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9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92화
‘개화(開花)’의 첫 번째 티저는 좋게 말하자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다르게 말하자면 무척 불친절했다.
검은 배경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동시에 가야금을 튕기는 소리가 울리는 것으로 끝이 나는 짧은 영상이 공개되고, 팬들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 가야금 소리에 제목 개화… 이거는 누가봐도…ㅋㅋㅋㅋ
└ 그니깐;; 이번 타이틀 빼박 한국풍일각임;; 솔직히 에바 아니냐;;;
└└ 내말이 그말임 해외 반응 좋을 때 노 저어야 하는 거 아님?
└└└ 나 다 걸고 츄맢때 최애무대 시나브로고 동양풍 처돌이지만 지금 타이밍에 이건 아닌 거 같음
└└ 아니 나는 좋아서 쓴건데….?; 티저 간지 쩔잖아…?
– 난 솔직히 이번 앨범은 전부 영어가사로 나올 줄 알았음
└ 해외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내려면 그게 맞긴 함 일단 시작점부터 다름
└└ 난 해외 노리고 영어로만 가사 내는 거 개시른데 그게 무슨 케이팝임
└└└ 싫은 건 니 사정임 애들 미래 생각하면 해외 진출이 답임
└└└└ 내 생각에도 길게 보면 해외에서 성공해야 함 해외에서 떴다 그러면 국뽕차서 국내에서도 빨아줌
└└└└└ 아니 애들이 해외에서 빨리면 내가 좋을 게 뭐임??? 난 영어로 샬라샬라하는 거 싫다고
└└└└└└ 해외에서 잘 나가면 버는 돈 단위가 달라지는데 너 싫은 게 의미가 있겠냐?
– 크 티저 짧은데 부내보소ㅋㅋㅋ 역시 대기업의 자본ㅋㅋㅋ 질리지 않는군
– 윈터링이야 스페셜 앨범이니깐 그러려니 했는데 애들 내수용으로 키울거냐고ㅡㅡ
– 제발 한복 입고 나와줘 한복한복한복
└ 갓도 써줘 갓갓갓
– 엔제이 아이돌 안 키워봐서 암것도 모르는 듯
– 외국애들 동양풍 환장하지 않음? 갓 존나 멋있어 한다고 들은 거 같은데?
– 발매일 뽕하긴 하는데 한편으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함
– 티저 계속 돌려보는 중 미친 듯이 기대감 상승하고 있다
– 작곡가 왜 피피피임? 얘네 작곡돌로 홍보 많이 돌지 않음? 벌써 밑천 떨어짐?
└ 아직 데뷔하고 365일도 안 된 애들한테 밑천ㅋㅋㅋㅋㅋ
└└ 아직 365일도 안 됐는데 떨어졌으니까 더 답이 없지 ㅂㅅ아
– 근데 타임테이블부터 이미 이번 앨범 한국풍이요~ 하고 땅땅하지 않았음? 왜 이제와서 시끌시끌한거임??
└ 예상보다 더 한국풍이라?
└└ 가야금 한 번 튕겼는데 더 한국풍 이지랄ㅋㅋㅋㅋㅋ
└└└ 내가 보기엔 지금 망했다고 염불외는 놈들 다 어그로임ㅋㅋ
└└└└ 222 어그로들 망하라고 고사지내는중임
└ 타임테이블 공개됐을 때도 지랄이 풍년이었어ㅋㅋ
└└ ㅋㅋㅋㅋ나도 게시판에서 하도 소란이라 레굴루스 벌써 앨범 냈는데 소리소문없이 망한 줄 알았음ㅋㅋㅋㅋㅋㅋ
작년, 레굴루스는 신인상과 대상을 함께 거머쥐며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 없는 데뷔 첫해를 보냈다.
지금껏 K-pop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파른 성공에 팬들은 더없이 흥분해 열광했고, 안티들은 하루라도 빨리 레굴루스가 고꾸라지기를 기도했다.
바쁜 와중에도 하루의 마지막은 SNS와 커뮤니티를 가볍게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끝내는 예찬은 이번 앨범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 전부 안티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레굴루스가 데뷔 이래 꾸준히 오르막길만 걸었기에 거기에 오점이 남는 것을 두려워하는 팬들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택톡 챌린지로 해외 반응이 괜찮았으니 더 그럴만하지.’
아이돌 업계에는 성공한 교본도 실패한 교본도 아주 많이 널려있었다.
해외에서 반응이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그 물살을 탄 그룹들이 한층 더 성공한 것을 많은 이들이 보아왔다.
그렇기에 업계 관계자들과 팬들 대다수가 레굴루스의 다음 앨범은 글로벌 시장을 노린 앨범이리라 예상했었다.
연차에 비해선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실적은 이미 충분했으니.
실제로 도지윤 팀장을 통해 고전 한국풍 곡을 발매한다는 계획을 전달했을 때, 이 업계 사정에 그다지 밝지 않은 회사의 높으신 분들마저 걱정을 금치 못했었다.
그러나 가장 높은 곳에 서 본 예찬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돌이 그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명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크게는 실력과 자본, 그리고 운 정도였으나,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그 목록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그룹을 유지하는 데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 또한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좋은 곡’, 그리고 ‘좋은 무대’는 필수 불가결이었다.
그리고 예찬은 ‘개화(開花)’에 확신이 있었기에 쉴 새 없이 떠드는 말들에 어떠한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래.
무대 위에 선 예찬은 드디어 이곳에 섰다는 것에 대한 오롯한 기쁨만을 느끼고 있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무대 중앙에 바짝 모여있는 아홉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엇갈리듯 신체의 어딘가를 맞닿아있는 멤버들의 자세는 누구 한 명 같은 것이 없었으나, 유기적으로 하나의 원을 그려내고 있었다.
지미집 카메라로 공중에서 그들이 그린 원을 화면에 담으며 카메라 감독은 긴장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침으로 축였다.
멤버들이 만든 원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꽃봉오리처럼 생생해 보이는 것은 카메라 감독이 이미 몇 번이고 이 무대를 보았기 때문일까?
그것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경이로운 감각을 카메라 너머에 생생하게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가야금 소리로 이루어진 전주가 끝나갈 무렵, 원의 한가운데에서 심상록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곧게 펴며 첫 소절을 시작했다.
[들뜬 숨이 피워 내는 한 송이 꽃.]동시에 꽃잎들을 맡고 있던 멤버들이 어지러이 흐트러졌다. 마치 꽃이 피어나듯이.
* * *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매 순간이 전보다 좋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예찬의 홈마이자 지금까지 많은 아이돌들을 좋아해 왔던 박모 씨는 그런 사람은 무척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 아이돌의 커리어 하이로 꼽히는 ‘명곡’에 꽂혀 입덕한 사람들이 다음 앨범이 나왔을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탈덕하는 경우를 제법 많이 보아왔다.
박모 씨 또한 뜨겁게 좋아하다가 그 마음이 식은 그룹이 한둘이 아니었다.
개중엔 사회면에 나거나 그룹이 아예 해체하는 바람에 탈덕한 경우도 있었지만, 여전히 잘 나가고 있음에도 박모 씨가 좋아했던 그 느낌을 잃었기에 서서히 마음이 멀어진 경우도 존재했다.
그 모든 것은 아직 데뷔 이래 만 1년을 채우지 못한 레굴루스에겐 좀 이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지난 앨범이 워낙 취향이었기에 아주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11시 55분에 시작된 라이브 무대를 보며 박모 씨는 그런 걱정을 한동안 미뤄 두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금이 바로 피어날 시간이다.] [일제히 피어라, 바람아 불어라.]실시간 채팅창은 쉴 새 없이 빠르게 새로운 메시지를 토해 내고 있었으나, 역대 최대 수를 기록한 라이브 시청자 수에 비하면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다.
워낙 발매 전부터 시끌시끌했으니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구경 와서?
‘그건…… 아닐 거야. 뭐, 그런 사람들도 적잖게 있겠지만. 그보단, 너무 대단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선공개한 콘셉트 포토를 보고 무대 의상이 한복이 아닐까 기대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주름 하나 없이 셔츠와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장 바지 위로 두루마기를 걸친 화면 속 예찬이 빙글 돌았다.
다른 멤버들 또한 예찬과 비슷비슷한 차림새였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곡과 그에 걸맞게 아름다운 안무였다.
안무는 객관적으로 보면 어려웠다.
그러나 그 안무를 수행하는 멤버들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감성적이었고, 안무 자체도 부드럽게 흐르는 느낌이라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순간순간 정말로 피어나는 꽃처럼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벅찬 가슴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레굴루스가 또 하나의 전설을 썼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홉 개의 두루마기 밑단이 완벽하게 같은 타이밍으로 휘날릴 때마다 박모 씨의 숨이 가빠왔다.
‘시나브로 작곡가가 맡았대서 시나브로랑 너무 비슷한 느낌이면 어쩌나 걱정된다는 놈들도 많았는데…….’
이미 성공한 곡을 대충 비슷하게 따오는 안일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하며 재를 뿌리던 놈들의 입은 완벽히 닫힐 거 같았다.
2절도 점점 절정에 치닫는다고 생각한 순간, 비교적 잠잠하던 채팅창이 엄청난 속도로 글자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왔다!’
[모래바람 속, 피어난 꽃 한 송이.]화면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1절과 마찬가지로 가운데에 나선 정의탁이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했다.
카메라가 빠르게 클로즈업되었고, 정의탁이 제 손으로 올린 셔츠 아래 오밀조밀 잘 짜인 복근이 드러났다.
‘미친 거 아니냐!’
주먹을 불끈 쥔 박모 씨는 침대를 마구 두들겼다.
아마 관객이 있는 무대였다면 지금쯤 노래 가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비명이 난무했을 것이다.
‘의탁이가 언제 저렇게 컸냐……. 츄마프 때는 진짜 아기 같았……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나.’
그 후로도 정의탁은 수줍은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 번 더 상체 노출을 감행했다.
[들뜬 숨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처음과 달리 멤버들이 무대 곳곳으로 퍼진 채 무대가 끝이 났다.
“…….”
잠시 숨을 고른 박모 씨는 3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쌓은 감정들을 마구마구 채팅창에 쏟아 내기 시작했다.
– 진짜 미쳣다 개화 무대 찢었다 4월 14일 평생 잊지 못할 거 같고 레굴루스 너희가 전설의 레전드…….
* * *
“헉, 헉, 헉!”
“와, 잠깐 끊길 잘했다. 무대 끝나고 바로 끊자고 한 사람 누구였지? 천재가 분명해.”
“헉, 헉, 헉, 은성이, 형도, 천재, 같은데요, 체력, 천재…….”
“내, 말이, 헉, 헉, 말을, 허억, 어떻게, 크으, 그렇게, 허어, 잘, 하냐고…….”
처음으로 ‘개화(開花)’ 무대를 끝낸 다음, 약 10분간 라이브를 끊은 사이 멤버들은 흥분과 지침을 감추지 못했다.
“얘들아, 고생했어! 자, 물 마시고.”
무대 아래에서 두 손을 모으고 멤버들을 바라보던 매니저가 황급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뒤로 흐트러진 멤버들을 깔끔하게 정돈해 줄 헤어 디자이너와 메이크업 담당 스태프들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얘들아, 피 작곡가님…… 우셨다?”
빨대로 물을 들이켜고 있는 멤버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매니저가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아주 작게 속삭였다.
“진짜요?”
“와, 해냈다.”
“뭔데 뿌듯하지?”
멤버들이 반색하며 피대기가 서 있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거대한 스마일 탈은 벌써 모습을 감춘 뒤였다.
“너무 감동하셨나 봐. 손수건 드리니까 뛰어나가시던데?”
‘그건 너무 짓궂었네.’
매니저의 장난기에 혀를 찬 예찬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병을 내려놓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예찬아, 왜 그래?”
“……아니, 피대… 피 작곡가님, 설마 라이브에서 인터뷰하기로 한 거 잊고 집에 가신 건 아니겠지?”
“응?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 경우는 왕왕 있다.
그 대상이 피대기라면 더더욱.
“…….”
“……당장 잡아 올게.”
매니저가 황급히 무대 밖으로 뛰어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