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9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94화
자기편은 아무도 없는 건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정의탁은 박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예찬이 형, 박수 뭔데요!”
‘뭐긴 뭐겠어.’
예찬은 지은 드물게 진한 미소는 정의탁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억울해! 왜 저만 벗어요! 다들 공평하게 벗자고요!”
“꺅! 의탁이 너무해! 형들을 벗기려고 하다니!”
“먼저 너무하게 군 게 누군데!”
정의탁의 분노에 찬 손길을 피해 선우이경은 자리를 이탈했다.
박수 치던 손을 멈춘 채 여기저기서 파닥거리기 시작한 멤버들을 냉정한 눈으로 훑던 예찬은 카메라 너머의 감독과 눈을 한 번 맞추고 태연하게 빈 MC석에 앉아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이번 곡의 포인트 안무를 누가 할지 저희가 상의해서 정했거든요. 본인을 제외하고 만장일치로 뽑힌 게 바로 의탁입니다.”
“뭘 마음대로 진행을 시작하고 있어요!”
“의탁이 네가 진행자를 해치웠으니까?”
예찬은 오로지 정의탁을 약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노골적으로 귀여운 척하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뻔뻔해!”
원하던 반응이 바로 튀어나온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그새 정의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선우이경이 뒤늦게나마 진행을 도왔다.
“자자, 이제 그만하고 궁금해하고 있을 복숭아들에도 어떻게 된 건지 알려 줘야지.”
“으…….”
얄미워 죽겠다는 얼굴로 정의탁 또한 예찬의 자리에 앉았고, 예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진행 카드를 힐끗 확인하고 유창하게 질문을 건넸다.
“상록 씨. 비록 마지막엔 마음을 바꿨지만, 처음엔 의탁 씨가 후렴구 센터를 서는데 난색을 보였었죠?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음, 아무래도 노출이 있는 안무다 보니 의탁이 나이가 좀 걸렸어요. 사지 멀쩡한 형들이 이렇게 많은데 굳이 애기를……? 그런 마음이었죠.”
심상록의 말대로 후렴구 메인 안무는 나머지 멤버들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상태로 앉아 있는 상태에서 센터를 맡은 멤버만 한 손으로 셔츠를 들어 올리며 발을 걷어차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 누가 봐도 노출이 포인트였다.
‘처음엔 앞판만 있는 셔츠를 입고 두루마기를 내려 등을 깜짝 노출하는 안무를 생각했는데 두루마기가 생각처럼 각이 잡히지 않아서 바꿨지.’
잠시 머릿속에서 안무를 복기한 예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른 질문을 했다.
“과연 그렇군요. 그러면 왜 마음이 바뀌셨는지도 물어도 될까요?”
“그게……, 의탁이가 씻고 나왔는데 그, 음, 굉장하더라고요.”
“…….”
‘아니, 저기, 잠깐?’
심상록이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았다.
아마 화면 너머의 이클립틱들도 알지 않을까.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조금, 아니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이었다.
‘심지어 심상록이 수줍어하고 있어서 더.’
예찬의 귀에만 그렇게 수상하게 들린 것은 아닌지 퍽 난감한 얼굴을 한 채은성이 말했다.
“상록이 형, 여기선 주어를 얼버무리면 곤란한데요.”
채은성의 말을 들은 사지 멀쩡한 형은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음? 어? 응? 어어어? 아니, 아니, 아니, 복근! 복근이요! 복근이 굉장하다고요! 와, 진짜……. 저기, 이거 편집, 아, 생방송이죠…….”
‘미치겠네.’
연차가 좀 있는 그룹에선 멤버들의 신체 부위를 놓고 이런 농담을 종종 한다는 건 알았다.
꺼리는 팬들도 있지만 그냥 웃어넘기는 팬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근데 내가 그게 안 된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농담에 내성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내 리더로서의 위엄이…….’
예찬은 괜히 치미는 민망함을 누르기 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옛 생각에 몰입했다.
리스피릿은 신비주의를 메인 콘셉트로 내세운 그룹이다 보니 카메라 앞에서 이런 농담을 하는 일은 절대 없었는데, 사실 사석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리셋을 몇 번 한 뒤엔 서로 별로 친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또, 음…….’
정말 기분 나쁘지만 김대훈을 제외한 멤버들은 어울리지 않게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다.
형들이 전부다 그 모양이니 밖에 나가면 눈에 불을 켜고 이성을 찾아다니는 김대훈도 멤버들 앞에선 순진무구한 막내 흉내를 냈었다.
‘그래서 처음 열애설 터졌을 땐 안 믿었는데……. 그랬던 놈이 한 번 들킨 다음부터는 언제 새침 떨었냐는 듯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니지. 진정하려고 한 건데 더 흥분해서 어쩔 셈이냐.’
다른 방향으로 널뛰려는 감정을 갈무리한 예찬은 이제 정말 아득하게 느껴지는 LEE 엔터 만년 연습생 시절을 떠올렸다.
‘그땐 친하긴 했……, 근데 딱히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했던 기억은 없, 지……?’
문득 그 당시에도 예찬이 기억하는 것보다 어색한 사이였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자 아주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
‘……덕분에 민망함은 제대로 식었군.’
물론 그와 별개로 이런 상황을 정리해 본 적은 없었기에, 예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지금 가장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을 향했다.
‘선우이경이랑 다시 MC 바꾸…….’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은 끝을 맺지 못했다.
멀찍이서 보아도 훤히 보일 만큼 얼굴이 빨개진 채 성마르게 손부채질을 하고 있는 선우이경이 시야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목구멍 저 안쪽에서부터 배신감이 튀어 올랐다.
‘아니, 당신 그런 이미지 아니잖아!’
믿었던 형에게 배신당한 예찬은 자신만이 이 멋쩍은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크흠흠!”
헛기침으로 모두의 시선을 모은 예찬은 성큼성큼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감독님, 혹시 동전 가지고 계신가요?”
돌발 상황이었으나 레굴루스의 데뷔부터 함께해온 카메라 감독은 놀란 기색도 없이 주머니를 뒤져 500원짜리 동전을 예찬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 사이 작가들에게 약간의 끈과 테이프도 얻어 둔 예찬은 동전의 뒷면에 테이프를 이용해 끈을 붙였다.
“예… 찬아……?”
“설마…….”
여기까지 소품이 진화하자 상황을 잊은 채 예찬이 뭘 하려는 건지 지켜보던 멤버들도 슬슬 감이 오는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찬은 동전이 잘 고정되었는지 끈의 끝을 잡고 살살 흔들어 볼 뿐이었다.
‘흠, 제법 그럴듯해.’
짧게 끈 달린 동전의 내구성 테스트를 끝낸 예찬은 이번엔 동전을 카메라 앞에 대고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 동전을 보고 있는 여러분은 제가 셋을 세면 약 5분 전부터 있었던 일은 모두 잊어버립니다. 잊는다, 잊는다, 모두 잊는다. 전부 잊는다. 하나, 둘, 셋!”
“…….”
멤버들부터 스태프까지 대규모의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장소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침묵이 내려앉았지만.
예찬은 꿋꿋하게 동전을 흔들었다.
평소라면 진작 그게 되겠냐고 배를 잡고 웃거나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멤버들이 조용했다.
좋은 징조였다.
“……예찬아, 이쪽도 해 주라. 동전이 안 보였어.”
“오오, 좋다! 여기 보고 해 줘!”
“저 벌써 살짝 잊은 기분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뒤편에서 최면술사 예찬을 향한 열화와 같은 성원이 쏟아졌다.
진정하라는 듯 가볍게 손짓한 예찬은 과장된 동작으로 몸을 180도 뒤로 돌린 후 다시 동전이 달린 끈을 흔들었다.
‘실시간 채팅창은 지금쯤 난리가 났겠지. 하지만 지금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문제없음……!’
“동전을 보고 있으면 전부 잊는다, 잊는다……, 앗!”
끈을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테이프가 떨어지는 작은 사고가 있었으나 어찌저찌 무사히 최면 의식이 끝나고 예찬은 선우이경을 불렀다.
“이경이 형, 일단 다시 MC석으로…….”
“아, 거기서부터 다시 하는 거야?”
“넹.”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정의탁도 자연스럽게 원래 자기 자리로 찾아갔다.
다른 멤버들은 얌전히 제자리에서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성심성의껏 5분 전 상황을 재현하는 세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던 PiPiPi는 예찬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속삭였다.
“이거 19금 코미디 방송이었습니까?”
“작곡가님. 저 울리고 싶으세요?”
“네? 아니, 그럴 리가…….”
‘그럼 입 다물어.’
눈빛으로 PiPiPi의 입을 막은 예찬은 대충 동전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애써준 덕분에 장내는 평화를 되찾았다.
물론 거짓된 평화임을 알기에 누구 하나 태블릿을 들어 채팅창을 확인하는 일은 없었다.
“상록 씨?”
진행자용 카드를 들어 올린 선우이경이 목을 가다듬고 심상록을 불렀다.
“네, 크흠. 네.”
“비록 마지막엔 마음을 바꿨지만, 처음엔 의탁 씨가 후렴구 센터를 서는데 난색을 보였었죠?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아니, 저 인간이?’
“크흠!”
“크, 허, 흐흠!”
“읍, 큽, 후우우……!”
예찬이 했던 질문과 정말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질문에 여기저기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대본엔 좀 다르게 쓰여 있었는데.’
빨갛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식으면서 뻔뻔함도 돌아온 모양이었다.
“다들 왜 그러시죠? 무슨 문제 있나요?”
선우이경은 흘러내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기까지 했다.
“크흠, 아니요. 잠깐 기침이 나와서……. 그, 처음엔 의탁이가 아직 어려서 다른 멤버를 추천했는데, 옷을 벗은 걸 봤는데 ‘복근’이 아주 선명하더라고요.”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심상록은 ‘복근’이란 단어를 과할 정도로 강조하며 대답했다.
그 옆에서 입술을 앙다물고 다소 살벌한 얼굴로 웃음을 참아내던 강해솔도 진정이 됐는지 거들고 나섰다.
“의탁이가 매일 조깅을 하거든요. 진짜 성실해요.”
“맞아요! 진짜 하루도 안 거르고 해요!”
“눈이나 비 오면 우비 입고 돌아요.”
“아, 다들 왜 이렇게 띄워 줘요.”
다 같이 입을 모아 정의탁의 성실함을 칭찬하자 당사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당연히 칭찬의 파도는 거세졌다.
“조만간 마라톤에 도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전 결승선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을래요.”
“전 마라톤화를 사서 선물할게요.”
“아니, 진짜 가벼운 조깅인데…….”
“휴가 때 본가 가서도 조깅한다고 들은 거 같은데. 제주도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돈다고…….”
“형 제주도 안 가봤죠.”
“앗.”
“의탁이의 조깅을 막을 건 없죠.”
“스케줄을 빼면요.”
“그만, 그만 해요!”
처음 질문을 받은 심상록은 비병을 지르는 정의탁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다 상황을 마무리했다.
“결론은 이미 준비된 의탁이는 복근을 보고 이건 의탁이가 해야겠다, 생각했다는 거죠.”
“준비된 복근! 그 말 좋네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의탁 씨!”
눈을 빛낸 선우이경이 정의탁을 불렀다.
“지금이 바로 그 준비된 복근을 보여 줄 때입니다!”
“아니, 무슨 소리……!”
정의탁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예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과 손을 격렬하게 마주쳤다.
“예찬이 형, 기립 박수 뭔데요!”
‘뭐긴 뭐겠어.’
예찬은 입을 여는 대신 박수 소리를 키울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