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9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93화
‘개화(開花)’의 첫 라이브 무대가 끝나고 약 1분 뒤인 4월 15일 자정, 레굴루스 3집 미니 앨범 개(開)가 음원 사이트에 발매되었다.
동시에 아이튜브에는 개화(開花)’의 공식 뮤직비디오가 업로드됐다.
멤버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머리와 의복을 손보는 사이 시간은 거침없이 흘렀고, 피대기와 매니저는 다시 라이브를 시작한 후에야 돌아왔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비적비적 무대 아래에 붙어 앉는 두 사람을 힐끗 확인한 예찬은 카메라를 향해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안녕하세요, 오늘 레굴루스의 미니 3집 개(開) 발매 기념 라이브 MC를 맡은 레굴루스의 선우이경입니다! 이클립틱, 반가워요! 자, 그러면 예찬 씨부터 짧게 인사를 할까요?”
“네, 안녕하세요, 이클립틱. 레굴루스의 리더 하예찬입니다. 이렇게 세 번째 미니 앨범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안녕하세요, 심상록입니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구호가 끝나자마자 선우이경의 셀프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그 뒤를 이어 멤버들도 환한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의탁입니다. 이번 앨범도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으니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오, 의탁 씨! 지금 실시간 채팅창이 아주 난리가 났어요.”
멤버들과 태블릿을 번갈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선우이경이 요란을 떨었다.
“아무래도 의탁 씨의 포인트 안무가 아주 인상 깊었던 거 같네요.”
“네? 아, 네에에…….”
“말 나온 김에 잠깐 재현,”
“네에에?!”
“은 조금 후로 미루고, 다음은 새벽 씨?”
“잠깐만요! 재현이라니…!”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의 막내이자 형들의 영원한 귀염둥이 배새벽입니다.”
선우이경의 장난질에 제대로 당해 당황한 정의탁을 내버려 둔 채, 배새벽의 인사가 이어졌다.
배새벽이 숨만 쉬어도 흐뭇해하는 형들이 어김없이 웃는 얼굴로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새벽아,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니까 더 웃기다.”
“참고로 오늘 멘트는 제가 썼습니다.”
뿌듯한 얼굴을 한 채은성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이자,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담는 것이 보였다.
모두가 웃음을 터트린 가운데, 정의탁만이 가엾게도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
뒷줄에 앉은 정의탁을 살피던 예찬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다 선우이경과 눈이 마주쳤다.
“…….”
“…….”
‘……저런.’
아무런 말이 오가지 않았지만.
예찬과 마찬가지로 조금 전까지 정의탁을 보고 있었을 두 눈에 그득한 장난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자, 그러면 이번 앨범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먼저 우리 멤버들은 다들 실물 앨범을 보셨죠?”
“네―!”
보았을 뿐일까.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채, 앨범을 언박싱하는 영상이 오늘 낮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처음엔 ‘앨범을 몇 개 개봉하면 멤버들의 포토 카드를 전부 모을 수 있을까’라는 기획이었는데, 네 장 연속으로 우휘겸이 나온 이후로 계획을 변경해 그냥 얌전히 언박싱을 진행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다섯 번째로 연 앨범에서도 우휘겸의 포토 카드가 나왔고, 다섯 장의 포토 카드에 감명받은 멤버들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휘겸을 경의를 담아 ‘오’휘겸이라 부르고 있었다.
“앨범이 이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죠. ‘개’ 버전과 ‘화’ 버전. 안에 보시면 포토북과 포토 카드, 엽서가 ‘개’ 버전은 전부 퓨전 한복이나 현대복과 한복을 섞어서 입었고, ‘화’ 버전은 전통 한복으로 입었어요.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선우이경의 질문에 범세혁이 번쩍 손을 들었다.
말해 보라고 선우이경이 손짓하자 기다렸다는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 둘 다 좋아요!”
“저는 ‘화’ 버전이요! 솔직히 제가 찍었지만 이번 포토 카드 정말 잘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범세혁의 대답이 끝나자 이번엔 채은성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어떻게 나왔는데?”
“형, 제거 안 보셨어요?”
“거기, 지방 방송은 좀 끕시다! 앨범에 들어있는 물건들에 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이제 트랙 리스트를 한 번 살펴볼까요?”
자신을 포함해 이놈이고 저놈이고 할 거 없이 한 번 말문이 트이면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선우이경이 적절히 수다를 끊고 계획대로 진행을 이어 갔다.
그사이 예찬과 선우이경 사이로 의자가 하나 더 놓였고, 저 아래에서 무대 위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스마일 탈을 쓴 PiPiPi가 비척비척 자리로 걸어왔다.
예찬은 카메라가 선우이경을 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작게 속삭였다.
“어디까지 갔다 왔어요?”
“……주차장이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멀리도 다녀왔다.
촬영장으로 돌아온 매니저의 볼이 해쓱해질 만하다고 생각하며 예찬은 질문을 이었다.
“서울에선 차 안 탄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거기로 택시를 불렀죠. 불러 놓고 안 탄다고 말하려니 얼마나 불편했는지 압니까?”
지갑에서 급하게 만원을 꺼내 드렸다며 피대기가 중얼거렸다.
‘피대기에게 그런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가능할 줄이야.’
항상, 특히 곡과 관련된 일엔 다른 사람의 감정은 살피지 않고 제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길래 훈육을 통해서만 눈치라도 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이번 앨범은 총 다섯 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개화(開花)’의 작곡가, PiPiPi 작곡가님을 모셨습니다! 작곡가님, 어서 오세요!”
피대기가 자리를 잡은 걸 확인한 선우이경이 들뜬 목소리로 피대기를 환영했다.
“안녕하십니까. ‘개화(開花)’의 작곡을 맡은 PiPiPi입니다. 이클립틱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예찬과 대화할 때와 달리 뻣뻣하게 굳은 PiPiPi가 마이크를 건네받고 딱딱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본의 아니게 그간 오랜 시간 어울린 보람이 있는지, 레굴루스의 팬덤 이클립틱을 언급하는 모습이 꽤나 깍듯했다.
“그러면 작곡가님, ‘개화(開花)’에 대해 설명을…….”
“맡겨 주십시오! 그리 길지 않은 작곡가 인생, 이렇게 이클립틱 님들께 제 곡을 설명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고, 송구하고, 또…….”
‘……깍듯 수준이 아닌데?’
아무래도 레굴루스의 ‘기승전이클립틱에게 감사하자’에 제대로 세뇌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네, 알겠습니다, 피 작곡가님. 그러면 곡 작업에 대해 이제 이야기해 볼까요?”
“아, 작업. 그렇죠, 작업. 우선 이 곡의 영감은…….”
다행히 곡에 관해 이야기가 이어지자 피대기의 긴장이 점차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작업에 깊이 관여한 예찬과 강해솔이 이따금 이야기를 거들며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무렵, 선우이경이 채팅창에 올라오는 질문 중 괜찮은 것들을 골라 묻기 시작했다.
“오, 이 질문 재미있네요. 레굴루스 멤버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언제였나요?“
“재밌는 순간, 힘들었던 순간…….”
잠시 되뇌던 피대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 큰 동작이 아니었을 텐데 스마일 탈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굉장히 박력 있었다.
“생파가 재미있었죠.”
“생파요?”
“네, 생파. 심상록 씨 생일 파티요.”
난데없는 줄임말의 등장에 멤버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뜻이 맞는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자, 피대기가 더 자세히 설명해 왔다.
분명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인지 요즘 애들이 이 정도 난이도의 줄임말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새 생일 파티를 했던 것도 잊은 건지 책망하는 것 같은 눈빛이 느껴졌다.
입을 삐죽거리던 강해솔이 그런 스마일 탈을 점잖게 타박했다.
“……아니, 그거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앗.”
“근데 재밌긴 했죠.”
“아, 전에 상록이 형 깜짝 파티를 했잖아요. 거기가 피 작곡가님 작업실이었거든요. 어라? 그때 설명했었나?”
“아니, 그냥 지인분 작업실이라고만 설명했을걸.”
“근데 아이튜브에 그날 영상 올라와 있잖아. 그럼 피 작곡가님 맨얼굴도 공개한 건가?”
“아니지, 아니지. 스태프분들처럼 모자이크했지.”
“아아, 이해 완료.”
“…….”
‘슬슬 올 때가 됐지.’
목적지를 잃고 이리저리 표류하는 대화를 지켜보며 예찬은 생각했다.
이제는 이렇게 대화가 한두 번 옆길로 새지 않으면 어색할 지경이었다.
“아, 그날 그거 좋았죠. 그 날리는 건데, 그, 그, 뭐더라?”
“컨페티요?”
“그거요, 그거! 와, 시원하다.”
피대기가 멤버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이클립틱 만만세 정신’만은 아니었는지, 신나서 멤버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피대기가 이야기하는 사이 스태프가 멤버 두 명당 하나씩 전달해 준 태블릿을 확인하자 이클립틱들은 재능있는 작곡가와 레굴루스의 사이가 돈독한 것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작곡가는 다다익선이니까. ……지금 되게 황시우 같았나?’
예찬 또한 리스피릿 시절 몇 번은 실력 있는 작곡가를 포섭하는데 열과 성을 기울였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로 예찬이 원하고 기억하는 곡이 나오지 않는 것을 경험한 이후론 그냥 자신이 곡을 만드는 쪽에 집중했었다.
‘해솔이 형이야 뭘 만들어도 내 취향 직격이니 항상 연을 만든 거고. ……음, 이건 좀 변명이었다.’
아무도 듣지 못했을 마음의 소리에 괜히 혼자 민망해진 예찬은 차갑게 식은 손으로 뺨을 두어 번 꾹꾹 눌러 식혔다.
레굴루스로 데뷔한 이후엔 딱히 수소문하지 않아도 회사에 들어오는 좋은 곡들이 많았다.
체크는 하고 있었지만 강해솔이나 예찬이 만든 곡이 가장 팀의 색을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예찬과 강해솔 둘 다 자신 있는 장르가 한정되어 있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렇긴 하지만…….’
예찬은 잠시 심상록 옆에 앉아 있는 강해솔을 힐끗 확인했다.
‘개화(開花)’의 연작으로 만들고 있는 강해솔의 곡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아마 앞으로 강해솔이 만들 곡들은 이전까지보다 더 훌륭할 것이다.
‘……우리끼리 하는 게 제일 좋긴 한데, 다른 사람이 끼는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네.’
이게 바로 사람은 가끔 바람을 쐐 주어야 한다는 걸까?
스물두 살의 강해솔에겐 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찬은 담백하게 인정했다.
그 사이 저 멀리 떠나갔던 주제가 다시 ‘개화(開花)’로 돌아왔다.
“그러면 이번엔 안무 이야기를 해 볼까요?”
선우이경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사람에게 몰렸다.
그 당사자는 히익, 숨을 들이켜며 눈을 흘겼다.
“왜, 왜 다들 저를 보시죠?”
“…….”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는지 정의탁의 눈에는 두려움과 수줍음이 가득했다.
‘정의탁, 다시 복근 깔 시간이다.’
예찬은 다가올 머지않은 미래를 향해 미리 박수를 보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