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0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04화
튤립방, 장미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찬이 속한 백합방의 특별 무대의 지향점은 단 하나. ‘귀여움’이었다.
각자의 꽃무늬가 프린팅된 의상을 입고, 꽃다발을 양손 가득 들고 시작한 무대는 끝날 무렵엔 다들 빈손이 되었다.
객석에선 멤버들이 던진 꽃을 받고 기뻐하는 팬들과 아쉽게 놓쳐서 분해하는 팬들이 공존했다.
마지막 순서로 온갖 귀여움을 뽐내고 돌아온 예찬과 선우이경, 그리고 배새벽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재킷만 뒤집어 입고 다시 무대로 나섰다.
먼저 유닛 무대를 끝낸 다른 멤버들은 진작에 새로운 무대를 시작한 후였다.
[와, 진짜 순서, 되게, 중요하네요. 저기요, 장미방 친구들. 내일부터 순서 바꿔 주면 안 될까요?]다시 돌아온 토크 타임엔 선우이경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는데, 장난처럼 하는 말 치곤 너무 진심이 묻어나서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중간 좋네요, 중간.]처음과 마지막에 비해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장미방 멤버들이 보란 듯 유세를 부렸다.
[이거 순서는 뽑기로 정했거든요. 네? 뭐라고요? 아, VCR에 나왔구나. 맞다. 봐놓고 깜빡했네.] [복숭아들, 제가 뽑았습니다!] [세혁이 뽑기 진짜 잘하는 거 같아. 나랑 복권 사 볼래?] [어허. 사행성 유도하지 마시죠.] [얘들아, 이러다가 또 배가 산까지 가겠다. 오늘은 조심하자.]언제나처럼 세 마디 정도 주고받으면 기세를 타고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대화를 말린 것은 심상록이었다.
그에 경각심을 가지고 유닛 무대로 주제를 돌렸던 멤버들이었으나, 이내 대화는 또다시 옆길을 타고 뻗어 나갔다.
[츄마프 때 세혁이 별명 중에 그거 있었잖아요. 엔딩 왕자.] [맞아, 맞아. 마지막 무대 빼곤 다 엔딩이었죠?] [와, 우리 그때의 기분을 살려서 유닛 무대도 마지막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요?] [이경이 형, 속 보여요.] [하핫.] [이클립틱, 축하해 주세요. 드디어 의탁 씨 다리가 안 떨리네요.] [제가 언제 떨었어요!] [그러면 다음 무대로 가 볼까요!]당장이라도 예찬에게 달려들려던 정의탁은 기다렸다는 듯 꺼진 조명에 매섭게 눈만 흘기고 제 자리를 찾아 떠났다.
그대로 이번 3집 앨범에 수록된 수록곡 무대를 처음으로 선보인 멤버들은 머리에 달고 있던 화관이며 꽃송이까지 전부 객석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세 번째 VCR과 팬들의 기쁨 섞인 비명을 뒤로하고 또다시 급하게 무대 아래로 내달렸다.
“와, 체력 소모 장난 아니다!”
평소 약한 소리를 하는 법이 없는 범세혁이 정말 놀랍다는 듯 어깨를 털었다. 누군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채은성이 곧장 대답했다.
“나 근데 안 힘들어서 더 무서워.”
“아드레날린이 솟아나고 있어서인가?”
“그럴지도? 어떡하지? 이거 콘서트 끝날 때까지 나오려나?”
“얘들아, 화장 고치는 동안만이라도 제발 입 좀 다물자.”
흥분으로 쉴 새 없이 종알거리던 멤버들의 입은 스태프의 애원이 있고 나서야 멈췄다.
예찬이 멤버들 못지않게 상기된 얼굴로 아예 자기가 직접 비하인드 카메라 하나를 들고 있는 신 PD를 흘깃 바라보곤 눈을 깜빡이고 있던 때였다.
예찬의 머리를 손보러 다가온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놀랍다는 듯 물었다.
“예찬아, 화관 진짜 잘 고정해 놨는데 어떻게 뺀 거야? 한 번에 쑥 빠지던데?”
듣고 보니 화관이 연달아 세 곡을 춰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잘 붙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그제야 예찬은 대기실 풍경에서 눈을 떼고 앞에 달린 거울을 확인했다. 잘 보니 빨갛게 염색한 머리의 이곳저곳에 화관을 고정했던 실핀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힘으로?”
“어우, 두피 아팠겠다.”
“어, 솔직히 기억이 안 나요. ……아팠나?”
“예찬이도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구나.”
헤어스타일리스트와 예찬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는지 마찬가지로 어디서 한 움큼 쥐어뜯긴 머리를 한 범세혁이 옆자리에 앉았다.
“세혁이 너는……, 어후…….”
곱슬곱슬 말아놓은 예찬과 달리 깔끔하게 편 생머리라 더 심각해 보이는 범세혁의 모습에 스태프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세혁은 재미있어 죽겠단 얼굴로 엄지를 세워 제 머리를 가리켰다.
“난 사실 지금은 좀 아프다?”
“……나도.”
“얘들 분명 내일도 집어던질 텐데. 그렇다고 고정을 대충 할 수도…….”
두 사람의 고해성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스태프는 중얼거렸다.
“와 이거 진짜 걷기 힘든데요?”
“새삼스레 왜 우는 소리야. 몇 번 입어 봤잖아.”
“확실히 지금 지치긴 했나 봐요. 너무 무거운데…….”
“걱정하지 마, 의탁아. 무대 나가면 다 움직이게 돼 있어.”
먼저 의상을 갈아입은 정의탁과 강해솔의 대화에 이번엔 심상록이 끼어들었다.
“자 예찬이 머리 끝!”
“예찬아, 이리 들어와!”
“다들 조금만 더 서두르자!”
이리저리 스태프들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자 어느새 다들 다음 무대에 오르기 위한 준비가 끝이나 있었다.
조금 특별한 의상에 어색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대충 옷을 움켜쥐고 달려 나가려는 멤버들을 신 PD가 붙잡았다.
“저기, 여러분. 파이팅 한 번만 하고 가 주실 수 있나요?”
콘서트가 시작되고 내내 말없이 촬영에만 열중하고 있었는데, 꼭 찍고 싶은 그림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다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기에 멤버들은 첫 무대에 오르기 전처럼 둥글게 모였다.
예찬이 먼저 손을 앞으로 뻗자 비단 장갑을 낀 우휘겸의 손이 그 위에 얹혔다. 맨손과 확연히 다른 감촉이었다.
어느덧 아홉 개의 손이 포개지자 멤버들이 예찬에게 의견을 물었다.
“위, 아래?”
“아까 아래로 했으니 위로.”
“오케이.”
방향을 정했으니 더는 늦장부릴 이유가 없었다.
“레굴루스, 오늘도!”
“빛나자!”
예찬의 선창에 멤버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차림새와 달리 굵직한 구호에 신 PD는 만족스럽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 번째 VCR은 앞선 두 VCR보다 조금 더 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엔 느끼지 못했으나 돌이켜보니 그런 느낌이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레굴루스의 첫 콘서트 첫날을 스탠딩석에서 불태우고 있는 프리랜서 정모 씨는 눈앞에서 재생되는 영상에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공주님들.] [안녕하세요, 공주님.] [공주님들.] [공주님.] [공주…….] [공주님의 왕자…….]정모 씨가 완전히 반해 버린 츄마프 시절 예찬을 포함해 아직 연습생이던 레굴루스 멤버들이 연달아 ‘공주님’을 부르는 화면이 황홀할 정도로 줄줄 이어졌다.
VCR이 끝나고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주제곡이자 레굴루스의 1집 앨범에도 수록된 ‘Choose your prince’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을 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콘서트 버전으로 새로 편곡했구나. 좋아, 지금 울면 되는 거지?’
콘서트에서 원점 회귀라니, 여기서 울지 않을 수 있을쏘냐.
‘내가 아무리 잘 안 우는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지.’
시나브로 무대를 보며 펑펑 울었던 것 같은 사소한 일은 이미 기억에서 지운 정모 씨는 어디 올 테면 와 보라며 가슴을 쭉 폈다.
그런 정모 씨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듯 츄마프 당시의 무대를 충실히 재현한 이동무대가 떠올랐고, 그 앞을 가린 흰 천 뒤로 거센 조명을 받은 멤버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응?”
‘실루엣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
정모 씨가 순간 느낀 의아함을 풀기도 전에 노래가 시작되었다.
[Choose your princess. 네가 선택하는 세계, 그 끝에 내가 있기를.]‘가사, 조금 다르지 않아?’
그리고 첫 소절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으로 추락한 천 뒤에서, 아홉 명의 왕자님이 아닌 공주님들이 튀어나왔다.
“뭐, 야아아악―!!”
놀란 것은 정모 씨뿐만은 아니었는지 수군거리던 객석은 한마음 한뜻으로 비명을 쏟아 냈다.
시나브로 무대 당시, 정모 씨의 옆에서 울면서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팬은 이번에도 입으론 함성을 내지르면서도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찰칵찰칵, 하고 옆에서 들리는 셔터음 덕분에 조금 침착함을 되찾은 정모 씨는 빠르게 자신의 최애, 하예찬을 찾았다.
오늘 콘서트가 시작된 이래 보면 볼수록 귀여워 죽겠다고 느꼈던 빨간 곱슬머리 대신 검은색 긴 생머리 가발을 쓴 예찬은 목부터 감싸는 보랏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구름처럼 부푼 밑단이 어찌나 풍성한지 만약 정모 씨라면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예찬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하체 대신 상체를 배로 열심히 사용하며 정말 우아하게 츄유프의 포인트 안무를 소화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잘 어울려? 다른, 다른 멤버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하예찬 공주의 자태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눈을 간신히 옆으로 돌리자, 멤버들 모두 자신을 상징하는 컬러의 드레스를 입고 한 사람의 공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배새벽은 그냥 여돌……, 와 강해솔 핑크 미쳤네. 저 드레스는 나도 입어 보고 싶……, 아니, 심상록까지 어울리잖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배새벽부터 말도 안 되게 귀엽고 화려한 분홍 드레스를 놀랍도록 새침하게 소화해 낸 강해솔을 지나 짙은 초록빛 드레스를 입은 심상록까지 확인한 정모 씨는 제 눈을 의심했다.
종잇장처럼 얇은 레굴루스 멤버들 가운데 그나마 근육질에 남성미를 뿜어내는 심상록마저 어떻게 한 것인지 한 떨기 꽃처럼 고상하기 그지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다들 늠름한데, 왜 잘 어울리지?’
남자 아이돌이 콘서트에서 드레스나 치마를 입고 무대 위에 서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멤버 전원, 각각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 미친 듯이 어울리게 차려입는 경우는 드물 것이었다.
‘이런 건 원래 좀…… 재밌게 하는 거잖아.’
이건 예뻐도 너무 예뻤다.
뭘 하든 진심으로 하는 멤버들인 건 알았지만, 공주님 드레스까지 이렇게 진심으로 입고 나올 줄은 몰랐다.
“흐흐흑……!”
아까부터 종종 신경 쓰였던 홈마는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어느새 양쪽 뺨에 굵은 눈물 줄기를 흘리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정모 씨는 그 눈물에 어쩐지 동질감을 느끼며 다시 센터에서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최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흘러가는 것이 너무 아쉬운 시간이 야속하게 흐르고, 마침내 돔 구장 안에 츄유프의 마지막 파트가 울려 퍼졌다.
[Choose your princess. 네가 선택하는 세계, 그 끝에 내가 있기를.]마지막까지 잊지 않고 Prince를 Princess로 바꾼 가사를 부른 멤버들은 뿌듯한 얼굴로 무대를 끝마쳤다.
‘이 전설의 레전드 무대가 끝이 나다니…….’
내일 것과 모레 것도 티켓이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1초라도 더 공주들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정모 씨가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자제하고 있을 때였다.
천장을 향해 들어 올렸던 마이크를 내린 예찬이 씩 웃으며 말했다.
[바로 다음 곡 이어 부르겠습니다. ‘I’m your princess’.]콘서트장 안이 환호성으로 뒤덮이느라 전주가 묻힌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