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5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9화
[두 후보생, 우선 앞으로 올라와 주시죠!]MC의 말에 따라 예찬과 범세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걸음씩 무대로 다가갈수록 무대 뒤편에 마련된 1위 자리와 가까워졌고, 자연스레 그 의자에 시선이 갔다.
예찬과 범세혁이 무대 위로 오르자 MC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범세혁 후보생과 하예찬 후보생, 하예찬 후보생과 범세혁 후보생! 과연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범세혁 후보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스태프가 가져온 마이크를 받은 범세혁이 예찬 쪽을 향해 돌아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예찬이는 이번 합숙에서도 정말 대단했죠. 그렇지만 저를 응원해 주시는 공주님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저를 위해서도 제가 1위를 하고 싶습니다.] [범세혁 후보생, 아주 패기가 넘치네요. 그럼 하예찬 후보생은 어떤가요?]마이크를 건네받은 예찬은 마찬가지로 범세혁과 눈을 마주친 채 입을 열었다.
[세혁이가 있어서 항상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엔 제가 1위를 하고 싶네요.] [두 후보생 모두 아주 의욕이 넘쳐서 보기 좋네요! 1위를 원하는 두 사람! 그렇지만 공주님들에게 선택받은 1위는 단 한 사람! 지금 바로 2차 계승식, 그 제일 높은 자리에 앉을 후보생을 발표하겠습니다!]예찬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한걸음 물러선 MC는 숫자 1이 새겨진 봉투를 열어 한 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2차 왕위 계승식, 영광의 1위는!]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게 뭐라고, 하고 치부하기엔 너무 큰 문제였고, 너무 큰 기대가 있었다.
지금의 짧은 침묵이 마치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이 길게만 느껴지던 순간.
드디어 MC의 입이 다시 열렸다.
[하예찬 후보생, 축하합니다!]‘……아.’
목구멍까지 막혀 있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쭈뼛 서는 이 감각을 느껴 본 것이 얼마 만인지.
저릿한 쾌감을 느끼며 예찬이 마이크를 들어 올리던 순간이었다.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팟, 하고 터졌다.
‘뭐야? 이 중요한때 설마 선택지야? 아니면 미션? 레벨 업?’
예찬은 서둘러 입 안쪽 살을 깨물어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관리하며 홀로그램 창을 빠르게 훑었다.
[축하합니다.>선택지도, 새로운 미션도, 레벨 업 알림도 아니었다.
진심을 담은 짧은 한 마디뿐이었다.
[…….]공중에 황망히 떠 있는 다섯 글자를 잠시 바라보던 예찬은 묘한 기분에 잠식될 것 같은 기분을 털어 버리고 입을 열었다.
[……이 소감을 말할 수 있도록 저를 이 자리에 데려다 주신 공주님들께 감사합니다. 저도 공주님들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 드릴게요. 사랑합니다.]어울리지 않게 싱거운 짓을 하는 홀로그램 창에 영향을 받은 건지, 지금까지 쌓아 온 또라이 같은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진중한 소감을 말해 버린 게 조금 걸렸으나 스튜디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아주 멋진 소감입니다, 하예찬 후보생!]항상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MC야 말할 것도 없었고 옆에 서 있는 범세혁도 양손으로 엄지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다른 연습생들도 진심인지 가식인지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팬들도 이렇게 반응해 줬으면 더할 나위 없겠군.’
후련한 마음과 함께 소감을 마친 예찬은 범세혁의 손에 마이크를 쥐여 주었다.
[이번엔 2위의 자리에 오른 범세혁 후보생의 소감을 들어 보겠습니다.]순위가 떨어졌으니 조금 침울해질 만도 한데 변함없이 쌩쌩한 범세혁이 자랑스럽게 마이크를 입 앞에 댔다.
[1위에서 2위로 떨어졌으니 침울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고, 어쨌든 2위라는 높은 순위니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는 분도 있을 거 같아요.]‘……티 났나?’
속마음을 읽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타이밍 좋게 나온 말에 예찬은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그보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
예찬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관계없이 범세혁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저는 번 무대에 정말 최선을 다했고, 제 최선을 보고 여러분께서 답해 주신 이 결과에도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가장 좋은 무대를 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여러분의 왕자를 지켜봐 주세요, 공주님!]범세혁의 입에서 이런 소감이 나온 것은 예찬이 알기로 처음이었다.
‘2위를 처음 해 봤으니 그럴 만한가.’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범세혁다운 소감이라 느껴졌다.
* * *
순위 발표식이 끝나고 연습생들은 곧장 챙겨 온 짐을 들고 합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번엔 탈락한 연습생들도 함께였다.
지난 1차 순발식 때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연습생들을 목격한 사람들로 인해 일부 탈락자 스포일러가 돌았던 것에 대한 방지책이었다.
‘덕분에 분위기는 끝장났군.’
스튜디오에서 연습생끼리 울고 짜고 작별 인사까지 이미 마쳤는데 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니 참 가관이었다.
가까이에 있는 연습생들을 버스에 마구잡이로 태우다 보니 예찬의 옆자리에는 김주영이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어색하게 웃었던 김주영은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작게 훌쩍이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예찬은 빠르게 평소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위치를 살폈다. 카메라가 빠져 있었다.
제작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떨어진 연습생까지 굳이 합숙소에 끌고 가는 모습을 방송에 내보낼 일은 없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말인즉, 카메라도 없겠다 그냥 자느라 못 들은 척을 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예찬이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흐느낌을 참아 보려는지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김주영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후.’
예찬은 눈을 꾹 감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색하게 내민 손이 김주영의 팔을 토닥거렸다.
“예, 예찬아…….”
“…….”
떨리는 목소리로 김주영이 예찬을 불렀다.
자신이 김주영의 입장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딱히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예찬은 그냥 계속 김주영의 팔을 말없이 두드렸다.
버스가 멈출 때까지 작은 울음소리는 이곳저곳에서 계속되었고,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찬아, 고마워. 꼭 데뷔해! 아니, 너라면 당연히 데뷔하겠지만.”
차에서 내린 김주영이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예찬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게 어디 있어. 고맙다.”
예찬의 말이 어딘가 심금을 울린 건지 김주영이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소매로 벅벅 닦아 냈다.
애틋한 얼굴을 한 김주영이 덥석 손을 붙잡았다.
“진짜 응원할게! 넌 꼭 잘될 거야!”
‘마지막이라 그런지 감정적이군.’
예찬은 급발진하는 상대가 부담스러웠지만 과격한 팬들을 떠올리며 차분히 대응했다.
“그래, 나도 응원할게.”
울먹이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김주영 때문에 예찬은 진심이 느껴지도록 같은 뜻이지만 다른 문장으로 계속 김주영을 위로했다.
“여러분! 오늘은 지난번 합숙과 똑같은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방 열쇠는 지금 나눠 드릴 테니 저한테 받아 가세요! 그리고 내일 오전에 2차 사인회 있는 거 잊지 마시고요!”
스태프의 말에 김주영과 헤어져 이전 룸메이트들과 합류한 예찬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카메라가 없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한 임채진이 작게 속삭였다.
“우리 방엔 탈락자가 없어서 다행이다. 나 버스에서 진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
“저 창희랑 나란히 앉아서 왔는데 쪼끔 눈물 났어여…….”
강창희라면 기태랑과 마지막까지 합격의 갈림길에 서 있다가 31위로 떨어진 연습생이었다. 얼마나 거북한 상황이었을지 상상만으로 끔찍했다.
진이 빠진 두 사람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온 예찬은 곧장 캐리어를 열어 세면도구를 챙겼다.
“형, 바로 샤워하시게여?”
“힘들지도 않아? 진짜 1등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경악과 감탄이 반반 섞인 두 사람의 시선에 예찬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좀 있으면 샤워실에 엄청 몰릴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침대에 널브러졌던 두 사람이 급하게 가방을 뒤지는 소리를 들으며 예찬은 먼저 방을 빠져나왔다.
샤워실에 들어서자 부지런한 몇몇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연습생과 짧게 눈인사를 마친 예찬은 잽싸게 빈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1위를 했단 고양감도 잠시, 미지근한 물을 맞고 있으려니 순식간에 머리가 차분해졌다. 예찬은 덤덤하게 이상한 타이밍에 튀어나온 홀로그램 창을 떠올렸다.
‘[축하합니다.>라니, 기분 나빠.’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이고 나니 추측은 확신으로 기울었다. 홀로그램 창은 자신에게 해가 될 선택지를 내놓지 않는다.
‘자꾸 우휘겸이랑 엮으려고 안달이 나서 이 새끼가 사람 물 먹이려고 이러나 싶었는데…….’
우휘겸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으로선 홀로그램 창이 자신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더러워.’
지금 홀로그램 창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인생에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했던 리셋 창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예찬으로선 영문 모를 호의를 단순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 새끼도 언제 뒤통수치고 인간으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지금으로서는 뗄 방법을 모르니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예찬은 긴장을 놓지 않기로 다짐하며 물을 더 세게 틀었다.
예상대로 예찬이 밖으로 나올 즈음에 샤워실은 미어터질 것처럼 꽉꽉 차 있었다. 바깥 복도에 갈아입을 옷을 들고 줄 서 있는 정의탁을 잠시 안쓰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정의탁이 약이 올라서 펄쩍 뛰었다.
어쩐지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홀로그램 창 때문에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아서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침, 스태프가 예고한 시간에 모인 연습생들은 각자 버스에 나눠 타 샵으로 향했다.
제작진이 전날 미리 말한 대로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2차 사인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1차 사인회와 마찬가지로 이미 순위 발표식을 진행한 상황이지만 아직 방송으론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탈락한 연습생들도 동행했다.
‘탈락자야 얼굴 상태로 뻔히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붙은 사람 중에서도 엉망인 놈이 한둘이 아니군.’
하차할 연습생 대부분이 펑펑 울다 잠들었는지 눈이나 얼굴이 팅팅 부어 있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합격자 몇몇도 적잖게 얼굴이 부풀어 있었다.
룸메이트인 기태랑도 그중 하나였다.
“이거 메이크업으로 가려질까여? 안 될 거 같은데…….”
‘얜 순발식 때 제일 많이 울었으니.’
기태랑의 턱을 잡고 요리조리 돌려 본 남지유가 혀를 찼다.
“태랑아, 이거는 안 되겄다.”
“흐엥…….”
“야야, 울지마. 더 심해져!”
남지유의 예상대로 기태랑의 얼굴은 메이크업으로도 살릴 수 없었다.
“그, 그래도 나름대로 귀여워.”
“그래, 역시 어린 게 답인가 봐.”
남지유와 임채진이 풀 죽은 기태랑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형, 저랑 한 살 차이 나잖아여…….”
“야, 열아홉이랑 스물은 완전 달라!”
소란스러운 조원들을 피해 옆을 보자 한층 더 침울해 보이는 얼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사인회는 각자 두 조씩 총 네 곳에서 진행했는데, 아무도 탈락하지 않은 예찬의 조와 달리 저쪽은 조원의 반 이상이 떨어졌다 보니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오늘은 표정 관리 제대로 안 하면 큰일 나겠군.’
실수로 웃기라도 하면 비웃었네, 뭐네 하며 신나게 날조할 게 분명했다. 예찬이 어지간하면 옆 조에는 눈길도 주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을 무렵 제작진이 연습생들을 불렀다.
“이제 안으로 들어갈게요!”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하자, 차분하게!”
버스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자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사인회와 콘서트에서 본 기억이 있는 얼굴들이 예찬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팬들한테는 항상 최고의 얼굴만 보여 줘야 해.’
예찬은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준비된 무대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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