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3화
예찬의 수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흘끔거리던 김대훈이 용기를 되찾았는지 다시 말을 걸었다.
“겨우 두 번 얼굴 본 친구 동생이 갑자기 연락해서 당황하셨죠?”
“친구 동생이요?”
“찬양이 형이랑 친구잖아요. 전에 우리 회사 주차장 앞에서 찬양이 형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예찬의 아니꼽다는 듯한 대답에 김대훈이 급하게 설명을 붙였다.
예찬은 헛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그 후에 정찬양한테 다시 안 물어봤어요? 뭐 하는 놈이냐고.”
“네? 어, 그게…….”
김대훈은 눈을 깜빡거리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문질렀다.
변명 거리를 찾고 있을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만족스럽게 배를 채운 예찬은 수저를 내려놓고 아예 한 손에 턱을 괸 채 김대훈을 바라보았다.
“김대훈 선배님, 오늘 정찬양한테 나 만난다고 말 안 했죠.”
확신하는 어조에 김대훈이 엉덩이에 불이 붙은 송아지처럼 펄쩍 뛰었다.
“네? 어, 아니, 그게…….”
슬슬 이 만남을 끝내기로 한 예찬이 가엾게 횡설수설하는 김대훈의 말을 끊었다.
“중간 점검 때는 별생각 없어 보였는데 왜 갑자기 정찬양 주변을 캐고 싶어졌을까…… 아, 어제 같이 츄마프 봤구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진 김대훈을 보고 있으니 동물 하나가 떠올랐다.
눈앞의 낯짝만 멀쩡한 멍청이는 타조와 꼭 닮아 있었다.
모래 속에 머리만 숨기면 제가 안 보일 거라 생각하는 타조처럼 뻔히 보이게 머리를 굴려 놓고 그 속내를 짚으면 저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방송 보면서 정찬양이 어지간히 이상했나 봐요. 이렇게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막 찾아오고.”
“…….”
전에 주차장 앞에서 봤을 때는 정찬양과 제법 괜찮은 관계인가 싶었는데, 제 말대로 고작 두 번 얼굴 본 멤버의 지인을 찾아와 살살 캐 보려고 드는 걸 보니 공적으로만 교류하는 사이인 게 분명했다.
‘내가 짜 놓은 길만 걸었으니 지금까지 승승장구했을 테고. 감정적으로 부딪힐 일도 없었을 테니 말 그대로 무미건조하게 지냈겠지. 지금까진 원래 그런 놈이려니 했는데, 어제 방송을 보는 정찬양이 어지간히 이상했나 보네.’
예찬은 당황한 얼굴로 할 말을 고민하는 김대훈의 망충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래도 멤버랍시고 어울리지 않게 신경 쓰네, 김대훈.’
오래간만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예찬은 옛 동료에게 약간의 친절을 발휘하기로 했다.
“김대훈 선배님, 제가 식사를 잘 대접받았으니 특별히 드리는 말씀인데요. 오늘 저 만난 거 정찬양한테 꼭 말하세요. 왜 만났냐고 하면 네가 너무 이상해서 걱정돼서 만났다고 하고요.”
“네?”
“김대훈 선배님, 거짓말 되게 못 할 거 같거든요. 어설프게 속여 보려다가 괜히 정찬양 긁지 말고 그냥 바른대로 고하세요.”
어차피 오래 지나지 않아 침몰시킬 그룹인데 잠시라도 평화를 즐기게 해 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이 얼간이와 친구들의 리더였던 예찬이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멤버 지인에게 접근하면 김대훈 씨 팀에 문제가 있는 거 티 나니까 자제하시고요. 아이돌인데 서로 서먹한 게 외부에 알려지면 좋을 거 없잖아요.”
김대훈의 떨리는 동공을 바라보며 예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어설픈 놈이 이성 문제에 있어선 대체 어떻게 행동하기에 여덟 다리를 걸치고 반년 이상 안 걸렸는지 새삼 놀라웠다.
“자, 잠시만요! 예찬이 형!”
짧게 고개를 까딱하고 방을 나서려는 예찬을 김대훈이 다급하게 불렀다.
익숙한 호칭에 예찬의 발걸음이 멈췄다.
김대훈은 뒤돌아보지 않는 예찬에게 다가오진 않고 제자리에서 우물거렸다.
“저, 저기. 찬양이 형한테는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가서 말할게요. 그, 그러니까 먼저 말씀하시면 안 돼요?”
예찬이 마음을 바꿔 저보다 먼저 정찬양에게 전화라도 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었다.
‘번호도 몰라, 이 새끼야.’
예찬은 대답 대신 한 손을 들어 올려 가볍게 흔들었다.
“머, 멋있어…….”
뒤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는 무시하기로 했다.
* * *
첫 번째 게릴라 콘서트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날씨 좋구만!”
남지유의 감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하자 구름 한 점 없었다.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이번에도 입구에서 만난 남지유와 잠시 근황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예찬의 시야에 저 멀리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우휘겸이 들어왔다.
‘왜 불쌍하게 저러고 있어.’
무리에서 빠져나온 예찬이 다가가자 우휘겸이 머뭇머뭇 인사했다.
“안녕.”
“안녕은 무슨. 왜 여기 이러고 있어. 나 저기 있는 거 못 봤어?”
“어, 평소에 우리 따로 다녔으니까……?”
코웃음을 친 예찬은 대답 대신 우휘겸을 질질 끌고 원래 있던 장소로 이동했다.
“휘겸이 형 오셨어요.”
“오, 휘겸! 좋은 아침!”
자신을 반기는 연습생들에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우휘겸을 보다 고개를 돌리자 심상록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아, 깜짝이야.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시죠, 형.”
“휘겸이랑 같이 있네?”
“……뭘 새삼스레. 합숙 끝나고 연습도 내내 같이 했잖아요.”
“그건 그렇지.”
심상록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예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그냥, 예찬이는 오지랖이 넓구나.”
“우휘겸에 대한 건 오지랖이 아니라…… 아, 됐어요. 오지랖으로 해 두죠.”
막상 해명하려니 리셋 전 일까지 엮여 있어서 말문이 막혔다.
예찬이 어깨를 으쓱이자 어떻게 해석한 건지 심상록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야. 그룹 리더님 마음이 따뜻하면 좋지.”
“리더요? 제가요?”
예찬이 황당한 듯 되묻자 심상록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다들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지 이쪽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목소리를 죽인 예찬이 속삭였다.
“아직 데뷔 조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설레발이 지나치잖아요, 형.”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낮춘 심상록이 몸을 살짝 숙이며 말했다.
“프로그램이 망하지 않는 이상 예찬이 네가 데뷔를 못 할 리 없지.”
과장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며 심상록이 말을 이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쫓아가 보겠습니다.”
예찬은 장난스러운 표정의 심상록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흘겨보았다.
야멸찬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 지은 심상록은 이내 연습생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리더라…….’
예찬은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리스피릿 시절에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리더를 맡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심상록처럼 연습생 경험이 긴 멤버도 있으니 내가 맡을 것 같진 않은데.’
“후보생들, 버스로 이동할게요!”
작가의 말에 영양가 없는 고민을 하던 예찬이 생각을 털어 냈다.
‘원래 쓸데없는 생각이 재밌단 말이지.’
* * *
[안녕하세요, 공주님들! 츄즈 마이 프린스 99 후보생 하예찬입니다!]인원을 나누어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옷까지 갈아입은 연습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게릴라 콘서트 홍보에 들어갔다.
연습생들이 입고 있는 옷은 츄마프 공식 후드티로 이번 게릴라 콘서트 방송 이후 판매할 예정이었다.
“꺅! 하예찬!”
“지유야, 누나야!”
“새벽아아악!”
“우휘겸!”
가장 최근 방송에서 커버 곡 미션으로 조를 나누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번 홍보는 ‘Don‘t bother’을 함께한 멤버들과 같이하게 되었다.
힘들게 홍보해 보라는 취지로 제작진은 서울 외곽에 연습생들을 내려놓았지만, SNS와 휴일의 시너지 덕분에 거리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파가 몰렸다.
[지금부터 두 시간 후인 여섯 시에 저희 츄마프 후보생들의 게릴라 콘서트가 열릴 예정입니다! 꼭 찾아와 주세요, 공주님들!]대표로 확성기를 잡은 예찬의 주변에서 다른 조원들이 시간과 장소가 적힌 전단을 열심히 나눠 주고 있었다.
“지유야, 너 진짜 너무 잘생겼다. 어흐흑.”
“하하, 고마워요! 잘생긴 저 보러 꼭 와 주세요!”
“공주님들, 믿고 있을게여!”
대체로 붙임성 좋은 놈들이라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우휘겸이랑 배새벽은…….’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수가 적은 두 놈도 허리를 펴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 확인한 예찬은 확성기를 잡은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홍보 시간이 너무 짧은 거 아니에여? 전단지도 다 못 돌려서 팬분들이 뭉텅이로 받아 갔어여!”
슬슬 돌아가서 준비해야 한다는 스태프의 말에 다시 차에 올라탄 기태랑이 울상을 지었다.
처음 제작진의 설명으론 분명 한 시간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 했다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래저래 준비 시간이 꽤 걸렸다.
콘서트가 열릴 장소로 이동할 시간까지 빼니 홍보는 삼십 분 남짓으로 끝나 버렸다.
예찬은 아쉬워서 어쩔 줄 모르는 기태랑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이젠 잊자. 지금부터는 콘서트 생각을 해야지.”
“앗, 그렇져! 역시 예찬이 형!”
기태랑과 마찬가지로 아쉬움에 동동거리는 조원들의 등을 떠밀어 버스에 오르자 그제야 다들 좀 진정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버스 앞쪽에 앉은 스태프들의 눈치를 살핀 임채진이 작게 속삭였다.
“그런데 일단 홍보하라고 해서 홍보하긴 했지만…… 이 콘서트 잘될까? 연습은커녕 리허설도 안 했잖아.”
임채진의 말대로였다.
어제 잡혀 있었던 리허설마저 보안 문제로 급하게 취소된 탓에 연습생들은 메일로 전달받은 세트 리스트만 숙지한 상태였다.
‘덕분에 어제 김대훈을 본 거지만.’
사실 이름만 콘서트였지 주제곡과 커버 곡만 부르면 되니 예찬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쉬는 동안 내내 두 곡만 연습했는데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러나 다른 연습생들은 예찬과 달리 영 진정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해외 투어를 밥 먹듯이 해 본 예찬처럼 태연한 상태라면 그쪽이 더 이상하긴 했다.
아이돌의 마음 상태는 무대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예찬은 자신의 안에 잠자고 있는 상냥함을 최대한 긁어모았다.
“합숙 끝나고 쉬는 동안 연습하지 않았어?”
“으음, 하긴 했는데…….”
“그러면 잘할 거야. 합숙 기간에 연습할 시간이 그렇게 적었는데도 제대로 해냈잖아.”
“그, 그런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지유가 감탄했다.
“크으! 예찬이는 볼수록 멋있어! 이것은 참말로 연습생의 포스가 아니여! 나보다 십 년은 먼저 데뷔한 선배 같다니깐.”
“아, 그러고 보니 지유 형 데뷔했었죠.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잊지 말라고! 너 우리 그룹 노래 좋아했다며! 립 서비스였어?!”
같은 버스를 탄 연습생의 말에 남지유가 발끈하자 깔깔대는 임채진을 바라보던 예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임채진아.”
“응?”
“작게 말해도 여기 카메라 붙어 있어서 소용없어.”
예찬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 빼꼼 붙어 있는 카메라를 확인한 임채진이 힘없이 웃었다.
“다음부턴 그걸 먼저 말해 주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