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8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86화
자랑스럽게 끓여 먹을 라면 고르기에서 컵라면을 들고 온 강연록을 시작으로 경차 팀의 다사다난했던 추억들이 재생되는 사이, 같은 팀이 아니었던 놈들은 배를 잡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니, 태현이가 저 컵라면만 먹잖아! 내 배려, 모르겠어? 너무 알기 어려웠나?”
“그래, 너 배려의 아이콘이다.”
“팀원들은 배려하지 못했지만.”
“윽…….”
마침내 경차 팀의 산산이 흩어졌던 마음이 어린이용 라면으로 극적으로 모였고, 다른 팀 팀원들은 또다시 배를 잡고 굴렀다.
“와, 다들 너무 투명한 거 아니야?”
“지금 제작진한테 어린이용 라면 먹이려고 저거 산 거지?”
“그렇게 안 맞다가 나쁜 마음 먹으니까 한 방에 맞는 거 봐.”
입만 산 놈들이 아주 물만 난 고기처럼 떠들어댔다.
‘이미 자기들 파트는 지나갔다 이거지.’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요.”
정의탁이 큰 교훈을 얻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앞으로 얼마나 착하게 사는지 두고 보자.’
예찬이 속으로 꿍얼거리는 사이.
간신히 휴게소를 벗어난 경차 조는 그 후로도 고난과 역경의 길을 꾸준히, 그러나 묵묵하지는 않게 걸어갔다.
[아 못해, 못해! 드러누울 거야!]벤치에 널브러진 강연록이 우는소리를 하기 무섭게 반갑단 얼굴을 한 이가원이 제작진을 불렀다.
예찬의 기억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나랑 우휘겸이 화장실 갔을 땐가?’
[작가님, 연록이 버리고 가도 되나요? 없으면 자리가 넓어져서 좋을 거 같은데.] [오, 그거 좋다. 얘 어차피 스파이 같고.] [다들 너무하지 않아? 존재하는 것만으로 자리를 환하게 밝히는 이 미모가 필요 없단 말이야?]차가운 멤버들의 반응에 강연록이 상처받은 척 화를 냈는데, 잘 들어보면 그냥 자기 얼굴 자랑이었다.
잠시 눈을 마주친 이가원과 주태현이 짠 것처럼 똑같은 타이밍에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지금은 예찬이가 있으니까 너는 딱히 없어도……. 그치?] [그렇긴 하지.]주태현이 동의를 구하듯 이가원을 바라보았고, 이가원 또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피테르의 비주얼이자 자신의 얼굴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강연록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와, 진짜 너무해! 언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며!]화면 밖 예찬은 자신에게 모인 시선들을 피해 양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생각했다.
‘포인트 싹싹 긁어 쓴 보람이 있네.’
MBB 촬영이 있던 즈음, 정말 오래간만에 상태창을 확인하다가 포인트가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비주얼에 투자했는데 효과가 제법 큰 모양이다.
‘요샌 퀘스트가 딱히 없어서 포인트도 잘 안 모여서 고민 좀 했는데 좋은 선택이었군. 보컬이나 댄스랑 다르게 비주얼은 올리기 쉽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홀로그램 놈, 진짜 존재감 없지 않아? 상태창 부르면서도 이게 될지 좀 걱정됐다고.’
자신의 선택을 칭찬하던 예찬이 의식이 최근 자주 존재를 잊게 되는 홀로그램 창으로 흘러가는 사이.
옆에 있던 황시우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 하예찬 왜 숨어. 잘난 얼굴 좀 보여 주지.”
“그래요, 예찬이 형. 한번 제대로 보여 주세요.”
정의탁의 목소리가 어쩐지 뿌듯하게 들리는 것은 착각이겠지?
‘그보다 제대로 보여 주는 게 뭔데.’
그렇게 구시렁거리면서도 예찬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은 채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
“이렇게요?”
속으로 숫자를 센 예찬은 언제 얼굴을 숨겼냐는 듯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제일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카메라가 있을 위치를 짐작해서 고개를 든 건데, 그보다 앞에 채은성이 있었다.
“…….”
“…….”
채은성은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고, 뒤이어 찰칵 찰칵하는 셔터음이 연달아 울렸다.
“어우, 얼굴……. 어우…….”
“…….”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는 사이에도 셔터음은 끊이질 않았다.
* * *
첫 방송을 기념해 두 시간으로 편성된 MBB의 1화가 끝나고 벌써 네 시간이 흘렀으나, 레굴루스의 팬들은 여전히 방송을 곱씹느라 바빴다.
– 내일 아침에 핫도그집 열자마자 치즈 핫도그 시킨다
└ 나도 오픈런 할거임ㅋㅋㅋㅋ
– 어린이용 라면 그렇게 맛 없냐?
– 그래서 경차 팀은 스파이 누구 같음? 강 선배님?
└ 의외로 예찬이일지도
└└ 예찬이 뭔가 있었음?
└└└ 아니 걍 예찬이가 스파이면 담주에 분량 많이 받을 거 같아서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전에 휴게소에서 인형 업고 뛰어다니던 사진 찍힌 게 이날이었구나
└ 그렇지 않아도 임스타에 사진 올라왔을 때 그 인형 아니냐고 시끌시끌했음ㅋㅋㅋㅋㅋ
– 얘들아 비하인드 또 떴다!!! (링크)
└ 제작진 안 잠?????
└└ ㄴㄴ 엔넷 아니고 레굴루스 갠채널임
└└└ 아아… ‘신’ PD인가…
“쿨럭, 쿨럭!”
모니터링에 열을 올리고 있던 레굴루스 전담팀 작가 진수연은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댓글을 확인하고 연달아 마른기침을 뱉었다.
‘무, 뭐, 무슨 PD?’
찔끔 맺힌 눈물을 닦아 내고 다시 화면을 확인했으나, 진수연을 놀라게 만든 댓글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아아… ‘신’ PD인가…
└└└└ 갓준일 찬양해
└└└└└ 갓 피디 넌 평생 이클립틱이야
└└└└└└ 외쳐 신(GOD)준일
‘뭐지. 깜짝 카메라인가?’
깜짝 카메라가 아니고서야 세상 사람들이 신 PD를 칭송할 리 없었다.
‘아니, 최근 팬들 반응이 좀 호의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신’이라든지 ‘갓’이라든지 불리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클립틱, 츄마프 시절을 다들 잊은 건가요? 그 남자는 그때랑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요. 근본은 똑같다고요! 다들 츄마프 때는 신준일 죽어라가 건배사였다면서요!’
진수연은 신 PD가 츄즈 마이 프린스 99 이전에 서브로 맡았던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다가 스케줄에 치여 꽤 오랜 시간 업계를 떠나있었다.
츄마프가 끝나고 신 PD의 악행이 터질 땐 쌤통이라며 분명 기립 박수까지 쳤었는데 어쩌다 레굴루스 전담팀으로 굴러들어 왔는지…….
‘내가 미쳤지, 미쳤어.’
예전과 달리 지금은 천사가 됐다는 주변 스태프들의 평가와 정말로 피사체를 사랑하는 게 느껴지는 요즘 작업물들을 보고 제대로 속아 버렸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사람 바꿔 쓰는 거 아니라는데…….’
같이 일하는 스태프 입장에서 보면 지금이 더 최악이었다.
오늘 저녁에 찍은 영상을 내일 편집해서 올리면 충분히 빠르지 않은가?
‘아, 지금이 이미 내일이긴 하구나. ……어쨌든!’
그러나 지독한 신준일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스태프들을 편집실에 밀어 넣었다.
– 비하인드는 속도가 생명이라니까. 신선도가 떨어질수록 팬들의 만족도 떨어지는 거라고. 이렇게 좋은 영상을 찍었는데 가장 좋은 순간에 보여주는 게 서로 좋지 않겠어요? 풀영상은 내일 오후에 편집하고, 지금은 하이라이트 영상만 뽑아 봅시다.
‘영상이 무슨 야채야? 신선도는 얼어 죽을……. 차라리 좋은 거 찍었으니 팬들한테 빨리 자랑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든가.’
진수연이 보기엔 신 PD가 레굴루스 덕질에 제일 진심이었다. 이 미친 짓들은 전부 신 PD가 좋아서 하는 짓이란 뜻이었다.
‘영상에서 느껴지는 사랑만 보지 말고, 영상이 올라오는 주기도 좀 볼걸…….’
365일 중 360일은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는 레굴루스의 채널을 잘 확인했다면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을 텐데.
“수연 작가님, 이것 좀 확인해 주시겠어요?”
“아, 잠시만요.”
머리를 쥐어뜯던 진수연은 신 PD에 대한 것은 일단 머릿속에서 지우고 스태프가 건넨 태블릿 화면을 확인했다.
다크서클이 인중까지 내려온 스태프가 그런 진수연을 내려다보다 흐뭇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애들 오늘 진짜 잘 나왔죠?”
“네? 아, 네…….”
“아까 보여 드렸던 영상 기억하세요? 전 그것도 지금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PD님은 그냥 풀버전에만 남기자고 하시네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팬 사인회에서 동태눈깔이 되는 아이돌에 대해 종종 듣곤 했다.
실제로 방송 중에도 눈깔에 힘이 없는 연예인들을 본 적도 있고.
“……아, 정말요?”
진수연은 지금 자신의 눈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진수연의 대답에 영혼이 1g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건지, 아니면 상관이 없는 건지.
스태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이쯤 되면 태블릿을 보여 주러 온 게 아니라 수다를 떨고 싶어서 온 것처럼 보일 정도다.
“신 PD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면만 너무 미는 거 같지 않아요? 물론 반응이 좋긴 하지만……. 저는 이런 소소한 장면도 우리 애들의 귀여움과 관계성을 보여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애들…….’
20대 후반의 남성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에 이르는 동성 아이돌을 지칭하는 단어라기엔 너무 간질거렸으나, 이곳에서는 너무 익숙한 호칭이었다.
“오늘 애들 옷 예쁘다. 광고하는데 거지? 내가 입으면 너무 다르려나?”
“사, 사. 애들이 광고한 다음부터 매출 팍팍 올랐다고 기사 뜨게 막 사 버려.”
“저 그렇지 않아도 교복 샀어요, 히히.”
“……그거는 좀 미친 거 아니니?”
“예찬이 아까 예쁜 짓한 거는 오늘 안 올리나?”
“아아, ‘이렇게요’! 진짜 잘 나왔더라. 카메라 감독님 아까 모니터링 하시면서 예술 작품 나왔다고 울었어.”
“그거 예약 걸어 뒀어요. 아까 은성이가 찍은 사진도 받아 왔잖아요.”
“PD님 아까 비하인드 먼저 공개하게 해 달라고 은성이한테 빌던데. 임스타엔 나중에 올려 달라고.”
“어이쿠.”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여기저기서 레굴루스 덕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편집실인지, 아니면 이클립틱 정모 장소인지…….’
덕분에 스태프들의 직업 만족도는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이런 사람들한테 요새 일할 만하냐고 물어봤으니 당연히 좋다고 대답하지.’
이렇게 나이와 성별을 초월해 다들 레굴루스에 진심으로 몰입해 있으니 신준일 PD가 스태프들을 아무리 지지고 볶고 굴려도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 물론 우리 애들이 잘생기고, 순하고, 매력 있고, 노래 좋고, 성실하고, 싹싹한 건 나도 인정해! 이런 연예인 세상에 드문 것도 인정하고! 그런 애들이 아홉 모였다? 기적이지, 기적이야! 아무리 그래도 일하는 걸 이렇게 좋아할 수가 있나? 물론 돈은 많이 주지만! 그래도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왜 존재하는데! 이해하기 힘든 열정……, 아.’
속사포처럼 속으로 불평을 쏟아 내던 진수연의 생각이 멈췄다.
“여기 상록이 혼잣말 자막이 안 달렸는데요? 이거 빼먹으면 안 되죠. 엄청 귀여웠는데!”
“어, 정말이다. 큰일 날 뻔했네요!”
“수연 씨, 여기도 좀 봐줘!”
“네, 지금 가요!”
사람을 가차 없이 굴리는 신 PD와 일이 넘치는 현장에 대한 불만을 완전히 잊은 진수연은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왕 올리는 영상, 완벽하게 편집해서 올려야하지 않겠는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수연 또한 지갑 안에 팬클럽 회원 카드가 들어있는 이클립틱이었기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