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39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98화
“아, 팝업스토어 공지 올라왔어요.”
정의탁의 말에 사전 녹화를 위해 분주히 준비하고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모였다.
“일정 앞당긴다더니 오늘이었나 보네.”
“오픈 일정은 그대로인 거죠?”
“그거는 못 바꾸지.”
활동곡 녹화가 먼저인 터라 교복 블레이저에 넥타이까지 반듯하게 착용한 선우이경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교복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고 있으니, 홍보차 활동곡은 청춘 느낌이 물씬 나는 곡에 교복을 입고 무대에 서고 있었다.
“흠흠.”
어디선가 콧노래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자, 벽에 걸린 거울 앞에서 심상록이 셔츠 깃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이 스물넷에 교복은 너무 양심 없지 않냐고 어색하게 웃은 것 치곤 상당히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예찬의 옆에 붙어 있던 채은성도 심상록의 콧노래를 들었는지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심상록을 향해 다가갔다.
“이야, 록이 형. 이대로 나가면 다들 고등학생인 줄 알겠는데요?”
‘저런 뻔한 입에 발린 말이라니…….’
아부를 할 거면 좀 티가 나지 않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저렇게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아부에 심상록이 기뻐하겠냐고.’
그렇게 고개를 내저은 예찬이 혀를 차려던 순간이었다.
“정말? 하하, 쑥스럽네…….”
심상록이 정말 수줍다는 듯 눈을 내리깔며 웃는 것이 아닌가.
‘허…….’
저런 1차원적인 아부가 먹히다니.
그래도 이 날뛰는 망아지 같은 멤버들 중 드물게 어른스러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지. 원래 어른들이 어려 보인다는 말을 좋아하잖…….’
“이제 이동할게요!”
제작진의 부름에 예찬은 재빨리 헛생각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무대 위로 오르자 여느 때처럼 거센 함성이 멤버들을 반겼다.
“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레굴루스으으으―!!”
오늘이 컴백 후 벌써 네 번째 음악 방송일이라 교복 차림을 보고 놀라는 팬은 없었다.
‘첫날엔 우는 분도 계셨는데.’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녹화 준비가 끝났다.
[오늘도 열심히 준비했으니 예쁘게 봐 주세요.]“네―!!!”
삼백여 명의 복숭아가 입을 모아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찬의 웃음을 본 팬들이 다시 커다랗게 함성을 내지르는 것을 검지를 입술 위로 들어 수습한 예찬은 빠르게 자리를 찾아갔다.
* * *
– 오늘 교복 노랑!!!!!!
– 노랑 블레이저 미쳣나 인간 병아리냐고ㅠㅠㅠㅠㅠ
– 엔카 회색블레이저/뮤캐 핑크카디건/음가 차이나칼라재킷/스가 노랑블레이저(NEW)
– 교복 라인업 미쳣네;;; 활동곡은 왜 첫주만 하냐ㅠㅠㅠㅠ
└ ㄹㅇ 양심 있으면 열 번은 더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ㅠㅠㅠ
– 담주 더스랑 쇼챌도 도담도담할거 같음?
└ 안 하면 방송국에 불지를거임ㅡㅡ
└ 근데 애들 더스랑 쇼챌 나오긴 함? 1군은 거의 안 나오는 거 같던데…
└└ 우리 애들은 지금까진 항상 나왔었음
└└└ 그건 신인이라 나온 거 아님?
└└└└ ㄴㄴ 신인이어도 1티어 기획사인 그룹들은 우리 애들보다 성적 훨씬 안나와도 안 나감 그래서 2군 이하 아이돌들이 받아가는 코묻은 1등 트로피도 꾸역꾸역 받아 간다고 욕 먹었잖아ㅋㅋㅋㅋㅋ
└└└└└ 진짜??? 그걸 왜 욕해??? 한 번이라도 음방 더 나와주는 게 당연히 좋지 않아??
└└└└└└ 그니깐ㅋㅋㅋㅋㅋ 지들 오빠들은 길어야 음방 1, 2주 깔짝거리고 가는데 우리 애들은 4주 꽉꽉 채워서 나오니깐 개꼬운가보다하고 맘ㅋㅋㅋ
– 애들이 너무 잘해서 또 두 번 만에 녹화 끝남ㅠㅠㅠ 하 자랑스러운데 가슴이 아프다ㅠㅠ
– 애들 착장 더 자세하게 스포해줄 사람 없음??
└ 찬 베레모+넥타이+니트조끼, 록 넥타이+조끼, 경 뿔테안경+넥타이……
└└ 어제는 예찬이가 안경 쓰더니 오늘은 이경이가 안경이냐ㅠㅠㅠ 하 빨리 본방 보고 싶네ㅠㅠㅠㅠ
– 얘들아 새벽이 깐머다 소리질러
└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 얘들아 휘겸이 덮머다 소리질러
└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 하예찬 결혼하자
* * *
첫 번째 사전 녹화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팬들에게 다음 녹화까지 잠시만 헤어지자고 아쉬움을 가득 담아 인사를 건넨 멤버들은 미련이 철철 넘치는 얼굴로 미적미적 무대에서 내려오던 것과 달리, 무척 빠른 걸음으로 대기실에 향했다.
“저 이거 입으면 돼요?”
“입었던 거 여기 둘게요!”
“실장님, 저 머리 좀 봐주세요!”
팬들과 헤어지기 싫어 지체한 시간을 빠릿빠릿한 행동으로 메우려는 듯 힘이 넘치는 멤버들을 스태프들이 익숙하게 보조했다.
겨울 스페셜 앨범까지 합하면 벌써 네 번째 앨범이니 한두 번 본 광경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해솔이 형, 잠깐만.”
두루마기 고름을 예쁘게 매듭지어 준 신입 스태프를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예찬은 총총걸음으로 아예 머리를 다시 감고 온 강해솔을 향해 다가갔다.
“형 옷 다 젖었는데? 이따 뭐 입고 가려고?”
“네 거.”
“에이, 장난은.”
“네 거.”
그 자리에 홀로 남은 스타일리스트는 잠시 동안 그대로 멈춰있다가 감탄사를 뱉었다.
“……우와.”
“뭐가 우와야?”
“아, 선배님!”
마침 그 옆을 지나던 코디네이터 변수지의 물음에 신입 스태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레굴루스 멤버분들 되게 친절하네요.”
“칭찬을 뭐 그렇게 조심스럽게 해? 내가 애들 순하니까 걱정할 거 없다고 했잖아. 이거 인제 보니 안 믿었고만?”
“에헤헤.”
신입 스태프가 민망하다는 듯 뒤통수를 문질렀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이 업계에 뛰어든 그녀는 아직 20대 중반이었으나 사회의 쓴맛을 아주 많이 맛보았다.
말단 신입 스태프로 현장의 갑을병정에게 골고루 갑질을 당하던 그녀는 마침내 그녀가 진로를 이쪽으로 정하게 된 계기가 된 그룹의 스태프로 취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카메라 옆에서 본 아이돌은 카메라를 통해 본 그들과 너무나 달랐다.
‘일을 때려치우면서 지금까지 모아 온 앨범이며 굿즈를 전부 처분했지. 후후, 덕분에 집은 넓어지고 지갑은 두둑해졌다고…….’
덕후만이 할 수 있는 블랙 조크를 홀로 곱씹으며 조금 넓어진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녀를 끌어낸 것은 변수지였다.
멤버들과 스태프 모두 서로에게 정중하고, 회사도 대기업이라 돈 쓸 줄 안다. 또 윗대가리, 아니 책임자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이 업계에 드물게 그만두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자리 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애들이 진짜 착하고 잘생겼다. 예쁜 옷 입히고 머리 만지는 보람이 있다. 이거 진짜 귀한 기회다.
변수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번 직장은 다르다고 설명했으나, 솔직히 믿지 않았다. 스카우트들은 숨 쉬듯 과장하지 않는가.
그녀가 믿은 것은 계약서에 찍힌 숫자뿐이었다.
‘이 정도 받으면 갑질 그까짓 거 그냥 쿨하게 알코올로 넘기자!’
그렇게 결심한 것이 무색하게도, 일이 끝나면 달고 살았던 소주와 맥주가 요 며칠간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다.
“……돈을 많이 줘서 퇴사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이구 그러셨어요. 휘겸아, 머리 돈 터치!”
진심 어린 대답에 변수지는 끌끌 혀를 차고 제 할 일을 하러 떠났다.
신입 스태프 또한 정신을 차리고 다음 할 일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 업계에 정말 드문 훌륭한 일터에 완벽히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동하겠습니다!”
“넵!”
스태프에게 힘차게 대답하는 레굴루스 멤버들은 어느새 청춘을 찬미하던 학생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선비들로 변해 있었다.
헌앙한 아홉 청년이 대기실 밖으로 나가는 걸 바라보며 신입 스태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보람이란 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 * *
– 오늘 개화 무대 진짜 힘 팍팍 준 티가 난다
– 올블랙은 언제나 진리인듯
└ 설마 검정 한복임???
└└ ㅇㅇ 검정 두루마기+검정셔츠+검정바지+검정구두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ㅅㅂ 말만 들어도 감동적이네ㅠㅠㅠㅠㅠㅠㅠ
– 사녹 오면 원래 대기타면서 현타 쩌는데 애들이 쏘스윗해서 그거 상상하느라 오늘은 걍 계속 행복했음ㅋㅋㅋㅠㅠ 하 담주도 당첨되고 싶다ㅠㅠㅠㅠ
└ 난 속물 같지만 사녹오면 애들 역조공으로 두 손 무겁게 돌아가니까 현타 덜 옴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솔직히 애들 역조공 쩔어서 다른 팬덤한테 괜히 우쭐하게 됨ㅋㅋㅋㅋ
└└└ 인정이긴 한데 님 이거 어그로 끌리기 전에 지우셔야 할듯ㅋㅋㅋㅋ
└└└└ 쩌는 역조공의 유일한 단점은 업자새끼들이 기어들어온다는 거ㅠㅠㅠ 팬도 아닌 새끼들이 팬석도 뺏고 역조공품은 플미 붙여서 팔고ㅠㅠㅠ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얘들아 의탁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자존심 상하는데 의탁이까지만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거 같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 번째 사전 녹화가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온 예찬은 SNS를 확인하다가 웃음을 터트릴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와, 진짜 열심히 했다! 그렇죠?!”
“응, 의탁이 오늘도 고생했어.”
“우리 의탁이 오늘도 멋있었지!”
“어험. 형들도 멋있었어요.”
‘……정의탁.’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개화(開花)’의 포인트 안무, 즉 복근 노출을 맡은 정의탁은 음악 방송을 돌기 시작한 이후, 하루가 다르게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저 옷 잠깐 벗어 두고 팔 굽혀 펴기 좀 해도 돼요?”
“어어, 의탁아. 벗어 주면 내가 챙겨 둘게.”
“넵!”
스타일리스트에게 OK를 받은 정의탁은 힘차게 간이 탈의실 뒤로 사라졌다.
“의욕 넘치네.”
“보기 좋죠.”
그런 정의탁을 바라보며 멤버들은 뿌듯한 얼굴로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고.
무대에 선 멤버들을 팬들은 언제나 커다란 함성으로 반겨주지만, 그 함성이 유독 커지는 구간이 어떤 곡이든 존재했다.
그리고 ‘개화(開花)’에서 어느 때보다 함성이 큰 구간은 바로 정의탁이 셔츠를 걷어 올리는 순간부터 다시 셔츠가 내려오는 순간까지였다.
그 파트가 다가올수록 팬들의 눈이 빛나는 것을 모두가 말할 정도니, 정면에서 온몸으로 그 눈빛을 받는 정의탁에겐 더 남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음악 방송을 거듭하며 팬들 없이 녹화를 하거나 무대를 할 땐 느끼지 못했던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지자, 정의탁은, 들떴다.
정말 최소한으로 보여 주고 빠르게 끝내려는 의지가 느껴지던 소심한 손길은 점점 더 과감해졌고, 나흘째인 오늘은 거의 명치까지 보여 주고 돌아온 참이었다.
당연히 팬들의 함성은 정의탁이 신바람 날수록 더 커졌다.
‘이게 바로 win-win인가.’
이러다 음방 마지막 주쯤엔 아예 가슴까지 다 까는 거 아니냔 생각에 이르자 저절로 상상까지 되어 웃음이 나왔다.
‘설마 정말로 그렇게까지 하겠어?’
아무리 설마가 사람 잡는다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고 설마에게 덜미를 잡혔지만.
에이, 설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