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5화
급격히 안색이 좋아진 FD를 따라 조명이 꺼진 무대 위로 이동한 예찬은 큐 카드를 확인했다.
어제 서울 콘서트와 동일한 멘트들을 쭉 훑은 예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별거 없긴 하군.’
물론 연습생들이 아닌 예찬의 기준에서였다.
잘 부탁한다며 연신 손을 잡고 흔들던 FD가 물러서자 예찬은 상점을 열어 필요한 아이템을 찾았다.
[옥장판 팝니다]– 20분 동안 언변이 2단계 올라갑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효과가 상승합니다.
13포인트
‘온오프가 가능했으면 좋았을 것을. MC를 보는 시간은 얼마 안 되는데 몇 개를 사야 하는 거야?’
합숙 중에도 합숙이 끝난 후에도 밥 먹고 연습만 하다 보니 포인트가 꽤 쌓여 있어서 다행이었다.
빠르게 필요한 아이템을 구매한 예찬은 이번엔 상태창을 열었다.
‘언변에 포인트를 넣어서 일단 A-까지 올리고, 아이템도 쓴다.’
순식간에 B였던 스탯이 A+로 변했다.
언젠가 올리려고 생각했던 스탯이라 그다지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수치는 만들었으니 랩 스탯을 막 올렸을 때처럼 실패하지 않으려면 필요한 것은 경험이었다.
[예찬 씨! 시작합니다! 조명 3초 전!]인 이어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에 예찬은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3초 후에 일제히 불이 켜지고 예찬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안녕하세요, 공주님들. 오늘 여러분을 무도회로 안내할 공주님들의 왕자 후보생, 하예찬입니다.]물론 그 경험은 지난 생에 실전으로 다져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예찬의 등장에 얼어붙어 잠시 벙쪘던 객석이 이내 폭발했다.
“꺄아아아악!”
“하예찬 결혼하자!”
“악! 미쳤다! 악! 악! 아아악!”
“하예찬 니가 내 별이다아아아!”
예찬은 거의 광란의 도가니가 된 객석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차분히 멘트를 이어 갔다.
[그럼 우선 대전의 공주님들이 과연 몇 분이나 저희를 보러 오셨는지 확인해 볼까요?]“……뭐야. 쟤 왜 이렇게 잘해?”
예찬의 유려한 진행에 제일 놀란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제작진들이었다.
설령 예찬이 국어책 읽기를 하고 돌아와도 잘했다고 어화둥둥 떠받들 준비를 하고 있던 메인 PD는 눈을 한 번 비비고 귀를 한 번 후볐다.
무대 위의 예찬은 여전히 음악 방송 MC 뺨치게 훌륭한 진행을 선보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음방 MC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
리스피릿이 조금 뜬 후에 들어온 음악 방송 MC 제의에 예찬은 그전까지 MC를 맡았던 연예인들을 철저히 분석했다.
발음 교정과 적절한 표정 연기, 멘트 연구는 기본이었고 매주 출연하는 아이돌들에 대해서도 팬들이 ‘대단하긴 한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요……?’라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공부했다.
이런 노력 끝에 역대 최장기 MC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때 쌓은 인지도로 K-POP 통합 콘서트 진행이나 연말 시상식 MC도 맡았던 예찬에게 인터뷰도 없는 이런 게릴라 콘서트 MC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연습생들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츄유프 대형에 섞여 들어간 예찬은 순식간에 MC가 아닌 아이돌이 되었다.
[Choose your prince.네가 선택하는 세계,
그 끝에 내가 있기를.]
오프닝 무대 내내 모니터 너머의 예찬을 눈으로 좇던 메인 PD는 다시 MC석으로 복귀한 예찬이 매끄럽게 진행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진짜 물건이네, 저거.”
그 옆에 서 있던 김상희 작가는 몰래 뒤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예찬이를 겨우 물건에밖에 비유하지 못하는 신 PD는 나가 죽으세요. 당장 죽으세요. 아니, 편집은 하고 죽으세요. 예찬이는 신이라고, 이 양반아.’
갈수록 살인적으로 변해 가는 스케줄 속, 한 줄기 빛과 같은 예찬의 존재는 그녀에게 이미 종교나 다름없었다.
[그럼 공주님들, 다음 조를 향해 기도해 볼까요? 바로 공주의 기도, 가 아니라 ‘소녀의 기도’ 2조입니다.]‘저런 촌스러운 멘트를 저렇게 스윗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예찬이밖에 없을 거야.’
김상희는 본인이 쓴 대본을 자연스럽게 디스하며 예찬을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앵콜곡은 이번에도 츄유프였다.
전날과 같은 구성이다 보니 그새 좀 더 능숙해진 연습생들은 무대에서 힘차게 손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소절이 끝나고 예찬은 마무리 멘트를 위해의 심상록과 함께 무대 중앙으로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공주님들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벌써 찾아와 버렸습니다. 그럼 오늘의 마지막 인사는 심상록 후보생에게 부탁드려도 될까요?]둘째 날 엔딩 멘트는 1차 순위 발표식에서 2위였던 예찬의 몫이었지만, 예찬이 MC를 맡게 되어 3위인 심상록이 하루 당겨서 하게 되었다.
[공주님들, 오늘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요. 우리 앞으로 더 자주 만나요.]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예찬을 향해 메인 PD가 온몸으로 박수를 보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눈으로 예찬을 바라보던 PD가 예찬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주 훌륭했어요, 하예찬 군. 지금 반응 보니 이대로 예찬 군이 쭉 맡아도 좋을 것 같은데? 나머지 사흘도 잘 부탁합니다. 난 예찬 군만 딱 믿고 있으니까요! 하하하하.”
‘이럴 줄 알았다.’
남아 있는 게릴라 콘서트의 MC까지 자연스럽게 떠맡긴 메인 PD가 호탕하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고 예찬은 덤덤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연습생들이 모여 있는 임시 대기실 쪽으로 돌아가자 또다시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기립 박수였다.
예찬은 이 또한 덤덤히 받아들였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버스에 타서 광주로 이동하겠습니다!”
남은 광주와 대구, 부산 콘서트의 경우는 서울에서 바로 이동하기 부담스러운 거리다 보니 제작진 측에서 미리 숙소를 잡아 두었다.
“저 광주는 처음 가 봐여.”
“휘겸이는 광주가 고향이라고 하지 않았나? 오래간만에 귀성하니 좋겠는데!”
“지난 합숙 때 잠깐 내려와서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야.”
“아.”
깊은 생각 없이 나온 말에 우휘겸이 덤덤히 대답했다.
버스 안의 온도가 훅 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우휘겸 가짜 학폭 사건의 전말은 몇몇 연습생들에게 제법 상세하게 말해 뒀었다.
안 좋은 기억을 들춰냈다고 생각했는지 슬금슬금 우휘겸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예찬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은근히 손이 가는 놈들이라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 숨 막히는 분위기로 다음 숙소까지 갈 기세였다.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까맣게 물든 창밖을 바라보던 예찬이 부드럽게 말했다.
“잘 해결된 일이니까 그렇게 불편해하지 말자. 우휘겸도 그게 더 불편할걸.”
그렇지 않냐는 뜻을 담아 뒤를 돌아 우휘겸과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지유가 한결 밝아진 안색으로 예찬을 거들었다.
“그래! 너~ 무 사리면 그게 또 거리감 느껴진다, 얘들아? 그보다 오늘 투표 시작된 거 다들 봤지? 어디 들어가고 싶은지 말해 보자!”
“저여, 저여! 저 한복이여!”
“저는 제복!”
“난 하네스 쪽이 좋던데. 섹시 콘셉트일 거 같잖아.”
남지유가 자연스럽게 바꾼 화제에 연습생들이 하나둘 말을 얹었다.
조금 전 대전 콘서트가 끝난 직후, 츄마프 공식 홈페이지에서 연습생 의상 투표가 시작되었다.
곡의 제목이나 콘셉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센터가 입을 옷만 달랑 공개한 이번 투표는 딱 일주일간 진행되며, 연습생들은 시청자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4차 합숙의 조를 나누게 되었다.
공개된 의상은 총 여섯 가지로, 그것만으로 어느 정도 곡의 콘셉트를 유추할 수 있었다.
가령 세일러 카라 셔츠에 베레모라면 청량 콘셉트겠고 가죽 바지에 하네스는 섹시 콘셉트일 확률이 높았다.
물론 미래에서 온 예찬은 어떤 옷이 어떤 곡인지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콘셉트도 콘셉트지만 어떤 곡일지도 궁금하다.”
“오리지널 곡 아닐까여? 원래 오디션 프로그램 후반에는 꼭 오리지널 곡이 나오잖아여!”
정답이었다.
예찬은 제법 예리한 추리를 해낸 기태랑을 힐끗 보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에 연습생들의 열기 띈 토론이 섞여 들어오는 게 제법 듣기 좋았다.
* * *
– 하예찬 MC 짤
– 오늘 예찬이 멘트 모음
– [속보] 하예찬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랩도 잘하고 MC도 잘 봄
츄마프 팬덤, 그중에서도 특히 예찬의 팬덤은 쏟아지는 떡밥의 홍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태랑의 하나뿐인 동생 기해랑 또한 그런 팬 중 하나였다.
“아니, 예찬이 오빠는 사람이 아닌가? 어떻게 말도 잘하지?”
올라오는 예찬의 사진을 닥치는 대로 저장하며 기해랑이 감탄했다.
N-net의 신고로 빛의 속도로 내려간 영상 속 하예찬은 콩깍지가 낀 기해랑 눈에는 예능 프로그램의 전문 MC 뺨치고도 남을 정도로 보였다.
‘하, 기태랑은 예찬이 오빠를 바로 옆에서 직관하고 있는 거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태랑이 부럽다…….’
츄마프 관련 커뮤니티들은 연습생들을 태운 버스가 서울이 아니라 남쪽을 향했다는 소식에 게릴라 콘서트가 더 이어지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한편 홈페이지에서 시작된 새로운 투표에 관해서도 뜨거운 토론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각종 게시판과 SNS는 자신이 미는 연습생에게 어떤 옷을 투표해야 할지 주장하거나 묻는 글들로 가득했다.
기해랑은 예찬의 투표창을 띄워 놓은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 예찬이 오빠는 왜 다 잘 어울리고 난리야?”
인터넷 커뮤니티와는 담을 쌓은 그녀는 남과 의견을 나누는 일 없이 홀로 머릿속으로 예찬에게 옷 갈아입히기를 반복하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세일러 카라에 반바지는 좀 과할 거 같지만 막상 입혀 놓으면 엄청나게 귀여울 것이다.
망토까지 포함된 제복은 츄마프 의상과 겹치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제복은 언제나 옳지 않은가.
셔츠에 가죽 바지는 또 어떻고? 예찬이 입으면 코피 터지게 섹시할 것이 분명했다.
야구 점퍼를 입은 모습도 궁금했고 포근해 보이는 아이보리 스웨터도 예찬을 위해 만들어진 옷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제일 끌리는 건 역시 이건가.’
기해랑은 투표 화면 두 번째에 자리 잡은 옥색 도포와 갓을 다시 확인했다.
‘역시 다시 봐도 좋아.’
그렇지만 막상 투표하려고 하면 다른 옷들도 눈에 걸리고 마는 것이었다.
‘차라리 예찬이 오빠한테 뭘 제일 입고 싶으신지 직접 물어보고 싶네.’
기해랑의 눈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기해랑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기태랑을 통해서 물어보는 건 반칙이지!’
지금까지 합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기태랑에게 합숙소에서 있었던 일이나 예찬에 관해 묻지 않고 잘 참아 오지 않았는가?
팬 문화에 대해서 문외한인 그녀였지만 이럴 때 혈연을 이용하는 것은 어쩐지 치사하게 느껴졌다.
‘그래, 이거로 간다!’
마음을 다잡은 기해랑은 결연히 마우스를 쥐고 투표를 마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