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1화
“진짜 다들 너무 고생했어. 특히 휘겸이! 마음고생도 심했을 텐데, 너무 잘해 줘서 고마워!”
남지유의 과장된 우는 소리에 임채진과 기태랑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휘겸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저 때문에 걱정 많으셨을 텐데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전이라면 그저 무뚝뚝하다고만 느꼈을 인사가 이제는 멋쩍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찬은 자신의 짐을 챙겨 들고 조원들을 향해 말했다.
“그쯤하고 이제 집에 갑시다.”
주변을 둘러본 조원들이 그제야 허겁지겁 가방과 캐리어를 찾았다.
현장을 정리 중인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건물에서 나오자 아직 서늘한 3월의 밤공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바퀴 끄는 소리와 함께 우휘겸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예찬은 우휘겸이 무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불쑥 입을 열었다.
“내일 시간 있냐?”
“응?”
“없어도 내. 그럼 12시에 전에 봤던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보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호출한 택시가 방송국 입구에 서는 것을 확인한 예찬은 우휘겸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치고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 * *
“와, 그럼 둘이 새벽부터 광주까지 다녀온 거야? 체력 진짜 좋다.”
자신 몫의 햄버거를 순식간에 해치운 범세혁이 눈을 빛냈다.
미리 잘라 둔 본인의 햄버거 반쪽을 범세혁의 빈손에 들려 준 정의탁이 분개했다.
“그 거짓 폭로글을 올린 사람은 결국 아무 처벌도 안 받았단 거죠? 하, 진짜 그런 사람들은 확 콩밥 먹여 버려야 하는데!”
“고소…… 하는 것도 무리겠지? 전에 회사 선배들 얘기 들어 보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게 제일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말하는 심상록의 얼굴은 눈썹을 잔뜩 찌푸린 게 정의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기분인 모양이었다.
문득 리스피릿 시절이 떠올랐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말도 안 되는 루머가 비일비재했지. 증거가 없어도 그걸 믿는 사람은 한 무더기고, 나중에 진실이 밝혀져도 기자한테 입금 완료된 거 아니냐며 비아냥거리기 일쑤고.’
리셋 초반에는 지금 연습생들과 마찬가지로 예찬도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SNS나 팬 교류형 어플에 자신이나 멤버들의 결백을 주장하고 때때로 고소까지 진행했으나, 비슷한 상황을 수십에서 수백 번 겪으며 점차 무뎌졌다.
‘반응하면 더 좋아서 날뛰는 미친놈들도 있고, 어차피 박멸되지도 않으니…… 신경 쓰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었지.’
리셋을 여러 번 반복한 이후로 본인과 멤버들의 악성 루머에 무시로 일관하는 예찬의 태도에 리스피릿 멤버들이 차갑다고 진저리쳤던 것도 알고 있었다.
– 넌 가끔 사람 정떨어지게 해.
‘대놓고 말했던 그놈한테 뭐라고 했더라…….’
예찬이 기억을 더듬는 사이 음료수까지 깔끔하게 비운 범세혁이 소파에 푹 기대앉았다.
“연예인은 힘들구나.”
지나가듯 던진 범세혁의 말이 예찬의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흐릿했던 과거가 현재와 겹쳤다.
– 연예인 하기 쉬운 줄 알았어? 어리광 부리지 말고 정신 차려.
‘맞아, 그렇게 말했었지.’
그 시절 예찬은 자꾸 사고를 쳐 대는 멤버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런 속도 모르고 태평하게 정 타령이나 해대니 말이 날카롭게 나갔다.
싸늘한 예찬의 표정에 상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죄책감이 작게 움트는 것마저 짜증스러웠다.
‘마지막 리셋쯤엔 그렇게 부딪치는 것도 싫어서 그냥 대충 맞춰 주고 말았지만.’
예찬과 우휘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파들파들 떨던 정의탁이 볼멘소리를 냈다.
“불합리해요.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면 당사자의 기분은요?”
“그건 그래. 솔직히 그쪽이 벌을 받아도 이쪽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다 아물지 않는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멀쩡히 일상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좀 그렇지.”
“나도 형들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걸 이해는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더라. 옆에서 뻔히 마음고생하는 것도 봤는데.”
예찬은 감자튀김을 집은 채로 목소리를 높여 가며 의견을 토로하는 세 연습생을 관찰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의 기분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뒷전에 둔지 오래라 제법 신선했다.
‘여러 번 해 본 결과 조용히 지나가는 게 보편적으로 제일 좋았기도 하고, 편하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같은 시간을 몇 번이나 반복한 예찬이 낸 결론이었기에 이 파릇파릇한 연습생들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터였다.
예찬은 제 왼편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휘겸을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던 우휘겸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자기 일처럼 화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괜찮은 거 같아요. 조원들도 많이 위로해 줬고, 또…….”
예찬과 눈을 마주친 우휘겸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를 믿고 도와준 예찬이도 있고요.”
감동적인 말이었다만 예찬은 웃을 수 없었다.
입술까지 하얗게 질렸던 옛 멤버의 얼굴이 꼭 조금 전 있었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 *
효율, 효용, 효과, 최대 가치, 기타 등등.
언젠가부터 예찬이 입에 달고 다니던 단어들이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고.’
처음 리셋을 겪은 예찬의 머릿속은 지금 돌이켜 보면 말 그대로 꽃밭이었다.
대충 우정, 노력, 정의, 낭만, 뭐 이런 달콤하고 상냥한 단어들로 가득했었다.
음원 순위가 한 자리씩 오를 때마다 캡처해 둔 사진으로 스마트폰 갤러리가 가득하고, 말도 안 되는 루머에 멤버들과 부둥켜안고 밤새 울기도 하고, 이런 사건은 조용히 넘기자는 회사와 대판 싸우고 그 내용을 뒤로 슬쩍 흘리기도…… 아, 그건 2회 차구나.
아무튼 순진무구라는 네 글자를 가져다 붙여도 위화감이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때는 딱히 톱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한 번 더 주어진 기회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았었지.’
마냥 그렇게 천진난만하게만 살 수 있었다면 예찬도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찬이 변하려 하지 않아도 예찬을 둘러싼 주변은 너무도 빠르게 변했고, 그 변화를 거부하면 도태될 뿐이었다.
그 과정에 추구하던 가치의 우선순위가 변하는 것은 당연했다.
‘원망하고 싶은 건 내 쪽인데, 상대방은 기억을 못 하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예찬은 옆에서 합을 맞추는 연습생들의 얼굴을 거울로 한 명씩 살펴보며 생각을 이어 갔다.
지금은 이렇게 꿈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고 퇴색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좀 더 능숙하게 낡을 놈을 고르는 거지. 아니면 좀 낡아도 여전히 반짝일 놈이나.’
“우선 여기까지 하고 잠깐 쉬자!”
심상록의 말에 예찬을 포함한 넷이 발을 멈췄다.
심상록의 소속사인 GE 연습실로 자리를 옮겨 등이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연습에 매진했더니 벌써 늦은 저녁이 가까워졌다.
예찬이 화장실에서 가볍게 세수를 마치고 돌아오자 나머지 넷은 덥지도 않은지 구석에 꼭 붙어서 지난 경연의 후기를 찾아보고 있었다.
각자 자신이 언급된 부분을 돌아가며 소리 내 읽는 걸 보며 예찬은 생각했다.
‘각자 핸드폰도 있는데 따로 보면 편하지 않나.’
다 마신 물병을 정리한 예찬이 곁으로 다가가자 가장 먼저 눈치챈 정의탁이 반색했다.
“마침 형 후기 나왔는데 잘 왔어요.”
들고 있던 태블릿을 건네받은 예찬은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읽어라! 읽어라!”
체력이 어떻게 돼먹은 건지 연습하기 전보다 더 쌩쌩해진 범세혁이 박자에 맞춰 손뼉 치는 소리에 예찬은 혀를 한 번 차고 화면을 보았다.
[‘Don‘t bother’ 2조(MC는 얘네를 1조라 하던데 두 번째에 나왔으니 난 2조라 씀)는 하예찬, 남지유, 우휘겸, 배새벽, 기태랑, 임채진 이렇게 여섯 리더는 남지유였음.멤버 이름 처음 소개되는데 얘네가 돈보더를?? 생각이 젤 먼저 들었음. 래퍼가 없잖어;;
앞 조가 워낙 잘해 놔서 개같이 망하는 엔딩이 저절로 생각났는데 간주 나오는데 내가 아는 돈보더가 아님.
나 계속 후기 쓸 생각 하면서 무대 봤는데 그런 생각이 싹 날아가더라.
우휘겸, 남지유, 배새벽 다 ㅆㅅㅌㅊ로 잘했고 임채진은 잘 몰랐는데 나쁘지 않았음.
기태랑은 빼박 민폐멤일 줄 알았는데 안 튀고 잘 묻어감.
그리고 하예찬…… 하 예찬이는 이미 천재 아이돌 그 자체고요 반박은 받지 않음
ㅆㅅㅌㅊ 뭐 이런 레벨이 아니라 내가 공짜로 이 무대를 봐도 되나 송구해지는 수준이었음.
그러니 하예찬은 당장 데뷔해서 내 돈을 받아라]
└ 그래서 랩은 누가 했는데?
└└ 본방에서 확인하세요^^
└└└ ? 이 새끼가?
‘이놈들은 이런 걸 어떻게 읽은 거지?’
수위 높은 주접 글을 눈으로 훑은 예찬은 둥글게 둘러앉아 눈을 빛내는 네 연습생을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뻔뻔함은 아이돌의 미덕이라지만 참 대단한 놈들이었다.
“자 그럼 다시 연습 시작하자! 나름대로 첫 콘서트를 코앞에 두고 있잖아, 우리.”
심상록의 말에 연습생들의 피곤한 몸에 절로 기운이 돌았다.
츄마프 제작진은 불어온 대박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야무지게 붙잡았다.
욕은 더럽게 먹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팬들이 대거 참여해 화제성을 일으키는 방식을 무척 많이 사용했는데, 지난 사인회에 이어 이번에 열릴 전국 게릴라 콘서트도 그 일환이었다.
츄마프 6회에서 커버곡 조가 발표되고 이틀 후부터 서울, 대전, 광주, 대구, 부산까지 총 5개의 도시에서 닷새간 열리는 이 콘서트는 시작 두 시간 전에 홍보를 시작해 일정 관객을 달성하지 못하면 콘서트가 취소되는 형식이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실패할 가능성은 0퍼센트라고 봐도 무방했다.
‘몇 시간 만에 몇천 관객 달성 같은 숫자 놀음이 홍보로 쓰기에는 아주 좋거든.’
연습생들은 지난 3차 합숙이 끝나기 직전에 게릴라 콘서트 일정에 대해 전달받았다.
제작진은 지금까지 방송에서 했던 곡들로 세트 리스트를 짤 거니 딱히 연습은 필요 없을 것이라며 첫 콘서트 전날 리허설 외엔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았다.
덕분에 연습생들은 예찬처럼 친한 연습생의 회사에 신세를 지거나 연습실을 대여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개별 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 내일은 새벽이도 온대요. 괜찮죠?”
스마트폰을 확인한 범세혁의 말에 심상록이 기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런데 여섯이면 여긴 좀 좁으려나?”
“저희 소속사에도 한번 물어볼까요?”
정의탁의 말에 예찬은 강해솔을 떠올렸다.
‘해솔이 형 친구 없는데 괜찮으려나.’
성격을 훤히 꿰고 있으니 시간만 좀 있으면 친해지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리만치 강해솔과는 촬영 내내 접점이 생기지 않았다.
같은 조가 안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인원이 많다 보니 식사 시간도 절묘하게 갈라졌다.
인터뷰 순서도 항상 끝과 끝이라 대기 중에 말을 붙일 새도 없었다.
‘정말 가끔 마주치면 해솔이 형이 노골적으로 피하고.’
전에 등급 테스트 때 일이 어지간히 불편했는지 복도 끝에 예찬이 보이기만 해도 엉덩이를 걷어차인 망아지처럼 빠르게 도망치곤 했다.
남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는 예찬이지만 그 정도로 대놓고 피하니 좀 상처받았다.
‘내가 그 예민한 형이랑 예전엔 어떻게 친해졌던 거지…….’
앞으로 남은 합숙은 두 번, 남은 경연도 두 번.
그 사이 강해솔과 범세혁, 배새벽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의 파티원을 더 모아서 1위로 데뷔해야 했다.
예찬은 속없이 웃고 있는 범세혁을 짧게 노려봤다.
‘저 자식은 왜 파티원이 안 되는 거야? 하루 이틀 부대끼는 게 아닌데.’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속이 시커먼 놈이든지 아니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놈이든지 둘 중 하나가 분명했다.
어느 쪽이든 그룹이 대성하려면 필요한 인재임은 틀림없지만 말이다.
– 넌 성공만 한다면 사람 마음 같은 건 다 알 바 아니라는 거야?
– 그래서야 쓰다가 버리면 되는 장기말이랑 우리가 다를 게 뭔데?
‘시끄럽네.’
다시금 들려오는 전 멤버의 목소리에 예찬은 짜증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망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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