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1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11화
막연히 짐작하고 있던 끝이 들어맞지 않았던 순간부터, 찬양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널뛰기 시작했다.
“이번 앨범 초동 추이 진짜 괜찮은데?”
“진짜요? 와……, 진짜다!”
“얘들아! 광고 들어왔다!”
“오늘 무슨 날인가? 깜짝 카메라는 아니죠?”
“무슨 광고인데요?”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성공의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리스피릿을 볼 때면 여전히 뭉클하고, 곁에서 예찬의 기쁨을 지켜볼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뒤돌아서면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는 건지 두렵고 괴로웠다.
“아, 좀만 쉬자! 제발! 리더! 네?!”
“몇 분이나 했다고 쉬어.”
“두 시간이나 안 쉬고 했는데?! 나 땀으로 머리 축축해진 거 안 보여?”
“예찬아 나 진짜 꼼짝도 못 하겠어!”
“어휴…….”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 누군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질 못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귀엽게 보이던 리스피릿 멤버들이 때때로 얄미워졌고, 예찬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주고받던 소소한 순간들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했다.
‘예찬아, 오늘 무대 진짜 좋았어. 너 연습 때보다 배는 더 잘하더라.’
‘예찬아, 팬사인회 때 그 팬 또 올까? 데뷔 무대 때부터 오셨던 그 팬 말이야.’
‘예찬아, 내 생각에 코디는 좀 바꿔야 할 거 같아. 오늘 옷은 진짜 아니다……. 네가 입어서 이 정도지 벗으면 이건 옷도 뭣도 아니야…….’
‘예찬아, 생일 축하해. 올해도 축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예찬아, 너희 사장님 좋은 사람이긴 한데, 좀 호구 같아. 설마 재계약할 건 아니지?’
‘예찬아, 진짜 소원인데 이희샘 한 대만 때려 주면 안 될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얄밉지?’
‘예찬아, 저기…….’
‘예찬아, 나 말이야…….’
‘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예찬아…….’
기분이 좋을 때도, 기분이 나쁠 때도, 찬양은 예찬에게 말을 걸었다.
기적처럼 시간을 되돌아왔으니, 기적처럼 제 목소리가 예찬에게 닿는 날도 있지 않을까?
그것만이 찬양이 가진 유일한 희망이었다.
“리바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예찬은 잘 울었다.
찬양은 저 대신 스토커의 칼을 맞고도 의연했던 예찬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놀라다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의지할 수 없는 상대이기에 예찬은 제 앞에서 그토록 꼿꼿했던 것이다.
트로피를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펑펑 우는 예찬을 보며 뿌듯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울적해졌다.
한참을 리스피릿 멤버들과 부둥켜안고 울던 예찬이 물기 젖은 목소리로 소감을 계속했다.
“여러분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오래 함께해요.”
오래 함께해요. 그 다정한 울림이 찬양을 차갑게 얼어붙게 했다.
리스피릿의 신인상, 팬미팅, 음악방송 첫 1위와 콘서트, 그리고 마침내 대상까지. 그 모든 순간에 찬양은 함께했으나 홀로였다.
예찬의 곁에서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엔 더할 나위 없이 고양됐지만, 집으로 돌아와 잠든 예찬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부풀었던 것에 비례해 더 깊은 진창에 처박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예찬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지켜보기만 해야 하나?
‘예찬이가 죽으면 분명 슬프겠지……. 아, 벌써 눈물 날 거 같아. 그래도 나이 많이 들어서 크게 아픈 곳 없이 자연스럽게 가는 거면……, 아니 그러면 대체 몇십 년을 더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거야?’
애초에, 정말로 예찬이 죽으면 끝나는 것인가?
끔찍한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지만, 찬양은 도망조차 칠 수 없었다. 어서 예찬이 일어나 이런 생각이 달아날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내 주길 바랄 뿐. 찬양은 무지했고, 무력했다.
답이 없는 문제에 찬양이 켜켜이 매몰되는 사이에도 시간은 유수처럼 흘렀고, 리스피릿은 승승장구했으며, 비극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이건……, 아니잖아…….”
박마루를 실은 구급차에서 예찬이 울음을 삼킨 목소리로 작게 읊조릴 때까지도 찬양은 정말로 제가 뭘 해야 하는 지, 그리고 뭘 할 수 있는지 몰랐다.
파리한 박마루의 낯을 예찬과 함께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건지 서러웠다.
‘이대로 박마루가 죽는다고? 말도 안 돼.’
솔직히 앞으로 엉망이 될 리스피릿의 지난날과 앞날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이건 진짜 아니야. 이건 안 된다고…….’
만약, 만약 할 수 있다면. 정말로 할 수 있다면.
[다시 하고 싶어.] [다시 도전해 보겠습니까?>―RESET―
A&D Corp.
예찬과 찬양의 마음이 완벽하게 일치한 순간, 예찬의 앞에 두 번째로 리셋창이, 찬양이 떠올랐다.
* * *
두 번째 리셋 이후, 한동안 찬양의 머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하예찬입니다. 우리 열심히 해서, 꼭 함께 데뷔해요.”
“어, 네에…….”
예찬이 기적 같은 기회를 다시 얻고, 지금까지 중 제일 자신감 넘치는 눈으로 미래의 리스피릿이 될 연습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대충 흘려 넘길 정도였다.
‘내가, 시간을 돌렸어…….’
수년 만에 잠깐 되찾은 육신은,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홀로그램 창이었다.
……그것을 육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동시에 찬양은 뒤집힌 차가 폭발했던 순간, LEE 엔터 사무실에서 과호흡이 왔던 예찬의 눈앞에 잠깐 튀어 나갔던 것도 떠올렸다.
‘그때 잠깐 심장이 멈췄던건가? 예찬이가 기억하는 것은 그때였구나. A&D Corp라니…….’
익숙한 알파벳의 나열은 그간 잊고 있던 기억의 파도가 되어 해일처럼 한순간에 찬양을 덮쳤다.
‘하경이 형, 완전 잊고 있었다…….’
A&D Corp은 하경이 만들고자 했던 게임 회사의 이름이었다.
A와 D를 보면 설마 싶겠지만, 그것들은 정말로 천사를 뜻하는 Angel과 악마를 뜻하는 Devil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 미치도록 유치한 작명에 찬양과 예찬이 치를 떨었으나 하경은 요지부동이었다.
– 중학생 때 정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러면 바꾸라고.’
하경의 차에서 했던 대화도 하나둘 떠올랐다.
– 제주도에서 게임은 좀 해 봤어? 경치 좋으니까 게임도 술술 되지 않아?
– 어. 형, 그림은 대체 언제 바꿀 거야?
– 너도 예찬이도 자꾸 그 소리만…….
– 예찬이가 너무 못생겨서 몰입이 안 되잖아.
바빠진 예찬을 대신해 찬양은 하경이 거의 완성했다고 들이민 ‘리셋 아이돌’의 베타 테스터 노릇을 해 주고 있었다.
‘리셋 아이돌……, 그 게임도 리셋 버튼을 눌러서 돌아가는 방식이었지. ……아니, 마지막에 했던 게임이 그거라고, 내가 리셋창이 됐단 말이야?’
분명 예찬이 데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소원을 빌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이루어달라고 한 기억은 없는 거 같은데. 심지어 소원은 이미 이뤘는데 이 상황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지 않은가.
지금이라면 머리가 아플 때마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예찬의 심정이 백분 이해가 갔다.
찬양에게 제대로 된 인간관계라곤 예찬과 하경 말곤 없었는데 어떻게 하경을 잊을 수 있었는지는 놀랍지 않았다.
“그러면 어디까지 연습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네? 왜요?”
“그야 지금부터 연습해야 하니까요?”
“네? 저기, 오늘 인사하러 오신 거 아니었나요?”
“1분 1초가 아까운데 어떻게 인사만 하고 돌아가겠어. 아, 대훈아. 내가 더 형이니까 말 놓을게.”
“어어, 네엡…….”
“마루 너도 연습 할거지?”
“나, 나도……?”
실제로 예찬은 하경뿐만 아니라 찬양까지 잊고도 저리 멀쩡히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찬양의 기억이 돌아온 것처럼 예찬 또한 자신이나 하경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유심히 살폈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한동안은 홀로 남는 밤이 지겹지 않았다. 조용히 하경에 대해 생각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경이 형도 나처럼 아예 존재가 사라진 걸까? 한 번 집에 가보고 싶은데 예찬이는 아예 모르니까…….’
하경이 존재해도, 혹은 존재하지 않아도 문제였으나 더 큰 문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그냥 믿는 수밖에 없네.’
이번에도 이전처럼 답이 없는 문제였으나 전과 달리 찬양은 마냥 우울하지 않았다.
‘형은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예찬이나 이전의 찬양이 그랬던 것처럼, 하경 또한 두 사람에 대한 것은 깨끗하게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란 상상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하경은 입버릇처럼 너희들이 있어서 산다고 말했지만 띠동갑 차이가 나는 동생은 그의 인생에 큰 짐이었을 것이다.
예찬이 꿈을 이룬 것처럼 하경 또한 분명 자신의 삶을 찬란하게 빛내고 있으리라.
그러던 사이 예찬이 지난번 데뷔 이후에 발생한 문제들을 미리 해결하느라 리스피릿은 전보다 조금 느리게 데뷔했지만, 그보다 훨씬 빠르게 성공의 계단을 올랐다.
예찬의 닦달로 건강검진을 받아 초기에 병을 발견한 박마루의 어머니가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았을 땐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해피엔딩에 도달했다고 외치며 펄쩍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쯤 되니 그냥 언제가 마지막이든, 아니면 설사 마지막이 없더라도 예찬의 곁에서 성공에 함께 기뻐하고 보람을 가지며 살아가리라 결심이 섰다.
[[단독] 리스피릿 이희샘, 마약 투약 혐의!] [리스피릿 김대훈♥버블리 체리, 열애 의혹] [‘억대 원정 도박’ C군의 정체는 현역 아이돌?]같은 그룹 멤버들이 다투듯 연달아 신문 1면을 장식하지 않았다면 분명 오래도록 그랬을 것이다.
– 미안하다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던 최선은 ‘너 아니지?’라고 묻는 예찬의 메시지에 짧게 답했다.
“어, 어떻게…….”
메시지를 확인한 예찬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비틀거리다 소파를 짚었다. 어젯밤 대뜸 무릎을 꿇고 형들에겐 미안하지만 사랑이 죄는 아니지 않냐며 당돌하게 고개를 든 김대훈과 눈을 마주치며 앉아 있던 그 소파였다.
이희샘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어서 아예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아니, 뭐…….”
‘미친놈들 아니야?!’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예찬과 달리 찬양은 그저 화만 났다.
지난번과 다르게 너무 가파르게 성공길을 걸어서인지 예찬을 제외한 멤버들의 겸손과는 거리가 먼 태도가 영 마뜩잖을 때가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도미노처럼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예찬아, 다시 하고 싶다고 생각해. 다시 하자. 다시!’
지금이라면 분명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후우…….”
그러나 예찬은 쉽게 ‘다시’를 떠올리지 않았다.
연예계 생활을 하며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예찬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니, 색다른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외부에서 터지는 거랑 내부에서 터지는 거는 좀 다르지 않나?’
적어도 찬양은 이번 일로 박마루를 제외한 나머지 세 멤버들에게 정이 뚝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밉상이었는데.’
그러나 예찬은 한숨만 푹푹 내쉬며 미련하게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예찬아, 숙소에 있었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마루가 숙소로 돌아왔고, 두 사람은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아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예찬아.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 줄래……?”
그리고 대화가 마무리되려던 순간, 아까부터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머뭇거리던 박마루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음, 내 생각엔 다들 본성이 나쁜 건 아니고, 잠깐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 ……예찬이 네가 좀, 많이 빡빡하게 굴긴 했잖아.”
“……!”
‘……!’
박마루의 망언이 끝남과 동시에 예찬은 리셋창을 눌렀고, 찬양은 박마루에게도 완벽하게 정이 떨어졌다.
개 같은 리스피릿!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