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3화
‘왜 저렇게 생겼어? 말이 돼?’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작가 김상희는 막 무대에 올라온 연습생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개인 연습생 하예찬.
김상희가 지원서를 뽑고 사전 인터뷰까지 마친 참가자였다.
연습생 생활을 한 적도 없고 특별한 수상 내역도 없었지만 잘생김 하나만으로 기대가 컸던 참가자.
지원서 사진도 어지간한 아이돌 비주얼 멤버 뺨치게 생겼었는데 실물은 더 훌륭하게 생긴 걸 보고 얘는 되겠구나 싶었다.
……마지막에 좀 4차원 같긴 했는데 그것도 어그로 끌기 좋으니 나쁘지 않았다.
‘근데 더 잘생겨졌다고?’
고작 일주일 사이에 뭘 어떻게 한 건지 하예찬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반주가 나오자 긴장했는지 잠깐 멈칫하는데, 그게 또 귀여워 보여서 김상희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쿵 쳤다.
옆에 서 있는 FD가 수상하다는 듯 곁눈질하는 것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나대지 마라, 심장아.’
상대는 덕질 대상이 아니라 직장에서 만난 관계자다.
방과 후 수업을 듣던 꼬꼬마 무렵부터 단 한 순간도 아이돌 덕후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김상희였지만 공사 구분은 할 줄 알았다.
곧이어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촬영 시작 전 예찬의 선곡을 확인한 김상희는 조금 힘이 빠졌다.
예찬이 고른 팝송은 누구나 한 번쯤은 무심결에 흥얼거려 봤을 만큼 유명한 곡이었다.
그러나 각 잡고 부르려고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박자 때문에 노래에 끌려가기 매우 쉬웠다.
게다가 원곡자가 춤까지 추며 불러서 티 나지 않을 뿐 저음부터 고음까지 폭넓은 음역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원곡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어지간히 잘 부르지 않으면 좋은 노래를 망쳤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었다.
‘애가 센스는 좀 없나 보네. 뭐 챙겨 줄 소속사가 없으니 어쩔 수 없나…… 응?’
실망한 김상희의 속마음이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예찬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었으나 말 그대로 순식간에 공기가 변했다.
그저 얼굴이 좀 많이 잘생긴 연습생으로만 보였던 하예찬이 탑급 아이돌 못지않은 흡입력을 뿜어냈다.
스튜디오 내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예찬에게 집중했다.
예찬은 그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카메라 화면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콕 찍는 동작과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There’s something that doesn’t change when everything changes.]원곡을 맛을 살리되 절묘하게 다른 편곡은 예찬의 중저음과 꼭 맞아 들어가 시너지를 냈다.
‘무용하던 애였나……? 춤선이 장난 아닌데?’
가볍게 밟는 스텝은 누가 봐도 여유가 넘쳐흘렀지만, 똑같이 해 보라고 하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난이도였다.
하지만 가장 말도 안 되는 것은 예찬의 표정이었다.
‘저게 연습생의 표현력이라고?’
가사에 맞춰 쉴 새 없이 변하는 표정은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덜하지도 않았다.
지금 일하는 중만 아니면 하나하나 전부 캡처해서 앨범이라도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김상희는 작가로서 심사석에 앉아 있는 트레이너들의 반응을 확인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Choices pile up and make it now.]그러나 결국 무대가 끝날 때까지 단 한순간도 예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개인 연습생의 프로 냄새 나는 퍼포먼스에 사방이 술렁였다.
이내 정신을 차린 심사 위원 한 명이 정해진 질문을 던졌다.
“하예찬 연습생은 본인을 몇 등급이라고 생각해요?”
예찬이 아련하게 웃었다.
서늘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련한 한 떨기 백합처럼 변했다.
“오늘을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S등급, 넌 내 것이야.”
말하는 꼬라지는 좀 병맛이었지만.
* * *
‘역시 했던 게 편해.’
예찬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심사 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안무인 것처럼 위장해 첫 번째 선택지를 누른 후로 대체 저 대사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생각하느라 머리는 복잡했지만, 몸은 착실하게 춤을 추었다.
리셋 도중에 콘서트에서 몇 번이나 해 본 곡이라 어디서 어떻게 포인트를 주면 사람들이 환호하는지 아주 뻔했다.
‘항상 스무 살 이후에 했던 곡이라 정찬양 놈이 아직 안 훔쳐 간 게 다행이군.’
본격적인 심사평을 하기 전에 예찬에게도 다른 연습생들과 똑같은 질문이 날아왔다.
“하예찬 연습생은 본인을 몇 등급이라고 생각해요?”
잠시 잊고 있던 선택의 결실을 거둘 때가 찾아와 버렸다.
카메라 앞에서 이를 악물 수 없기에 예찬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금 검지를 정면 카메라를 향해 늠름하게 들어 올렸다.
“오늘을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S등급, 넌 내 것이야.”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끔찍한 정적이 세트장에 내려앉았다.
[선택지 완료!> [축하합니다! 선택지를 훌륭하게 완수한 당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1 포인트가 추가됐어요!>눈치 없는 홀로그램 창만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댔다.
예찬은 심란한 마음을 꾹 내리누르고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아, 그러셨구나. 하하, 진짜 칼을 갈고 나오신 거 같아요. 정말 잘하시네요. 심사 중인 것도 잊고 즐겁게 봤습니다.”
정적을 깬 것은 심사 위원 중 하나로 현시점에서 데뷔 7년 차가 되었을 유피테르의 메인 보컬 이가원이었다.
츄마프 99 방송 당시 사람 좋게 생긴 얼굴을 하고서 독설을 퍼붓는 걸로 유명했는데, 실력 있는 연습생들에겐 지금처럼 친절했던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예찬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싸움닭으로 유명한 유피테르의 극성팬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대선배님을 향해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그저 감사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게 좋았다.
“노래가 정말 좋았어요. 당장 데뷔해도 될 것 같은데요? S등급이 아니라 다른 등급을 말했으면 장난하냐고 했을 거예요.”
“전 편곡이 정말 좋던데요. 누가 한 건지 알려 줄 수 있어요?”
이가원의 옆에 앉아 있던 보컬 트레이너가 극찬하자 댄스 트레이너도 거들었다.
“편곡은 제가 했습니다.”
“하예찬 연습생이요?”
예상했던 그대로 심사 위원들이 천재니 뭐니, 호들갑을 떨었다.
예찬은 쑥스러운 듯, 그러나 비굴해 보이지는 않는 당당한 태도로 쏟아지는 칭찬을 만끽했다.
“콘셉트도 재밌네요. 잘생긴 친구가 아주 독특해.”
“감사합니다.”
그새 예찬의 사차원스러운 언동까지 품은 심사 위원의 말에 예찬은 다시 한번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속내는 더없이 싸늘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지금 내 연차가 얼만데.’
리셋을 포함한 경력을 따지면 여기서 예찬을 평가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고작 이런 무대를 보여 주고 칭찬을 받는 것도 머쓱할 지경이었다.
카메라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예찬은 심사 위원석 바로 옆에 붙어 있는 S등급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화려함이 과하다 보니 좀 촌스러운 의자는 기능만은 제대로인지 무척 푹신하고 편했다.
너무 방만해 보이지 않은 자세로 자리에 앉은 예찬은 상태창을 불렀다.
‘상태창.’
플레이어 ― 하예찬 Lv. 2
비주얼 : S- (1/10000)
노래 : S-
춤 : A- (4/100)
랩 : F
언변 : B
반짝임 : C
칭호 : 리셋이 끝난 플레이어
포인트 : 1
아직 한참 부족하긴 했으나 처음 돌아왔을 때에 비하면 괄목상대할 만한 스탯이었다.
예찬이 지난 일주일간 이뤄 낸 쾌거였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라는 서브 퀘스트는 단순 반복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10회, 그다음에는 20회, 또 그다음에는 30회.
물을 몇 리터 이상 마시라든지, 몇 km를 달리라든지 특정 노래를 부르라든지 같은 종류의 일회성 퀘스트들도 종종 나타났다.
예찬은 닥치는 대로 퀘스트를 수행했고 포인트가 생기는 족족 비주얼에 들이부었다.
그렇게 S-로 비주얼을 올리자 요구하는 포인트가 양심 없이 늘어났다.
비주얼 : S- (1/10000)
천도 아니고 만이었다.
등급마다 요구하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예찬은 시험 삼아 춤 스탯에 포인트를 찍어 봤다.
춤 : B (1/10)
B등급에서 요구하는 포인트는 딸랑 10포인트였다.
급하게 20포인트를 모아서 A-를 만들었더니 예전만은 못해도 어디 가서 뚝딱거린다는 소리는 안 듣겠다 싶었다.
포인트를 투자할 수 없는 반짝임이란 스탯이 상태창을 열 때마다 신경 쓰였지만,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예찬의 차례가 마침 일찍 끝났으니 이제 연계 퀘스트를 성공하기 위해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며 이름 외우기에 집중할 때였다.
퀘스트의 실패 페널티를 떠올린 예찬의 눈빛이 흉흉하게 물들었다.
그렇게 개고생하면서 올려놓은 스탯이 깎인다니, 두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후 한동안은 별다른 사건 없이 연습생들이 차례대로 퍼포먼스를 마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S등급은 아직 예찬 한 명뿐이었다.
‘이제 둘이 되겠지만.’
예찬은 심드렁한 속내를 감추고 막 무대에 올라오는 연습생을 향해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와, 이번 연습생은 엄청 크네. 키가 몇이에요?”
“188입니다.”
“어우. 목소리도 좋아.”
심사 위원들의 너스레에 개인 연습생 우휘겸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예찬이 익히 알고 있는 연습생이었다.
우휘겸.
츄마프 99에서 유일하게 잠시나마 범세혁의 아성을 넘보았던 연습생이었다.
나이는 예찬과 동갑, 포지션은 보컬.
생김새도 사나운 편이라 범세혁보다 이쪽이 예찬과 캐릭터가 겹쳤다.
그렇지만 우휘겸은 여섯 번의 리셋 도중 단 한 번도 예찬에게 벽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재능이 있으면 뭐 해. 학폭러인데.’
첫 등급 테스트부터 승승장구하던 우휘겸은 프로그램 중반 학폭 논란으로 하차하게 된다.
범세혁과 우휘겸이란 양 날개 체제로 막 도약하던 츄마프는 잠시 휘청하지만 끝내 우휘겸의 그림자를 털어 내고 크게 성공했다.
그래서 예찬은 츄마프를 잘근잘근 밟아 줄 때 우휘겸이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도록 힘을 썼다.
‘츄마프에 학폭 연습생이 있다는 걸 심심할 때마다 대형 커뮤니티에 상기시켰지.’
거기에 우휘겸만큼은 아니어도 학교생활에 잡음이 있던 연습생들을 야무지게 묶어서 이미지를 나락으로 보냈다.
우휘겸이 준비한 퍼포먼스가 끝나고 예찬은 다시 손뼉을 쳤다.
다시 봐도 놀라운 실력이었다.
그래서 더 꼴 보기 싫은 놈이었다.
“우휘겸 연습생은 본인을 몇 등급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고정 질문이 나왔다.
예찬은 우휘겸의 대답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 최선이 S라고 믿고 있습니다.”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은 대답이 우휘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예찬은 코웃음을 치지 않기 위해 표정을 다듬었다.
아직 리셋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우휘겸이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
연습생 하예찬은 저 대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무난하게 S를 받은 우휘겸이 예찬의 옆자리로 걸어와 앉았다.
굳이 떨어져 앉는 게 더 그림이 이상하니 이해는 하지만 남은 촬영 내내 붙어 있을 생각을 하니 불쾌했다.
‘그냥 눈인사나 한번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불쑥 끼어들었다.
[선택지 발생!>우휘겸과 악수하고 인사말을 건네요!
― 휘겸아, 너 학폭러가 이런데 나와서 어쩌려고 그러니?
― 저 반한 거 같아요! 휘겸이 형아라고 불러도 될까요?
― 무대 잘 봤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선택지 온도차 뭔데.
만약 홀로그램 창에 멱살이 있다면 당장 쥐고 흔들어 줬을 터였다.
아직 다음 연습생이 무대에 올라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예찬이 우휘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우휘겸이 조심스럽게 손을 마주 잡자 예찬은 화사하게 웃었다.
“저 반한 거 같아요! 휘겸이 형아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렇게 대놓고 고르라고 떠먹여 주면 절대 안 고르지.
[선택지 완료!> [축하합니다! 선택지를 훌륭하게 완수한 당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1 포인트가 추가됐어요!>홀로그램 창도 당황했는지 평소보다 늦게 축하 팝업이 뜬 것 같았다.
기분 탓이면 말고.
하지만 눈앞의 연습생은 확실히 당황한 게 맞는 것 같았다.
우휘겸은 자리에 앉다 만 어정쩡한 자세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우휘겸이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저, 무대에서 분명 스무 살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우휘겸 씨랑 동갑 맞아요.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습니다.”
예찬이 순식간에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우휘겸과 눈을 맞췄다.
“아, 농담…….”
우휘겸은 석연치 못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엮여서 좋은 꼴을 볼 리 없기에 예찬은 잡았던 손을 얼른 놓고 이어지는 연습생의 무대에 집중하는 척했다.
두어 차례 휴식 시간 후, 어느덧 98명의 연습생이 퍼포먼스를 마치고 마지막 연습생이 무대에 올랐다.
길게 이어진 녹화 시간 탓에 집중력이 떨어진 듯 다소 붕 떠 있던 장내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제작진이 일부러 마지막으로 순서를 정한 거겠지.
아마 이 첫 무대가 범세혁이 엔딩 왕자라고 불리게 된 것의 시작 아닐까?
예찬이 과거를 떠올리는 동안 범세혁의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압도적이었다.
부드러운 얼굴과 달리 강렬한 안무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범세혁은 빠른 비트에 맞춰 변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결코 얼버무리는 일 없이 손가락 끝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흔들리는 머리카락마저 범세혁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예찬은 범세혁의 무대를 직접 보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S등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사 위원의 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본인의 희망 사항이라기보단 그저 진실을 말하는 듯했다.
이윽고 당연한 듯 S등급을 받은 범세혁이 비어 있는 예찬의 뒷자리에 앉기 위해 다가왔다.
선택지는 뜨지 않았지만 예찬은 이번엔 자신의 의지로 범세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예찬입니다. 무대 인상 깊었어요.”
범세혁은 손을 맞잡으며 산뜻하게 미소 지었다.
“저야말로 무대 정말 잘 봤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햇살 같은 미소와 마주한 순간 예찬은 인정했다.
앞으로 이 남자와 함께 과거의 잔재들을 박살 낼 것도 기대되지만, 이 자식을 때려눕히고 왕좌에 오르는 것도 기대된다고.
얄팍한 호승심에 불이 붙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