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8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85화
“와.”
“숨 막힌다는 뻔한 소리 하지 마라.”
경차 내부가 커다란 화면에 꽉 들어찬 순간, 황시우가 감탄사를 흘렸다.
그러자 마치 벼르고 있던 사람처럼 강연록이 재빨리 자기 팀 리더가 뒷말을 잇지 못하도록 틀어막았다.
황시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숨 막힌다고 할거였잖아.”
“…….”
정곡을 찔린 황시우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지만, 예찬이 보기에도 숨 막힌다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위로는 콩나물처럼 쭉쭉 자란 청년들이 옆으로는 젓가락처럼 가늘다는 정도일까?
양옆으로 끼고 있는 선배들과 사이좋게 어깨를 포개고 있는 화면 속 예찬은 반쯤 해탈한 것처럼 보였다.
[예찬 씨, 차가 좀 좁았죠?] [예, 좀 많이…….] [이동 시간이 되게 길었는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그냥…….]화면이 인터뷰실로 바뀌었으나, 질문을 받은 예찬의 표정은 차 안에서와 비슷했다.
[……키 크고 싶다?]한층 더 깊어진 눈을 한 예찬이 보일 리 없는 먼 산을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조금 앞 시간대로 돌아가 자동차 좌석을 정하는 장면이 나왔다.
[운전할 사람?] [나, 나, 나.] [오키. 그러면 나머지 중 제일 큰 사람이 보조석에 앉자. 참고로 전 187입니다.]강연록의 곱상한 얼굴에 아이돌이 지어선 안 될 것 같은 비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으…….’
자신의 큰 키를 이용해 비좁은 차 안에서 그나마 숨통을 좀 틀 수 있는 보조석을 노리는 것이 빤히 보이는 수작질이었다.
더러운 수작임을 알아도 딱히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제일 큰 사람이 앞자리로 빠져야 뒷자리도 미세하게나마 살만한 게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강연록은 실수를 저질렀다.
‘적을 제대로 알아 왔어야지.’
귀여운 표정 10종 세트라든지, 겹치지 않게 멋있는 포즈 취하기 같은 걸로 우위를 가렸다면 차라리 가능성이 있었을 것을.
화면 속 의기양양한 강연록보다 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예찬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손을 뻗었다.
[응? 예찬이?]강연록은 딱 봐도 180대 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질 않는 예찬을 의아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예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 밥그릇도 못 챙기고 멀뚱히 서 있는 우휘겸을 끌어당겼다.
[팔팔입니다.] [팔팔? 188cm?]– 하예찬 표정 뭐야 왜 자기가 뿌듯해함?ㅋㅋㅋㅋㅋㅋ
– 예찬이가 휘겸이 낳은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호가호위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원손 낳고 기세등등한 후궁 하 씨ㅋㅋㅋㅋㅋㅋㅋㅋ
슬쩍 시선을 내리자 스쳐 지나가는 댓글들에 ‘ㅋ’이 좀 많이 붙어 있었다.
어쨌거나 제 꾀에 제가 빠진 강연록을 밀어내고 우휘겸을 보조석에 앉힐 때까지만 해도 환했던 예찬의 안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잿빛으로 물들었다.
어느새 화면은 인터뷰장으로 돌아와 있었고, 과거를 회상하던 예찬은 홀로 중얼거렸다.
[딱 8cm만 더 컸으면…….]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자기 키에 불만을 가진 적이 없던 예찬이었으나, 저 날만큼은 정말 간절했다.
예찬의 곱게 모은 두 손이 클로즈업되고, 이어 조금 더 마디가 불거진 손으로 화면이 겹치듯 전환되었다.
이내 예찬과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 우휘겸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익숙해진 예찬이 보기엔 기쁨과 수줍음,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우휘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보면 그냥 무표정일 뿐이지만.
우휘겸의 표정을 읽을 줄 모르는 MBB 메인 PD의 목소리가 조금 흐트러졌다.
[어, 그나마 보조석이 편했을 거 같은데 어떠셨나요?] [네, 편했습니다. ……부모님과 예찬이에게 많이 고맙습니다.]우휘겸 또한 자신의 표정이 남들보다 흐린 편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더 자세하게 답하려는 거 같은데…….’
[네?] [크게 키워 주셔서 고맙고, 잘 챙겨 줘서 고맙습니다.]안타깝게도 우휘겸에겐 현란한 말재주도 없었다. 그저 묵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뿐.
그리고 그런 우휘겸은 상대를 더더욱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아, 넵. 저도 인터뷰 고맙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의아한 목소리로 PD가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예찬은 다시 실시간 채팅창을 확인했다.
– 휘겸이 긴장한 거 커엽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오늘 애들 전체적으로 댕청한데 그래서 더 기여움ㅋㅋㅋㅋㅋ
– 수줍수줍 휘겸이ㅎㅎㅎㅎㅎ
– 휘겸아 미안해하지 마 예찬이도 한 명이라도 앞에 타길 바랐을거야!!
– ?????? 저기 진짜 미안한데 우휘겸 씨 대체 언제 긴장했어??
유피테르의 팬들도 같이 있는 공간이다 보니 이클립틱이 우휘겸을 우쭈쭈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같은 대상을 두고 서로 느끼는 것이 완전히 달라 잠시 혼란스러웠던 채팅창은 이내 웃음과 눈물로 뒤덮였다.
[……연록이 침 흘렸어요?] [아, 예.]차에 타자마자 일주일 정도 밤을 새운 사람처럼 곯아떨어진 강연록의 입가에 흐른 한 줄기 침이 원인이었다.
– 천사인가? 천사인가? 천사인가? 천사인가? 천사인가?
– 시우가 왜 하예찬 씨랑 자꾸 럽스타 하는지 알겠음ㅠㅠㅠㅠ 후배님 마음씨가 태평양이네ㅠㅠㅠㅠ
– 착한 후배 귀하다ㅎㅎㅎㅎㅎㅎ
– 나는 연록이 침 흘리는 거 보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구나! ㅉㅉ했는데 후배님은 진짜 싫은 내색 하나도 안 하네ㅋㅋ큐ㅠㅠ 반성합니다…ㅋㅋㅋㅠ
망설임 없이 손수건으로 강연록의 침을 수습하는 예찬의 모습에 유피테르의 팬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비닐봉지 어디서 나온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선배님들 너무 익숙하신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예찬이도 넙죽 손수건 주는 거 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굴루스의 팬들은 침이 흥건해진 손수건을 자연스럽게 비닐봉지에 넣고 봉인하는 이가원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손수건을 전달하고 수습하는 일련의 과정이 꼭 짠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기에 더 웃겼다.
– 크… 항상 생각하는 건데 손수건 들고 다니는 남자 좋지 않냐? ㅈㄴ 설레…
– 나도 침 흘리면서 자는데 내 침도 닦아줘…
– 이가원 선배님 손은 되게 남자다 캬
간간이 상황에 설레는 팬들도 보였다.
채팅창 밖의 현실에서도 여러 반응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 강연록! 아무 데서나 막 침 흘리고!”
“방송이 아무 데서나야? 예찬이 옆이 아무 데서나냐고!”
“으, 드러워 죽겠네.”
“내가 더러워? 멤버가 더러워?!”
“그럼 깨끗하겠냐?”
건수를 잡은 황시우는 있는 힘껏 인상을 찌푸리고 강연록과 입씨름을 시작했다.
“예찬아, 전에 올라온 비하인드 보니까 나 침 흘릴 땐 내 소매로 닦았잖아.”
“……잘 기억이……?”
이럴 때만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범세혁은 예찬을 물고 늘어졌다.
“나도 잘 때 침 흘리는 편이야. 교과서가 흥건했지.”
“이경이 형, 대학 어떻게 간 거예요?”
“전 피곤할 때만?”
“의탁이는 피곤하면 이를 갈지.”
“……! 저 이 갈아요?!”
“얘들아, 너무 아이돌답지 않은 주제 아닐까…….”
자신의 습관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몰랐던 사실을 깨우치는 사람도 있었다.
“연록. 예찬 씨한테 손수건은 잘 돌려드렸어?”
이가원이 한참 동안 황시우와 입씨름하던 강연록을 불렀다.
황시우를 노려보던 강연록이 돌연 불에 덴 것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아, 손수건! 예찬아, 형이 진짜 까먹은 거 아니고 잘 빨았거든? 향수까지 뿌려놨는데 집에 두고 왔다.”
“네, 다음 거짓말.”
바람처럼 빠른 대답이 옆에서 튀어나왔다.
“황시우!”
“응, 왜 구라쟁이야.”
“시우야, 예쁜 말.”
이가원까지 합세해 거의 완전체가 된 유피테르는 예찬을 뒤로한 채 아옹다옹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손수건은 어떻게 된 건데……?’
잊고 있던 손수건의 행방이 다시금 묘연해지려던 순간, 어깨 양쪽에 턱, 하고 두꺼운 손이 얹혔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어느새 자리에서 벗어난 주태현이 씩 웃으며 예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찬아, 걱정하지 마. 쟤 진짜로 잘 다려서 향수까지 뿌려놨어.”
“아, 넵.”
“너 줄 거라고 투어 하면서 면세점에서 새것도 샀고.”
“아, 그렇게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뭘. 연록이가 산 건데. ……그래서 말인데 예찬아.”
아직도 투닥거리는 유피테르의 세 사람을 슬쩍 확인한 주태현이 자세를 낮춰 예찬의 귓가에 속삭였다.
“연록이가 손수건 주면……, 겨우 이게 끝이냐고 해 주면 안 될까?”
“……네?”
“이자가 시시하다고 한 번만 해 주면 참 좋을 텐데.”
“누가요?”
“내가.”
“…….”
예찬의 떨떠름한 표정에도 주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져 웃었다.
“연록이 되게 송구해할걸? 재밌을 거 같지 않아?”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러 왔나 했더니만 강연록이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는 서프라이즈를 와장창 깨부순 다음, 반응을 구경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선배님.”
“네, 후배님.”
물론 예찬은 들어 줄 마음이 없었다.
‘선배들 사이에 괜히 껴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일 있나.’
예찬이 진짜 1년 차 신인이었으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곤란했을 것이다.
‘선량한 후배에게 연기력까지 요하는 힘든 부탁을 하다니…….’
예찬은 진지한 얼굴로 주태현과 눈을 마주쳤다.
“전 강연록 선배님이 제게 새 손수건을 주시면,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표정으로 뒤로 넘어진 다음 그대로 헤드스핀을 돌 겁니다.”
“…….”
절대 들어줄 마음이 없다는 뜻을 담아 강경한 어조로 말하자 주태현의 눈이 커졌다.
주태현은 놀란 얼굴 그대로 감탄을 내뱉었다.
“예찬이는 헤드스핀을 할 줄 아는구나!”
“…….”
‘아니, 거기에 주목하는 거야?’
“그럼 나 꼭 1열에 앉아 있을게. 직캠도 찍을 거야.”
완전히 흥분한 주태현은 벌써 예찬의 헤드스핀 현장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몰입해 있었다.
“……선배님, 농담이란 말을 아시나요?”
“응? 헤드스핀 할 줄 몰라?”
“아뇨, 그건 아닌데…….”
‘나도 이제 모르겠다.’
그냥 방송에나 집중해야지.
이상한 사람과는 말을 섞어봤자 손해다.
예찬을 도우려는 듯 화면은 마침 봉지에서 컵라면을 꺼내 든 강연록을 비추고 있었다.
“후우…….”
짧게 숨을 들이켠 예찬은 화면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우와아아! 컵라면을 사 오신 그 장면이다!”
“뭐? 컵라면?”
“컵라면이라고?”
“컵 and 라면?!”
효과는 빨랐고, 강했다.
첫 번째 주제가 모두 같다 보니, 예찬의 외침을 들은 다른 팀 팀원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사이에 배신당한 것 같은 얼굴을 한 강연록이 있었다는 건 잠시 잊기로 하자.
‘내가 컵라면 사 오랬나, 뭐. 휴, 피곤하다 피곤해.’
며칠 뒤 답례로 받은 손수건을 앞에 둔 채 핑핑 헤드스핀을 돌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예찬 또한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