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0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06화
레굴루스의 첫 번째 콘서트는 180분이라고 적혀 있던 시간을 훌쩍 넘긴 뒤에 끝이 났다.
‘형들 성격에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팬들은 급하게 묵을 곳을 알아보거나 아직 운행 중인 차편을 찾아보는 것 같았지만, 어디에도 다섯 시간에 걸친 공연을 선보인 레굴루스를 원망하는 이는 없었다.
기태랑은 자신을 알아보는 레굴루스의 팬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재빨리 남지유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예상보다 더 늦어진 귀가에 동생이 어찌 돌아갈지 걱정이 되어 문자를 보냈더니 ‘너나 잘하세요.’란 답이 돌아왔다.
‘친구 부모님이 데리러 오셨어.’라는 메시지가 뒤이어 도착하지 않았다면 당장 전화 버튼을 누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진작 이렇게 말하면 좀 좋냐고.’
사춘기에 접어든 동생이란 정말 대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 끝이 언제일지 기약이 없기에 더 힘들었다.
“태랑랑.”
목적지에 도착해 괜스레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며 기다리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나타난 남지유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지유 형! ……헙!”
반갑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지금까지 봤던 것 중 가장 못생긴 남지유가 서 있었다.
“형, 얼굴이 그게 뭐예여!”
“크음, 좀 이상하지?”
“좀이 아니라 엄청이여!”
얼마나 울었는지 남지유는 눈두덩이뿐만 아니라 온 얼굴이 시뻘겋게 퉁퉁 부어 있었다. 기태랑이 성인이 되고 한턱내겠다며 정말 딱 죽기 직전까지 마셨던 다음날보다도 끔찍한 상태였다.
기태랑은 조금 위기의식을 느꼈다.
‘지유 형보다는 내 쪽이 몇 배는 더 레굴루스 팬이라고 생각했는데!’
기태랑 또한 감동적인 순간에 몇 번쯤 눈물을 훌쩍이긴 했다.
팬들이 준비한 슬로건 이벤트에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이경이 형’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을 땐 ‘훌쩍’ 수준이 아니라 ‘주륵’ 정도로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그렇지만 남지유의 저 몰골은 콘서트 내내 대성통곡을 하고 온 수준이었다.
커다란 눈이 자랑거리였던 남지유의 눈은 이제 실처럼 가늘어져 있었다.
“형, 앞은 보여여?”
“좀 답답한 거 같기도…….”
“어휴. 형 진짜 즐기셨구나.”
“하하…….”
기태랑의 말에 남지유는 어색하게 웃었다.
‘즐긴 거 아닌데.’
남지유는 아직도 콘서트장 입구에서 쏟아지는 인파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저 인파에 뒤섞여 있던 남지유는 즐겁기는커녕 우울했다.
처음엔 분명 그냥 즐겁게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앙코르가 시작된 후부턴 남지유는 단 한 순간도 웃을 수 없었다.
남지유 또한 아이돌로 활동해 본 적이 있었던 만큼, 콘서트 무대에 서서 객석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물론 레굴루스처럼 돔구장처럼 화려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부러운 것은 아니었다.
천여 명이 조금 넘었던 관객들은 무대 위에 선 그들의 가수를 위해 눈을 빛내고 목청을 높였고, 남지유는 그들을 위해 밤새 노래하고 춤춰도 힘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오늘의 콘서트를 계기로 끝이 보이지 않는 비인기 아이돌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막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했었다.
그렇지만 다른 멤버들은 남지유와 달리 작디작은 콘서트장의 규모에 크게 낙심을 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유피테르가 그보다 며칠 전 해외 돔구장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 여러분이 집에 무사히 가려면 이제 그만해야 할 거 같죠? 한 곡 더 하면 차 끊길 거 같은데…….
– 네?
– 아무래도 그렇죠? 다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앙코르로 한 곡 더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남지유는 돌연 찬물을 끼얹는 멤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들 나름대로 좋게 포장해 보려 했지만 더 하고 싶지 않다는 본질적인 의지가 팬들에게 그대로 전해졌기에, 조금 전까지 훈훈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버석해졌다.
‘지금은 좀 알 것도 같지만.’
당시 막 중학교 교복을 벗은 데다 어느 정도 집에서 서포트를 해 주고 있던 남지유와 다른 멤버들은 상황이 달랐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 업계는 나이가 깡패라는데 별다른 성과 없이 그 나이만 한 살 한 살 늘어가고, 여전히 성공도 정산도 멀게만 느껴지니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늪처럼 그들의 의지를 침식했을 것이다.
‘당장 가족들 몫까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원망스러운 순간이 몇 번이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계약 기간인 7년을 꼬박 채운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것이 당시 멤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음에도, 오늘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이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한 곡 더 부르고 싶습니다!
– 저도요!
– 오 통했어, 통했어.
– 그런데 우리 수록곡까지 다 부르지 않았어요?
– 같은 노래 또 부르면 안 되나?
– 불러요, 불러!
만약 그때 오늘 레굴루스 멤버들이 그랬던 것처럼 누구 하나 무대에서 내려가려 들지 않고, 어떻게든 한 곡이라도 더 부르고 싶어서 안달을 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쯤 좀 더 큰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돔구장을 돌아본 남지유는 기태랑을 재촉했다.
“빨리 차로 가자. 지금 가도 지옥일 듯.”
“넵!”
어쨌거나 지금으로선 그저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밤바람에 뺨을 내주고 있으려니 객석에서 그렇게 울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기분이 산뜻했다.
어쩌면 다음번에도, 또 그다음 번에도 남지유는 콘서트장에서 오늘처럼 엉엉 울 수도 있었다.
“제가 운전할까여?”
“형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아, 너무하잖아여!”
그래도 같이 돌아갈 동료가 있으니 금방 괜찮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 * *
원래 준비했던 레퍼토리보다 몇 곡이나 더 불렀음에도 무대에서 내려온 멤버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더 하고 싶다!”
잔뜩 들뜬 얼굴로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범세혁이 양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적당히를 모르는 멤버들은 그런 범세혁을 무시하지 않고 어떻게 앙코르 레퍼토리를 좀 늘릴 수 없을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예찬 또한 같은 마음이었으나 그마저 현실의 제약을 잊을 순 없었다. 예찬은 팀의 리더였으므로.
“친애하는 멤버 여러분. 콘서트 첫날을 성공적으로 마쳐서 기쁜 건 이해하지만 이제는 스태프 여러분과 헤어져야 할 때랍니다.”
짝. 짝. 대기실 안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인 것을 확인한 예찬은 일부러 큰 동작을 곁들여 박수를 두 번 쳤다.
“콘서트는 이제 막 시작된 거라고요. 내일은 공연 안 할 거예요? 다들 신속히 환복하고 차에 올라탄다, 실시!”
“실시!”
예찬의 말대로 콘서트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내일과 모레뿐만 아니라 다음 주와 그다음 주도 레굴루스는 무대에 서야 했다.
근성으로 무대에서 몸의 피로를 잊고 날아다닐 수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근 한 달간의 일정을 정신력만으로 버텨 낼 수 없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어서 자신을 관리하는 것도 일의 일환임을 진작부터 숙지시켜 두어서인지 멤버들은 예찬이 두 번 지시하게 만들지 않았다.
예찬 또한 부산스럽게 돌아갈 준비를 하는 멤버들 사이에 껴서 바지런히 옷을 갈아입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남은 일정들도 오늘처럼 앙코르를 해야 하는데. 이번 주는 어쩔 수 없고, 다음 주엔 주말 전까지 새로 추가된 곡들 위주로 연습해야겠어.’
고장 난 라디오도 아니고 매번 똑같은 멘트를 반복할 수 없기에 매 공연 토크는 자유롭게 바뀌었지만, 레퍼토리는 그럴 수 없었다.
순간순간 가슴이 외치는 대로 앙코르곡과 횟수를 정해 부를 수 있다면 퍽 낭만적일 순 있겠지만 정말로 그렇게 했다간 인터넷이 활활 타오를 것이었다.
첫날에는 이랬는데 둘째 날엔 어땠고, 셋째 날은 또 어땠다는 식으로.
물론 매번 다른 앙코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어느 날이 제일 좋았고 어느 날 갔던 사람은 같은 돈 내고 손해 본 것이란 말이 나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앙코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음은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에 진작 도지윤 팀장에게 전해 두었고, 도지윤 팀장은 근무 시간이 추가 될 경우 적절한 금액을 지급한다고 미리 모두에게 전달해 두었다고 했다.
NJ는 몰라도 도 팀장은 이런 계산을 할 때 인색하게 구는 법이 없으니, 예찬은 전보다 더 철저하게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됐다.
‘그리고 메인 퀘스트도 이제 확인을…….’
“예찬이 너는 진짜 대단하다.”
숙소에 도착하면 모두 씻기 무섭게 뻗을 테니 그 틈에 퀘스트 창을 확인해 보려던 예찬은 어깨에 걸쳐진 팔의 익숙한 무게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잽싸게 옷을 갈아입은 선우이경이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한 수백 번은 콘서트 해 본 사람인 줄.”
예찬과 눈이 마주친 선우이경은 익살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 위로 팬들의 깜짝 이벤트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모습이 겹쳐서인지 실없는, 그러나 실상은 예리하기 그지없는 소리에도 예찬의 입에선 평소보다 한결 유한 대답이 나갔다.
“그런 척하는 거죠.”
“리더라서?”
“뭐.”
미주알고주알 진실을 고할 수 없기에 예찬은 말을 줄였다.
그렇지만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
선우이경의 말처럼 이미 수백 번은 더 서 본 콘서트 무대였지만, 그곳은 언제나 새롭게 예찬을 떨리게 했다.
“저도 리더를 본받아 내일부터는 좀 더 강직한 멤버가 될게요.”
“팬들이 형 우니까 좋아하던데.”
선우이경은 확실히 강해솔이나 정의탁, 채은성과는 달랐다.
세 사람이었다면 예찬이 문장에 마침표를 채 찍기도 전에 안 울었다고, 아니면 아까 그건 혹은 눈에 먼지가 들어갔던 것뿐이라고, 그것도 아니면 정확히 몇 시 몇 분 몇 초에 울었냐고 증거를 대라며 버럭 소리를 쳤을 텐데.
선우이경은 민망한 건지 흐뭇한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쓱 올릴 뿐이었다.
상대가 저렇게 태연하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은 이쪽이었다.
격렬한 반응이 그리워진 예찬은 때마침 옆을 지나가는 강해솔을 붙잡았다.
“형, 아까 울었…….”
“안 울었다고!”
‘음, 반응 좋고.’
심지어 유쾌한 리액션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울…, 아니 저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것 때문에 생리적인 눈물이 났을 뿐이거든요! 진짜로!”
“허! 인간적으로 몇 시 몇 분 몇 초에 울었는지 댈 수 있는 거 아니면 울었다느니 뭐니 생사람 잡지 말자!”
‘울었다’는 단어에 제 발 저린 놈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덕분이었다.
“저, 예찬아.”
급발진한 멤버들을 보며 고개를 내젓는 예찬을 조심스레 부른 것은 매니저였다.
“너희도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무슨 일이냐고 눈으로 묻는 예찬에게 매니저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리스피릿 정찬양’, ‘레굴루스’ 콘서트 관람 도중 실신.]화면 속 진한 글씨로 적힌 기사 제목을 확인한 예찬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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