 와.”
“마지막 광고할 때쯤 시키면 될걸?”
“다들 뭐 먹을지 미리 쪽지에 적어줘!”
‘아니, 이쪽도 다른 의미로 휩쓸고 있긴 한데…….’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놈들이다.
속전속결로 주문할 가게를 정하더니 벌써 쪽지가 돌기 시작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이 사태의 시발점인 배새벽은 어디서 주웠는지 알 수 없는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쪽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돌들이 파스타 이름을 부르짖는 사이 방송에선 본 경기가 끝났다. 짧은 인터뷰 화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찬의 차례가 찾아왔다.
[예찬 씨, 아까 예선 경기에서 새벽 씨는 같은 썰매를 타고 1위를 했고 시우 씨는 번외 경기에서 2위를 했잖아요? 조금 아쉬운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 일단 알리시아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건 모두 이 곰…….]“알리시아가 누군데!”
“너무 뜬금없잖아!”
“들어본 적도 없어!”
“우우!”
“예찬이 너 너무 대충 말하는 거 아니니?”
“……?”
허허실실 웃으며 쪽지를 돌리던 아이돌들이 여기저기서 버럭 외쳐대기 시작했다.
예찬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리오 올리오는 되는데, 알리시아는 안 된다고요?”
“당연하지!”
뭐 그렇게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채은성이 굳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흘겼다.
예찬은 건방진 얼굴을 쭉 밀어내며 헛웃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기준인데? ……이거 따돌림 아니야?’
“자 예찬아, 네 차례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예찬의 손에 범세혁이 여기저기 돌고 돈 쪽지를 쥐여 주었다.
“여기 펜.”
다른 손엔 강해솔이 펜을 쥐여 주었고.
‘일단 이것부터 쓰고 다시 얘기를……, 응?’
쪽지를 확인한 예찬은 눈을 깜빡였다.
중앙 부분에 적힌 산뜻한 글씨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게 누구의 글씨인지 떠오르자 잠시 다물었던 입이 절로 움직였다.
“아니, 새벽이 너는 알리오 올리오를 먹어야지!”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화면을 바라보던 배새벽이 예찬을 돌아보았다.
커다란 눈을 한 번 굴린 배새벽은 이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저는 토마토 파스타 파인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