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2화
여느 목요일과 마찬가지로 예찬과 연습생들은 GE 연습실에 둘러앉아 츄마프 본방송을 시청했다.
“방송에선 합숙보다 사인회를 먼저 보여 주네요?”
정의탁의 말대로 츄마프 6화는 게릴라 사인회로 막을 열었다.
첫 번째 순위 발표식이 방송되기 전에 촬영한 분량이다 보니 이미 떨어진 얼굴들이 곳곳에 보였다.
‘SNS가 불타고 있겠군.’
예찬이 속으로 생각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츄마프의 이슈 몰이는 순항 중이었다.
“오, 저게 그 유명한 귀요미 버전 츄유프구나.”
심상록의 감탄에 화면을 보니 사인회가 끝나고 췄던 큐트 버전 ‘Choose your princ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범세혁을 중심으로 대열을 갖춰 선 열네 명의 연습생들이 0.1초도 낭비하는 법 없이 귀여운 척을 해 대는 걸 본 심상록의 눈이 빛났다.
“와, 진짜 어마어마하다. 왜 그렇게 반응이 핫했는지 알겠어.”
“그런가요? 전 얼굴이 뜨겁네요.”
대체 무슨 정신으로 저렇게까지 치열하게 귀여운 척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어 대던 정의탁은 결국 과거의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예찬은 그런 정의탁을 위해 중계를 시작했다.
“의탁아, 너 지금 손가락 하트했다. 어, 이번엔 주머니에서 하트를 꺼냈어.”
“아, 진짜!”
“여기 나 빼고 다들 5조였구나. 재밌었겠다, 정말.”
아쉬워하는 심상록의 목소리와 맞물려 사인회 장면이 끝나고 1차 순위 발표식 당일 밤으로 시간이 돌아갔다.
바로 합숙을 시작한 연습생들이 조를 나누는 모습이 나온 끝에 순위와 다르게 가장 늦게 방에 들어온 우휘겸의 인터뷰가 나왔다.
[어, 제가 길을 헤매는 바람에 좀 늦어져서요…… 폐를 끼쳐서 죄송했습니다.]‘이런 사연이었냐.’
인터뷰실에서 넙죽 고개를 숙이는 우휘겸을 본 예찬의 시선이 절로 제 옆에 앉아 있는 실물로 향했다.
눈이 마주친 우휘겸은 머쓱한지 시선을 피했다.
화면에는 합숙소 건물에서 배회하는 우휘겸의 모습이 배속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3차 합숙인데 아직도 길을 못 외운 거야?”
심상록이 다소 놀랍다는 듯 묻자 우휘겸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찬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심상록의 턱을 위로 눌러 주었다.
건물의 끝에서 끝까지 돌던 우휘겸이 마지막 남은 방으로 안내받은 것을 본 범세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 이 중에서 메인 래퍼 가능하신 분?]그 후 랩 포지션 연습생이 한 명도 없는 ‘Don’t bother’ 1조의 위기가 흥미롭게 포장되어 이어졌다.
예찬이 처음으로 랩에 도전하는 모습은 편집되길 바랐으나 유감스럽게도 고스란히 방송을 탔다.
‘끔찍한데.’
도저히 두 눈 멀쩡히 뜨고 봐줄 것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모니터링을 안 할 수도 없기에 예찬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도전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Don’t bother,왜 굳이 수고하고 욕을 먹는지 알 수가 없네.]
‘저런 걸 왜 이렇게 길게 보여 주는지 알 수가 없네…… 제작진 나한테 불만 있냐고.’
아무래도 추억 미화가 들어갔던 건지 화면 속 예찬은 기억보다 더 심각하게 못했다.
예찬의 추태에 심상록은 다시 입을 벌리고 있었고 정의탁은 제 귀가 의심스러운지 고개를 자꾸만 갸웃거렸다.
예찬의 매서운 눈길이 느껴졌는지 뒤를 돌아본 두 사람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형. 우리는 본무대를 봤잖아요! 근데 그거랑 이게 고작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변화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그러죠!”
정의탁의 변명에 심상록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그래, 예찬아! 너 본무대는 진짜 잘했잖아! 너무 놀랍다, 정말.”
“그러게! 난 리허설이랑 본무대만 봐서 예찬이는 태어날 때 노래만 한 게 아니라 랩도 같이하면서 태어난 줄 알았어!”
범세혁이 기쁜 목소리로 말하자 정의탁이 어이없다는 듯 미간을 사정없이 찌푸렸다.
“네? 그게 뭐예요?”
“우리 조 애들이 그러던데. 예찬이는 태어나면서 우는 대신 노래를 했을 거라고.”
‘그건 또 뭔 소리야.’
“그건 또 무슨 헛소리예요.”
정의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예찬이 생각한 바를 그대로 말해 주었다.
범세혁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딱 맞잖아. 뭔가 날 때부터 노래했을 거 같고.”
“그건 그렇지. 20년 동안 갈고닦았다고 생각하면 지금 실력과 노련함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겠는데?”
주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심상록도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예찬의 연습 및 실전 경력은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의외로 예리한 분석이었다.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우휘겸이 조심스레 손을 들어 올렸다.
“저…….”
“응? 휘겸아, 말해 봐.”
“아무래도 춤도 추면서 나왔을 거 같은데…….”
“…….”
우휘겸의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에 잠시 연습실 내에 침묵이 흘렀다.
“……풉!”
가장 먼저 뿜은 것은 정의탁이었다.
“아, 형은 그런 말을 무슨 뉴스 보도하는 것처럼 해요!”
“아하하하! 그럼 예찬이는 노래하고 춤추고 랩 하면서 태어난 거야? 굉장해!”
“하하, 말 그대로 본 투 비 아이돌이네.”
별것도 아닌 일로 좋아 죽는 세 사람을 바라보던 예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는 시기라는 건가.’
그사이 방송은 빠르게 흘러가 어느덧 중간 평가가 시작되었다.
꼴 보기 싫은 정찬양의 낯짝을 흘겨보고 있으려니 옆에 둔 스마트폰이 짧게 울렸다.
“아, 예찬이 형. 이럴 땐 매너 모드 몰라요?”
“너, 내가 지금 전화해 본다.”
건수를 잡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드는 정의탁에게 경고 조로 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정의탁은 급하게 자신의 스마트폰 설정을 살폈다.
그 사이 무슨 알림인지 확인해 보니 저장하지 않은 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내용을 확인한 예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봐요, 난 진동…… 예찬이 형, 무슨 일 있어요?”
은근슬쩍 설정을 바꾼 정의탁이 제 핸드폰 화면을 예찬의 코앞에 들이밀다 멈췄다.
두 눈 가득 묻어 있는 걱정을 확인한 예찬은 고개를 들어 다른 연습생들의 얼굴도 살폈다.
정의탁과 마찬가지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심상록과 우휘겸, 그리고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 못 했는지 눈만 깜빡거리는 범세혁을 확인한 예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광고. 그것도 완전 저질.”
“으.”
정의탁이 질색했다.
예찬은 씨익 웃으며 속삭였다.
“고등학생, 형 없을 때 호기심으로 찾아보지 마라.”
“사람을 뭐로 보고 하는 소리예요! 방송이나 집중해요!”
소리치는 정의탁을 향해 다시금 어깨를 으쓱인 예찬은 아무렇지 않은 척 츄마프가 나오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 * *
“이야,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나와 줘서 고마워요.”
“아니요, 선배님.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예찬이 앉아 있던 별실로 들어선 김대훈이 마스크를 벗으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예찬은 방금까지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뒤집어 내려놓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갑자기 연락해서 놀랐죠?”
“네, 조금.”
지난밤 츄마프 6화를 시청하던 중 ‘리스피릿 김대훈인데요.’로 시작한 문자를 받은 예찬은 고민했다.
김대훈은 인연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다.
동료 연예인과 대기실에서 잠깐 스치기만 해도 관심사는 물론 데뷔일까지 달달 외워 말을 붙여 볼 정도로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단 그 대상은 이성에만 한정되어있었다.
동성의 경우에는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어서 멤버들과 매니저 외에는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김대훈이 굳이 번호를 알아내 방송 잘 봤다며 입에 발린 말을 하며 한번 보자고 청하고, 카메라도 없는데 일개 연습생인 예찬에게 싹싹하게 악수를 권하는 것이 낯설어도 너무 낯설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김대훈은 싱글거리며 메뉴판을 펼쳤다.
“프라이빗 룸이라 사생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요.”
안다.
이 자식이 여기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장면이 인터넷에 박제되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왜 이렇게 살뜰하지.
답지 않은 친절함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예찬은 천천히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던 계획을 파기하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건가요, 선배님?”
“선배님이라니 너무 딱딱하다. 예찬 씨가 찬양이 형이랑 동갑이죠? 그냥 대훈이라고 부르세요. 저도 형이라고 부를게요.”
예찬은 딱딱하게 굳으려는 얼굴을 억지로 펴고 웃었다.
“하하, 제가 하늘 같은 선배님께 어떻게 그래요.”
“찬양이 형 친구잖아요. 그럼 형 맞죠.”
다시금 정찬양을 언급하는 김대훈을 보니 슬슬 감이 왔다.
예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제가 낯을 좀 가려서 호칭은 차츰 바꾸겠습니다, 선배님.”
예찬의 잇따른 거절에 김대훈도 물러섰다.
“그럼 그래요. 어차피 곧 데뷔하면 자주 볼 텐데. 메뉴는 정하기 힘들면 제가 고를까요?”
당연하게 예찬의 데뷔를 점친 김대훈이 벨을 눌러 직원을 불렀다.
익숙하게 주문을 하는 김대훈을 예찬은 조금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자식, 지금 데뷔 3년 차인데 벌써 여길 제집처럼 드나든 모양이네.’
정찬양이 느슨하게 굴어서 탈선이 가속된 건지, 아니면 이전에도 예찬한테 들킨 게 4년 차 때였으나 사실 이 무렵부터 이러고 살았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스무 살 전에는 아직 애라고 생각하고 심하게 단속하지 않았지.’
자신에 대한 비호감을 또다시 적립하고 있는 예찬을 향해 김대훈이 고개를 돌렸다.
“맥주 시킬까요, 형?”
“김대훈 씨 미성년자잖아요.”
“네? 하하하, 저 말고 형 거요. 전 주스 시켰죠.”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 손사래까지 치며 웃는 김대훈이었으나 예찬은 마주 웃을 수 없었다.
이미 바닥까지 봤다고 생각한 놈의 더한 밑바닥을 확인한 것이 방금 전이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이 자리를 뜨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예찬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이야기를 미루기로 했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들어야 알아서 원하는 걸 털어 놓을 확률이 높았다.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를 찾은 예찬이 여유롭게 침묵을 즐기고 있자 눈을 굴리던 김대훈이 입을 열었다.
“어제 방송 잘 봤어요. 중간 점검 때 너무 잘하셔서 랩을 처음 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감사합니다.”
“하하, 본 경연은 어땠어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 순위 살짝 알려 주면 안 돼요?”
“…….”
예찬은 ‘내가 왜 너한테?’라는 마음을 담아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김대훈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기다리던 김대훈은 예찬이 계속 입을 다물고 있자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아, 안 되나 보네.”
김대훈이 민망한 듯 물을 들이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메뉴가 나오고 두 사람은 말없이 식사에 몰두했다.
‘맛은 있군!’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예찬은 생각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