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0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08화
예찬이 정찬양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이, 그를 대신하듯 매니저와 도지윤 팀장이 리스피릿 멤버들과 먼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레굴루스 매니저 이건호입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해요. 어, 도 팀장님이랑 예찬 씨도.”
“아니요, 당연히 와야죠.”
“찬양아, 그냥 누워 있어! 조금 전에 막 정신이 들었거든요.”
정찬양이 침대를 짚고 일어나려 들자 최선이 급하게 만류하며 지금 막 병실에 들어온 예찬과 일행들을 향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찬양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꾸역꾸역 상체를 세워 앉으려 들었고 최선은 당장이라도 한소리를 내뱉을 것 같은 얼굴로 그런 정찬양의 어깨를 눌렀다.
“그냥 누워서 말해. 누워서.”
‘우리 없었으면 육두문자 뱉었겠는데.’
익숙한 얼굴이 익숙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정찬양만 뚜렷하게 보이던 시야가 서서히 넓어졌다.
그 와중에도 정찬양은 예찬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러 쓰러진 것은 아닌지 반반했던 낯짝이 정말로 초췌했다.
‘불면증이라고 듣긴 했었는데……. 아니 그런데 그게 벌써 거의 반년 전이잖아? 설마 지금도 못 자는 건가?’
전아체 촬영 도중 박마루가 털어놓은 고민을 떠올리며 예찬이 이상한 기시감의 정체를 파악하는 사이, 정찬양이 버석한 입술을 열었다.
“다들 자리 좀 비켜 주실래요. 예찬이랑 할 말이 있어서요.”
나직한 목소리가 부르는 ‘예찬이’가 이상하게 귀에 박혔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그 목소리가 여느 때처럼 거슬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찬양이 얼마나 군기를 잡은 건지 리스피릿 멤버들과 LEE 엔터 사장을 포함한 일행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별다른 반항 없이 병실을 비웠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황을 살피는 도 팀장과 매니저를 괜찮다고 고갯짓해서 내보낸 예찬은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진득하게 달라붙는 것 같은 감각이 한없이 예찬의 다리를 잡아끌었다. 지독하게 느린 걸음걸음에도 정찬양은 예찬이 침대 곁으로 다가올 때까지 눈을 감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와 바라본 정찬양의 얼굴은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더 엉망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좁은 병실을 꽉꽉 채운 리스피릿 멤버들이며 LEE 엔터 관계자들이 아니라, 병원 침대에 이렇게 눈을 감고 있는 정찬양을 분명히 보았다.
‘어떻게?’
스스로는 절대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에 예찬은 병실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 지금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때까지도 힘없이 감겨 있던 정찬양의 눈꺼풀이 찬찬히 들렸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러 여기까지 왔냐며 매도당할 각오를 했건만 정찬양은 어떤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예찬을 말갛게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러곤 피로에 절여진 얼굴로 베개를 더 깊게 베며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봤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정찬양의 말투는 책상은 책상이고 의자는 의자이듯 그 또한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듯했다.
정찬양이 태연한 만큼 예찬은 혼란스러웠다.
병원으로 오는 차 안에서부터 예찬을 괴롭혀 온 두통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심장이 머리로 옮겨가기라도 한 것처럼 관자놀이 부근이 쿵쿵 뛰다가 뜨끔뜨끔 쑤셨다.
“너 뭐야?”
예찬의 물음에 정찬양은 눈을 깜빡이더니 기운 없이 되물었다.
“글쎄. 난 뭘까?”
* * *
예찬이 정찬양의 병실에 방문했을 무렵,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멤버들은 둘 셋씩 한 욕실에 몰려들어 샤워를 하고 있었다.
죽어도 남과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강해솔만이 거실 바닥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인터넷에선 역시나 ‘레굴루스’의 콘서트에서 쓰러진 ‘정찬양’의 이야기로 들썩이는 중이었다.
– 정찬쉽 진짜 쓰러짐???
└ ㅇㅇ 겉돌이하던 덕들이 찍은 구급차 사진 개 많음
– 초대석에서 쓰러진거? 애들 반응은 어땠음???
└ 아마 어디 아파서 나오다가 쓰러진거 가틈;; 콘 같던 지인한테 물어봤는데 누구 쓰러졌다는 거 전혀 몰랐다더라
└ 일단 초대석이 아님 오늘 초대석에 윺이랑 애들 가족, 글고 피피피 작곡가 밖에 없엇음
└└ 피피피 침투력 무엇ㅋㅋㅋㅋ
└└ 또 그 거지같이 커다란 탈 쓰고 옴? 뒷자리였으면 개빡쳤을거 같은데
└└└ ㄴㄴ 뭔가 특촬물에서 쓸 거 같은 쫄쫄이? 탈이엇음
└ 이번에 초대권 진짜 안뿌린거같더라 나 3층이엇는데 정씨는 모르겟고 옆에 남Z유잇엇음
└└ 3층에 기ㅌ랑도 있었음
└└└ 걔네한테도 초대권 안 준 거임??;;; 와우;;;;
└└└└ 친한척은 그렇게 하더니ㅋㅋㅋㅋㅋ 연예인들 카메라 앞에서 가식 떠는 거 원투데이 아니라지만 좀 깬다ㅋㅋㅋㅋㅋ
└└ 들어보니깐 정찬쉽 4층이었다는데?
정찬양이 앉아 있던 자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레굴루스의 콘서트 굿즈로 도배한 유피테르 멤버들이 힘차게 응원봉을 흔들던 초대석이 아닌 4층 구석이었다는 것은 리스피릿의 팬들을 분개하게 했다.
그들은 정찬양이 츄즈 마이 프린스 99 방영 당시 중간 점검 게스트로 왔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레굴루스를 파렴치한으로 몰았다.
– 같은 출연진이면 모를까 그래도 멘토 입장으로 나온 선배님한테 초대권 하나 안주냐;;;
└ 달라고 안 한 거 아님?
└└ 레굴루스가 이번에 초대권 거의 안풀었다며 딱 봐도 거절한거임
└└└ 뭐래; 니 뇌피셜을 왜 팩트처럼 쓰고 지랄임??;
└└└└ 어느 쪽인지야 공식 발표가 없으니 알 수 없지만 솔직히 레굴루스 측에서 센스 있게 미리 준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님???
└└└└└ ?????? 대체 왜?????
└└└└└└ 츄맢때 특별 출연해줬잖아 사실상 레굴은 츄맢빨로 뜬건데 고마운줄 알면 자기들이 미리 초대했어야지
└└└└└└└ 이게 대체 무슨 논리지?? 츄마프 때 특출로 나온 연예인이 몇인데;;; 아예 그사람들만 불러모아 콘서트 하라고 하지 그러냐ㅋㅋㅋㅋㅋ
정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콘서트가 시작하기 직전, 레굴루스의 굿즈로 중무장한 예의 펭귄 인형을 들고 와 레굴루스네 테디베어와 함께 대기실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유피테르의 SNS에도 몰려갔다.
이쯤 되니 이클립틱들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 ㅈㅊㅇ 선배님 후속기사 왜 안뜨냐;; 여기저기서 말이 다 다른데 어떻게 된 건지 자초지종이라도 얘기해야하는 거아님?
└ ㄹㅣ엔터 원래 일 못하기로 유명함ㅋㅋㅋㅠㅠㅠ
– ㅠㅠㅠ혹시 낼 콘까지 이 분위기로 쭉 가는거야?ㅠㅠㅠㅠ
– 황ㅅㅣ우 선배님 임스타 난리났다 가서 댓글 신고 좀(링크)
그야말로 완벽한 다섯 시간+n분을 보내고 돌아왔더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란 말인가.
멤버들의 바뀐 스타일부터 어마어마했던 편곡과 있는 집 자식, 아니 있는 회사 아이돌인 티가 팍팍 나는 무대효과며 안무가 없었던 곡들에 붙은 안무,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완벽한 곡을 만들어 놓고 오늘까지 꼭꼭 숨겨 놓았다가 깜짝 공개한 ‘만개(滿開)’에 대해서 세상 모두가 주목하고 열흘 밤낮을 떠들어도 모자랄 판인데 이리 찬물을 끼얹는단 말인가!
‘만개(滿開)’ 무대가 끝난 후 콘서트 도중 회사에서 푼 기사로 모두가 예상했듯 ‘만개(滿開)’가 ‘개화 (開花)’의 연작곡이며 강해솔이 작곡을 맡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더욱 그랬다.
‘하……, 갑갑하다, 갑갑해.’
범세혁과 배새벽의 팬이자 전직 2D 덕후였던 김모 씨는 ‘만개(滿開)’ 무대 당시 천장에서 쏟아진 꽃잎을 넣어 둔 유리병을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 * *
“글쎄, 난 뭘까?”
그렇게 되묻는 정찬양은 예찬의 속을 긁으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알 수 없는 답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예찬이 무어라 말하고 싶은데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자 정찬양은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향해 눈짓했다.
“일단 좀 앉지.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 됐네. 어쨌든 또 무대에 서려면 잠깐이라도 앉아 있는 편이 낫지 않겠어?”
“…….”
당연히 예찬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할 것을 안다는 듯 덧붙인 말은 확실히 걷어찰 구석이 없었다.
예찬은 여전히 쑤시는 머리를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되뇌며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예찬의 행동을 눈으로 좇고 있던 정찬양은 예찬의 엉덩이가 의자에 닿은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다시 입을 열었다.
“콘서트 잘 봤어. 끝까지 못 본 게 아쉽네.”
그 말투며 목소리가 어찌나 사근사근하고 평온한지, 예찬은 잠시 이 미친 리셋창 새끼와 자신이 대충 십 년쯤 된 친구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친한 척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기엔 정찬양의 피죽도 먹지 못한 꼴이 눈에 밟혔다.
완전히 전투의지를 상실한 예찬은 적당히 환자의 태도에 제 것을 맞췄다.
“올 거면 초대권을 달라고 하지.”
“달라고 했으면 줬을 거야?”
“회사에선 줬겠지.”
“그건 의미가 없지.”
예찬이 개인적으로는 절대 줄 일 없다는 의사를 비치자, 정찬양은 누운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병실에 들어온 것으로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상대가 다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군다고 해서 리셋창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말장난이나 하며 아까운 시간을 죽이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예찬은 어서 신경 쓰이던 것이나 확인하고 자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까 했던 말은 뭐야.”
뻔히 알아들었으면서 정찬양은 무슨 소리냐는 듯 입을 꾹 다문 채 예찬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네가 이렇게 병원 침대에 나자빠져 있는 모습을 봤다며.”
“나자빠…….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아니, 그렇진 않지.”
예찬의 눈썹 한쪽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오늘따라 말도 안 되게 순종적인 정찬양이 마음에 안 드는데 여기서도 묘한 기시감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분고분한 태도는 겉보기 식이었는지, 다시 입을 연 정찬양은 대답하라는 말은 안 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예찬아, 나는 내 존재의 의미를 모르겠어.”
“뭐?”
또다시 항상 그랬던 사람처럼 예찬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른 정찬양은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오늘 콘서트에서, 너는 내가 원했던 그 모습이었어.”
“……뭐?”
‘뭔 소리야. 리스피릿을 훔쳐 보니 생각보다 별로라서 이젠 레굴루스를 훔치고 싶다, 뭐 이런 말이야?’
나름대로 자리에 편하게 앉았음에도 점점 더 심해지는 두통에 예찬이 미간을 와락 구긴 순간.
차갑고 건조한 손가락이 예찬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예찬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지만, 갑작스레 뻗어온 손가락의 주인인 정찬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예찬의 관자놀이에 엄지를 붙인 채였다.
‘지금, 이게, 무슨…….’
기운이 없어서인지 그냥 엄지를 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관자놀이 부근을 꾹 눌러 주려는 의도는 분명히 전해졌다.
머리가 아플 때마다 예찬이 그리하는 것을 대신해 주겠다는 듯이.
얼마나 놀랐는지 조금 전까지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던 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혹은 잊혔거나.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썩 다정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인 정찬양이 웃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울음일지도 모르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