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9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95화
“노래 틀어 주세요.”
“틀지 마세요!”
“의탁아, 너도 알잖아. 뺄수록 더 기대감만 커진다고.”
“옳소, 옳소!”
정의탁 또한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불가능한 일에도 매달리곤 한다.
“큭……!”
바로 지금 정의탁처럼.
당연하게도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악화될 뿐이지.
“복근에 오일도 잘 발랐잖아.”
바로 지금처럼.
“아아악! 쉿! 쉿! 쉬이잇―!!”
‘아니, 저렇게 쉬쉬할 일은 아니잖아. 다들 노출할 땐 바를 텐데.’
그러나 정의탁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는지 황급히 달려 나와 심상록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이 행동은 멤버들의 장난기에 제대로 불을 붙였다.
“아, 바른 지 꽤 됐으니까 지금쯤 말랐을지도?”
“제가 내려가서 가져올까요?”
“어, 새벽아. 붓도 가져와.”
“붓으로 안 발랐거든요?! 와 진짜 다들 너무 밉다! 너무너무 밉다!!”
억울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린 정의탁은 당장이라도 무대 아래로 내려가려는 배새벽을 붙잡았다.
“……아직 촉촉하니까 그냥 있어, 새벽아.”
“오.”
“드디어 마음의 준비가 됐구나.”
멤버들을 향해 눈을 흘긴 정의탁은 검지를 세워 보였다.
“딱 한 번만 할 거예요. 진짜 딱 한 번.”
“네!”
“……아, 진짜 얄밉다.”
여전히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레굴루스에 한 번 하기로 한 일에 내빼는 나약한 놈은 없었다.
정의탁이 무대 중앙으로 나서기 무섭게 멤버들은 그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 옹기종기 앉았다.
“허…….”
피대기까지 슬금슬금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는 것을 내려다보던 정의탁의 입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철없는 형들은 입을 모아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아, 원! 아, 투! 아, 원 투 쓰리 포!”
‘포’,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이 순간을 목 빼고 기다렸다는 듯 미리 준비하고 있던 제작진이 문제의 후렴구를 틀었고, 정의탁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셔츠를 터프하게 들어 올렸다.
“꺅!”
“오오오오오오!!”
“정의탁! 정의탁! 정의탁!!”
“복근 왕! 복근 왕! 복근 왕!!”
채신머리없는 형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거나 말거나 정의탁은 밀린 숙제를 끝낸 성취감에 취해 조용히 주먹을 움켜쥘 뿐이었다.
“저…….”
조심 반, 당혹 반이 묻어나는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말이다.
“얘들아, 서버 터졌어…….”
“…….”
“…….”
“……맙소사.”
그것이 끈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바닥에 주저앉기 전, 정의탁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 * *
“미친 거 아니, 헙!”
안락한 이불 속에서 레굴루스의 라이브를 즐기고 있던 신입생 최모 양은 갑자기 끊긴 라이브에 호통을 치려던 입을 틀어막았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 잠깐 이성을 잃고 소리를 키울 뻔했다.
‘아니 근데 타이밍이 진짜 너무하잖아.’
정의탁이 셔츠를 잡은 순간 끊겼던 화면을 떠올리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일부러 하려고 해도 그때 딱 끊기 어렵겠다. ……설마 나만 튕긴 거 아니겠지?’
새로고침을 아무리 시도해도 맥없이 로딩 아이콘만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던 최모 양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게시판부터……, 아.’
[NJ 미쳣냐 대기업이라는 새끼들이 하는 꼬라지봐라 ㅉㅉ]접속하자마자 최상단에 보이는 제목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빠르게 안도감이 찾아왔다.
‘서버가 아예 맛이 갔나 보네.’
[봂라이브 내가 너네 이럴 줄 알았다 죽어] [주님 오늘 여럿 갑니다^^] [타이밍 ㅆ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 안 끊긴 사람 잇음???] [끊긴 데까지 녹화한 거라도 볼 사람]‘흠. 아직이군. ……복구하려면 좀 걸릴 거 같지?’
최모 양은 침대에 내려놓은 태블릿 화면을 두어 번 더 새로고침 한 뒤, 본격적으로 게시판 글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오늘 라이브 재미있었지.’
게시판을 쓱 훑어보던 중, 언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애들 뚝딱거리는 거 진짜 미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백퍼 그때다. 굉장 의탁!’
제 마음대로 조금 전 라이브에서 있었던 사건에 이름을 붙인 최모 양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게시물을 클릭했다.
[애들 뚝딱거리는 거 진짜 미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심 연차 낮은 돌만 보여줄 수 있는 리얼 뚝딱쇼…!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상록이 첨에 노리고 말한줄알고 내가 다 놀랐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돜ㅋㅋㅋㅋㅋㅋㅋ상록아 그거 아니야!!!하는데 애 얼굴이 파래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사람 맘 다 똑같은거 실화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난 얘가 그럴 애가 아닌데????하고 있다가 표정 보고 아 역시ㅋㅋㅋㅋ했음ㅋㅋㅋㅋㅋ
– 하, 애들 진짜 귀엽ㅠㅠㅠㅠㅠㅠ
– 인간적으로 멤버별 반응 직캠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단독샷 없는 애들 많아서 아까워 죽겠음ㅅㅂㅅㅂㅅㅂ
└ 봂라이브는 시청자게시판 같은 거 없음?
게시물과 댓글들을 읽자 최모 양의 기억도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진짜 재밌었지.’
그리고 보는 사람은 웃기고 당사자들은 난감했던 그 상황의 화룡점정은 최모 양이 가장 사랑하는 예찬이 찍었다.
‘좀만 있으면 세상의 온갖 커뮤니티에 최면술사 아이돌이라고 사진이며 움짤 올라온다. 내 덕질 경력을 전부 걸고 장담할 수 있어.’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비죽비죽 흘러나오는 장면이었다.
‘최면도 최면인데, 그 쭈그려 앉아서 동전 줍던 게 왜 이렇게 웃기지?’
예찬이 카메라를 등진 채 멤버들에게 최면술을 시도하던 도중, 얼마나 대충 붙인 건지 동전과 이어둔 끈이 떨어지고야 말았었다.
이내 예찬의 뒤통수가 화면 아래로 쑥 내려갔고, 그를 쫓듯 흔들리는 화면이 급하게 아래쪽을 향했다.
– 아, 어디 갔지? 근처에 있을 건데…….
– 예찬아, 여기.
– 오, 땡큐.
근처 바닥을 더듬는 예찬을 향해 저 멀리 굴러간 동전을 주워 온 우휘겸이 다가왔다.
한 손에 동전을 받아 든 예찬은 잠시 다른 손에 들고 있는 테이프 달린 끈과 동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끈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자,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은 최면에 걸립니다. 하나, 두울…….
그리고선 엄지와 검지로 동전을 들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끈에 달린 동전이 흔들리는 것처럼 곡선을 그리며.
거기까지 기억을 떠올린 최모 양은 주먹으로 침대를 마구마구 두들겼다.
‘너무 대충이라고! ……그래서 좋아!’
정말 하예찬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연습하는 모습이나,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완벽주의자가 또 있을까 싶어서 설레는데 가끔 지금처럼 상상도 못 한 타이밍에 헐렁한 모습으로 심장에 쿡 박혔다.
‘완벽한 예찬이가 지구를 부숴버릴 아이돌 같다면 헐랭이 예찬이는 소년미가 넘친단 말이지!’
어느 쪽이든 너무 좋아서 심장에 해롭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한참을 침대를 학대하던 최모 양은 겨우 거세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게시물 목록의 첫 페이지로 돌아왔다.
‘그새 올라온 글이…… 앗!’
[라이브 다시 시작함ㄱㄱㄱㄱㄱ]이번엔 스마트폰을 대충 던져 버린 최모 양은 빠르게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 * *
“의탁이가 냉큼 옷을 걷었으면 그냥 채팅창만 좀 폭발하고 끝났을 텐데.”
“네?”
“곧 벗을 거란 소문이 돌아서 접속자가 급작스럽게 늘어난 게 틀림없어.”
“와.”
뜸이 너무 잘 들고야 말았다며 예찬이 고개를 젓자, 옆에 앉아 있던 정의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제 잘못으로 몰아가지 말아 주실래요? 제 생각엔 예찬이 형이 최면술 한다는 얘기가 돌아서 대체 무슨 방송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몰렸을 거 같거든요.”
“정의탁, 네 복근을 얕보지 마라!”
“형이야말로 뭐든 그렇게 당당하게 호통치면 제가 백날천날 속아 넘어갈 거로 생각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
‘이 자식, 그새 컸네?’
큰마음을 먹고 복근을 재공개했는데 아무도 보지 못하고 끝난 데다가, 아마도 라이브가 다시 시작되면 재공개의 재공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탁을 급성장시킨 게 분명했다.
“여러분, 2분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예찬이 황당함에 말을 잃은 사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한 스태프가 외쳤다.
‘그리 시간이 오래 흐르지 않았는데 그새 서버를 복구한 건지, 아님 증설한 건지.’
짧은 시간 동안 고생했을 스태프들에게 밝은 미소를 보이며 예찬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여기저기서 다른 멤버들도 제 자리를 찾아 다가오고 있는 와중, 정의탁만이 멤버들에게 등 떠밀려 다시 카메라 앞으로 나갔다.
“두고 봐요…….”
그런 정의탁을 향해 무대 아래에세 PiPiPi가 열렬히 손을 흔들었다.
시간 관계상 다시 라이브를 시작해도 포인트 안무 외에는 ‘개화(開花)’의 이야기를 더 하지는 못할 거 같아 먼저 돌아가도 된다고 권했음에도 PiPiPi는 탈을 쓴 채 구경을 하고 있었다.
“……큭!”
스태프의 신호에 맞춰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이번에도 후렴구가 흘러나왔고, 정의탁은 이를 악문 채 복근을 공개했다.
“정의탁! 정의탁! 정의탁!!”
“아, 아. 여러분 보이시나요? 많이 놀랐죠?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MC 선우이경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멤버들을 대표해 사과를 건넸다.
태블릿을 한 손에 든 예찬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접속자 수를 구경하다가 채팅창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폭포처럼 쏟아지는 댓글을 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혀를 차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태블릿을 구경하고 있던 채은성이 카메라를 보며 팬들에게 물었다.
“사죄의 뜻으로 복근 릴레이? 이게 뭐죠?”
‘앗, 큰일 났다.’
채은성의 입을 통해 ‘복근 릴레이’가 언급된 순간, 지금보다 더 빠르고 격렬하게 ‘복근 릴레이’라는 두 단어가 채팅창을 점령했다.
분명 독특한 것 없는 딱딱한 글씨들일 뿐인데, 팬들의 흥분이 절절히 느껴졌다.
– 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복근릴레이
– 미안하다면 무조건 복근 릴레이 해 줘
– 복근! 복근! 복근!
“이게 진짜로 뭔데?”
“릴레이라는 거 보니 한 사람씩 포인트 안무에 맞춰 복근 공개하라는 거 아닐까?”
“에엥?”
“그거 좋네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새 자기 자리로 돌아온 정의탁이었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정의탁이 스산하게 웃었다.
“저는 두 번이나 했는데, 설마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겠죠? 심지어 이클립틱이 간절하게 원하는데.”
여기저기서 멤버들의 시선이 엇갈렸다.
눈 깜빡하는 사이, 상황은 뺄 수 없는 분위기로 흘러가 버렸다.
채팅창은 이미 멤버들의 복근을 샅샅이 구경한 것처럼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다.
“음, 어쩔 수 없네.”
빠르게 체념한 예찬이 어깨를 늘어트렸다.
리더인 예찬이 포기를 선언하자, 그 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면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죠.”
“나도 오일 좀 바르고 오면 안 되나?”
“잠시만요. ……세혁이 형 옷은 협찬이라 안 된대요.”
– 발라! 내가 사준다고!
– 똑같은 거 사다가 보내줄 테니 사이즈만 남겨!!
– 사줄테니까!!!
범세혁과 정의탁이 머리를 맡대고 궁리하는 소리가 들린 건지 채팅창엔 ‘사 줄게’가 난무했다.
그리고 예찬은 리더로서 솔선수범하겠단 마음으로 릴레이 줄의 가장 앞에 섰다.
뒤에서 급하게 벼락치기라도 해 보겠다며 팔굽혀펴기하는 놈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예찬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제 셔츠 자락을 붙잡았다.
‘자, 어디 다들 보시죠!’
이게 하예찬의 복근입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