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8화
지찬수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카페에 모습을 드러냈다.
뛰어오느라 조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뿐 놀라우리만치 건장한 체격과 안색에 예찬은 담임을 한 번 노려봐 주었다.
들어오자마자 사과하려는 지찬수를 제지한 예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은 이만 학교로 들어가 보시고요. 너, 아니, 지찬수 씨는 저희랑 같이 서울로 가시죠.”
“서, 서울이요? 왜, 왜요.”
지찬수가 바르르 떨었다.
참 비슷하게 역겨운 사촌이었다.
“서, 설마 방송국에 가서 사죄 방송을 시키려고…….”
‘뭔 개소리야.’
예찬은 빠르게 지찬수의 망상을 끊었다.
“변호사 사무실에 가는 겁니다. 고소 없이 넘어가는 대신 앞으로 더 이상 이런 헛소리 하지 않겠다는 확증이 필요해서요.”
“벼, 변호사요?”
“네, 문제 있습니까?”
예찬이 짜증스럽게 노려보자 지찬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예찬은 지찬수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FD에게 보내 둔 우휘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만났어. 같은 차 타고 올라가긴 좀 불편할 테니 내가 지찬수 씨랑 택시 타고 올라갈게.”
[……아니, 난 괜찮아. 같이 타고 가자.]예찬은 지찬수를 힐끗 보고 다시 말했다.
“무리할 필요 없어.”
[괜찮아. 무리하는 거 아니야.]그렇게 말하는 우휘겸의 목소리는 정말로 괜찮게 들렸다.
예찬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지찬수를 데리고 FD의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알아서 해명문을 쓰라고 내버려 두는 것보다 데리고 올라가는 편이 깔끔하지. 이 이상 시간 낭비는 사절이다.’
주차장에 거의 다 와 갈 무렵, 예찬이 지나가듯 물었다.
“폭로 글은 왜 쓴 겁니까? 정말로 휘겸이가 방송에 나오는 게 거슬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지찬수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왜 폭로 글이 올라오는 타이밍이 달라진 건지 궁금했다.
정찬양이 엮여 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 상태로 봐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무어라 더 캐 보기 전에 차 밖으로 나와 있던 우휘겸이 빠르게 다가왔다.
예찬은 지찬수를 뒤에 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왜 나와 있어. 조수석에 타. 지찬수 씨는 저랑 뒤에 타시죠.”
말도 섞지 못하게 두 사람을 떼놓은 예찬은 차에 탄 다음 FD에게 물었다.
“FD님, PD님한테 아시는 변호사 분 계시는지 여쭤봐 주실 수 있나요?”
안타깝게도 이번 회차에서는 아직 대형 로펌은커녕 햇병아리 변호사와도 친분이 없었다.
그러나 진짜로 변호사를 수임하진 않더라도 지찬수를 겁먹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때 우휘겸이 소심하게 입을 열었다.
“변호사라면 우리 어머니한테 말해 볼게. 어머니가 로펌에 다니셔서…….”
“로펌?”
우휘겸의 입에서 나온 로펌의 이름에 예찬은 기함했다.
리스피릿 시절 몇 차례 신세를 졌던 대한민국 굴지의 대형 로펌이었다.
‘……아니, 이런 어머니를 두고 왜 그렇게 당했지? 진짜 알 수 없는 놈이네.’
네 사람을 태운 차는 다음 목적지인 서울로 출발했다.
예찬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지찬수가 헛짓거리하지 않는지 싸늘한 눈으로 감시했고 지찬수는 반쯤 울었다.
익명 사이트에 추가로 글이 올라온 것은 그로부터 약 다섯 시간 뒤의 일이었다.
* * *
[우휘겸 관련해서 해명 글 올립니다.]게시글의 댓글 창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사실을 은폐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부풀린 자신의 치기 어린 글로 일이 이렇게 크게 번질 줄 몰몰랐다.
우휘겸과 츄마프 관계자들에게 너무 송구하기 짝이 없다.
위의 내용을 길게 늘여 놓은 해명 글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쓴 만큼 첫 문장부터 마지막 온점까지 명료했고 시종일관 저자세였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예찬은 지찬수가 폭로 글을 올리게 된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본인과 좋지 않은 관계였던 우휘겸이 방송에 나오는 것이 거슬리던 중, 우연히 SNS에서 만나 급속도로 친해진 지인이 있었다.
그 지인이 자신이 옛 동창의 과오를 공론화시켜 사회적으로 매장했다고 자랑하기에 지찬수도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했다.
공론화 글을 쓰면서도 그 지인에게 몇 번이나 내용이나 증거에 대해서 이런저런 상담을 했는데, 단체 여행 사진 같은 것 말고 좀 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대중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에 학폭위 개최 통지서를 떠올렸다고 했다.
물론 예찬이 그 말을 듣고 SNS를 확인했을 땐, 그 지인이란 놈은 이미 SNS 기록을 전부 지우고 탈퇴한 상태였다.
정체가 누구인지 짐작은 갔으나 직접적으로 공론화를 부추긴 게 아닌 이상 찾아낼 명분도 없고 찾아내기도 어려울 것이었다.
‘학폭 누명을 벗은 걸로 지금은 만족하자.’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 있었다.
늦은 밤 합숙소로 돌아온 예찬과 휘겸은 먼저 메인 PD를 만났다.
PD는 무척이나 흡족해하며 두 사람의 어깨를 몇 번이나 두들겼다.
내일 경연도 기대한다는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벗어난 두 사람은 곧장 연습실로 발을 옮겼다.
연습실이 가까워지자 뒤에서 쫓아오던 우휘겸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뭐야?”
“……오늘 정말 고마워.”
잠도 못 자고 마음고생하며 온종일 돌아다닌 탓인지 우휘겸의 모습은 초췌했다.
그러나 감사를 표하는 얼굴은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예찬은 이 기회에 제대로 도장을 찍기로 했다.
“야.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 봤으면 당연히 느꼈겠지만, 난 널 데뷔하게 만들 거야. 널 오해하고 피했던 거, 전의 사과 한 마디로 퉁칠 생각 전혀 없어. 두고두고 갚아 줄 테니 얌전히 나랑 데뷔해라.”
예찬의 말이 이어질수록 우휘겸의 눈이 커졌다.
우휘겸은 묘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정말 고맙긴 한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충분히 오해할 만한 일이었고 이번에 도와준 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정하는 건 나야.”
예찬이 단호하게 말했다.
‘넌 모르겠지만 내가 너를 오해한 게 한두 달이 아니거든.’
리셋 하는 내내 우휘겸을 욕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 갚을 길이 멀었다.
우휘겸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예찬의 말에 수긍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 파티 (4/9)
― 하예찬 (파티장)
― 심상록
― 우휘겸
― 정의탁
파티원에 등록된 것을 보면 말이다.
“늦어!”
연습실 문을 열자 남지유의 호통 소리가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반겼다.
“휘겸아, 진짜 고생했어! 해명 글 올라온 거 우리도 다 봤어!”
뒤이어 달려온 임채진이 우휘겸의 주변을 빙빙 돌며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냈다.
“야, 채진이 진짜 오늘 내내 투덜거렸다~! 그래도 너희 파트 바꿔서 연습하자는 말은 안 하더라.”
남지유의 말에 우휘겸의 어깨를 공손히 주무르던 임채진이 눈을 흘겼다.
“당연하죠! 어차피 얘네 없으면 우리 조는 끝인데! 흠흠, 둘 다 고생 많았어.”
다소 솔직한 발언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기 어린 얼굴로 예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만, 발목 잡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찬의 말에 기태랑이 입술을 꽉 깨물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얼굴까지 시뻘게진 게 굉장히 감동한 눈치였다.
“형님이 제 발목을 잡는다면 그것도 영광이에여!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여!”
“자, 이걸로 완전체가 되었으니까 마지막까지 열심히 맞춰 보자고! 다들 잠잘 생각은 접어 두고!”
남지유의 말에 연습생들이 힘차게 박수까지 보내며 호응했다.
배새벽도 시끄러운 틈을 타 슬쩍 다가오더니 고생했다며 한 마디 건넸다.
다들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했었는지 연습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조원은 아무도 없었다.
예찬은 씩 미소 지었다.
이 구성원으로 어쩌면 좋을지 막막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보니 조 운은 좋았던 모양이다.
* * *
경연 당일, 뽑기로 정한 무대 순서에 맞춰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네 번째 순서로 리허설을 마무리한 예찬의 곁으로 먼저 리허설을 끝내고 메이크업까지 마친 심상록이 다가왔다.
“컨디션은 어때? 어제랑 그제 거의 못 잤다며.”
맨몸에 가죽 재킷을 걸치고 체인이 주렁주렁한 귀찌형 피어싱까지 하고 있는데도 어딘가 단정해 보였다.
‘너무 모범생처럼 생겨서 다양한 스타일링은 어렵겠는데. 아니, 자기 느낌대로 살리고 있으니 괜찮은 건가?’
데뷔 후 콘셉트를 잠시 고민하던 예찬은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대답했다.
“아주 좋아요.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분발하는 느낌?”
“다행이네. 휘겸이 일 때문에 고생 많았다며.”
“저보단 우휘겸이 고생이었죠.”
심상록은 사람 좋게 웃으며 오늘 서로 잘하자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조원들 곁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막 메이크업을 끝낸 남지유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서 귓속말을 시작했다.
“상록이 형이 뭐래? 역시 우리 정보를 빼 가러 왔나?!”
“서로 리허설 다 보는데 빼 갈 게 있나요.”
“어우, 야. 너는 어린애가 왜 이렇게 낭만이 없어.”
겨우 두 살 연상이면서 예찬을 꼬마 취급하는 남지유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장난을 치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예찬이 떨떠름하게 반응하자 이번엔 양손 위에 턱을 괴더니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하, 진짜 우리 예찬이 의리 있고 똑똑하고 잘생겼는데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랩까지 잘해서 어쩌냐. 진짜 너 아니었으면 형은 지금쯤 울고 있었을 거야.”
“왜 갑자기 비행기를 태우세요.”
“비행기는 무슨. 사실을 말하는 거지. 상록이 형네가 저렇게 잘하는데 우리가 주눅 들지 않고 있는 건 전적으로 예찬이 네 덕이라니까. 다들 너한테 많이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알지?”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임채진과 기태랑은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려고 돌아온 방에서 잠들기 직전까지 고맙다, 아니 내가 더 고맙다, 무슨 소리냐 내가 제일 고맙다 소리를 반복했고 말 수 없는 배새벽마저 리허설을 끝내고 많이 배웠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들 성격이 너무 급한 거 아니에요? 아직 본 무대는 하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간지러운 기분에 예찬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남지유가 피식 웃었다.
“그때 말하면 좋은 결과에 분위기 타서 얘기하는 거 같잖아. 모두 그 전에 진솔한 본심을 전하고 싶은 거지.”
“결과가 좋을 거라고 확신하네요? 자신 있나 봐요.”
“없을 리가!”
청 재킷을 뒤로 휙 젖히며 벌떡 일어선 남지유가 예찬을 내려다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누구 씨가 기획한 무대가 너무 완벽해서 벌써 자신이 넘친다구. 뭐 상록이 형네도 정말 잘해서 백 퍼센트 이긴다는 확신은 없지만, 후회 없는 무대를 할 자신은 있네.”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편 남지유가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Don’t bother’ 1조 파이팅!”
“파이팅!”
어느새 합류한 기태랑과 임채진도 양팔을 위로 들고 흔들었다.
그 뒤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배새벽과 우휘겸도 소리를 들었는지 손을 반쯤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이마를 짚은 예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맴돌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