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1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13화
“……안녕하세요, 하예찬입니다.”
찬양은 당연히 예찬이 LEE 엔터를 박차고 나와 새 회사에서 새 도전을 하리라 생각했으나, 예찬은 불신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한 채 회사에 남았다.
다른 연습생들을 데리고 데뷔하려는 건가 생각했지만, 때때로 꼴 보기 싫다는 얼굴을 하는 것치곤 잘도 리스피릿 멤버들을 챙겨서 데뷔를 했고.
‘예찬아, 혹시…… 돌았니……?’
이쯤 되니 갑갑해 죽을 것 같은 건 찬양이었다.
정이 많은 성격인 건 알았지만, 두 번이나 뒤통수를 맞았으면 헤어질 때를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치라고 뒤통수 내주는 수준이잖아.’
지금까지 찬양이 지켜본 예찬은 심지가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리스피릿 멤버들과 함께하는 날이 이어질수록 하루가 다르게 중심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어느 날은 함께 꿈을 키우던 시절과 꼭 닮은 편린에 마냥 즐겁다가, 또 그다음 날엔 개 짖는 소리를 하던 날의 된 모습을 엿보고 홀로 분을 삭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라면 절대 답이 뻔히 보이는 바보짓을 반복하지 않을 텐데.’
4회차, 5회차, 6회차, 고집스레 리스피릿을 안고 가며 예찬은 ‘가장 확실하게 성공하는 길’을 알고 있어서라고 자위했으나, 찬양의 눈엔 그냥 단순한 미련이었다.
츄마프를 포함해 LEE 엔터 외부의 일에도 가시가 돋친 듯 더 예민하게 반응했으며, 멤버들이나 회사가 예찬을 실망시킬 때마다 미친 듯이 일에만 매달렸다.
동시에 예찬의 팬들에 대한 사랑은 더더욱 깊어져 갔다.
인생의 쓴맛을 볼수록 그들의 끝없는 사랑의 위대함을 깊이 체감하는 것인지.
멤버의 불법 투기 사건이 연일 화제가 되는 가운데 새롭게 터진 양다리 기사를 지켜보며 예찬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또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한들 이 답 없는 회사나 멤버들을 갈아치우지 못할 것이다.
일곱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을 다시 한다고 해도, 하예찬은 리스피릿 멤버들의 손을 잡고 무대에 오를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 아니야.’
찬양은 이제 정말 한계였다.
이건 고장 나서 같은 장면만 반복하는 비디오테이프보다 더 악질이었다. 익숙해질 새도 없이 자꾸 색다른 방식으로 엿을 먹이지 않는가.
‘난 이젠 다시 하기 싫어.’
차라리 이대로 그룹은 잠정 해체하고 솔로로 새로 시작하는 편이 예찬에게도 나을 것이다.
처음으로 다시 하고 싶은 예찬과 그만두고 싶은 찬양의 마음이 엇갈렸고, 그에 맞춰 리셋창은 처음으로 형태를 달리했다.
[다시 도전해 보겠습니까?>D : RESET
A : STAY
A&D Corp.
잠시 멈췄던 예찬의 손가락은 이내 망설임 없이 리셋 버튼을 향해 뻗었다.
* * *
“이게 대체…….”
예찬이 리셋 버튼을 선택한 순간, 익숙한 LEE 엔터 연습실에 서 있는 건 어째서인지 예찬이 아닌 찬양이었다.
수십 년 만에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어색해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입을 막은 찬양은 이번엔 제 뜻대로 움직이는 손이 어색해서 굳었다.
“괜찮으세요?”
그런 찬양이 이상했는지 김대훈이 말을 붙였다.
찬양은 그 얼굴에 서린 걱정에 역함을 느끼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저, 저기요?!”
“야, 김대훈!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 사색이 돼서 도망을 쳐!”
“아니, 별말 안 했는데?”
뒤에서 들리는 당황한 목소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난생처음 느끼는 강렬한 희열이 찬양의 온몸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다시 할 수 있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지긋지긋한 리스피릿과 LEE 엔터를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찬이는……?’
사실 찬양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연습실 거울을 본 순간 본능이 찬양의 귀에 속삭인 것이다.
이제 이 세상에는 하예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그대로 집까지 내달린 찬양은 그제야 사라진 예찬을 찾기 시작했다.
저와 예찬의 과거가 완전히 뒤바뀐 것을 깨달은 후엔 흥신소를 찾아 자신이 다녔던 학교며 살던 집까지 샅샅이 조사했으나, 전에 찬양이 그러했듯 이번엔 예찬의 존재가 세상에서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다.
‘예찬이가, 없다.’
서류로까지 예찬의 부재를 확인하자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지난 수십 년간 찬양의 전부이자 세계였던 예찬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나 때문이야.’
찬양의 허벅지가 숙인 고개에서 떨어지는 뜨뜻한 물방울로 점차 젖어 들었다.
‘내가,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제 세상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던 하예찬은 오로지 찬양의 기억과 꿈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래, 꿈.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연습실에서 예찬과 뒤바뀐 이래, 찬양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밤 생생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들은 전부 리셋 도중 예찬이 리스피릿 멤버들 때문에 겪었던 엿같은 기억들이었는데, 어찌나 하나같이 거지 같은지 잠에서 일어나도 그 분노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박마루가 클럽을 대관해 벌였던 파티에 경찰이 난입했으며, 현장엔 김대훈의 ‘현’ 여자 친구가 셋, ‘전’ 여자 친구가 다섯이나 있었다는 연락을 받는 꿈을 꾼 찬양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시 봐도 끔찍하네……. 예찬이는 대체 어떻게 저런 애들이랑 계속…….’
좋은 기억은 단 하나도 보여 주지 않는 이 악몽은 이 세상이 찬양에게 주는 벌이 분명했다. 찬양은 세계로부터 예찬을 빼앗은 죄인이니까.
너라도 예찬을 평생 잊지 말라고, 그렇게 찬양에게 속삭이는 게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아니, 그게 아니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려던 찬양은 문득 깨달았다.
비록 예찬은 없을지언정, 찬양은 예찬이 했던 행동들은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었다.
‘그게, 예찬이야!’
예찬이 했던 행동이, 그리고 그 행동이 만드는 결과가 하예찬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끝이 없을 거라 믿었던 암흑 속에 한 줄기 빛이 내비쳤다.
찬양은 곧바로 운동화를 꺾어 신고 택시에 올라탔다.
“찬양아!”
삼 주 만에 만난 LEE 엔터 사장은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말만 연신 내뱉을 뿐, 갑자기 뛰쳐나간 찬양을 탓하지 않았다.
“어휴, 잘 왔다. 잘 왔어!”
“죄송했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사과한 찬양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귀한 시간을 한참이나 낭비해 버렸으니, 앞으론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예찬이 걸었던 길을 아주 똑같이 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이 끊기는 순간, 그땐…….
‘……그때 생각해야지.’
미래의 일을 생각하기엔 자신만 기억하는 예찬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 * *
“그다음부터는 너도 알다시피 완벽하게 네가 했던 걸었던 길을 따라갔지. 돌이켜봐도 참 잘 따라 했어. 그게 내 삶의 의미였거든.”
긴 이야기가 버거웠는지 정찬양의 갈라진 입술 새로 기침이 새어 나왔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아 그렇구나’하고 한편으로 이해하고 있는 자신이었다.
주먹을 꾹 쥐었다 편 예찬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왜 처음 만났을 때 말 안 한 거야?”
분명 날카롭게 쏘아붙일 셈이었는데 입 밖으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제가 듣기에도 기운이 없었다.
정찬양은 민망한 듯 시선을 굴렸다.
“그땐……, 나도 정말 많이 놀랐어. 전에 대기실에서 말했잖아?”
예찬은 헛소리로 흘렸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 예찬아, 미지라는 건 공포야.
– 나도 내 나름의 인생 계획이 있는데 갑자기 상상도 하지 못한 네가 튀어나온 거야. 내 안에서는 이미 무덤에 들어가 백골이 된 지 오래인 네가 말이야! 당연히 머릿속에 위험하다고 경고 경보가 울리지 않았겠어?
처음엔 그저 당황해서 예찬을 배제하려 했다던 말 같잖은 소리를 시작으로 그날의 정찬양이 예찬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그럼 넌 왜 그 꼴 보기 싫은 애들이랑 데뷔했는데?
– 전관예우?
리스피릿 멤버들에 대해 가차 없이 혹평을 내리던 정찬양.
– 내가 그 쓰레기들을 데리고 지금까지 해 온 건 전부 너를 위한 거야.
– 네가 했던 걸 그대로 따라 했지. 나라도 네 넋을 기리는 마음으로 말이야. 지금까지 내 행동들은 너를 향해 바치는 진혼곡이었던 거야.
그 끔찍한 놈들과 데뷔를 한 것은 전부 예찬을 위해서였다는 헛소리.
– 나는 정말로 너나 레굴루스와 다툴 마음이 없어. 그러니까 앞으론 서로 상관하지 말고 각자 갈 길을 가자.
– 너랑 내가 네 말대로 ‘친구’는 아닐지언정 이 세계에서 동떨어진 단 둘뿐인 존재인 건 맞잖아. 과거는 묻어 두고 앞으론 사이좋게 서로 응원해 주자. 그래야 이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덜 외롭지 않겠어?
은근히, 아니 대놓고 화해하길 종용하던 그 장황한 말들까지.
‘그게 전부 진심이었다고?’
예찬이 기억을 더듬을 시간이라도 주려는 것인지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던 정찬양이 다시금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변명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너와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도 악몽을 계속 꾸고 있었거든. ……솔직히 그래서 너에 대해서도 불만이 좀…, 없진 않았어.”
“…….”
“회사랑 멤버들은 짜증 나고, 꿈자리는 더럽고, 아직 갈 길은 먼데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허탈하고. 그래도 하기로 결심했으니까 끝까지 하긴 할 건데, 이 모든 게 회사랑 멤버들을 버리지 못한 너 때문인 거 같고.”
“…….”
“그 와중에 갑자기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네가 튀어나온 것도 모자라 나한테 화를 내잖아. 당연히 방어기제가 발동하지 않겠어?”
다시금 쿨럭쿨럭 기침을 뱉은 정찬양이 한쪽 눈을 찌푸린 채 갈라진 목소리로 물을 요구했다.
예찬은 말없이 잔에 물을 반쯤 채워 건네려다 정찬양이 누워 있는 것을 깨닫고 침대의 등받이 각도를 조절했다.
유리잔을 들 힘도 없어 보이는 정찬양의 입가에 대신 잔을 대주어 목을 축이는 것을 도울 때까지 두 사람 모두 짠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두어 번 헛기침을 한 정찬양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네가 다시 돌아온 그날, 그날부터는 좋았던 꿈만 꾸더라. 너랑, 나랑, 하경이 형이 좋았던 날들 말이야.”
“…….”
“그동안 어떻게 잊고 지냈지 싶을 정도로 좋은 날들만 가득했어. 우리 셋 사이엔. 내가 왜 죽음의 문턱에서 네가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길 바랐는지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로.”
예찬은 이제 자신도 입을 열어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에 기댄 채 자신을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저 환자에게 무어라도 말을 해야 할 때였다.
물끄러미 정찬양을 내려다보던 예찬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생각을 지우듯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난…… 기억이 나지 않아.”
“알아.”
정찬양이 담담히 대답했다.
예찬은 자신이 그 얼굴에 희미하게 어린 체념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네 말이 거짓말 같지가 않아.”
“……그렇구나.”
짧게 입술을 깨문 예찬이 덧붙인 말에 찬양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이내 기쁘다는 듯 부드러운 색을 띠었다.
예찬은 이 상황이 너무나 이상했다.
근 1년 이상 증오해 오던 상대와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말이 되는가?
‘꿈, 차라리 꿈이면 말이 될 거 같아…….’
혼란스러운 예찬과 달리 정찬양은 초라한 행색과 달리 정말로 평온해 보였다.
“분명 너도 곧 기억하게 될 거야.”
확신에 찬 말에 예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떻게?”
까칠한 물음에도 정찬양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하경이 형, 거기 있지’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