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1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10화
역시 신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빌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눈에 비친 것이 죽어가는 자신을 보고 우는 예찬이라니.
신이 존재한다면 이렇게까지 한 사람의 인생의 끝이 이렇게 악랄할 순 없었다.
이것이 찬양이 두 번째 삶에서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생각을 한다고?’
그렇게 모든 것은 끝난 순간, 돌연 다시 시작되었다.
“이게 무슨…….”
연습실 거울에 바짝 붙어 열일곱 살로 돌아온 제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던 예찬은 몰랐겠지만, 찬양 또한 예찬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다.
육체가 형태를 잃어서인지 예찬의 오감을 빌려 주변을 감지하였으나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아니, 어쩌면 육신을 잃은 만큼 감각이 더 기민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저기, 예찬……씨?”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거울에 찰싹 달라붙은 예찬을 향해 수상쩍다는 시선들이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일단 진정하라고 예찬을 만류하려던 찬양은 멈칫했다.
‘어떻게?’
어떻게 존재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자신이, 어떻게 예찬에게 의지를 전할 수 있지?
“하, 하예찬 씨……?”
“대훈아!”
“어, 네? 제 이름은 어떻게…….”
“오늘 며칠이지? 아니, 몇 년 몇 월 며칠이야?”
“네에에?”
연습실 막내라는 포지션 때문에 총대를 메고 조심스럽게 예찬에게 말을 붙이던 김대훈은 예찬에게 어깨를 붙잡히자 파드득 튀어 올랐다. 새로 들어온 연습생은 잘생겼지만, 머리에 문제가 좀 있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201X년, 2월 16일이요.”
“201X년…….”
“저기, 그런데 제가 제 이름을 말했던가요……?”
“201X년, 2월 16일…….”
홀린 것 같은 얼굴로 김대훈이 알려 준 날짜를 읊조리는 예찬을 보며, 찬양은 그제야 사무치게 깨달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예찬의 곁에서 예찬을 지켜보는 것뿐이라고.
* * *
절망은 찰나였다.
“하나, 둘, 셋, 턴. 다시, 둘, 둘, 셋…….”
예찬의 구호에 맞춰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하던 연습생들이 시선을 주고받더니 일제히 바닥에 드러누웠다.
“끝! 이제 진짜 끝!”
“와, 진짜 힘들다! 잠깐만 쉬었다가 하면 안 돼?”
“응, 안 돼.”
익숙하다는 듯 예찬은 가장 가까이에 엎어진 박마루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올렸다.
“예찬이 형! 제바알!”
“누가 형이야?”
동갑내기 친구를 가차 없이 일으켜 세우던 예찬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이희샘이었다.
“예찬이 형님, 제발……!”
“희샘이 형까지……. 하아, 딱 10분만 쉬고 다시 합시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시계를 확인한 예찬이 어깨를 으쓱였고, 여기저기서 살았다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몇 달간 익숙해진 연습실 풍경에 찬양은 미소 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약 호선을 그릴 수 있는 입술이 있다면 그랬을 것이다.
이전의 LEE 엔터가 어땠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여기서 가만히 예찬이를 지켜보다가, 예찬이가 데뷔하는 걸 보고 성불하겠지.’
아무도 모르게, 홀로 조용히 말이다.
어찌 보면 전보다 더 쓸쓸한 최후이지만 찬양은 슬프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빈 소원을 이룰 수 있을뿐더러,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과정마저 코앞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교회 열심히 다닐걸.’
찬양과 예찬에게 기적을 내려 준 신이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다니던 교회의 하나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구에게든 감사하고 싶을 뿐이었다.
처음 예찬이 시간을 되돌아왔을 때, 찬양은 예찬이 곧장 찬양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에 마주친 것이 죽어 가는 찬양이었으니까.
그러나 예찬은 얼떨떨한 얼굴로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하고 LEE 엔터 연습실부터 사무실까지 괜히 들락거릴 뿐, 찬양에게 연락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분명 회사에서 쓰러진 거 같은데.
찬양이 진심으로 섭섭해져서 있지도 않은 발을 구르던 차에 예찬이 조용히 혼잣말을 했고, 새로운 가설이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예찬은 찬양에 대해서 전부 잊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가설.
가설이 진실임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찬은 완전히 찬양에 대해 잊었고, 찬양의 존재는 그보다 더 완벽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어딘가엔 미처 지우지 못한 찬양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예찬의 인지가 닿는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를 처음 깨달았을 때 찬양이 느낀 것은 놀랍게도 후련함이었다.
이번엔 내가 사라져도 예찬이가 울 일은 없겠다.
코흘리개 시절, 아니, 그 시절에도 완벽하게 예쁘고 야무졌던 예찬은 물론 칠칠치 못하게 코 같은 걸 흘리고 다니던 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온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들은 찬양이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괜찮았다.
“와, 방금 범세혁 맞지? 쟤는 백퍼 데뷔하겠네.”
“이거 데뷔하면 7년 계약 아니야? 저기 소속사는 왜 저런 애를 서바이벌에 내보냈대? 돌았나?”
“지금쯤 사장 울고 있지 않을까?”
“우리랑 동갑이지? 진짜 미쳤다.”
“에이, 난 예찬이가 더 잘하는 거 같은데.”
“칭찬 고마워, 선아. 그런데 난 너도 저렇게 잘할 수 있다고 믿어.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너도 분명 할 수 있어.”
“아니야……, 나 믿지 마, 예찬아……. 제발…….”
시간이 흐르고 츄즈 마이 프린스 99가 시작되어 아는 얼굴들을 화면 너머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오래간만에 흥분하기도 했다.
‘세혁이는 진짜 변함없이 멋있네.’
“범세혁 말고 누구 또 데뷔할 거 같아?”
“심상록?”
“난 남지유 선배님.”
“야, 이거는 우휘겸이지.”
“아, 완전 인정.”
‘우휘겸은 못해.’
그렇게 생각하고 예찬의 얼굴을 바라보자 찬양과 똑같은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미래를 보고 온 예찬과 찬양만이 아는 사실이 닥치거나 마음이 일치할 때마다 찬양은 진심으로 즐거웠다.
“강해솔도 처음엔 괜찮았는데.”
“맞아. 나도 처음 등급 테스트 땐 범세혁이랑 강해솔이 제일 괜찮았어.”
“딱 봐도 대놓고 악편한 거 같은데 인터넷 보니까 살벌하더라.”
“원래 악마의 편집이 재밌잖아. PD들이 괜히 그러겠어? 어휴, 우리도 데뷔하면 남 일 아니다, 진짜.”
“그런데 왜 츄마프 99야? 연습생 98명이잖아.”
‘그건 제가 빠져서…….’
원래 정찬양의 자리였던 한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촬영 시작 직전에 연습생이 사퇴했다나 뭐라나 하는 기사 제목을 예찬이 연예 뉴스를 쓱쓱 넘겨볼 때 스치듯 볼 수 있었다.
예찬의 일과는 먹고, 자고, 연습하고, 또 먹고, 자고 연습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었는데, 종종 자신이 기억하는 회사의 위기에는 양팔을 걷고 나서기도 했다.
찬양의 일과는 그보다 더 단순했다. 예찬이 먹고, 자고, 연습하고, 가끔 회사 일에 참견하는 걸 지켜보고, 지켜보고, 지켜보고,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도무지 좋아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예찬의 연습실 친구들에게도 정이란 게 붙더라.
정해진 연습 시간이 끝나고 땀을 닦고 물을 마시는 연습생들 사이로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 이 안에서 홀로 그 긴장감을 읽지 못하는 예찬은 언제나처럼 박마루를 콕 집어 불렀다.
“마루. 남아서 연습 더 할거지?”
“엉.”
고개를 끄덕이는 박마루를 확인한 예찬은 곧바로 다음 목표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훈이랑 선이도?”
“형, 나 일단 화장실 좀 다녀와서.”
“희샘이 형은 어디 갔어? 도망친 거 아니지?”
“야! 물 좀 마시자, 물 좀!”
“아, 형 거기 있었어? 작아서 안 보였네.”
“너……!”
버럭 화를 내는 이희샘을 피해 달아나며 예찬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여느 때처럼 예찬에게 이름이 불리지 못한 연습생들은 축 처진 어깨로 터덜터덜 자리를 비웠다.
남아서 더 연습한다고 탓할 이는 없겠으나, 환영하는 이 또한 없는 연습실에 철판을 깔고 남기란 섬세한 청소년에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찬양은 예찬에게 붙잡힌 네 사람의 눈에 깃든 우월감을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었다. 찬양 또한 예찬과 함께 지내며 종종 느꼈던 감정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박마루, 김대훈, 최선, 이희샘.
예찬의 입에서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이름의 주인공들답게 네 사람은 이번에도 예찬의 인생에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고, 자연스레 찬양에게도 예찬 다음으로 의미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여러 연습생이 드나드는 과정에서 예찬은 놀라우리만치 이 넷 외에 다른 연습생들에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미래의 기억이 있는 예찬으로선 어차피 넷을 빼면 스쳐 가듯 떠나갈 놈들이니 말이다.
새로 들어온 연습생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연습실과 숙소에서 짐을 빼면 ‘그럴 줄 알았어’란 눈으로 힐끗 스치듯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었다.
예찬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행동이었겠으나, 지켜보는 찬양으로선 조금 달랐다.
회사에서 예찬의 입지는 단순한 연습생 그 이상이었고,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면 거의 왕과 다름없었다.
LEE 엔터가 영세하다고는 하나 늘어난 티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도 눈부시게 발광하는 예찬의 스타성이 있다면 분명 꽃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치대던 연습생들은 예찬의 무감한 눈에 얼어붙어 도망치듯 짐을 싸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예찬은 미래에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던 네 사람밖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단단한 울타리를 더 견고하게 보수했다.
예전의 찬양이라면 ‘나야, 박마루야? 누가 네 절친이냐고!’라며 예찬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겠지만.
이젠 그럴 수 없기에, 찬양은 그냥 가만히 예찬과 친구들을 응원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데뷔는 어느새 성큼 다가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곳에 있었고, 마침내 정말로 찾아왔다.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언제나 사무치게 고독했던 홀로 깨어 있는 밤이 지나가는 것마저 아쉬웠다.
[안녕하세요, 리스피릿의 리더 하예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무사히 데뷔 무대를 마친 예찬이 객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 순간, 찬양 또한 객석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리스피릿의 응원봉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짝반짝 빛나는 객석은 찬양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오랜만에 보네.’
마지막으로 본 광경치곤 제법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마 예찬은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을 응원하는 불빛들로 객석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찬은 빛나는 무대에 오르는 꿈을 이뤘고, 찬양 또한 예찬이 데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에 마지막 소원을 이뤘습니다. 친구의 성공을 축복하며 찬양은 천국으로 떠났고, 예찬은 그 유지를 받들듯 아이돌로 대성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Happily ever after.
완벽하게 해피엔딩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한 찬양은 만약 자신에게 눈이 있었다면, 이번엔 자기가 눈물을 흘렸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감성적이었다는 뜻이다.
‘……?’
그러나 각오했던, 혹은 기다렸던 것처럼 찬양의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찬과 찬양의 이야기는 행복의 정점에서 끝나는 동화가 아니기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