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화
예찬이 범세혁과 맞잡았던 손을 빼려는 순간.
다시 한번 홀로그램 창이 튀어나왔다.
[신체 동기화!> [신체가 닿은 상대의 상태창을 볼 수 있어요! 상대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세요!>덥석!
텍스트를 끝까지 확인하기도 전에 예찬은 반쯤 떨어진 손을 급하게 다시 붙잡았다.
홀로그램 창이 좀 전에 우휘겸과 악수하라고 시킨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이거 알려 주려고 악수시켰다가 내가 이상한 선택지 고르니까 놀라서 못 알려 준 거네.’
쓸데없이 인간미 있는 게 기분 나빴다.
“……?”
범세혁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상태창!’
아이돌 연습생 ― 범세혁
비주얼 : S
노래 : S-
춤 : S
랩 : A
언변 : A+
반짝임 : A+
상태 : 플레이어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진짜로 다른 사람의 상태창이 떴다.
[타인의 상태창 첫 열람!> [축하합니다! 처음으로 타인의 상태창을 확인한 당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1 포인트가 추가됐어요!>홀로그램이 뭐라고 떠들든 예찬의 관심은 오로지 눈앞의 상태창에 쏠려 있었다.
고작 6개월 차 연습생이라기엔 터무니없는 능력치였다.
“음…… 하예찬 연습생?”
스탯을 구경한다고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는지 범세혁이 잡힌 손을 꼼지락거렸다.
옆에 앉아 있던 우휘겸도 수상한 놈을 보듯 예찬을 흘겨보고 있었다.
예찬은 급하게 손을 떼며 변명했다.
“아, 죄송합니다. 손이.”
뭐라고 하지?
[선택지 발생!>곤란한 당신에게 도움을 드립니다!
― 손이 따뜻해서 무심코.
― 손이 무척 고우시네요, 찡긋☆
― 손이 가요 손이 가~ 이 이상 부르면 PPL이겠죠?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거든?
예찬은 혼잣말하는 미친놈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삼켰다.
[3> [2>이상한 선택지만 들고 튀어나온 주제에 심지어 평소보다 고를 시간마저 짧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손가락을 들어 올린 예찬이 최대한 무해한 척 웃었다.
“손이 따뜻해서 무심코.”
“저 수족 냉증인데요.”
“아.”
예찬과 범세혁 사이로 깊은 침묵이 흘렀다.
무표정으로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던 우휘겸이 손을 반쯤 들고 끼어들었다.
“저도 수족 냉증입니다.”
……어쩌라고.
잠시간의 휴식 후 연습생들의 개별 인터뷰가 이어졌다.
본 촬영이 끝나서인지 다소 풀어진 분위기였으나 예찬은 집중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민 엔터 이윤철, 개인 연습생 박태수, 미래 뮤직 송재균…….’
연계 퀘스트
― 츄마프 99에 참여하는 연습생 이름을 전부 외우세요!
(진행 상태 92/98, 남은 기간 7일)
예찬에게만 보이는 홀로그램 창에 적혀 있는 숫자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7일이라는 말이 참 가증스러웠다.
다음 촬영은 일주일 뒤라 오늘 촬영이 끝나면 퀘스트 기간 동안 연습생들과 직접 얼굴을 볼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심지어 연습생들의 프로필은 1차 합숙 후 공개될 예정이라 앞으로 보름간 어디에도 실리지 않는다.
즉 사실상 데드라인은 오늘 촬영이 끝날 때까지였다.
‘정찬양 묻어 버리고 나면 어떻게든 이 홀로그램 놈도 묻을 거야. 반드시 묻을 거야. 어떻게든 묻을 거야.’
인터뷰가 끝난 연습생은 곧장 퇴근이었다.
(진행 상태 97/98, 남은 기간 7일)
다음 차례에 당장이라도 제 이름이 불릴까 불안함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예찬은 눈을 부릅뜨고 이리저리 모여 있는 연습생들 틈에서 간절히 마지막으로 남은 낯선 얼굴을 찾았다.
“하예찬 연습생!”
[퀘스트 성공!> [축하합니다! 연계 퀘스트를 훌륭하게 성공한 당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1 포인트가 추가됐어요!> [레벨 업!>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지막 한 사람의 이름을 속으로 외우는 것과 동시에 스태프가 예찬을 호출했다.
‘그래도 어떻게 해냈군.’
예찬은 긴장이 풀려서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 손을 뒤로 숨기고 스태프를 따라 인터뷰실로 들어갔다.
* * *
우여곡절 끝에 첫 촬영을 마친 예찬은 며칠 사이에 익숙해진 원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온종일 앉아서 박수봇 코스프레를 하고 왔더니 끔찍하게 피곤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앉은 예찬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수마에 저항하지 않고 굴복하기로 했다.
“지쳤다…….”
지금까지 리셋을 반복하며 차곡차곡 쌓아 온 인과들이 전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하면 힘이 빠졌다.
피로가 쌓이자 애써 미뤄 두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순식간에 밀려올 것 같았다.
예찬은 빠르게 잠으로 도피하기 위해 눈을 감고 양을 세기로 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정찬양 백 두 마리, 정찬양 백 세 마리…… 지금 뭘 세고 있는 거지?’
반쯤 잠들었던 예찬이 벌떡 일어났다.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예찬이 흘려보낸 모래알로 으리으리한 모래성을 쌓고 떵떵거리고 있는 정찬양을 떠올리자 당장이라도 그 성을 때려 부수고 싶다는 충동이 샘솟았다.
병든 닭처럼 무기력하던 온몸에 기운이 흘러넘쳤다.
이런 기분으로 잠들어 봤자 정찬양 백 마리에게 둘러싸이는 꿈이나 꿀 거 같단 생각이 들어 다시 눕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이튜브에 들어가자 조금 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꼴 보기 싫은 얼굴이 경고도 없이 치고 들어왔다.
[Lee:Spirit – ‘Stare’ MV]지난 며칠간 예찬이 알던 세계와 달라진 것이 있나 찾아 봐서 그런지, 아이돌 채널들이 랜덤으로 추천에 뜨는 모양이었다.
예찬은 자기 얼굴 대신 정찬양의 낯짝이 박혀 있는 섬네일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리셋창 놈에게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지금 당장 알려 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온 개인 연습생이 1군 최정상 아이돌을 저격한다?
‘자살 행위지. 내용이 어떻든지 우리, 아니 저쪽…….’
리스피릿을 저쪽이라 칭한 순간 이마에 핏대가 섰다.
심호흡을 깊게 한 예찬이 생각을 이어 갔다.
‘저쪽 팬덤에 찍히면 1등은 무슨, 데뷔도 어려워.’
하루가 멀다고 예찬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하나 나노 단위로 쪼개서 씹고 뜯고 커뮤니티에 퍼다 나를 것이다.
처음엔 ‘나만 이거 불편해?’ 정도의 수위로 시작하겠지만, 눈덩이처럼 살이 붙어 일주일 정도 지나면 예찬은 이 세상 둘도 없는 쓰레기 자식이 되어 있을 터였고.
예찬에게 호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한번 발이나 담가 볼까 왔다가 극성 안티들이 뛰노는 걸 보고 질려서 저 멀리 달아나는 미래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예찬은 당장 생산성 없는 싸움을 거는 대신 엉엉 우는 정찬양을 절벽 밑으로 뻥 차 버리는 상상을 하며 내일 노래방에서 퀘스트 달성을 위해 부를 곡을 검색했다.
* * *
“어, 하예찬 씨!”
일주일 후.
택시를 타고 합숙소 앞에 도착한 예찬에게 마찬가지로 택시에서 내린 연습생이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예찬은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내리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남지유 선배님.”
“앗, 나 아는구나! 하하, 쑥스럽네. 선배님 말고 형이라고 불러요!”
막 중학교에 입학했다 해도 믿을 만큼 대단한 동안의 소유자인 남지유가 양손을 내저으며 해맑게 웃었다.
남지유는 진짜 중학생이던 7년 전에 데뷔했다.
그리고 지금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보면 알겠지만 대차게 망했다.
데뷔일이 하필 유피테르랑 겹쳐서 망한 거라고 팬들은 말하지만 예찬이 보기엔 안 그랬어도 망했을 팀이었다.
꾸역꾸역 7년을 채우고 얼마 전 해체했는데, 남지유가 츄마프에 나오느라 재계약이 안 된 거라며 팬들은 날뛰는 중이었다.
거의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 수준으로 욕을 먹는 상황임에도 표정 관리를 잘하는 건지 아니면 멘탈이 단단한 건지 남지유의 웃는 얼굴엔 구김살 한 점 없었다.
‘그냥 생각이 없는 걸지도…….’
“네, 지유 형.”
무례한 생각을 하는 머리와 달리 예찬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와, 예찬 씨. 웃는 얼굴도 대박이네요.”
“감사합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 그럴까? 예찬이두 편하게 말해~”
두 사람은 나란히 캐리어를 끌고 언덕길을 올랐다.
붙임성 좋은 남지유가 계속 떠들어 준 덕에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일은 없었다.
“B등급 맞고 나 휴게 시간에 화장실 가서 한참 멍 때렸잖아.”
남지유가 한숨을 푹푹 쉬며 한탄을 이어갔다.
“막 귀에 ‘남지유 연습생은 B등급입니다.’ 이 말만 반복 재생되는 거야. 그 후에 촬영은 제대로 한 건지 기억두 안 난다.”
“그래요? 전혀 티 안 나던데.”
“진짜? 하, 다행이다. 합숙 땐 좀 잘해야 할 텐데…….”
눈썹과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남지유가 말끝을 흐렸다.
직접 보니 만화 캐릭터처럼 풍부한 표정 변화가 더 확 와 닿았다.
“잘하실 거예요.”
“빈말이라두 고마우이. 잘하는 애한테 응원받으니까 왠지 그럴 거 같으네.”
딱히 빈말한 것은 아니었다.
남지유는 첫 등급 평가 이후 모든 무대에서 준수한 기량을 뽐내고 대부분의 회차에서 데뷔 조에 들었다.
‘원 그룹 팬덤이 발목을 잡아 보려 하긴 하는데 워낙 한 줌이라.’
그마저도 전 그룹 멤버들이 다 같이 남지유를 응원하는 영상을 SNS에 올린 이후로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형이 칭찬해 주시니 저도 기운이 나네요.”
예찬은 살짝 점찍어 둔 미래의 서브 댄서를 향해 사근사근 웃었다.
남지유는 예찬이 함께 데뷔할 멤버로 고려해 둔 연습생 중 하나였다.
아이돌 고인물이 연습생들 노는 판에 들어왔는데, 퀘스트가 하라는 대로 1등 하나 따내고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조합으로 데뷔하지 않으면 수지에 맞지 않았다.
제법 높이가 있는 언덕을 끝까지 오르자 크게 트여 있는 공터 뒤로 합숙소 건물이 바로 보였다.
집합 시간보다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온 것인데 먼저 도착한 연습생들의 수가 제법 되었다.
“예찬아, 저기 뭐가 붙어 있나 봐.”
남지유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확실히 연습생 밀도가 높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 보니 방 배정표가 벽에 붙어 있었다.
“내 이름 찾았다! 예찬이 너는?”
“저도 찾았어요.”
배정표에 눈을 고정한 채로 예찬이 대답했다.
201호
― 범세혁 (루벨)
― 심상록 (GE)
― 우휘겸 (개인)
― 하예찬 (개인)
같은 등급끼리 방을 쓰게 묶은 건지 전원 S등급 연습생들이었다.
“와, 너희 방 완전 대박이다.”
예찬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 남지유가 감탄했다. 아마 제작진이 원한 반응이 딱 저거 아닐까.
“얼굴만 찍어도 꿀잼이겠는데?”
어째서인지 자기가 더 희희낙락하는 남지유와 달리 예찬은 우휘겸과 또다시 엮이게 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우휘겸과 세트로 묶여서 두들겨 맞는 놈이 되게 생겼다.
‘내가 정찬양이면 그런 건수는 절대 안 놓친다.’
예찬은 앞으로의 촬영에서 우휘겸과 거리를 두고 몸을 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일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